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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얼굴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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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창백한얼굴
작품등록일 :
2023.02.19 13:50
최근연재일 :
2023.03.3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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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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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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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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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53화 K국형 미투

DUMMY

제53화 K국형 미투


‘테세우스의 배’는 그리스의 테세우스가 몸뚱이는 사람이고 머리는 소인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사람들을 구출할 때 아테네로 타고 온 배였다.


배가 낡자 배를 조금씩 수리하면서 배의 판자를 하나씩 갈아 끼웠는데 세월이 흘러 마침내 배의 모든 판자를 새로 갈아 끼우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최초의 판자는 하나도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로 부를 수 있는가?


‘테세우스의 배’는 사물의 변화와 그 정체성의 지속에 관한 형이상학의 난제 중의 하나였다. 사형제도 폐지 주장에도 가끔 인용되고는 했다.


“제가 예전 판사로 있을 때 다룬 사건 중에, 7년 전에 성폭행당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증거는 별로 남아있지 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참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보호법익이 여성의 정조권에서 성적 자기 결정권으로 옮겨 갔으므로 피해자 우선의 원칙에 따라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게 될 경우, 현재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는 피해자와 7년 전 당시의 피해자와 동일성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당연히 동일인이 아니냐고 하겠으나, 보호법익이 자기 결정권이라는 마음속의 것이었다. 7년 전의 마음과 현재의 마음이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한창 연애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던 행위가 나중에 싸우고 헤어지면 성범죄가 되는 모순을 해결해야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라도 몇 년, 몇십 년 전의 일을 가지고 강간 또는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고 주장할 수가 있었다. 법적인 시효가 있으나, 이런 주장은 처벌보다는 언론을 통한 여론재판이 무서운 법이었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사금 후보 건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0년 전에 손금을 보려 손을 잡았다. 10 년 후에 생각해보니 성추행이었다. 저는 이제 판사직을 떠나 학교에 몸담고 있으니 판단은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유 교수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이 자리에 그가 나온 이유는 오직 이런 말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굳이 이사금 후보 건이 아니더라도 이 K국에서 일어나는 미투는 다른 나라와는 성향이 좀 달랐다.


여론의 힘을 결집하여 사회적으로 고발하려는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K국에서는 이것이 흥미 위주의 선정적인 기삿거리나 특정한 인물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데 악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고 있었다.


“테세우스의 배라, 네 좋은 말씀이기는 한데 너무 철학적이라 하여튼 알겠습니다. 그럼 요즘 너튜브 등에서 떠돌고 있는데 이사금 후보가 성매매를 했다는둥, 물론 닮은 사람이라는 말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어느 분이?”


사회자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머리에 펌을 한 이 교수가 나섰다.


“저도 그 너튜브 동영상을 잠깐 보기는 했어요. 예전 얘기라 지금 그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이사금 후보의 여러 가지 행태, 불륜이나 사생아 같은 것들, 성추행 부분은 빼고도 이런 넘치는 추한 행태들을 볼 때 성매매도 충분히 했을 개연성은 높아 보여요. 더구나 그는 여태 혼자 살고 있잖아요. 건장한 남자가 뭐 굳이 증거를 찾지 않더라도 뻔한 것 아니겠어요? 김 교수님 안 그래요?”


이 교수는 말끝에 느닷없이 김 교수에게 동의를 구했다. 태평하게 앉아 있던 김 교수는 깜짝 놀란 듯 코끝에 걸린 안경을 황급히 밀어 올렸다.


“저는 안 그런데요?”


“맹세할 수 있겠어요? 조사하면 다 나와요.”


“맹세를 강요하는 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윈데요? 그래서 요새는 학생들에게 반성문 같은 것도 안 받는 걸로 아는데요?”


“학교에서 반성문도 안 받는다구요? 그건 안될 말이죠. 잘못하는 애들은 따끔히 꾸짖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반성문도 받아야죠.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 부모들도 다시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고 봐요. 교편이 없으면 교육도 없거든요.”


교편(敎鞭)은 교사가 수업할 때 가르칠 사항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느다란 막대기를 말했다. 흔히 학생들을 훈육할 때 사용하는 매로 자주 쓰였다.


“예 예 말이 옆길로 샜는데,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에 재미있으면 되는 거지요 뭐. 이렇게 저희 토론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발언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럼 다음 주제는···”


노련한 사회자는 패널들의 대화가 엉뚱한 곳으로 흘렀으나 전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 * *


“후보님, 지역에서 나온 당원들이 얼마 되지 않아요. 이 지역 당협위원장이 거의 손을 놓고 있는 듯해요.”


대변인 송다설은 이사금 뒤를 따르는 사람들 수를 눈대중으로 어림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한눈에도 얼마 전과 차이가 많이 났다. 이사금의 지지율이 홍사은 후보에 비해 5% 이상 크게 앞설 때는 아무런 지침을 내리지 않아도 각 지역에서는 자발적으로 당원들이 모였었다.


당원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그 지역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었다. 다들 이사금 후보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고 너도나도 손을 내밀었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려는 휴대전화가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최근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홍사은에게 뒤지자 지역 민심이 확연히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민심이 그런 걸 어쩌겠어.”


김성주 의원이 이사금 대신 대답하며 뒤를 돌아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원들 몇이 뒤따르고 있을 뿐 일반 지역민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제 책임이에요. 다들 미안해요.”


이사금은 진심으로 캠프 참모들에게 미안했다. 그가 좀 더 냉정하고 전략적으로 행동했더라면 민심이 이렇게까지는 악화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렇다고 딸을 딸이라고 부른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20년 만에 그 존재를 알고 마침내 품에 안은 핏줄이었다.


“아니에요. 저희가 후보님을 잘 보필하지 못해서 그래요. 좀 더 적극적으로 언론에 대응했어야 했는데.”


송다설은 그게 한없이 아쉬웠다. 성추행이란 어처구니없는 삼등신문의 기사에도 어떻게 손을 쓰기가 어려웠다. 항의 설명을 발표하고 허위 기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으나 언제 수사에 들어갈지 기약도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 정권 내에서는 수사에 착수하지 않을 게 뻔했다.


뻔한 거짓 기사를 눈으로 보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다는 게 억울했다. 비록 수없는 실정으로 진작 국민의 눈 밖에 난 정권이지만 여전히 막강한 법적 권력은 그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우리 믿음이 정의는 가짜에 이긴다, 아니 이겨야 한다 그거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국민은 진실을 알게 된다고 믿어요.”


이사금이 도리어 그녀를 위로했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없잖아요. 이제 겨우 보름 남짓 남았는데··· 아무튼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야겠어요. 적어도 후회는 남기지 말아야죠.”


송다설은 말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뒷말은 이사금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은 것이었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어떻게?”


김성주가 픽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한 말이 분명해 보였다. 송다설이 같이 유머로 받았다.


“지금까지는 좀 낙타처럼 뒤뚱거리며 걸었거든요. 앞으로는 말처럼 달려야죠.”


“설마 송 대변인이 백말띠는 아니겠지?”


“우엑, 제가 그렇게 늙어 보여요? 저는 신미년생 양띠거든요? 흰 양띠.”


“양띠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마흔 살은 아직 안 돼 보여.”


“김성주 의원님도 환갑은 아직 안 돼 보여요.”


“같은 환갑 아래라고 설마 맞먹자는 건 아니겠지?”


“아직 잘 모르시는가 본대요. 여자는요. 20년 넘어 나이가 차이 나는 남자와 결혼도 할 수 있어요.”


티격태격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떻게든 우울한 기분을 날려보려는 노력이었다. 대화하는 둘도 알고 있었고, 묵묵히 듣고 있는 이사금도 이심전심으로 느끼고 있었다. 좀 유식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통정한 비진의 의사표시’였다.


일행이 시장통으로 들어서자 제법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사금은 행인들을 향해 손을 치켜들며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가 으쌰으쌰 하며 북돋고 격려해야 했다.


송다설과 김성주도 함께 허리를 접었으나 행인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몇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렸고, 또 다른 몇은 입을 가리고 자기들끼리 뭐라고 쑥덕거렸다.


이사금은 행인들 속으로 조금 더 다가갔다. 그리고 한 번 더 인사를 건넸다.


“날이 춥죠?”


몇씩 몰려있던 사람들이 그가 가까이 가면 놀란 물고기떼처럼 이리저리 흩어졌다.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어도 아무도 마주 잡아오지 않았다.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었으나 이사금은 여전히 한 손을 내밀고 피하는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후보님”


보기에 딱해진 송다설이 이사금을 불렀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참말 염치도 좋구만.”


“그러니 불륜에 사생아에다가 성추행까지 하고 돌아다니지.”


어디선가 달걀 몇 개가 날아왔다. 그중 하나가 이사금의 이마에 맞아 퍽 소리를 내며 터졌다. 날 계란이었다.


이사금의 앞 머리카락에 깨진 달걀의 노른자가 누렇게 묻었고, 노른자보다 더 묽은 흰자가 이마 아래로 흘러내렸다.


난감해하는 그에게 송다설이 달려갔다. 급한 김에 손으로 깨진 달걀을 훑어내렸으나 끈적끈적하여 별로 깨끗이 닦이지는 않았다.


“휴지 없어요?”


옆으로 다가온 김성주에게 묻다가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끄집어냈다.


“이거라도···”


어떤 아주머니가 얼른 다가와 머리에 둘러쓴 스카프를 풀어 이사금의 안면을 닦아주다가 주위의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재빠르게 이사금에게 속삭였다.


“저희 식구들은 모두 후보님을 믿어요.”


이사금 일행의 뒤를 따르던 당원 하나가 어디서 구했는지 물티슈를 가지고 왔다. 그걸로 대충이나마 안면에 떡칠이 된 계란 흔적을 지울 수 있었다.


“그건 이리 주세요.”


송다설이 그 아주머니가 준 스카프를 어떻게 처리할까 망설이는데 이사금이 그녀의 손에서 스카프를 받아갔다.


“어디에 쓰시려구요? 온통 깨진 달걀이 묻어서 버려야 할 것 같아요.”


“도움을 받은 것이니 나중에라도 깨끗이 빨아서 돌려줄 생각이에요.”


“어머, 그럼 제가 빨아서 주인을 찾아 돌려주도록 할게요.”


“아니, 내가 할게요. 혼자 살아서 이 정도 빨래는 잘해요.”


괜찮다고 손을 내젓는 이사금의 옆에서 멀뚱히 지켜보던 김성주가 특유의 농담을 늘어놓았다.


“후보님, 또 궁상맞게 그러시네. 그런데 참, 사람들도 너무 하네. 나처럼 집에 운동 부족으로 체중만 늘고 있는 여자가 있는 사람을 골라야지 하필 홀아비라 빨래하기도 힘든 후보님을··· 에이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


“어머 김 의원님은 몰라도 저는 안 돼요. 요즘 미장원에서 머리하는데 제법 비싸거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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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에필로그 +4 23.03.31 281 6 5쪽
65 제65화 기다림의 시간(완결) +4 23.03.31 290 8 6쪽
64 제64화 대선 전날 밤 23.03.30 240 6 11쪽
63 제63화 말리꽃이 떨어지다 +1 23.03.29 247 7 12쪽
62 제62화 대단한 서금지 +1 23.03.28 246 6 12쪽
61 제61화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23.03.27 262 5 12쪽
60 제60화 서금지의 활약 +1 23.03.26 263 6 12쪽
59 제59화 대통령의 결혼식은 이루어질 것인가 23.03.25 275 7 12쪽
58 제58화 반전의 시작 23.03.24 261 6 12쪽
57 제57화 서금지, 활동을 시작하다 23.03.23 240 5 12쪽
56 제56화 서금지와 심단심 23.03.22 244 4 12쪽
55 제55화 이사금과 아버지의 대화 23.03.21 245 5 12쪽
54 제54화 이사금이 마음을 달래는 법 23.03.20 248 5 12쪽
» 제53화 K국형 미투 23.03.19 264 6 11쪽
52 제52화 테세우스의 배 23.03.18 244 5 11쪽
51 제51화 10년 전 손금을 봐준 죄 23.03.17 258 5 12쪽
50 제50화 가짜 언론의 좀비 23.03.16 278 5 12쪽
49 제49화 박사금, 이사금을 만나다 23.03.15 286 5 12쪽
48 제48화 한 맺힌 5급 행정사무관 23.03.14 278 5 12쪽
47 제47화 개참, 다시 준동하다 23.03.13 272 5 12쪽
46 제46화 기자(記者)는 놈 자(者)자를 쓴다 23.03.12 296 6 12쪽
45 제45화 서금지를 만나야 한다 23.03.11 287 6 12쪽
44 제44화 DNA 유전자 분석 결과 23.03.10 297 6 11쪽
43 제43화 이사금의 생일 잔치 23.03.09 245 5 11쪽
42 제42화 황룡과 구렁이 23.03.08 260 6 12쪽
41 제41화 반전의 타이밍 23.03.07 293 5 12쪽
40 제40화 개 기자 킬러 권순덕 기자 23.03.06 272 7 12쪽
39 제39화 서금지는 B형 23.03.05 287 6 12쪽
38 제38화 서금지, 집을 나오다 23.03.04 28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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