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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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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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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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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45,036

작성
21.10.19 09:00
조회
3,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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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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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03 슈퍼액터 프로젝트

DUMMY

촬영 뒷풀이 자리였다.

그들이 다니던 대학 근처의 학창시절부터 자주 가던 술집에 갔다.

감독인 박상만, 제작프로듀서 김유진과 함께 주인공 천수희, 그리고 카메오 강진철 이렇게 네 명이 술집 탁자에 둘러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얼큰하게 취해 열심히 떠들고 있는 상만에게 수희가 술을 권했다.


“자 한잔 받아. 그리고 건배”


장소나 시간을 막론하고 네 사람 중 가장 크게, 많이 떠드는 것은 상만이고 그 다음은 유진과 진철 순이었으며 수희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나 지금 방금 마셨어. 너 내 말이 지루하냐? 왜 입을 막으려고 그래?”


그렇게 말하면서도 상만은 절대 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이 있는데 네가 한 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수희는 보통 친구들이 떠드는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지만 말이 재미없으면 계속 술을 권해서 입을 막아 버리고는 했는데 상만이 주로 그 대상이었다.


“수옥아! 너 배우 맞냐? 아까 그 끝내주는 장면 얘기가 재미없어?”


상만이 금기를 어기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입에 담자 수희가 상추를 집어 던졌다.


[철푸덕]


상추는 정확하게 상만의 얼굴에 적중해 사방에 품고 있던 물방울들을 흩뿌렸다.


“야! 그 촌스러운 이름 다시는 꺼내지 말랬지? 이제 내 이름은 수희라고”

“어! 미안. 미안해. 수옥아. 헙!”


상만이 제 입을 막았다.


“너 또 일부러 그런거지? 나 몰라. 여기 돈 다 네가 내”


상만과 유진이 깜짝 놀랐다.

대책 없이 영화에 모든 걸 다 쏟아 부은 이 인간들은 뒷풀이 할 돈도 남겨두지 않아 스텝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걸 주연배우인 수희가 모두 부담하기로 하고 온 자리였다.


“미안해. 그냥 입에 안 익어서 그래.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우리 돈 없어. 너 믿고 마구 먹은 거라고”


상만은 돈 앞에 바로 납작 엎드렸다.


“이름 바꾼게 언젠데 왜 아직 입에 안 익어? 어쨌든 너 또, 이름 가지고 놀리기만 해 봐”

“아이고. 물주님.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진철은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 술 먹을 때까지는 그럴 일 없겠지’


같이 술 마실 때 마다 반복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진철이 너 설마 그 신입생 때 얘기했던 그거 아직도 계속하고 있던 거야?”


딱 한 번 했던 얘긴데 설마 수희가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 몰랐던 진철은 깜짝 놀랐다.

그래서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응? 어 계속 진행하고 있었지”

“뭐. 뭘 계속해?”

“진철이 너 뭐 연출하려고 준비하냐?”


상만과 유진 두 사람은 모르는 이야기다.


“진철이 대학교 입학했을 때 세상 모든 연기를 최고수준으로 할 수 있는 그런 연기 방법을 만들어 내겠다고 했었는데 그거 성공하면 배역에 맞게 얼굴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했었어. 그 이름이 뭐였더라? 굉장히 유치했던 것 같은데?”


기억을 끄집어내려는지 수희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 진철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기억하지 마라. 기억하지 마’


수희가 말하는 그 계획의 명칭은 진철의 흑역사 중 하나였다.


‘이름이 너무 유치하고 촌스러워’


질풍노도의 중학교 때 지은 이름이라 그렇다고 하기에는 대학 신입생 때까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떠들고 다녔었다.

그 이름은 [슈퍼액터 프로젝트] 였다.

진철은 대학교 신입생 때까지도 중2병이 낫지 않았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그 프로젝트를 아직도 지속하는 걸 보면 아직도 낫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진철은 소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어쨌든 그거 성공한 거 아냐? 분위기 연기를 잘해서 잘생겨 보였다고 하기에는 뭔가 진짜 얼굴이 변한 것 같던데?”


유진이 한 말이다.


“맞아. 뭔가 진짜 얼굴이 약간 달라 보였어. 그러면 설마 성형? 그 계획이라는 게 성형이야?”


사실 어떻게 보면 신경과 근육의 움직임으로 하는 셀프 성형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철은 발뺌을 했다.


“성형이라니. 아직도 내 얼굴이 미남으로 보이냐?”


유진은 진철의 뺨을 양손으로 붙잡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말했다.


“아니, 그냥 평범남 강진철인데?”

“어쨌든 아까 그 연기가 그냥 우연히 나온 건 아니라는 말이야?”


상만이 다시 물어오자 진철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직은 미흡한 점이 너무 많기는 하지만 확실히 의식하고 한 거야. 그런데 다시 하라고 하면 다시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어쩌면 당분간은 아까의 그걸 재현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한 번 해냈으니 당연히 두 번도 할 수 있다.

어차피 평생 노력할 것 조바심 낼 필요 없다.


그 때 영화 스텝들이 하나둘씩 술집에 들어왔다.


“저희 왔어요. 뭐야, 벌써 이렇게 많이 드신 거예요?”

“다녀왔습니다. 히히. 술이다. 술”


하루 더 가지고 있으면 그게 다 돈이니 번거롭더라도 촬영 끝나자 마자 대여한 의류와 촬영장비를 다 반납하고 온 길이었다.

모두들 사람 잡는 독립영화 촬영이 끝났다는 후련함에 열심히 술을 몸에 쏟아 부어 쌓인 피로를 녹여냈다.







[딸깍!]


불이 켜지자 신발을 벗고 원룸 안으로 들어간 진철이 업고 있던 수희를 침대위에 눕혔다.


“애는 몸무게가 그대로네”

“음···음···ㅇ...”


수희가 애기 옹알이하는 것처럼 입을 오물거렸다.

독립영화의 여주인공 역할을 한다는 게 힘이 들었는지 평소보다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도 인사불성이 되어 버렸다.


“수희 매니저에게 또 한 소리 들어먹겠네”


진철은 뚱한 표정으로 항상 수희를 과보호하려고 하는 여자 매니저를 떠올렸다.

오늘 뒷풀이 한다고 수희가 강제로 퇴근시켰는데 늦은 시간이었어도 그냥 전화를 할 걸 그랬다.


‘그 매니저, 가뜩이나 나를 싫어하는데. 에휴! 어쩌겠어. 오늘은 그냥 데려왔는데, 앞으로는 전화해서 데려가라고 해야지’


수희는 얼마전 대박을 터뜨렸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요즘 핫한 라이징스타다.

대학시절 하던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원룸으로 데려왔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택시 기사라도 수희를 알아봤으면 나쁜 기사가 날 수도 있는 일이다.

진철은 침대에 누워있는 수희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예쁘네’


예쁜데 연기도 잘한다.

다른 대학 동기들처럼.

그녀는 진철과 명성예술종합대학 연기과 13학번 동기였다.

다만 대학 졸업 후 연극과 뮤지컬에 집중하다가 대중매체 연기판으로 진출한지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대학동기들 보다 대중적으로 늦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뿐이었다.








수희에게 이불을 덮어준 진철은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실행했다.

부팅이 되는 동안 모니터 옆의 거울을 보았다.


‘지금도 될까?’


진철은 왠지 모르게 뒤돌아 자고 있는 수희를 확인해 본 후 눈을 감고 한동안 집중을 했다가 다시 떴다.


‘역시’


거울 속에는 여전히 평범한 강진철의 얼굴이 보인다


‘뭐, 실망할 건 없어’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다.


‘아까는 현장의 긴장감과 시간이 없다는 압박감에 집중력이 올라간 것 같았으니까’


이미 한번 성공했으니 언젠가는 다시 한번 성공할 수 있을 게 분명하다.

아니 진철이 성공시킬 거다.

될지 안될지 확신도 없는 막연한 계획에 십 수 년이나 매달려 돈과 시간, 노력, 열정 등 가진 거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진철이다.

그런 진철에게 성공의 보장이 있는 노력이라는 건 힘든 게 아닌 성공의 맛을 마음껏 누리는 포상에 가까운 일이다.


[띵!]


컴퓨터의 부팅이 끝났다.

진철은 모니터 구석의 아이콘을 보았다.


[슈퍼액터 프로젝트]


그 아이콘에 달린 이름이었다.

어떤 배역이든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세웠던 계획이다.

중학교 때 노트에 적기 시작한 그 계획이 이제는 제법 내용이 많이 늘었고 또 충실해졌다.


[딸깍! 딸깍!]


폴더를 열자 하위 폴더들이 보인다.

긴 시간 진철 자신만의 연기방법론을 정립해가며 하나하나 만들어간 것들이다.


[심리층위]

배역의 심리를 분석하는 진철만의 방법에 대한 내용.

[움직임]

캐릭터의 움직임과 제스쳐를 연구한 것을 기록해 둔 것.

[대사]

대사를 말하는 방법에 대한 것.


각 폴더에는 지금까지 진철이 해왔던 무수한 캐릭터의 심리와 움직임, 대사를 어떻게 설정했는지에 대한 기록 역시 있다.

그래서 그 양이 엄청나게 많다.

노트에 적으면 거의 천 권에 육박할 정도의 내용이라 부득이 컴퓨터에 정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타] 폴더.


[딸깍! 딸깍!]


[전라도 옛말]

[타밀어의 해석]

[무예도보통지]

[단배공]

[창니보]

등등.


각양각색의 이름을 가진 수백개의 하위 폴더가 보인다.

이전 세 개의 폴더 속 내용을 다 합친 것 보다 수십배 많은 양의 데이터가 쌓여있는 폴더들이다.


진철이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용술]폴더다.

그 폴더를 보고 진철은 ‘피식’ 웃었다.


‘내 중2병의 결정체 같은 거지’


중학교 때 앞으로 연기를 하며 살기로 결정을 한 후 진철은 생각했다.

자기가 배우를 하기에는 약간 덜 잘생긴 것 같다고.

그래서 무협소설에 나오는 [역용술]을 익혀 잘생긴 얼굴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중 2병이었다.


그런데, 누가 들어도 허황되다 할 [역용술] 만들기에 십 수년 세월을 바쳐 도전하고, [슈퍼액터 프로젝트]라는 유치한 이름을 아직 고치지 않은 것을 보면 확실히 진철의 중2병은 아직 진행중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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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악한ARKHAN
    작성일
    22.02.21 15:56
    No. 1

    잘생김을 연기한다란 말을 잘생기진 않았지만 연기력이 출중한 탓에 매력이 넘쳐 흘러 잘생겨 보이기까지 한다란 뜻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진짜 물리적으로 잘생긴 연기를 도전한다니…. 진짜로 중2병 스러운 전개에 당황스럽네요. ㅎㅎㅎ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바둥
    작성일
    22.08.13 13:35
    No. 2

    연성이가 만든 유니버스가 배경인가요? 몽세계에서 얻은 지식들을 현실에 적용하는 스토리인거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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