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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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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168,252
추천수 :
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1.10.18 09:00
조회
4,999
추천
61
글자
11쪽

002 체인지맨

DUMMY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알아서 할게요”


진철은 전화를 끊었다.

통화 상대는 소속사인 AAA 엔터테인먼트에서 그를 담당하는 매니저 백실장이었다.

회사에 갑자기 급하고 중요한 일이 생겨 차량과 매니저가 그리 다 배치되었기 때문에 진철의 오늘 스케쥴은 그 혼자 가야 한다고 했다.

백실장은 정말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했지만 진철은 그의 대답처럼 정말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쓸데없는 것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게 아주 많다.


진철은 눈 앞의 모니터 속 자신의 얼굴사진을 유심히 지켜보다 마우스 버튼을 꾹 눌렀다.


[딸깍!]


모니터 속 그의 얼굴의 윤곽이 미세하게 변했다.


[스르륵]


진철이 중얼거렸다.


“정말 가능하기는 한 걸까?”


사진의 자기 얼굴은 어딘가 달라지기는 달라졌는데 어디가 달라졌느냐 물으면 그 미묘한 느낌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정말 약간 변했다.

진철을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진철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미약한 변화 때문에 사진 속 남자는 정말 평범에서 살짝 잘 생긴 정도에 불과한 진철과 다르게 아주 잘생긴 미남이 되어 있었다.

누구나 딱 보면 ‘아! 정말 잘생겼다’하는 말이 절로 나올.


다시 마우스 버튼을 눌렀다.


[딸깍!]

[스르륵]


미세한 효과음과 함께 미남 진철의 얼굴에서 피부가 벗겨지는 장면이 지나가고 그 밑의 근육이 드러났다.

아주 부드러운 변화다.


“아이고, 저런 효과는 안 넣어도 된다고 했는데”


붉은 근육이 드러난 그 얼굴사진은 실물이 아니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것이지만 실재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서 인체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끔직하게 보일 법한 장면이지만 – 거기다 자기 얼굴사진이다 - 진철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날카로운 눈으로 영상을 관찰했다.

다시 마우스를 눌렀다.


[딸깍!]


이번에는 얼굴의 근육이 섬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진철의 평범한 얼굴에서 미남의 얼굴로 변하려면 근육이 저렇게 움직여야한다.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아주 세세한 것까지 눈에 담은 진철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몸을 꼿꼿하게 세운 후 눈을 감고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흡! 호! 흡! 호!]


규칙적인 호흡에 따라 진철의 의식은 점점 몸 내부로 침잠되어 다른 감각들을 잊어버리고 얼굴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얼굴 전체에 퍼져있는 아주 얇은 실핏줄 끝까지 흘러가는 혈액과 근육, 신경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느끼는 것과 그것들을 조작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뇌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움직이라는 명령에 신경이 팽팽하게 긴장하고 근육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딱 한 스텝만 더 나아가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데 그게 되지 않는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진철은 살며시 눈을 뜨고 모니터 옆에 놓여있는 거울을 보았다.

그리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에휴!”


미남은 없고 평소 진철의 얼굴만 여전히 거울에 비친다.

그 작은 스텝을 내딛기가 천 길 절벽이라도 올라가는 것보다 힘들다.


“오늘은 정말 컨디션이 좋아서 성공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낙담한 건 아니다.


“뭐, 언젠가는 성공하겠지”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보았다.


“이제 나갈 시간인가?”


진철은 열려있던 모니터의 창들을 하나씩 닫기 시작했다.


안면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보여준 모핑 프로그램을 닫자 [역용술]이라는 이름의 폴더가 보인다. 그 폴더도 닫자 [심리층위][마임][딕션][기타]라는 이름의 상위 폴더들이 주르륵 보였다.

진철은 그 폴더까지 닫고 컴퓨터를 끈 후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골라 놓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 작은 원룸을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에서 내린 진철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인상을 썼다.

미약한 두통과 나른함 때문이다.

신경과 근육을 혹사시킨 부작용인데 그동안의 경험으로 조금만 참으면 저절로 회복될 걸 알고 있다.

오늘 촬영에 문제는 없을 거다.

택시에서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먹자골목 안쪽에 복작거리는 촬영 현장 앞에서 이번 영화의 조감독을 맡은 대학후배가 그에게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진철도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서 오세요. 진철선배”

“그래 두기야. 내가 늦지는 않았지?”


그가 도착한 곳은 대학동기가 찍는 [체인지맨]이라는 독립영화 현장이었는데 진철은 오늘 카메오로 출연하기로 했다.


“네. 선배 촬영분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요. 뭐”

“진형이는 왔고? 그런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오늘 카메오로 출연하는 배우는 다른 대학 동기인 김진형도 있었다.


“아! 진형선배는 못 오게 됐어요”


진철은 두통을 순식간에 잊어버렸다.


“뭐? 진형이 역할은 중요할 텐데?”


김진형이 맡은 배역은 카메오답게 영화의 마지막에 딱 한 장면만 등장하기는 하지만 극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다.

생략하고 지나가도 아무런 문제없는 진철의 역할과는 다르다.


“그럼 어떻게 해? 촬영 미루기로 했어?”


후배는 한숨을 폭 쉬었다.


“아뇨. 어떻게 할지 상만이형과 유진누나가 지금 회의하고 있어요”


김상만은 이 영화의 감독이고, 김유진은 제작 프로듀서였는데 둘 다 진철의 대학 동기였다.

진철은 후배를 뒤로 하고 두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빵꾸 났다며?”

“왔냐?”

“왔어?”


개성적으로 생긴 남자와 보이쉬하게 생긴 여자, 두 인간의 인사가 영 맥아리 하나 없다.


‘안그래도 영화 찍는데 영혼까지 다 털어 넣었을 텐데. 힘이 없을만도 하지’


오늘은 영화의 마지막 촬영날이고 지금쯤이면 스텝들의 체력은 물론이고 예산도 다 동이 났을 때다.


“얘기 들었어. 대책은 마련했고? 영재나 휘영이한테는 전화해 봤어?”


둘 다 그들의 대학동기고 무척 잘생긴 배우들이다.


“둘 다 지금 한국에 없다”

“그럼 다른 애들은?”

“설사 누가 도와주려고 해도 지금 여기 없으면 소용없어. 분장할 시간도 있어야 하는데 이제 조금 있으면 저 가게 대여한 시간 끝이야. 엑스트라들 계약한 시간도 끝이고. 다시 오늘처럼 세팅할 돈은 없다. 다 썼어. 영혼까지 끌어다”


독립영화 찍는 인간들 사정 뻔한 건 진철도 잘 안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지만 진철도 모종의 이유로 얼마 전 그동안 번 돈을 다 써버려 돈이 없다.


“그런데 진형이는 왜 못 온데?”


그 질문에는 유진이 대답했다.


“다리 부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갔다”


진형이도 자기 다리가 부러질 줄은 몰랐을 테니 원망도 못할 이유다.


“그래? 에휴! 많이는 안 다쳤대?”

“뼈가 아주 자로 잰 것처럼 깔끔하게 부러져서 골절사진 모델을 해도 될 것 같아. 걔는 부러진 뼈도 잘 생겼더라”


다쳐도 깔끔하게 다쳤으면 회복에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건 다행이네”


그 때 영화의 여주인공인 천수희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 연락되는 애들은 있고?”


역시 그들의 대학동기로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다.


“휴! 방법이 없어”

“왜 없어? 여기 진철이 있잖아. 진철이가 대신 연기하면 되는 거 아냐? 어차피 그 배역 대사도 없는데”

“어? ···그건”

“어···”


상만과 유진이 곤란하다는 듯 진철을 보았고 진철은 수희를 보았다.


“그래도 나는 아니지”

“네가 왜?”

“나는 미남이 아니잖아”


영화 내용상 그 배역은 지나가기만 해도 사람들의 시선이 저절로 모이는 미남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영화 전체의 내용을 관객에게 납득시킬 수 있다.

진철의 얼굴로는 설득력이 없다.


“왜? 너 잘생겼어. 미남이야”


천수희는 옛날부터 좀 심미안이 남달랐다.


“그래. 미남이라고 해줘서 고맙기는 한데. 오늘 촬영은 일반적인 사람의 기준에 맞는 미남이 필요하니까”

“그럼 미남을 연기해”


진철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데 그건 여기 오기 직전에도 실패했던 일이다.

그래서 안된다 말을 하려 했지만 상만이 끼어들었다.


“그래, 진철이 너 밖에 없다. 네가 좀 도와줘라”

“응? 진짜 내가?”

“그래. 너라면 진형이와 체격도 비슷하니까 명품으로 빌려 논 의상도 그대로 입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얼굴은···”


상만은 말하다가 자기도 기가 찼던지 잠깐 말이 끊겼다.


“수희 말대로 네가 연기로 어떻게든 커버 좀 해주라”


남자의 얼굴에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처연한 표정이 상만의 얼굴에 떠올랐다.


“야! 그게 연기로 되는 일이냐?”


진철은 기가 막혔다.


“그럼 어떻게 해? 지금 상황에서는 진철이 네가 가장 좋은 선택지야. 부탁 좀 하자. 어차피 너 오늘 카메오 출연해 주려고 온 거잖아. 그냥 이게 원래 배역이었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노력 좀 해 주라”


감독인 상만은 현실과 타협을 하기로 한 것 같다.

프로듀서인 유리도 그런 상만의 쓰린 마음을 아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휴! 그래. 그렇게 하자. 어떻게 하면 되냐?”








진철은 멋진 양복을 입고 반짝이는 시계를 차고 젠틀하게 다듬은 머리 모양을 하고 고깃집 앞에 섰다.


“준비됐어? 시작할까?”

“아! 잠깐만. 준비 좀 하고”


이왕 미남 역할을 맡은 거 다시 한번 시도라도 해봐야겠다.

진철은 크게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정신을 집중해 얼굴의 신경과 근육을 느낀 다음 이전에 수천번은 넘도록 시도해 본 일을 다시 했다.


‘아까보다 근육과 신경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예감이 좋아. 컨디션도 좋고’


그 예감이 맞았다.

이전에는 죽어도 되지 않던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펄쩍 뛰며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겨우 꾹 참은 진철은 계속 근육과 신경을 조작하는데 집중했다.


잠시 후 진철이 눈을 떴을 때 주변은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해져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진철의 얼굴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됐어, 성공했어’


얼마나 이 얼굴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닐 것 같으니 빨리 촬영을 진행해야 한다.

진철은 눈으로 상만에게 신호를 보냈고 다른 사람들처럼 멍하니 진철의 얼굴을 보고있던 상만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어? 그래. 액션!”


진철은 그렇게 처음으로 잘생김을 연기해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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