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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평 님의 서재입니다.

테슬라 in 벽력세가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김태평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11 14:55
최근연재일 :
2024.08.13 23:01
연재수 :
4 회
조회수 :
314
추천수 :
26
글자수 :
18,480

작성
24.08.12 14:22
조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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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신진제갈기전

DUMMY

3.



“형님.”


벽화평은 늦은 밤중에 불쑥 찾아온 둘째 동생을 쳐다봤다.

첫째인 벽문강과 달리, 벽후량(霹後亮)은 극과 극이라 할 만큼 입이 무겁고 매사 언동이 진중한 편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에 찾아온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무진이 말입니다.”

“무진이 왜?”

“기재(奇才)가 실로 예사롭지 않습니다.”

“기재가?”


벽화평은 새삼스러운 얘기를 왜 이렇게 진지하게 꺼내나 싶었다.

대제께서 무진의 몸에 깃든 후로, 무진이 특별해졌음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한데 모두가 아는 사실을 대뜸 이 밤에 꺼내는 이유가 뭘까? 대답은 바로 직후에 나왔다.


“언어를 흡수하는 재능이 가히 천재적입니다.”


벽화평은 공감한다는 듯 크게 끄덕였다.


“음. 그 부분은 실로 괄목할 만한 재능이지.”

“그런데 정작 더 놀라운 게 따로 있습디다.”

“따로 있다고?”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벽화평의 동작이 뚝 멎었다. 무진이 의식을 되찾은 후로 마치 언어 능력을 상실한 사람처럼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어찌나 놀랐던가?

벽후량은 그런 무진에게 글을 읽는 법부터 시작해 쓰는 것까지 새로 가르친 장본인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그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죠.”


벌떡!


벽후량은 그리 말하고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벽화평은 그런 동생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종종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해오던 녀석이었다.

그래서 일단 지켜봤는데, 웬걸?

대뜸 집무실 구석에 놓인 바둑판을 들고 오는 게 아니던가?


달그락-


“지금 뭐 하는...?”

“보십시오, 형님.”


벽후량은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흑돌과 백돌을 놓기 시작했다.

좌상귀와 좌변을 중심으로 흑과 백의 돌들이 채워지는 국면이다.


탁, 탁, 탁-


고요한 와중에 바둑판에 돌을 놓는 소리만이 집무실을 채웠다.

언뜻 봐도 100여 개가 넘는 돌들이다. 그것을 암기하여 막힘없이 술술 두는 벽후량도 범상치 않지만, 벽화평은 원체 동생의 실력을 잘 알기에 묵묵히 지켜보았다.


탁-!


그러길 얼마쯤 지났을까. 마지막 흑돌을 끝으로 총 120개의 돌을 채운 벽후량이 대뜸 고개를 들어 눈짓했다.


“지금 나더러 두라는 건가?”


끄덕.


“······.”


벽화평은 지그시 미간을 모았다. 눈앞의 둘째 동생은 예부터 금기서화(琴棋書畵-음악, 바둑, 서예, 회화) 중에서 특히 ‘기(棋-바둑)’에 특출난 재능을 보여왔다.

모든 방면에서 나름 총명하다는 소리를 듣던 벽화평조차 그를 이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오죽할까. 한데 그런 동생이 대뜸 100수가 넘어가는 기보를 물었다.


‘난제로군.’


벽화평은 백돌을 만지작거리며 침묵에 잠겼다. 어느새 벽후량이 던진 문제의 저의보단 순수하게 눈앞의 기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더 집중이 쏠렸다. 호승심이다.


“난 여기로 두겠네.”


탁!


숙고하던 벽화평이 마침내 착수했다. 이미 죽었다고 판단된 좌상귀 하변을 과감하게 내주고 미래를 가져가겠다는 실리적인 선택이다. 벽후량은 고개를 주억였다.


“형님다운 수입니다.”


벽화평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내 선택이 옳았는가?”


벽후량은 대답하는 대신에 벽화평이 착수한 백돌을 집었다. 그러더니 우측으로 3칸 옮겨 탁! 돌을 놓았다.


“...?”


벽화평은 선뜻 그 수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대체 무슨 수인가?”

“지금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벽후량은 그리 말하고는 흑돌과 백돌을 번갈아 놓기 시작했다.

한데 신기하게도 점차 돌이 늘어날수록 열세였던 백의 위세가 살아났다. 그러길 어느 순간, 흑돌을 압도하는 형세로 돌변했다. 벽화평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외쳤다.


“그 한 수가 이런 의미였다니! 허허! 아우의 경지는 가히 신기(神技)에 다다랐군.”


그러나.


“제가 아닙니다.”

“됐네, 이 사람아.”

“소제가 둔 것이 아닙니다, 형님.”

“어허. 겸손도 과하면 비례(非禮)라 했··· 응?”


벽화평이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자 벽후량은 그저 어깨를 으쓱인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벽화평의 눈동자도 점차 커질 수밖에 없었다.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벽후량이 왜 갑자기 바둑판을 가져와 기보 풀이를 했는지 말이다.


“설마?”

“그 설마가 맞습니다. 소제가 둔 수는 무진이 둔 수니까요.”

“...!!”


벽화평은 참으로 오랜만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한풍이 불지도 않는데 돌연 몸이 으슬으슬해졌고 목덜미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벽후량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대저 호기심이었습니다. 무진이 바둑에 관심을 보이자 돌의 행마를 알려줬고, 기초 교육을 했습니다. 단순히 돌이 어떻게 쓰이는지만 가르쳤을 뿐이었죠.”

“어떻게 쓰이는지만?”

“네. 말 그대로 기초입니다. 그리고 바로 간단한 기보를 풀어보라고 했죠. 한데 묻자마자 답을 내놓더군요. 기특했습니다. 하여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냈습니다.”

“그 또한 맞추더냐?”

“한 치의 고민도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그게 반복이 되자 슬슬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훨씬 더 어려운 문제를 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냉큼 맞추더군요.”

“······.”


벽후량은 그때의 상황이 생생한지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다.


“형님께 보여드린 기보는 지금까지도 난제로 손꼽히는 장왕과 제갈천의 대국에서 나온 겁니다. 저 또한 해답에 확신이 없었던 차에 무진이 그런 답을 내놓은 것이죠.”

“······.”


벽화평은 입을 닫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바둑판은 세상의 축소판이라 불릴 만큼 만물의 이치가 담긴 것이었다. 이를 해석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술이 노도처럼 막히지 않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데 그런 이치를...’


고작 6살짜리가?


“형님.”


그때 벽후량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해졌다.


“이제 뭘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으십니까?”

“음?”

“답답하십니다. 무진의 천부적인 바둑 재능을 이대로 묵혀두실 셈입니까? 세상 밖으로 진가를 드러내야지요.”


세상 밖으로?


“설마!”


딱!


“바로 그겁니다. 신진제갈기전!”

“!”


신진제갈기전(新進諸葛棋戰)!


제갈세가의 최고 어른이자 신기천수(神棋天手)로 알려진 제갈천이 주최하는, 이른바 신진기예를 가리는 바둑대회다.

특히 이 제갈기전에는 약관이 안 된 사람들만 출전할 수 있기에 사실상 우승하는 순간 최고의 신진기예로 뽑히게 된다. 하물며 우승자 특전으로 제갈천과 대국을 펼칠 기회까지 얻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이다.


“만약 무진이 대회에서 우승이라도 하게 되면...”


벽후량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끄덕였다.


“벽력세가를 다시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천하십대세가에 한 발짝 다가설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제갈천의 입김은 그만큼 막강하니까요.”


천하십대세가(天下十大世家)!


듣기만 해도 심장이 요동치는 위명에 벽화평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5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벽력세가는 당당히 천하십대세가의 일원으로서 추앙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력대제의 사후, 끝없는 몰락을 거듭하여 작금의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웬걸? 무진이 바둑 천재란다. 이거야말로 신이 내린 기회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다음 제갈기전이 언제쯤 열리지?”

“내년 입춘에 맞춰서 열릴 겁니다.”

“내년 입춘이면...”


벽화평의 얼굴에 난색이 어렸다.


“반년도 채 남지 않았군. 준비 기간이 너무 짧지 않겠는가?”

“그럴지도 혹은 아닐지도요.”

“그게 무슨 말인가?”

“형님. 무진의 습득 능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하물며 두뇌 회전까지 빠르니, 똑같은 반년이라 할지라도 남들과는 꽤 많은 차이가 날 겁니다.”


벽화평은 탁! 무릎을 쳤다.


“그렇군!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성장의 격차가 다르겠어.”

“바로 그겁니다. 소제가 며칠간 지켜봐 온 무진의 성장 속도라면, 반년도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라 확신합니다.”

“하하! 이거야 원. 자식이 벼락을 맞은 것이 이처럼 큰 홍복으로 이어질 줄이야! 이게 다 대제께서 후손들을 갸륵히 여겼음이 분명한 터. 아우가 힘 좀 써주게나.”


벽후량이 활짝 웃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제의 힘이 닿는 최대한까지 무진의 능력을 끌어내 보겠습니다. 소제의 직감이 틀리지 않다면, 무진은 틀림없이 진가를 발휘할 테니까요.”


* * *


한편 그 시각.


‘바둑이란 게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벽무진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글생글 미소 지었다. 천장에는 마치 바둑판이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것처럼 보였고 수백 개의 흑돌, 백돌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꼭 알파고가 된 기분인걸.’


바둑계의 슈퍼고트 AI인 알파고. 물론 그런 알파고의 수읽기 능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벽무진의 뇌 활성도는 그만큼 범인의 기준을 훌쩍 넘어선 수준이었다.


피식.


“이 정도면 제갈기전도 승산 있겠어.”


신진제갈기전!


만약 이 얘기를 벽후량이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 테지만, 사실이 그랬다. 애당초 바둑에 큰 흥미를 보인 이유도 모두 벽무진의 계산에 들어가 있던 것이었으니까.


‘때마침 벽후량이 바둑광이었던 게 컸지.’


원래는 바둑의 기본 개념조차 없던 무진이다. 하지만 웬걸? 가만히 벽후량이 바둑 두는 걸 지켜보다 보니, 다음 수가 바로바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아니던가?


‘뭐야. 생각보다 쉽잖아?’


그것이 이유였다.


‘제갈기전에 나가도 될 것 같은데?’


벽후량에게 바둑의 천재성을 보여준 것은.


‘우승해서 제갈천의 눈에만 띄어도 어디야.’


그렇다. 천하세가의 고인물답게 벽무진은 제갈천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비단 제갈세가 내에서뿐 아니라, 구파일방과 십대세가를 통틀어도 배분(配分)이 세 손가락 안에 꼽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갈세가가 있는 곳은 호북 융중산!’


벽무진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융중산 하면 또 융중비약을 빼놓을 수 없지.’


자고로 천하세가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연과 영약을 얻는 것이다.

특히나 영약은 사용자가 지닌 능력과 비례해 극대화되기 마련인데, 어떤 영약을 먹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융중비약의 효능이 무진에게 딱 들어맞는 이유였다.


<융중비약(隆中秘藥)>

[천하칠대영약 중 하나로 알려진 융중비약은 뇌의 활력과 기능을 돋우며, 피로도 누적을 비약적으로 늦춰준다.]

[※특징: 제갈공명의 기운이 녹아 들어 있는 비약이다. 고로 제갈세가의 핏줄이면 특전 보너스가 추가된다. 단, 뇌 활성도가 높으면 조건을 무시하고 적용된다.]


‘흐.’


융중비약의 특징을 떠올린 무진의 입꼬리가 씰룩인 순간이었다.


‘조건 무시는 못 참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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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은하민
    작성일
    24.08.12 14:26
    No. 1

    알파고ㅋㅋㅋㅋㅋ 테슬라만있는게아니라 빅테크 종합선물세트였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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