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잔가지 님의 서재입니다.

해늘 카페에서는 의뢰도 받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잔가지
작품등록일 :
2022.05.12 00:38
최근연재일 :
2023.04.15 20:00
연재수 :
254 회
조회수 :
7,865
추천수 :
103
글자수 :
1,560,059

작성
22.05.13 20:00
조회
295
추천
9
글자
12쪽

서로 소개부터 해보자면

DUMMY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설마 나 꿈꾸는 중인가? 사실은 너무 피곤해서 알람을 끄고 일어난 게 아니라 다시 잠들었다던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잔뜩 기대감이 어린 눈빛이었다. 당장 내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기를 바라는 노골적인 시선에 슬쩍 눈을 피했다.


“...뭐를 도와주겠다는 건데요?”


“억눌린 거 같아서요, 그거.”


“...억눌려요?”


“보통 사람과는 다른 기운은 나는데 본인은 아니라고 우긴다? 이런 경우는 딱 두 가지밖에 없어요!”


각성자에 대해 잘 아는지 제 박식함을 드러내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 저절로 신뢰감이 생겼다. 손으로 2를 표시하기까지 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던 내 시선을 끌어오기까지 했다.


“각성한 걸 숨기고 사는 거거나, 각성한 걸 정말 모르고 살았거나. 보통은 티가 안 나기는 하는데, 능력을 안 쓰고 산 기간이 너무 오래되면 티가 난다고도 하더라고요.”


간단하게 설명을 하는데 그중 반은 그대로 흘러나갔다.


내가 각성한 각성자라니 실감이 안 나도 이렇게 안 날 수가 있을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 언제? 그럴만한 일도 없었는데.


“여기 온 건 각성하고 싶어서 온 거죠? 그러니까 내가 도와준다고요.”


각성···. 당연히 하고 싶었다. 시간 낭비일 줄 알면서도 혹시나 각성할 수 있을까 해서, 백서원을 혼자 보내기 껄끄러운 것도 있었지만 나도 썩은 동아줄을 잡아 보려고 온 사람 중 하나였다.


모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금세 사라지고 마는 돈에 허덕이는 생활도 청산할 수 있을 테니까.


막상 이미 각성했다고 들으니 현실감은 떨어져 얼떨떨하기만 했다.


각성하게 되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건지, 아니면 이미 각성했으면서 각성하겠다고 헛짓을 하고 다닌 과거가 허무해서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역시 실감이 나지 않아서일까.


아. 그렇지, 별 쓸모없는 스킬이면 크게 인생이 달라질 일도 없겠다. 전의 생활보다야 낫긴 하겠지만.


내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자 답답한 얼굴을 하고 물어왔다.


“어떻게 하고 싶어요? 싫으면 말고. 어떤 계인지는 나도 모르거든요. 그래도요···.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게 나을걸요? 다신 이런 행운도 없을 텐데~”


왠지 도와주겠다고 하는 쪽이 더 애가 타는 거 같은데······.


“왜 도와주려는 건데요?”


난 일단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걱정 마요! 난 봉사 같은 마음으로 권하는 게 아니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해야 하나?”


생각보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봉사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좋은 마음으로 돕는 거라고 했으면 의심이 짙어지기만 했을 것이다.


이유가 납득이 되니 경계심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내 눈빛을 읽기라도 했는지 화구통을 불쑥 내밀었다. 엉겁결에 받아든 화구통이 훅, 하고 바닥에 닿았다.


...왜 이렇게 무거워?


“적당한 걸로 고르면 돼요. 고르면서 저도 하나만 골라주고요, 이거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무긴데 안 쓸게요.”


...적당히 고르래도 뭘 골라야 하는 거지?


화구통 안에는 여러 종류의 단검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하나씩 꺼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떤 계인진 모른다면서 왜 싸우자는 식으로 이걸 건네는 건데요? 이건 완전히 각성자 취급 아닌가?”


그것도 전투계 각성자 취급이다. 감을 익히지 못해 스킬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헌터를 쓸 만하게 만들어 놓으려면 같은 계열의 한참 급이 높은 헌터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계까지 내몰린 상황을 억지로 만들어내서라도 자기 보호로 스킬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게끔 유도해 내서 감각을 익히게 하는 방법이다.


작년 설 특집 방송으로 편성된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어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각성자 취급하고 있는 거 맞는데요? 그러니까 무기를 주죠. 꼭 전투계가 아니라도 무기는 하나씩 가지고 다닌다고요. 가장 효율성이 좋은 게 단검이기도 하고요. 날릴 수도 있고, 또 작아서 숨기기도 좋으니까요.”


“.......”


...위험한 거 아닌가.


“이제 됐죠? 빨리 골라요 빨리. 아! 우리 통성명부터 할까요? 저는 유리사, 올해 17살이에요.”


유리사가 생긋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제야 조금씩 현실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저는 주한서, 18살이요.”


유리사가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몸에 상해를 입히는 것. 절대 다칠 일 없을 거라 말하는 모습이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 이유 있는 자신감이 내 쓸데없는 자존심을 건드렸다.


“똑같은 거네요?”


“...안 돼요?”


“아뇨? 그렇진 않은데?”


내가 골라 건넨 것은 끝이 뾰족하고 최신에 나온 것 같지도, 오래되어 보이지도 않는 유일하게 디자인이 같은 것이었다.


공평하게 해야지.


유리사가 손 위로 단검을 돌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물었다.


“왜 똑같은 거 골랐어요? 나는 좀 더 녹슨 거로 줘도 되는데. 다치는 거 겁 안 나요?”


“가짜 검도 아니고···. 그리고 왜 나만 다칠 거라 생각하는데요?”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단검이 숭숭 바람 소리를 내며 계속 돌아간다. 까딱하면 다치기 딱 좋겠는데.


“난 안 다칠 자신 있다니까요? 저는 다치는 것보다는 다치게 만드는 데에 더 자신 있거든요.”


...많이 센가?


“유리사 씨는-”


“유, 유리사 씨요? 씨이이?”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유리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원래도 컸던 눈이 두 배는 커지고 단검을 든 손을 위험하게 입가로 가져가며 입을 가렸다.


아, 아니. 뭐, 이게 이상한가? 그럼 뭐라고 부르는데? 복도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백서원의 표정도 유리사와 다를 바 없었다.


“유리사 씨가 뭐예요! 유리사 씨가!”


그게 그렇게 이상하다고? 성을 떼고 ‘리사’라고 부르기에는 막 통성명을 한 사이고, 리사 ‘님’이라 부르는 건 그거야말로 진짜 이상했다. 그럼···. 리사 ‘양’? 미쳤나. 호칭이 너무 늙어 보이잖아.


곰곰이 생각해봐도 별로 붙일만한 좋은 호칭따위는 없었다. ‘씨’가 제일 무난했다.


“그냥 리사야, 라고 부르면 되잖아요! 한 살 위니까 저는 오빠라고 부를게요. 그리고 언제까지 존댓말 할 거예요? 우리 그냥 편하게 말 놓으면 안 돼요?”


뭐?


왜지? 오늘 처음 본 사이잖아.


“그게 더 이상해요.”


“뭐가요? 뭐가 이상한데요?”


“저희 안 친하잖아요.”


“.......”


그래. 나 실수했다. 이번엔 굳이 둘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입 밖으로 말이 나간 순간부터 알아챘다.


유리사가 퍼트린 불길이 활활 불타오르는 소리와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렸다.


하필이면 내가 문을 가로막힌 구도라 편을 나눈 것처럼 2 대 1처럼 보이기도 하고.


깊은 적막감 속 목이 그인 사기꾼이 요란스레 앞문을 통해 도망치고 나서야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유리사가 말했다.


“저기요.”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몸을 반쯤 돌리고 창가에 기대 나를 한심스레 바라보는 백서원에게 묻는 것이었다.


“주한서 씨랑 친구시죠? 이름이 뭐예요?”


유독 ‘씨’가 강조된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묻는 어조가 무덤덤했으니까.


“...지금은 모른 척하고 싶지만 친구는 맞아요. 이름은 백서원.”


저 자식 내가 창피한가? 내가 생각해도 지금은 그럴 만도 하긴 해.


“백서원 씨는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이상한가?”


“아니요. 쟤가 까탈스러운 면이 있어서 그래요. 애는 착한데···. 우리는 말 놓죠? 먼저 말 놓을게, 리사야.”


백서원이 특유의 얄미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짜 딱 재수 없다. 애는 착한데? 무슨 골치 아픈 아이를 둔 부모처럼 얘기하고 있는 거야.


친해지면 괜찮다는 말까지 사족으로 붙이기까지 했다.


저 입을 막을 수도 없고.


“으으!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거 다 털어놓을래요. 친해지려면 다 알아야지! 사실 오늘 제 첫 번째 테스트 같은 거였어요. 공식적으로는 아닌데, 팀마다 다르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잡으면 협회에 넘겨야 하니까 인정해줄 수밖에 없거든요. 그랬는데 다 망했어요! 저것 좀 봐봐요!”


유리사는 손목을 풀면서 고개로 스크린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화면 아주 가까이에 하회탈 가면이 가득 차 있었다.


“저희의 일원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까맣게 암전됐던 화면이 다시금 밝아지고, 영상이 시작되었을 때처럼 베이지색 코트에서 멀어지면서······.


“각성하고 싶으십니까.”


처음 대사가 흘러나왔다.


“저게 뭐예요! 라이브도 아니고. 저 정도 겁쟁이를 상대하는 건 전혀 흥미가 안 생긴다고요. 결국 나오지도 않고.”


그러게 말이다. 있던 흥미도 다 떨어져 나가겠네.


“막 데뷔한 헌터가 범죄 조직을 소탕했다! 난 그런 뉴스에 나올 만한 업적을 원했는데! 근데 그건 이제 물 건너간 거 같고, 이제 두 번째 플랜! 오, 오···. 주한서 씨가 나중에 방송이나 인터뷰 같은 게 잡히면 각성을 도와준 건 유리사였다, 이렇게 한마디만 해주시면 돼요. 완전 거저죠? 오늘 각성 못하더라도 쭉 도와줄 수도 있고요.”


미래 투자란 게 인터뷰였구나. 각성을 도와주는 대신 단 한 마디면 된다니······.


유리사의 주장대로 거저였다.


“아! 그리고 영입 목적도 있어요. 우리 길드 한국 최고거든요!”


“...한국 최고?”


머릿속에 번쩍하고 번개가 치는 듯했다. 유리사가 길게 늘어놓은 말의 핵심은 가장 끝에 있었다.


“...고지우?”


그러니까, 길드 이름이 뭐였더라? 갑자기 생각하려고 하니 막상 떠오르질 않는다.


아. 그래, 별해였다.


한국 최대 규모의 대형 길드 별해. 그 길드를 이끄는 길드장인 고지우는 한국 최초의 S급 헌터였고, 그녀의 길드 역시 한국 최초의 길드였다.


어깨를 조금 넘는 길이의 웨이브 진 머리에 항상 화면 안에서는 옅은 미소를 유지하고 있지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심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별해 소속이었다니. 나도 잘만 하면 별해 소속이 될 수 있는 건가?


“네에에? 무슨 고지우예요! 별해보다 훠어얼씬! 낫다고요!”


아니라니?


“하지만 별해는-”


“아아아. 아니에요! 아니야! 절대! 우리 이제 슬슬 시작해요. 서원 오빠는 어떻게 할래? 대피할 거면 10분 줄게. 큰길에 있는 카페에라도 가 있어. 구경하고 싶으면 내가 다치지 않게 해줄 수 있고.”


“나는 구경. 무조건 구경.”


고개를 끄덕이던 유리사의 눈빛이 뜨겁게 타올랐다. 자기소개할 때만 하더라도 기분은 좋아 보였는데, 고지우의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싸늘해졌다.


나···. 또 실수했나?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한국 최고의 길드는 별해다. 가끔 길드장이 여자라고 깔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녀가 강한 헌터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 별해의 성별 대비는 완벽히 반반을 이뤄내 황금 비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와 봐요.”


단검을 쥔 손을 쭉 내밀며 유리사가 말했다.


온통 허점으로 보이는 평범하게 선 모습이었다. 그 뒤로 더 자세히 구경하기 위해 뒷문 쪽으로 이동한 백서원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저 녀석 담력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 한다니까.


“진짜 안 다칠 자신 있나 보네, 요.”


“그럼요. 저 유리사거든요.”


“조건이 조금이라도 상처 내는 거였, 죠? 상처 나면 그대로 끝이고.”


“피 안 나도 인정해 줄게요. 스치기만 하면 끝. 그리고 반말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아도 돼요.”


“......”


어떻게 알았대.


“엄청 신경 쓰인다는 얼굴이네요. 우리 붙어 보면서 같이 호칭 정리도 할까요? 먼저 안 오시면 저 먼저 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해늘 카페에서는 의뢰도 받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가족이 될 수 있을까? 22.05.24 38 1 14쪽
14 실수는 때론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22.05.23 43 1 14쪽
13 스킬이 뭐 이래 22.05.22 44 2 15쪽
12 스킬이 다는 아니다. 22.05.22 48 1 14쪽
11 정상 영업합니다. +2 22.05.21 56 2 14쪽
10 카페 직원, 이 아닌 미등록 헌터입니다. 22.05.20 58 1 13쪽
9 방식은 과격해도 악당은 아닙니다 22.05.19 69 2 16쪽
8 두부 좋아하나? 22.05.17 91 5 15쪽
7 계약서를 쓰러 왔는데... 22.05.17 99 7 15쪽
6 일단은 위장 카페입니다. 22.05.16 128 6 16쪽
5 유리사와 유리온 22.05.15 179 7 14쪽
4 무더운 비 22.05.14 221 6 13쪽
» 서로 소개부터 해보자면 22.05.13 296 9 12쪽
2 화구통을 멘 아이 22.05.12 400 10 13쪽
1 해늘카페에 어서오세요 22.05.12 920 18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