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2)
하늘도 한국군을 돕는듯 구름이 달을 가려 달빛 하나 없는 어둠. 위장크림까지 완벽하게 바르고 어둠속에 숨어서 작은 집 하나를 관찰하던 이상혁이 육성현에게 말했다.
"너무 허술합니다만.. 아무리 누구 짓인지 모르게 하려 했다고는 해도 말입니다."
육성현은 이상혁의 말에 수긍했다.
"맞아. 이상할 정도로 허술해.."
그러자 옆에서 둘을 지켜보던 현정범이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물었다.
"상혁이, 네 감각에도 걸리는게 없어?"
소드 유저가 되면서 주변을 감지하는 감각이 상당히 발달한 이상혁에 대해 조금은 아는 현정범이기에 하는 질문이었다.
"... 특별히 걸리는 것은 없습니다만, 제가 무슨 인간 레이더도 아니고, 이렇게 넓은 곳을 다 확인할 수 있을리도 없지 않습니까.."
이상혁의 불만섞인 말에 현정범은 개구장이같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었어?"
"..."
이상혁은 현정범의 얼굴을 잠시 빤히 쳐다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전방을 보았고, 현정범은 그런 이상혁의 모습에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일단 내 의견으로는 저 건물 자체는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워낙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확신은 못 하겠소."
육성현은 PMC 대원의 의견을 듣고 1팀장 임진혁에게 말했다.
"1팀장. 정찰을 한 번 하고 진행하는 것이 어떨까?"
"정찰?"
"그래. 주변을 둘러보고 이상이 없으면 진행하자구. 수상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기서 죽치고 있을수는 없으니까."
"흐음.."
"여기까지 온 이상 우리 대원들을 믿어야지.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말이야."
"그렇기는 하지."
잠시 고민하던 임진혁은 결단을 내렸다.
"그래, 그러자. 그럼 정찰조를 보내고 다음 행동을 결정하지."
정찰조는 여단직할대 3개 팀에서 각 팀별로 두명씩 차출하여 세 명 2개조를 구성하고, 각각 건물을 사이에 두고 반대 방향으로 돌아 움직였다.
위험한 임무이니만큼 각 팀에서 가장 날랜 자들을 선별하여 보냈고, 2팀의 현정범과 3팀의 이상혁은 당연하게도 포함되었다.
"현정범과 이상혁은 떨어지라고."
둘의 실력을 대충이라도 알고있는 2팀장과 3팀장은 자연스럽게 현정범과 이상혁을 떼어놓았고, 현정범이 이에 반발했다.
"아니, 왜? 우린 아프간에서 끈끈한 우정을 쌓아 돌아왔는데 뭣 때문입니까?"
"너희 둘이 제일 빠르니까 그렇지. 잔말 말고 갈라서. 이제 이혼할 때도 되었어."
"허억.."
현정범은 심장에 비수가 꼽힌 듯한 연기를 펼치다가 주변의 반응이 썰렁한 것을 보고는 얌전하게 지시에 따랐다.
그렇게 두 개의 정찰팀이 구성되어 움직였다.
**
이상혁은 2팀원 한 명과 곽진철과 함께 정찰을 하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상황을 마나로 훑고있던 이상혁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이상혁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서자 따라서 멈춘 둘은 무슨 일인지 묻기라도 하듯 이상혁을 쳐다보았고, 이상혁은 그에 답하듯 말했다.
"매복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 그걸 어떻게 알어?"
곽진철의 질문에 이상혁은 조용히 대답했다.
"아프간에서 사선을 넘으면서 육감 비슷한게 생겼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상혁은 마나 감지를 통해 적을 확인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대려 했다.
"... 네가 뛰어난 실력자라는 것은 알겠는데, 우리는 지금 초능력자와 임무를 수행중인 것이 아니야."
"물론입니다. 저도 이걸 초능력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위기상황에서 발동하는 육감같은 겁니다. 왠지 불안하고, 뭔가 모르게 위험할 것 같고, 들어가면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그런 감각 말입니다."
"흐음.."
곽진철은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정도 감각이라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겪는 일이다. 그리고 곽진철은 그런 감각이 유난히 잘 들어맞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무당같은 것을 무조건 미신으로 취급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좋아. 네 말이 맞다고 쳐. 하지만 나는 네 말만 믿고 적이 있다고 보고할 수는 없어. 그러니 증거를 보여줘봐."
"그러겠습니다. 이제부터 적의 뒤통수를 확인하러 갈테니 최대한 주의해서 저를 따라주십시오."
"그래."
그렇게 곽진철이 이상혁을 따라가려 하자 2팀원이 반발을 했다.
"곽상사님. 우리는 정찰을 하러왔지 알 수 없는 감각에 대해 토론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재고해주십시오."
하지만 평소에 이상혁이 임무간에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믿고있던 곽진철은 이상혁을 두둔하는 말을 했다.
"나도 잘 믿기지는 않아. 하지만 이 친구의 실력은 내가 보장해. 3팀에서는 이미 이 친구가 에이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뭐, 실패해봐야 약간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 뿐이고, 정찰 임무를 조금 넓게 진행하는 것이니, 속는셈치고 한 번만 가보자고."
"... 알겠습니다."
2팀원은 곽진철의 말에 여전히 불만이 담겨있는 듯 했으나, 일단은 두고보자는 자세로 따라보기로 했다.
그렇게 세 명은 원래의 정찰 루트보다 더욱 크게 우회하며 적을 확인하려고 했다.
마나 감지로 적의 위치를 확인하며 빙 둘러서 뒤쪽으로 향하는 이상혁의 마음속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적지 않은 수의 매복한 적들을 보니 현정범 조가 당할 확률이 농후했기 때문이었다. 이상혁이 어렵게 돌아가는 이유도 적이 많기 때문이었다. 현정범이 아무리 뛰어나도 눈먼 총알을 막거나 피하지는 못한다. 적의 움직임을 교란시켜서 총알을 피할 뿐..
하지만 그렇다고 곽진철에게 확인도 시켜주지 않고 적의 매복이 있다는 보고를 할 수는 없었다. 이상혁에게는 마나감지로 확인한 사실이 당연하지만, 곽진철이나 나머지 2팀원에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상혁은 둘에게 적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위치에 도착하여 손짓했다.
곽진철과 2팀원은 반신반의하며 이상혁의 옆에 와서 몸을 숨겼고, 이상혁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 곳에는 언뜻 보면 풀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살짝살짝 적의 군복이나 방탄모, 총기등이 드러나 보였다.
"...!!"
곽진철이나 2팀원은 소리를 낼 수 없어서 조용할 뿐, 매우 놀랐다. 이상혁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곽진철은 잠시동안 적을 관찰하다가 고개를 돌려 이상혁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상황을 확인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린 후, 뒤로 빠지자는 뜻으로 손짓을 했다.
이상혁과 2팀원은 곽진철의 손짓에 따라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후우.. 적군 지휘관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루트대로 정찰을 진행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이상혁은 곽진철의 푸념을 받아줄 만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곽상사님 빨리 팀장님한테 연락해야 합니다. 다른 정찰조가 위험합니다."
"아!!"
곽진철도 이상혁의 말에 상황의 시급함을 알고 곧바로 육성현에게 무전을 했다. 이쪽에 매복이 있다면 반대편도 매복이 있을 것이었다.
"여기는 아기새 1, 어미새 나와라."
곽진철의 무전에 잠시후 답변이 돌아왔다.
- 여기는 어미새. 무슨 일인가?
"여기는 아기새 1, 적의 매복을 발견했다. 반복한다. 적의 매복을 발견했다."
- 여기는 어미새. 적의 숫자와 화력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는 아기새 1, 최소 스물에서 최대 쉰 정도는 되어 보인다."
- 여기는 어미새. 쉰 명이라고? 확실한가?
"여기는 아기새 1, 확실하다. 그것보다 아기새 2의 안위를 확인하고 매복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
- 여기는 어미새. 알았다. 확인 해보겠다, 이상.
통신을 끊은 곽진철의 얼굴에도 초조함이 드러났다. 미우나 고우나 같은 여단 소속의 동료들이다. 걱정이 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한시간 같은 5분이 지나가고, 본대에서 연락이 왔다.
- 여기는 어미새. 아기새 1 나와라.
곽진철은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의 다급함을 느끼며 답했다.
"여기는 아기새 1. 어떻게 되었나?"
- 여기는 어미새. 아기새 2가 연락 두절이다. 어미새가 긴급 지원을 갈 예정이니 아기새 1도 합류하도록 하라. 이상.
"여기는 아기새 1. 알겠다. 이상."
통신은 그렇게 끝이났고, 셋의 얼굴은 무섭게 굳어졌다.
"곽상사님.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곽진철은 이상혁의 말에 얼굴 가득 의문을 표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하지만 이상혁은 왈가왈부할 시간도 없다는 듯 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빠르게 가서 반대편을 도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곽진철은 그건 아니라는 듯 반대했다.
"야, 네가 빨라봐야 얼마나 빠르다고, 본대가 지원하러 간다고 했으니까 너는 우리랑 움직여. 그게 최선이야. 어차피 네가 가기 전에 본대가 도착해."
이상혁은 곽진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는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방금전 매복을 발견할 때도 그랬듯이 저를 한 번만 더 믿어주십시오."
곽진철은 이상혁의 말에 마냥 반대만 할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못미더웠다. 본대보다 빠르게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이상혁은 곽진철이 망설이자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러고 있을 시간에 빨리 움직이는게 낫습니다. 제가 여기서 빠진다고 이 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밑져야 본전입니다. 부탁 드립니다. 지금은 한시가 급합니다."
곽진철은 조금전 매복자들을 찾을 때 보여주었던,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이상혁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허락을 해 주었다.
"그래. 조심하고. 몸 성히 보자."
"네, 알겠습니다."
이상혁은 곽진철에게 대답을 하자마자 몸을 날렸다.
처음엔 적당히 뛰던 것을 곽진철 등이 눈에서 사라지자마자 속도를 높여 소드 유저로서의 최고 속도를 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마법을 운용했다.
"헤이스트(Haste). 라이트 웨이트(Light Weight)."
지금도 충분히 빠른데, 몸이 가벼워지고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이상혁은 땅을 박차고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몸무게가 가벼워진 장점을 이용해 나뭇가지를 뛰어넘으며 달렸다. 마치 판타지 상의 엘프들처럼 나무를 타넘으며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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