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 왕

진화란 인간이 되는 과정인가 -4

교수는 뒤쪽의 창밖을 바라보면서 약간의 연민을 느끼는 듯 말했다.

"실험이라 해봐야...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고, 우리가 제공해주는 숙소에서 지내면서 우리한테 협조만 해주면 됩니다. 진우학생이 가진 유전자가 지금 닥쳐온 위기를 인간이 해쳐나갈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된다면, 학생이 강제적으로 희생되더라고 우리는 실험을 진행해야 합니다."

1초간 뜸을 들이더니 교수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정도로 작게 말했다.

"어차피.. 그 유전자만 있으면, 이 바이러스 정도는 쉽게 극복해낼테고 앞으로 태어날 차세대 인간들은 보다 완벽하고, 진보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겠지. 인간은 미래에도 인간으로 존재해야만 하니까."

진우는 교수의 말을 듣지 못했고, 체념한듯 물었다.

"어차피 퇴로가 없다면, 그냥 참여하겠습니다. 실험은 어떻게 진행되는 건가요? "

교수는 크게 웃으며 뒤돌아보며 말했다.

"하하하, 좋은 생각이에요, 암... 사면초가라면 어찌되든 부딪히는거지! 실험은 간단해요. 우리는 잠자는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한번씩 진우씨의 체세포를 추출할거고 , 일주일에 두번씩 생식세포를 추출할거에요. 실험기간은.... 아직 미정이지만 제생각에는 한달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진우가 물었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하는건가요?"

교수는 책상의 달력을 한번 슥 넘겨보더니 말했다.

"실험은 3월 10일에 진행될거에요 오늘이 3월 2일이니 거의 일주일정도 시간이 있겠네요. 실험이 시작되면 외부와의 연락은 일체 금지될겁니다. 그때까지 주변분들한테 적당히 잘 둘러두세요. 혹시라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우리쪽 사람들이 대신 말해줄겁니다. "

진우는 잠깐 눈을감고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일주일 후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교수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궁금하면 한번 해보셔도 됩니다. 그 대신 미래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겠죠?"

진우는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교수는 대답 대신 살짝 진우를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게 어떠한 생각인지 진우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표정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고뇌를 담은 깊은 사색에 잠긴 표정이었다.

이윽고 교수는 살짝 진우에게 말했다.

"네... 그때 봅시다."

진우를 보는 교수의 표정은 크게 감정을 담고 있지 않았으나, 표정에서 나오는 분위기는 그 찰나의 순간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 제대로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마네킹과 같이 굳어버린것 같았다. 진우역시 착잡한 감정을 가지고 조용히 문을열고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진우는 그렇게 병원을 나왔고, 천천히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어느덧 해는 저물어가고 노을빛조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곳에 올때는 택시를 타고왔으나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생각할것들이 많았다. 자신의 희생으로 80억인류가 행복해진다는 거시적인 생각이아닌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찰이었다. 자신의 몸에 들어있는 아주 작은 DNA에 들어있는 몇개의 염기서열로 인해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이 움직인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허무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국가가, 아니 어떤 자그마한 단체라도 자신에게 이러한 관심을 보인적이 없었기에 허무할 뿐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상했다. 진우 자신이 그러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것을 왜 숨겨야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뉴스에 자주 나오는 것을 보았기에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그 사람들과 세세한 사정은 다를테지만 그럼에도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온갖 망상만이 머리속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어쩐지 오늘 밤은 지난날보다 긴 밤이 될같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