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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작 님의 서재입니다.

쓰고 싶은 것 미리 쓰는 용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기형작
작품등록일 :
2018.10.08 16:39
최근연재일 :
2021.03.08 19:51
연재수 :
5 회
조회수 :
1,650
추천수 :
0
글자수 :
12,088

작성
20.12.11 19:19
조회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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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6쪽

4

DUMMY

할아버지는 신비한 분이셨다.


어느정도로 신비하냐면.. 신비라는 단어 자리에 신기, 이상, 괴상, 이해할 수 없는 등등이 들어가도 말이 될 정도였다.


내가 다섯 살 때였다.


우리는 그 때 전쟁이 난 모 나라에 의용군으로 참전했는데, 그 당시 할아버지 계급은 대위였고 전투기를 조종했더랬다.

거기서 그는 공적을 올렸다.

불가능한 임무를 연달아 성공시킨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는 전설이 되었고 국빈이 되었다.

그리고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살아돌아온 이후에는 괴물이 되었다.


전투기가 땅에 처박혀 폭발했는데 상처하나 없이 멀쩡했던 탓이다.


그 날 할아버지는 자신을 괴물보듯 보는 사람들을 향해 머쓱하게 웃더니 나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얘야, 아무래도 좇된거 같구나.”

“좇? 그게 뭐에요?”

“음.. 그건 우리가 이제 아주 떠돌아 다녀야한다는 뜻이란다.”


떠나야할 신세가 되었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할아버지는 못하는 것이 없었고 모르는 것이 없었다.

요리, 주식, 서핑, 비행기 조종.. 그 외 관련도 없어보이는 모든 일들이 그의 삶 안에선 쉽사리 이루어졌다. 그는 내가 어릴적 가지고 놀던 미니카 조립은 물론 과테말라에 불시착한 비행기를 손수 고쳐내기도 했다.


그는 대체로 훌륭한 요리사였으며 가끔은 굉장한 기계공학도였고, 언제나 친절한 선생님이었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알려주는 척척박사이자 무엇이든 해내는 슈퍼맨이었다.


그래.

할아버지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할아버지가 아무리 많이 쳐봐야 서른 중반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종종 그에 대해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이건 그냥 우리 집안 내력이란다.”

“거짓말.”

“허허. 진짜래도.”


그는 거진 이십년 째 전혀 늙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가 사실 할아버지가 아닌, 나의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곤 했지만 그는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딱잘라 말했다.


“너의 아버지는 말이다.. 아주 말썽쟁이였단다. 우리 집안이 대대로 그런편이긴 한데, 그 놈은 그 정도가 심했지.”

“저보다 말썽쟁이였나요?”

“네 아비에 비하면 너는 천사란다. 말썽이 얼마나 심하면 이 할애비보다 먼저 뒈졌겠니?”

“···.”


할아버지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넌 그러면 안된다.”

“···네.”


방랑벽이 심한 할아버지를 따라 나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자랐다. 애초에 그것이 방랑벽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그는 떠돌아다니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같았다. 덕분에 나는 호텔에서 호텔로 이동하며 자랐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나는 러시아의 한 호텔에서 열살의 전반부를 보냈고, 하와이의 한 호텔에서 열살의 후반부를 보냈다.


난 그렇게 자라났다. 성장이 한창이라 어떨때는 내가 마치 허물을 숙소에 벗어두고 떠나는 도마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필리핀에 있을 때는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 나라엔 도마뱀이 많았고, 그래서 그들이 벗어두고간 허물이 자주 보였기 때문일것이다.


그 날도 나는 더위에 바짝 구워진 뱀처럼 침대에 누워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는 짐을 챙기고 있었고 나는 스노쿨링을 좋아하는 열 네살이었다.


“할아버지, 우리 다음엔 어디로 가요?”

“음.. 조선.”

“조선?”

“지금은 한국이겠구나.”


그렇게 나는 열 넷이 되어서야 한국에서 살게 되었다.


그 전까지 나는 한국에 가본 적 없었다. 그저 한국이 내 조국이라는 것만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가슴이 설레어 왔다. 여태 돌아다닌 국가가 수도 없이 많지만 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조국에 가는 것은 머리털나고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전학이 아니라 입학이라니.. 마치 평범한 학생이 된 거 같아요.”

“앞으론 그렇게 살거란다.”


그렇게 나는 평범하게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다시 몇 년이 지났을 땐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 해에 할아버지가 죽었다.

그건 평범하지 않은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여태 먹지 않은 나이를 한번에 몰아서 먹는 듯, 하루가 다르게 늙어갔다.

그게 어찌나 빠르던지 그는 고작 한달만에 서른중반의 청년에서 아흔 노인이 되어버렸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나 할아버지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다.


신비하고 놀라운.. 이해되지 않는.


“받거라.”


할아버지는 죽기전 나에게 항상 차고 있던 목걸이를 건냈다. 둥글고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그것은 내가 항상 탐내던 것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게 모든 것을 주었지만 오직 그것만큼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는 그걸 내 손에 손수 쥐어주며 말했다.


“얘야. 슬퍼하지 말려무나. 나는 잠시 잠에 드는 것에 불과하니.”

“긴 꿈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란다.”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가지 말아요.

가지 마세요.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울고 빌었지만 그것은 아무리 빌고 빌어도 소용없는 것이었다.


“아이린이 곧 너를 찾아올 것이다. 그 애가 네게 모든 것을 알려줄거야.”

“아이린? 그게 누군데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내 물음에 빙글 웃고 말 뿐이었다.

나를 놀릴 때 언제나 짓던 그 표정 그대로 그는 떠났다.


할아버지를 보내고 정확히 한 달 뒤, 아이린은 정말로 나를 찾아왔다.


정확히는 내 목걸이에서 ‘뿜어져’ 나왔다. 흡사 살아있는 홀로그램같은 그녀는 입을 열어 말했다. 실제로 음파가 나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함선 나디아의 정신체 아이린이라고 합니다. 현 시각 2023년 8월 27일 14:49시 이후 성체가 된 요한님에게 승인 코드가 떨어졌으니, 지금부터 성심으로 보좌하겠습니다.

“함선 나디아의 정신체?”


난 놀라지 않았다.

난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았다.

워낙 놀랄일이 많은 사람과 함께 자란 덕분이었다.


-예. 정확히는 마도공학인공정신생명체입니다. 요한님께 상속된 우주선 나디아의.


하지만 이건 좀 놀라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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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20.12.11 84 0 7쪽
2 2 20.12.11 8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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