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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작 님의 서재입니다.

쓰고 싶은 것 미리 쓰는 용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기형작
작품등록일 :
2018.10.08 16:39
최근연재일 :
2021.03.08 19:51
연재수 :
5 회
조회수 :
1,653
추천수 :
0
글자수 :
12,088

작성
20.12.11 18:45
조회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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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9쪽

2

DUMMY

“크하하하!!”


한동안 광소하던 내가 웃음을 뚝 그쳤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다.

한시빨리 이 경사스런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려야했다.


“경비..! 아니, 아니지. 후후.”


경비병을 부르려다가 말았다. 도중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창살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 이번엔 뱀이 되볼까.”


스으윽-!


별안간 한 마리의 검은 뱀이 구불구불머리며 창살을 통과했다. 꼬리에는 내가 입던 옷을 휘감고서.


“하하! 끝내주는군!”


나는 자유로웠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

지난 십년간 나를 가둬두었던 저 철문도 이제 내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뱀이 아니라 새가 될수도, 물고기가 될 수도 있었다.

세상에 내가 가지 못할 곳이란 없었다.


그 사실이 주는 쾌감에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어느 정도냐하면,

과정 하나 없이 온 세상이 천국같았다.

지하 입구에서 졸고 있는 경비병이 천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봐.”

“응?.. 헉! 누구냐!”

“나다.”


나는 다시 내 본래의 모습, 그러니까 곱추의 형상을 취했다. 그걸 본 경비병이 까무러칠듯 놀랐다.


“도, 도련님이십니까?”

“그래. 가서 아버지를 불러오거라.”

“예, 옛!”


그 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내가 직접 가도 되겠지만, 아버지를 놀래켜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십여분이나 지났을까?

이윽고 아버지가 지하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드물게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철혈이라는 별명이 어울리지 않게.

그 얼굴을 보자 웃음이 또 다시 터지려 했으나 꾹 참았다.


이제 나는 백작가의 당당한 장남이다.

그에게 가벼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된거냐?”

“소자, 드디어 흑마술로 몸을 고쳤습니다.”


지금의 나는 잘생긴 청년의 외관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꼭 빼닮은, 그런 모습으로.


“일단은 올라가자꾸나. 마침 저녁 식사를 하려던 참이다. 네게 알릴 소식도 있고.”

“예, 아버지.”

“아, 일단은 응접실에 가있거라. 미리 말을 해두지 않으면 네 어미가 놀라 기절할지도 모를테니. 흑객! 내 아들을 응접실로 안내해라.”


흑객이 또한번 귀신처럼 나타났으나, 나는 그에게 쓸 신경이 없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태어나서 한 번 밖에 뵈지 못한.. 나의 어머니..’


그녀를 다시 뵐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죽을 줄로만 알고 계실터.. 그러니 아버지 말씀대로 미리 말해두는 것이 맞다.’


현명한 아버지를 둬서 다행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흑객을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도련님, 이곳에서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러지.”


내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가문은 역시나 휘황찬란한 곳이었다.

그림자 마수나 수정구를 통한 것이 아닌,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 느낌이 더했다.

넘치는 생동감에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천장에 화려한 샹들리에가 보였다. 곳곳에 자리잡은 고급스런 목재가구에서도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아아..! 역시 실제 눈으로 보는 것은 수정구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구나.”


내가 살던 지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나는 감격했다. 나는 이제 이런 곳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마님께서 마음의 준비가 되셨다고 하시는군요.”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가 공손한 자세로 다시 내게 말했다.


“식당으로 드시지요.”


흑객을 따라 걷는 이 길이,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다.


‘내가 영주가 되면, 식당가는 길을 줄이고야 말겠어.’


속으로 그런 다짐을 하는 나였다.


“다 왔습니다.”


식당문 앞에 다다르자,

‘기생하는 그림자’를 심장에 집어넣는 것 보다도 떨려왔다.


‘드디어 어머니와 만나게 된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식당의 문 만큼이나 거대하고도 길쭉한 식탁이 보였다. 그리고 그 끝 상석에는 아버지가, 그 옆에는 아름다운 귀부인이 있었다.


‘어, 어머니..’


그녀는 분명 나의 어머니였다. 나는 그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똑바로 보았지만 아직 아무 말씀 없으셨다. 아무래도 많이 놀라신 모양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난 조급하지 않았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은가?


“왔으면 앉거라.”


아버지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보무도 당당히 걸어 내 자리를 향해갔다.


어머니의 맞은편, 아버지의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당연하게도,

그 자리는 비어있었다.


‘대역’은 자신의 분수를 아는 놈 같았다. 그가 친히 일어나 내 의자를 손수 당겨준 것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르헨이라고 합니다. 이리로 앉으시지요.”

“고맙군.”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야 말로. 나 없는 동안 고생한 것을 절대 잊지 않겠다.”

“듣기만해도 감사한 말씀이군요.”


아버지가 잔을 들더니 말했다.


“일단 한 잔 하지.”


나 역시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짙은 포도의 향.

최고급 와인이었다.


“나의 적자, 뮌휀의 귀환을 위하여!”

“뮌헨의 귀환을 위하여!”

“감사합니다.”


처음마셔본 포도주는 달았다.

너무나도 끔찍하게.


“네게 알려줄 사실이 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더니 옆에 선 시종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종의 사인같았다.

바깥에서 보자기에 고이 싸인 아기가 보모의 품에 안긴채 들어왔다.


“엊그제 태어난 네 동생이다. 이름은 네 이름과 유사하게 메르헨이라고 지었다.”

“아아, 이런 경사가!”

“그리고..”

“?”

“너는 다시 지하에 들어가 줘야겠다.”

“···예?”


이게 무슨 말인가?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눈앞이 어지러웠다.


‘처음 마신 술 때문이야. 그래서 헛것이 들리는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르헨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나의 적자이다. 이 애가 보여주는 가능성과 뛰어난 기지를 보면 매번 뿌듯하더구나.”

“···저 역시 모자라지 않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네 덕에 우리 가문이 이토록 빠르게 발전했다는 걸. 허나 이제와서 네 대역을 썼다고 하면 세상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하겠나? 네가 이해하거라. 여태껏 그랬던 것 처럼.”


모든 것이 이상했다.

그의 말도,

내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나는 분명 아버지의 곁에 앉아 있었을터인데?’


그 때 내 맞은 편에 있던 ‘대역’,

아르헨이 불쑥 내 시야에 나타나더니 말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땅바닥에 쓰러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괴물새끼, 거기서 평생을 헌신하면서 살 것이지. 감히 기어나와서 행패를 부려? 어머니께서 크게 놀라신 거 안보여?”

“..뭐라고?”

“고생한 것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크하하! 내가 여태 들어본 말 중 가장 우스운 말이었다!”


대역.

그가 내 심장을 짓밟으며 광소했다. 허나 아무도 말리는 이 하나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사실이 나를 괴롭게했다.


“이, 이 개자식..! 네 깟놈 쯤이야 내가.. 어?”

“하하, 흑마술이라도 부리려고 했나? 그럴 줄 알고 마력융해제를 와인에 넣은거다. 그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넙죽 잘도 마시더군. 하하하!”


몸이, 마력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눈동자와 혀가 전부였다.

나는 식탁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어, 어머니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저 소자 뮌헨 입니다..!”


허나 나의 물음은 심장을 찌르는 칼날이 되어 되돌아왔다.


“나는 너 같은 괴물을 아들로 둔 적이 없다. 내 아들은 언제까지나 아르헨과 메르헨.그 둘일 것이다.”

“메, 메르헨은 몰라도··· 아르헨은 그저 양자가 아닙니까?”

“적어도 너 같은 괴물은 아니지.”

“하, 하하.. 어머니께선 제가 살아있단 걸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러고도, 그러고도.. 단 한번을 저를 보러 오시지 않았던 겝니까..?”


내 간절함에도 그저 날카로운 비명같은 말이 들려올 뿐이었다.


“난 너 같은 괴물을 낳을만한 여자가 아니다!”

“으, 으아아!! 으아아아아아!!!!!!”


마음이 아팠다.

쑤시고 괴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흑객!”

“예.”

“아들께서 가시는 길, 배웅해주고 오시게.”

“존명!”


저 말이,

나에게 닿을 줄은 몰랐다.

적어도 나에게는..


“아버지.. 나, 나를 대체 왜 낳은 겁니까?”

“난 너를 낳은 적 없다.”


그 순간 목 한가운데에서 이질적인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것이..

내가 이 몸에서 마지막으로 느낀 감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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