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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윙 님의 서재입니다.

월풍행(越風行)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윈드윙
작품등록일 :
2013.02.26 04:41
최근연재일 :
2014.04.06 05:19
연재수 :
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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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9

작성
13.02.27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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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글자
12쪽

월영(月影) (1)

DUMMY

第 1 章





월영(月影)






끼이익, 끼이익….

산중을 휘감듯 불어오는 야풍(夜風)에 사당의 낡은 문짝이 기분 나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칠 줄 모르는 바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거칠어졌고, 문짝은 금방이라도 떨어져나갈 듯 이리저리 심하게 요동쳐댔다.


사박사박….

한밤의 어둠을 뚫고 하나의 인영(人影)이 조심스럽게 사당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인영이 점점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길다란 머리카락에 백설같이 새하얀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서서히 드러났다. 여인의 얼굴은 눈 밑으로는 붉은 색 천으로 가려져, 나이조차 짐작키 힘들었다.


"과연 이런 곳에 그자가 나타날까?"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여인의 시선이 사당에서 바로 옆에 위치한 거대한 고목 나무로 천천히 옮겨갔다. 잎이 하나도 없고, 시커먼 색깔을 띄고있는 모양새가 주변의 다른 나무들과 쉽게 구별이 되고 있었다.


"귀신이 붙었다고 너도나도 쳐다보기조차 싫어하는 이런 재수 없는 나무에 본녀가 손을 대야한다니…."


계속된 중얼거림과 함께 여인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고, 굵다란 나뭇가지 위로 하얀 손이 잽싸게 움직였다. 그리고 무엇인가가를 나뭇가지에 휘감는가 싶더니 여인은 사뿐히 땅위로 내려섰다.


나뭇가지 위에는 시커먼 장삼이 휘감겨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에는 왠지 모를 간절함이 담겨져 있었다.


'뭐야? 검은색 조화(造花)가 출현하면 그가 나타난 것이라 더니… 결국에는 다 헛소문이었단 말인가?'


반 시진, 그리고 한 시진, 답답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여인은 안절부절못하고, 사당과 나무 주변을 어지러이 빙빙 돌고 있었다.


"역시 강호에 떠다니는 이야기들은 그다지 믿을 것이 못 되는 군…, 도대체 이게 무슨 헛고생이야?"


두시진 가량이 흐르자 더 이상 참지 못한 여인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뱉어내며 사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막 시커먼 장삼을 회수해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앗…!'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나뭇가지가 여인의 동공에 놀란 빛을 일렁거리게 했다. 여인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고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나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람에 펄럭이던 검은색 장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도대체?'

여인은 당황한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돌리며 장삼의 흔적을 찾아나갔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여인의 눈이 못이라도 박혀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허억!"

여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놀람을 가득 담은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낡은 사당의 지붕 위에는 흑의(黑衣)로 전신을 감싼 복면인이 팔짱을 낀 채 우뚝 서있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한겨울 삭풍(朔風)을 연상시키듯 싸늘하기 그지없는 음성이 복면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당신이 검은 조화와 함께 나타난다는 바로 그…?"


애써 침착함을 찾으려 하고 있었지만, 여인의 목소리는 자신도 주체하기 힘들만큼 떨리고 있었다. 여인의 물음에 복면인은 차가운 눈빛만 번뜩인 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돼…됐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상기된 표정으로 여인이 가느다란 손가락을 움직여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사람을 죽여주세요. 대금은 섭섭지 않게 지불하겠어요."

애절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여인이 말했다.


"이유는?"

차갑고 단호한 음성으로 복면인이 물었다. 그러자 지난 과거가 생각나는 듯 여인의 버들잎 같은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인은 이내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시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십 팔 년 전 청부인의 집에서 총관으로 있으면서 악랄한 수법으로 재산을 가로챈 놈의 살인청부 입니다. 놈은 청부인의 부모님을 비참하게 독살했으며, 당시 겨우 열네 살이었던 나마저 겁탈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지요."


잠시 말을 멈춘 여인은 슬쩍 복면인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복면인은 대답은커녕 눈빛의 변화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충복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청부인은 오직 복수하나만을 위해 이날 이때까지 힘들게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허나 놈은 청부인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도법(刀法)의 요결이 담긴 비급을 연마해 현재는 대단한 고수가 되어있는 상태이고, 의심도 많은 상대인지라 그간 많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음에도 해치우지를 못했지요. 부디 제 원한을 풀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타당한 이유가 없는 청부를 받지 않는다는 복면인의 성품을 미리 전해들은 터인지라, 여인의 말과 태도는 지극히 조심스러웠다.


"대금 액수는?"

여인의 예상과 달리 복면인의 대답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처…청부를 받아들인다는 것입니까?"

희색이 만연한 음성으로 여인이 되물었다.


"대금은?"

기분이 상한 듯 복면인의 목소리가 약간 올라갔고, 재빨리 상대의 성향을 파악한 여인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으…은자 팔백 냥을 드리지요. 금액이 맘에 안 들면 더 줄 용의도 있어요. 대…대신 일을 확실히 처리해 주셔야 되요."


"청부의뢰서를 던져라."

복면인은 철저하게 꼭 필요한 말만하고 있었다. 여인은 재빨리 품안에서 둘둘 말은 갈색의 양피지를 꺼내들어 복면인을 향해 던졌다.


"꼬…꼭 확실히 부탁…."

마지막 다짐의 의미를 담은 목소리가 여인에게서 이어져 흘러나왔으나, 이미 사당 지붕 위에는 언제 누군가가 있었냐는 듯 복면인의 흔적은 온데 간데 없었다.


'흐음….'

매섭게 치켜올려진 눈으로 잠시 지붕 위를 노려보던 여인은 이내 등을 돌려 자신이 걸어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스스슷…

여인의 모습이 근처에서 완전히 사라질 무렵 사당의 지붕 위로 인영이 어른거리는 것 같더니 복면인이 또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크크크… 이것 재미있는데…?"

섬뜩한 조소를 흘려내는 복면인의 늘어뜨린 손에는 여인에게서 받은 양피지 외에 또 다른 양피지 하나가 슬쩍 쥐어져있었다.






사위에 깔린 어둠 속에서, 간혹 드러나는 달빛만이 이따금씩 장원을 비추고 있었다.


"하아아."

"으음…."


끈적한 신음성이 장원 깊숙이 자리한 내당에서 흘러나왔다. 온몸이 녹아드는 듯한 느낌에 전율하듯 쾌감성을 토해내는 간드러진 계집의 목소리,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누가 들을세라 다소 조심스럽게 뱉어내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사내의 음성...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어울려 가는, 두 남녀의 음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는 사뭇 오묘한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야릇한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아악… 장주님."

계집의 거친 숨소리와 교성에 더욱 더 흥분을 느낀 사내는 미친 듯이 허리를 움직여 나갔다.


"아으으으…."

계집은 황홀한 표정으로 역동적인 몸놀림을 보이며 지그시 눈을 감고 사내를 받아들였다.


장원의 밖은 대지마저 딱딱하게 돌덩어리처럼 굳어버릴 정도로 극심한 엄동설한이 몰아닥치고 있었으나, 두 남녀가 질펀한 정사를 나누고 있는 방안에는 밖의 기온 따위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화끈한 열기가 몰아치고 있었다.


일도필살(一刀必殺) 송방용.

욕정에 온몸을 불사르고 있는 사내의 이름이었다. 장원의 주인으로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도법(刀法)의 일가를 이루어 가며, 이제야 뒤늦게 무림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이었다.


반장민(班長悶).

계집의 이름이었다. 삼십대 초반의 미부(美婦)로 술집작부 출신이었으나, 신분을 속이고 이곳에 들어와 그 동안 배워온 각종 방중술로 송방용의 가슴에 뒤늦은 열정을 안겨준 여인이었다.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뒤늦게 정사의 쾌감을 알게된 송방용의 몸은 도대체가 식을 줄을 몰랐다. 반장민의 육체에 빠진 송방용은 날이면 날마다 이렇게 그녀를 안고 추운 밤을 뜨겁게 달구며 지새우고 있었다.


"하아…."

반장민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교성에 송방용의 귓전에는 황홀경의 거센 소용돌이가 몰아닥쳤다. 사내들의 청각이 여인들의 신음성에 민감한 약점을 파고들려는지, 반장민의 교성은 높고 낮음을 반복하며 쉴 사이 없이 송방용의 말초신경을 공격해 들어갔다.


"헉헉, 계집이라는 존재들은 요물이라더니…"

정신 없이 입술을 놀려 반장민의 온몸을 자극해대던 송방용이 거친 호흡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그가 올 때까지 최대한 이렇게 힘을 빼라. 비실비실 풀어진 다리로 얼마나 잘 싸우는지 보자? 네놈의 더러운 몸뚱이를 받아주는 것도 오늘로서 마지막이다.'


가느다란 옥수(玉手)를 뻗어 송방용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반장민의 눈빛은 야릇한 이채를 띄어가고 있었다.


'으음…?'

그때였다. 반장민의 위에 올라타서 거친 호흡을 토해내던 송방용의 눈빛이 불연 듯 날카로워졌다.


"아이 참, 갑자기 왜 그러세요? 장주님."

자신의 육체를 숨도 못 쉬게 뜨거운 기세로 압박해 들어가던 송방용의 움직임이 돌연 멎어버리자, 반장민이 불평 섞인 투정을 흘려냈다. 더불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반장민의 허벅지가 놓아주기 싫다는 듯 송방용의 허리를 바싹 조여갔다.


"아이, 장주님…."

손을 뻗어 자신의 허벅지를 밀어내는 송방용에게 이번에는 반장민의 양손이 목을 휘감아갔다. 그러자 송방용이 신경질적으로 반장민의 손을 쳐냈다.


"장주님, 자꾸 왜 그러세요? 소녀는 이렇게 몸이 뜨거운데…"

송방용의 이상해진 반응에도 상관없이 반장민은 연신 비음을 토해내며 또다시 손을 앞으로 내밀어 나갔다.


"쉬잇… 가만히 좀 있어봐라. 이 망할 년아."

반장민의 입을 손바닥으로 거칠게 막으며 송방용이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송방용은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맡에 놓여진 애도(愛刀)을 부여잡았다.


오늘날의 자신이 있기까지 언제나 함께 한 사랑스러운 병기, 그리고 항상 위험이 있을 때마다 충성스러운 수족이 되어준 가장 든든한 힘, 그런 믿음직한 무기가 지금 이 순간 뜨거운 밤의 중간에 다시금 송방용의 손에 들려졌다.


"도, 도대체…."

갑작스럽게 돌변한 송방용의 모습에 반장민은 의아함을 금치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장민은 이내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했으나, 무섭게 부릅떠진 송방용의 눈빛에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이내 입을 닫아버렸다.


"웬놈이냐!"

벽력같은 호통소리와 함께 송방용의 몸이 침대에서 퉁겨지듯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언제 뽑혔는지 그의 묵직한 칼이 파공성을 울리며 문에 희미하게 비친 정체불명의 그림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문을 걷어찬 다음 상대를 벨 수도 있었으나, 그럴 경우 상대가 피할 수도 있음을 생각한 송방용은 그대로 방문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콰직!

힘이 넘치는 송방용의 칼에 두꺼운 방문이 두 조각으로 잘려져 나갔다.


"흐흥! 쥐새끼치고는 제법이군?"

자신의 공세를 피해 마당으로 신형을 날리는 그림자를 쫓아 몸을 날리며 송방용의 칼이 좌, 우로 크게 바람을 일으켰다.


파파팟!

전광석화같은 도광(刀光)이 그림자의 가슴과 복부를 단번에 잘라버릴 듯 쏘아져나가 적중되었다.


"제기랄, 잔상이라니!"

자신의 칼에 맞는 순간 산산이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그림자를 보며 송방용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상대를 벨 때 전해지는 꽉찬 느낌이 아닌, 허공을 빗겨나갈 때의 불유쾌한 감각이 칼을 쥔 손에 전해져왔다. 그때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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