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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윙 님의 서재입니다.

노총각일기


[노총각일기] "고양이 새끼한테 무슨 애정을 쏟아...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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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순이는 사람 무릎에서 잠을 자는 것을 좋아한다.
ⓒ 윈드윙


'동물을 좋아하십니까?'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음… 그냥 좋아하는 편…'정도로 말을 흐릴 것 같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애견가, 애묘가들을 많이 봐온 입장에서 그분들과 비교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즈 1편에서 밝혔다시피 난 동물 중에서 고양이를 유독 좋아한다.(관련 글 : 난 고양이 같은 여자가 좋다) 어릴 때 시골에서 형제없이 살다보니 고양이가 참 좋은 친구가 되어줬고 더불어 정서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키워본 것은 단 두 번에 불과하지만 겨울에 얼어 죽은 어미 품에서 발견한 고양이, 시골집에 찾아온 도둑 고양이 등 나름 얽힌 사연들이 있는지라 잔잔한 추억이 짙은 편이다.

동물을 좋아하냐, 고양이를 많이 아끼냐? 등에 대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중요한 것 하나는 잊지 않고 있다. 키우기로 마음먹었으면, 내 곁에 두기로 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된다는 것! 아기 때 예뻐하다가 늙고 병들면 버리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동물을 키우는 데도 신중한 편이다.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관계로 키울 환경도 되지 않지만 옆에 놓게되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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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말썽을 피던 호순이가 지쳐 잠들었다.
ⓒ 윈드윙


개에게 쫓기던 아기고양이 호순이와의 만남

호순이(내가 고양이에게 붙여준 이름)를 처음 만난 것은 한 거래처 식당 앞에서였다. 거래처 사장님께서 사나운 개를 한 마리 키우셨는데 풀밭을 향해 거칠게 짖어대며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가보니 손바닥보다도 작은 아기고양이 한 마리가 구석에 몰려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체격 차이를 봤을 때 한 번이라도 물리면 조그만 고양이는 단박에 즉사할 것만 같았다.

사납게 짖어대는 개를 뒤로하고 고양이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위기의 순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지 고양이는 망설임 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고양이 갔다 뭐덜라고? 어여 버려." 지켜보던 거래처 사장님이 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만류하셨지만 일단 고양이를 차에 태웠다. 그대로 놓아두었다가는 꼭 그 개가 아니라해도 고양이가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는 판단에서였다.

막상 데려오기는 했는데 솔직히 조금 막막했다.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내가 고양이를 집에서 키울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내 밥도 잘 못 챙겨먹는데 어떻게 보살피냐도 답답한 문제였다. 일반주택에 살면 마당에 조그만 공간 만들어주고 방목하면 되는데 그럴 공간이 부족했다. 적당한 여건을 가진 이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키우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기동물 보호시설에서도 반기지 않는 눈치였고 무엇보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 당할 가능성이 높아 포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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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순이는 특기는 귀여운 표정으로 몸을 뒤집어 상대를 쳐다보는 기술이다.
ⓒ 윈드윙


결국 방법은 없었다. 고양이가 죽는 것을 보기 싫으면 내가 키우는 수밖에. 일단 사무실 구석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로 했다. 편의점에 가서 술안주용 멸치 몇 봉과 흰우유를 사와 적당히 섞어 고양이에게 줬다. 빈 라면박스에 옷가지를 넣어 잠자리를 만들었고 플라스틱 대야에 흙과 모래를 구해와 고양이 전용 화장실도 준비했다. 호순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그뒤 3개월 동안 나의 생활패턴은 대부분 호순이에게 맞춰졌다. 나는 굶어도 호순이 밥은 꼬박꼬박 챙겼고, 어디서 쓸만한 음식이 남으면 악착같이 챙겼다. 사무실 냉장고는 음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호순이에게 먹일 음식들로 가득 찼다. 다행히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마음씨 좋은 참치횟집 사장님 부부가 남은 생선회를 챙겨주셔서 호순이에게 마음껏 영양식을 먹일 수 있게 되었다.

원래 고양이란 동물은 엄청나게 움직이고 또 움직이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던 호순이는 왕성한 운동욕을 이기지 못했는지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깨버린 화분이 몇 개이며 화장지같이 잘 찢어지는 물건들은 잠깐 한눈팔면 갈가리 찢어져버리기 일쑤였다. 쥐를 잡는 본능이 벌써 발동했던지 엉뚱하게 컴퓨터 마우스 선을 갉아서 끊어버려 한참동안 사무실 작업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호순이가 활발한 게 좋았다. 아직 아기 고양이인 관계로 말썽을 부려봤자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딱 한 번 아팠었는데, 움직이지도 않고 힘없는 표정으로 하루 종일 쓰러져 잠만 자는 게 어찌나 걱정되던지 역시 팔짝팔짝 뛰는 게 차라리 속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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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썽을 피우는 호순이가 살짝 밉다가도, 무릎에서 자고있는 모습을 보고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 윈드윙


호순이는 나의 인형이 아닌 엄연한 생명체

사실 호순이를 초반에 어디로 안 보낸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처음에는 불쌍함 반, 귀찮음 반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 쌓여갔다. 사무실 문에 열쇠 돌리는 소리만 나도 번개같이 문 쪽으로 뛰어나와 반겨주고, 수시로 사무실 바닥을 뒹굴며 애교를 부리는 등 외로운 생활에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은 언제나 썰렁했지만 호순이가 있으면서부터 뭔가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누군가 어떤 공간을 항상 지켜주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기분인가보다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어떤 것이 호순이를 위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빈 사무실에 호순이가 있음으로 해서 생기가 도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감옥과도 같은 공간에 가둬두는 것은 자유기질을 타고난 고양이에게 분명 못할 짓이었다. 시골같으면 문을 열어놓고 자유스럽게 뛰놀게 한 후 식사 때만 돌아오게 하겠지만 사무실 바로 밖이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변이고 근처에 다른 도둑 고양이들도 많아 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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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순이가 목사님 서재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맘씨좋은 목사님은 그저 "허허허" 웃으신다.
ⓒ 윈드윙


뒷문을 열어놓고 다니며 활동공간을 넓혀주려는 노력은 했으나 그 정도로는 역부족인 게 사실이었다. 유달리 사무실에서 말썽을 많이 피우는 배경에는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좁은 공간에 갇혀있는 스트레스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문제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였다. 내가 항상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을 보러 어딘가를 나가게 될 경우 길면 열시간 가까이 자리를 비울 때도 많았다. 음식을 넉넉히 챙겨준다해도 왠지 호순이를 감옥살이 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다. 암컷인 관계로 언젠가 발정도 날 텐데 정상적으로 어미가 되어 새끼를 낳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부분까지 생각이 닿았다.

어떤 이는 말했다. 발톱을 깎고 발정을 억제시키는 수술을 하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안 될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미와 떨어져 감옥같은 사무실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는 호순이에게 그런 행위는 상상만으로도 아니다 싶었다. 자연 그대로 순리대로 지켜주는 게 호순이에게 해야 할 최소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난 결정을 내렸다. 호순이는 내 인형이 아니다. 엄연히 독립된 생명체인데 유리상자속 흰쥐처럼 그런 식으로 키울 수는 없다. 자유롭게 뛰어놀고 새끼까지 안정적으로 낳을 수 있는 주택으로 보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외롭다고 호순이를 달라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지만 여기와 비슷한 환경이라면 차라리 내가 키우고 말지 마음아픔을 감수하고 보낼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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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순이가 앞으로 지내게 될 전망좋은 시골교회.
ⓒ 윈드윙


결국 친구동생의 도움을 받아 전주외곽에 있는 교회의 목사님 부부에게 호순이를 보냈다. 주변 자연경치도 좋거니와 부지런한 목사님 덕에 잔디밭이며 조형물들이 잘 꾸며져 있어 호순이가 뛰어놀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참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멀다는 점이 아쉽지만 한 달에 몇 번 정도는 음식들을 싸가지고 면회(?)를 가기로 했다. 예전처럼 사무실에서 늘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호순이가 무럭무럭 자라 새끼를 낳고 기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같이 운동을 하는 한 아주머니는 그런 나에게 소리를 지르신다. "아니, 무슨 고양이 새끼 한 마리한테 애정을 쏟아. 그리 외로워? 면회는 무슨 면회, 줬으면 땡이지. 하여간…." 맞다.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리 말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앞서 밝혔다시피 대단한 동물 애호가도 아니다. 하지만 애정과 교감을 나눈 존재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 똑같이 소중한 것 같다. 고양이라서 그러는 것이 아닌 호순이이기 때문에 마음이 그리 갈 뿐이다. 오늘도 열심히 달리는 청년은 이렇게 또 세상살이를 배우고 있다.

 

-문피아 애독자 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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