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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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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연재수 :
2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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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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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8.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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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3. 천의검문의 소문주 (9)

DUMMY

진천을 보여 달라니. 나도 그게 어떤 검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데, 그리고 그걸 다시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 판에 과연 어떻게 진천을 보여줄 수 있으랴? 하지만 무작정 거절했다가는 의심을 살지도 모르잖아. 어떻게 해야 할까?


“거문!”


그때 날카롭고도 굵직한 고함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상염은 어느새 검에 손을 댄 채 위협적인 기세를 풀풀 피워내고 있었다.


“감히 천의검문의 힘을 의심하는가?”


“아, 아니.... 그것이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진천검자께서 남기신 검이 정말로 궁금해서 그렇다네.”


“당치도 않군. 그게 소문주께 광대처럼 검무라도 추라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검문의 검은 결코 가벼이 휘두르는 검이 아니다. 더 이상 무례를 저지른다면 나는 검을 뽑겠다.”


검을 뽑는 순간 피를 보지 않으면 진정하지 않는 마물이 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서거문도 한상염이 진심으로 검을 휘두를 것을 느꼈는지. 흠칫 놀라고는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으음.....”


나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거한도 한상염의 서슬에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다. 그런 반면 나는 비교적 태연하게 있을 수 있었다. 한상염의 기세가 무시무시하다는 건 알면서 왜 이렇게 마음이 평온한 걸까? 저 검이 나를 향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라도 든 걸까?


“이거 정말로 미안하네. 내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곰 같은 사내가 우물쭈물 사과를 건네는 모습은 꽤 우스운 광경이었다. 그렇지만 한상염은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 웃음기조차 품지 않았다.


“내가 아니라 소문주께 용서를 구하게.”


“흐, 흐음! 알겠네. 죄송합니다. 소문주, 불초 서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를 비는 모습이 이리도 어색할 수는 없었다. 필경 서거문이라는 사내는 외양에 걸맞게 용서를 구하는 쪽이 아니라 용서를 해 주는 쪽이었을 것이다. 이런 호한(豪漢)을 곤란하게 만드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아서,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자리에서 보여드릴 검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훗날 기회가 닿으면 반드시 견식하게 해 드리지요.”


목숨이 오가는 자리가 아니면 나는 진천을 보일 가능성조차도 없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자력으로 진천을 터득하겠다. 그런 의지를 담아 나는 서거문의 마음을 달랬다. 다행히도 그는 이런 일 정도는 숱하게 겪었다는 듯, 금세 훌훌 털고는 스스럼없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헌데 그 이야기가 사실인가? 성주께서 천의검문에 도둑을 잡으라는 부탁을 하셨다는 게.”


“그렇다.”


한상염이 검집에서 손을 떼며 차갑게 대답했다. 서거문과는 달리 약간 앙금이 남은 모습이다. 그렇지만 곧 그 역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침 잘 되었군. 거문, 그 도둑에 대해 짚이는 바가 있는가?”


“있다마다.”


언제 수련장으로 안내해줄지 조바심이 일던 나는 저 말에 귀가 번쩍 뜨이는 것을 느꼈다. 내가 관심을 표하는 것을 알아챈 그는, 사방으로 뻗쳐서 마치 가시 같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내 쪽을 향했다.


“며칠 전에 수상한 자들이 한밤중에 우리 무관에 침입한 적이 있습니다.”


“숫자가 둘 이상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어쩌면 문영과 노인이 비도를 훔친 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한 패가 있을지도 모르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가능성은 분명 낮아질 것이다. 서거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억을 더듬어 대답했다.


“셋. 아니, 창고를 뒤지던 자만 셋이었고 담장 밖에는 더 많았습니다. 족히 열 명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훔쳐간 물건이 있는가?”


한상염이 물었다. 서거문은 수염을 쓰다듬던 것을 멈추고는 씩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나 한중호협(漢中豪俠) 서거문이 지키고 있는데 도둑 따위가 무얼 훔쳐갈 수 있겠나? 전부 한군데씩 분질러서 쫓아냈지.”


“에이, 결국 놓치신 거 아닌가요?.”


뒤에서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경청하던 설초아가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를 뱉어냈다. 이에 서거문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자, 그제야 입을 탁 가리며 한상염의 뒤로 몸을 숨긴다. 그렇지만 서거문은 크게 불쾌해하지 않고 사실을 인정했다.


“그 말대롭니다. 워낙에 재빠른 자들이라 놓치고 말았습니다.”


“성주의 물건도 훔쳐간 이들이야. 아무리 자네라도 잡기는 쉽지 않았겠지.”


한상염이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고는 생각에 잠겼다. 좌우간 이로써 범인에 대한 윤곽은 확실히 드러났다. 범인은 한둘이 아니다. 어쩌면 큰 조직이 뒤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 대협의 조력에 감사드립니다.”


서거문에게 포권을 쥐어 보이며 나는 생각을 마무리했다. 여기서 더 생각을 해 봐야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할 것이다. 나머지는 심하령이 가져오는 것들과 함께 궁리하는 게 낫겠지.



한중무관의 수련장은 굉장히 훌륭했다. 무림 제일을 다투는 천의검문과 비교해도 규모 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 중 나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수련장으로 안내를 받았다. 가는 길도 정갈한 것이나, 수련장의 정돈 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서거문 본인의 개인 수련장인 것 같다.


한상염은 설초아와 함께 한중성의 번화가로 돌아갔고, 서거문도 안내를 마치자마자 돌아갔다. 주위의 인기척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수련을 시작했다.


“후우.....”


호흡은 더없이 안정되어 있다. 이제 육합권의 형은 어느 정도 몸에 익었다. 물론 계속해서 반복하다보면 호흡이 흐트러지겠지만, 처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오늘따라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계속해서 투로를 반복하던 나는 문득 이 답답함의 원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능력에 비해 주위의 기대는 너무나도 크다. 본래 천의검문의 소문주라는 자리는 결코 녹록한 자리가 아니다. 그 증거로 나는 검문을 대표해서 평도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 진천을 펼치면서 내 명성은 지나치게 커졌다. 그러나 나는 진천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단지 천의에 가장 가까운 경지임을 알고 있을 뿐이다. 수많은 검의를 하나로 합친 그런 지고한 경지.

오늘은 한상염 덕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지만, 다음에도 이런 요행이 있으리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초조함을 갖는다고 빨리 강해지지도 않는다. 단지 나는 육합권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계속해서 뛰어난 소문주를 바라고, 나는 그 기대를 충족할 수 없다.


“큿!”


답답함이 지나쳐 움직임이 어긋난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서 보법이 엉키고 균형이 무너져갔다. 제풀에 넘어져서 흙바닥을 뒹굴었다. 스스로의 모습이 정말로 한심해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후우, 정신 차려라.”


천천히 일어나서 흙투성이가 된 곳곳을 툭툭 털어 보았지만, 얼마나 힘차게 넘어졌는지 흙먼지가 옷에 완전히 배어들어서, 아무리 털어도 색이 빠지지 않는다.

연신 옷을 털어가며 나는 나도 모르게 조용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결코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더없이 처량해 보이는 손짓 하나하나마저 드높을 곳을 가리키는 마음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그리고 조롱했다. 너 따위가 저기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할 수 있어.”


못 할 리 없다. 아니, 해낼 것이다. 아버지도 나를 믿고 계신다. 그리고 나도 나를 믿는다. 나는 바뀌었다. 무의식에 녹아 있는 반사적인 움직임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러나 그런 결심을 밀쳐내곤, 다시 심마가 문을 두드리며 속삭였다. 그것이야말로 잘못된 길일지도 몰라. 천의결과 다를 게 없는 것에 의존해서, 또 어설픈 경지에서 주저앉을 거야. 그러니 차라리 일찍 포기해라.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히 살아가라. 모든 위험을 말해주었으니 이젠 네가 아니라도 다른 이들이 파천마제이며 빙룡을 막을 거야.


“개소리 마라.”


내가 방관해도 된다고? 그러다 무림은 멸망했다.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아무것도 안 한 것이다. 이제 와서 마음을 놓기에는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깨달았다. 심마를 두 주먹으로 두들기듯, 나는 눈을 부릅뜨고 육합권의 일초를 내뻗었다. 그리고 외쳤다.


“나는 예전하고는 달라! 봐라, 이 손으로 진천을 펼쳐낸 나는 무엇인지 설명해 봐라!”


진천이야말로 내가 바뀌었다는 가장 큰 증거. 그러나 무의식에 휘둘려 펼쳐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내 의식에 따라 진천을 펼쳐내지 못하는 이상 완전히 바뀌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반드시 진천을 터득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스스로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잠자코 지켜봐라.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조용한 중얼거림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사자후나 다름없는 크기로 울려 퍼졌다. 형체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적을 상대하던 육합권이 더욱 강맹하게 변해갔다. 미력한 내공이 온몸을 휘감으며 약간이나마 육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면서 나는 심마를 잊으려 억지로 입으로 구결을 외기 시작했다.


“육합이란 천지사방 세상만물을 의미하는 것이니, 여섯 초식에 우주가 깃들어 있노라.”


지극히 허황된 소리다. 그래서 나는 꿈을 꾸기 전에도, 꿈을 꾸고 난 다음에도 이 구결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무언가 다르다. 과연 육합권은 허황된 소리로 가득 찬 싸구려 권법일까? 천의결도 괴상한 소리만 가득했던 삼류 심법처럼 보였지만 사실 조부께서 안배하신 귀물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그러나 의문은 잠시였다. 의문이 요구하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혼란에 휩싸여 있던 나는 어느새 생각마저 멈추고 육합권에 대해 생각하며 초식을 이어갔다.


“하여, 우주만물을 여섯 초식을 통해 체득할 수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내 생애 이처럼 무공에 전념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 심마로부터 도망치려 기를 쓴 덕분에 이렇게 쉽게, 그리고 강렬하게 무념무상에 접어든 것이다. 이는 꿈을 통해 경험한 수많은 사투와, 그를 통해 다져진 심지가 이끌어낸 상태였다.


“육합은 우주를 보는 창이며, 또한......”


그러나 무념무상을 의식한 순간 잡념이 의식을 흐리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무념무상에 간절히 손을 뻗었지만 이미 마음은 흙탕물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망할! 멍청한 새끼!”


어째서냐? 이건 분명 내가 무인으로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 길을 눈앞에 두고도 이리 멍청하게 기회를 놔버릴 수 있단 말인가? 화가 치밀어 오른다.


“후우.....”


어느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다. 이마를 타고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눈꺼풀 위로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슥 훔치고, 나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폭발할 것처럼 울렁대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조바심 내지 마라. 비록 지금은 놓쳤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나는 바뀌었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너무 시간이 늦었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슬슬 심하령이 돌아올 때이니 서둘러 객잔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나는 저만치에 풀어둔 검을 서둘러 허리에 차고 땀을 다시 훔친 다음 의관을 정돈했다. 그리고 조금 서둘러서 걸음을 옮겼다.


“이런....”


한중성의 번화가에 다다르니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객잔은 아직 보이지도 않건만 번화가는 바글바글한 사람들로 가득 차서, 지나가기는커녕 앞뒤 분간도 안 될 수준이었다.

곳곳에 무림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다른 이들과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칼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머리 위로 번쩍 들고 간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이런 인파 속에서 검을 차고 다니다가는 인파에 휩쓸려 검집째로 뜯겨져 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저래야 하나?”


조금 우스운 꼴이지만 하는 수 없이 나는 검을 끌러서 머리 위로 번쩍 들고 인파에 뛰어들었다. 막상 뛰어드니 보았던 것보다 더 흐름이 거칠다. 다른 이의 발을 밟지 않으려 빙빙 돌다보니, 한 걸음을 가는 데도 열 걸음도 넘게 소요되고 있었다. 거기에 후덥지근한 날씨까지 더해지니 절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또한 놓쳐버린 깨달음까지 떠올라 나를 괴롭히니, 생각 같아서는 이 빌어먹을 곳을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사실 그럴 능력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그렇게 힘겹게 인파를 헤치고 나는 객잔에 도착했다. 화려한 외양 탓인지, 이곳에는 별로 사람이 몰려 있지 않았다. 객잔 앞에서 옷을 툭툭 턴 다음 검을 제대로 차고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오셨네요. 여기에요!”


설초아가 쪼르르 달려와 나를 맞이해 준다. 설초아가 달려온 쪽에는 한상염과 심하령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파를 헤치고 오다보니 생각보다 늦은 모양이다.


“오래 기다렸습니까?”


“아니요. 우선 씻고 오세요. 식사도 못 하셨을 테니 식사를 하면서 말씀드릴게요.”


진담인지, 아니면 비꼬는 것인지 모르겠군. 땀과 먼지에 찌든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니 조금 기분이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다 같이 먹어서 더 맛있네요.”


설초아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하며 젓가락을 놀린다. 천검대의 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녀가 더 심가장의 철없는 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심하령은 천검대원이라도 된 양 지극히 딱딱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한 대주께 말씀은 들었어요. 한중무관에서 도둑이 들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숫자도 꽤 많았다고 하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관련이 없거나 꼬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익은 닭고기 볶음을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젓가락을 멈추는 게 예의겠지만, 어째 오늘은 대단히 배가 고파서 젓가락을 멈추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심하령이 말했다.


“혹은 둘 다 일지도 모르지요.”


“음? 무슨 말씀이세요, 언니?”


입안에 음식을 가득 밀어 넣던 설초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심하령은 따뜻한 기가 다 가신 미지근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도 공자께서 만난 두 사람과, 한중무관에 나타났던 도둑들이 같은 편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만약 그렇다면 섣불리 두 사람을 무고하다 생각할 수는 없다. 두 사람에게서 비도를 받은 나로서는 조금 불편한 일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내가 두 사람의 뒤에 있었다는 말이 퍼질지도 모르지. 강호에 출도하자마자 처음으로 퍼진 이야기가 도벽이라면, 먹칠도 그만한 먹칠이 없다.


“혹시 무언가 알아낸 것이 있습니까? 두 사람이든지 아니면 한중무관을 습격한 도적떼에 대해서요.”


“공자께서 만나신 두 분의 행적은 알아냈어요. 정확히는 행적만이지만요.”


심하령이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무언가 있군. 그냥 넘어가기에는 마음이 조금 걸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 쪽 사람이 접근하는 걸 눈치 채고 자취를 감추었어요. 마치 무영신투처럼 잠깐 시선을 돌린 틈에 사라졌다고 해요. 추종술을 제대로 익힌 이들도 두 사람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아내지 못했죠.”


나도 무영신투에 대해서는 들은 풍문이 있다. 그 뒤를 계속 쫓다보면 연기처럼 사라져서 그림자가 지나간 흔적도 없다 했다. 과연 문영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사치가 아니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무영신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 그럼 이건 어때요?”


그때, 심각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설초아가 손뼉을 딱 치고는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고, 설초아는 그것이 조금 쑥스러운지 뺨을 긁적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 훔친 물건을. 그러니까 소문주님이 가지고 계신 비도를 성주님께 다시 돌려드리면 그걸 다시 훔치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린 그 때 두 사람을 이렇게 확!”


설초아가 반쯤 장난스럽게 양 손으로 뭔가를 움켜쥐는 시늉을 하며 말을 끝냈다. 그러나 분위기는 영 설초아의 말에 찬동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한상염이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다시 물건을 훔치려고 했다면 다행이지만,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소문주께 비도를 드렸으니, 그들이 비도를 다시 원한다면 소문주님을 제 발로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그렇다면 굳이 성주에게 비도를 돌려줘서 의심을 살 필요도 없지. 그러나 그 때, 심하령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 설 소저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해요. 도 공자님. 두 사람을 만났을 때 검을 보여줬고 천도에서 왔다는 것도 밝히셨죠?”


전에 심하령에게 비도를 보여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 주기는 했지. 저것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해준 것인데도 심하령은 아직도 그게 기억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지금 한중성에 천의검문의 소문주가 있다는 걸로 암암리에 소란이 일고 있어요. 그리고 도 공자께서 성주의 부탁을 받아들인 것이나, 정도용봉회를 내친 것도 호사가의 입을 통해 상당히 퍼져 있죠. 하물며 전문적으로 정보를 다루는 이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그러니까 내가 한중성에 있다는 게 유명한 일이라면....


“두 사람은 제가 천의검문의 소문주라는 걸 알아챘겠군요.”


비록 변변한 이름은 없지만 내 검은 백윤의 검을 부러트릴 정도로 뛰어난 검이다. 그런 검을 찬 천도 출신의 무림초출은 아마 나뿐일 것이다.

심하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닥이 보이는 차를 홀짝홀짝 마셔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즉, 두 사람은 한중성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비도를 감춘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도둑으로 의심받을 리 없고, 검문조차도 받지 않는 사람이요.”


“그렇다면 두 사람은 비도가 한중성에 있는 걸 원하지 않는 거죠?”


설초아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게 정말로 기쁜지 잔뜩 들떠서는 방방 뛸 것처럼 몸을 들썩였다. 그러나 심하령은 공치사를 하는 대신, 냉정하게 일축했다.


“그럴 가능성이 생긴 것 뿐이에요. 우연히 공자께 비도를 넘겨주었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설 소저께서 제안하신 걸 해볼 가치는 있어요. 마냥 두 사람이 제발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요.”


그렇게 말하곤 심하령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공자께서는 잠시 비도를 제게 주시겠어요? 제가 성주에게 비도를 돌려주고 이야기를 나누겠어요.”


함정을 팔 작정이군. 부디 두 사람이 걸려들게 된다면 크게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두 사람이 확실히 도둑이라거나, 비도에 대한 추측이 맞아떨어질지는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정도문파의 소문주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나는 품 속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새로운 문제가 터졌다.


“왜 그러세요?”


설초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천진난만한 그녀 앞에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말할 자신이 없었기에, 나는 설초아 쪽은 바라보지도 못하고 품 속에서 손을 빼냈다. 당연히 내 손은 빈손이었다.


“도 공자님. 설마...”


심하령이 빈손의 의미를 가장 먼저 깨닫고는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나를 바라본다. 이어서 한상염과 설초아도 느지막하게 내 실수를 깨닫고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감추려 애썼다. 나는 빈손을 꾹 움켜쥐고는 세 사람의 시선을 피하며 등 뒤를 향해 말을 토해냈다.


“아무래도.....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그 비도.”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8월은 정말로 바쁘네요. 정신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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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4. 유아독존(唯我獨尊) (1) +4 14.09.12 1,364 34 21쪽
149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2) +7 14.09.05 1,471 37 13쪽
148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1) +7 14.08.31 1,474 33 11쪽
147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0) +6 14.08.24 1,224 33 10쪽
» 3. 천의검문의 소문주 (9) +9 14.08.10 1,553 35 20쪽
145 3. 천의검문의 소문주 (8) +4 14.08.04 1,315 33 18쪽
144 3. 천의검문의 소문주 (7) +9 14.08.01 1,409 37 12쪽
143 3. 천의검문의 소문주 (6) +4 14.07.30 1,156 33 12쪽
142 3. 천의검문의 소문주 (5) +5 14.07.29 1,218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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