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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IMIS.O 님의 서재입니다.

고려외사(高麗外史)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KIMIS.O
작품등록일 :
2023.12.19 20:01
최근연재일 :
2024.03.26 16:40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240
추천수 :
21
글자수 :
296,151

작성
24.02.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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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충무의 난(1)

DUMMY

충무의 난(1)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새터마을에 수주의 군관으로 보이는 낯선 자와 병사들이 찾아왔다.


“폐하의 명이니 이레 안으로 가구마다 정해진 식량을 확보하여 준비하도록 하라.”



이들의 말에 따르면 나라에 기근이 들고 각지에 난이 발생해 군대를 동원할 일이 많아졌고, 이에 따라 세금을 추가적으로 거두라는 나라의 명이 있다고 하였다.


갑작스럽고 전례 없는 요구에 마을 사람들이 항의했다.


“네까짓 것들이 폐하의 명을 어길 생각이냐?”


“폐하의 명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마을 사람들이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자 군관이 소리를 지르며 칼을 뽑았다.


“네 놈들이 정말 반역죄로 죽고 싶은 것이냐!!”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얼핏 보니 뒤에 서있는 누군가는 몽둥이를 들고 있기도 했다.


그때 정명수 이장이 앞으로 나왔다.


“아이고. 나으리. 이레 안에 준비하겠습니다. 노여움을 푸소서.”



짤랑. 짤랑.


정명수가 주머니에서 동전 뭉치를 꺼내 군관의 손에 쥐였다. 군관이 동전 뭉치를 슬쩍 보고는 품 안에 넣었다.


“험. 험. 그대가 마을 이장이오?”


“네. 그러하옵니다. 나으리.”


“내 그대의 정성을 보아 저치들을 처벌하지 않으니 이를 감사히 여겨 이레 안에 할당된 물량을 채우도록 하라. 큼.”


“여부가 있겠습니까.”


정명수가 별말 없이 꾸벅 인사하자 군관은 다시 한번 큼큼거리더니 병사들을 이끌고 뒤돌아 떠났다.



군관이 떠나자 마을 사람들이 어수선했다.


“빌어먹을 놈들. 언제부터 이 시기에 세금을 냈다고 그래.”


“지들 배를 채우려고 나라님을 판 게 분명해.”


“이장님. 정말로 저들이 하는 말을 들을 것입니까?”


분에 못 이겨 화는 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들이라고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왕의 이름은 설령 허명이라 할지라도 그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



뒤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정가람이 팔꿈치로 소유를 툭툭 쳤다.


“응?”


소유가 정가람을 보았다.


“알지?”


소유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


그날 저녁 수주의 하급 군관 이치암은 마을 여섯 곳에서 돈을 뜯어내고는 그를 따르는 병사들과 함께 주막에서 탁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이고. 형님. 오늘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관우 장군님을 모시고 다니는 줄 알았습니다.”


“끌끌. 네 녀석들이 이제야 사람 보는 눈이 트인 모양이구나. 잘 보아라. 나 같은 어르신을 모시고 다니면 이런 호사도 누리는 거 아니냐. 어떤 졸개가 너희들처럼 이 시간에 술을 마시며 닭고기를 뜯고 있겠느냐?”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이치암과 병사들은 제법 많은 돈을 뜯어냈는지 답지 않은 상을 받고 있었다. 병사 하나가 닭다리 하나를 뜯어 크게 물더니 쩝쩝대며 말하였다.


“아니. 근데 형님. 이제 어찌할 생각입니까?”


“무얼 말이냐?”


이치암이 탁주를 한 사발 들이키며 말하였다.


“녀석들이 정말 공물을 준비하면 어찌합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병사가 말하였다.


“뭐 어쩌긴. 우리가 다 가져다가 팔아버리면 되지.”


“바보냐. 우리끼리 그것을 어디다 처분하느냐. 그리고 들키면 어찌하려 그러느냐?”


“어떻게든 되지 않겠느냐.”


“이런. 멍청한 놈.”


둘의 언쟁을 지켜보던 이치암이 닭고기 덩어리를 입 안에 욱여넣으며 말하였다.


“뭘 걱정하느냐. 폐하의 은총이라 말하며 우리가 수거할 수 있을 만큼만 가져오고 되돌려주면 되지 않겠느냐? 그리하면 놈들은 우리에게 감사하다며 굽신거릴 것이다. 크큭.”


“돌려준다고요? 무엇 때문에 그리합니까? 아깝게.”


“멍청한 놈. 네 녀석은 황금 달걀을 낳는 닭의 배를 가를 셈이냐?”


“아!!”


병사들이 이치암의 말 뜻을 이해하고 크게 웃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솔직히 저는 아까 좀 식겁했습니다.”


한 병사가 몸을 으스스 떨며 말하였다.


“뭐가 말이냐.”


“그 샘이 흐르던 마을 기억하십니까? 거기 있는 마을 사람들이 보통내기가 아니라 싸움이라도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병사의 말에 이치암이 새터마을을 기억했다.


“흥. 그래봐야 지들이 뭘 한다고.”


이치암이 병사의 말을 애써 무시했다. 그러나 갑자기 솟아 차오르는 짜증을 지울 순 없었다.


‘아무래도 그 녀석들은 혼쭐을 내 본보기를 삼을 필요가 있겠군.’


*


소유는 이치암 패거리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오직 탁주 한 잔과 나물 몇 점만을 시킨 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크윽. 나도 닭고기를 먹은 지 오래거늘. 저런 놈들 따위가.’


소유는 그들의 모습에 분개했다.



잠시 후 이치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틀거리며 걷는 꼴이 제법 마신 모양이었다. 병사들이 그를 따랐다.



소유는 그들이 일어서자 조용히 따라갈 생각을 하였다.


그때 다른 자리에 있던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뜻 보니 이치암 패거리를 따라가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소유의 흥미를 당겼다.



‘어? 이 녀석 봐라.’


소유는 남자와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이치암과 병사들이 숙소로 돌아가는 외진 길을 지날 때 그들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건장한 체격과 기운으로 보아하니 평범한 자로 보이지 않았다.


병사가 그를 발견하곤 말하였다.


“에헤이~ 가라. 가! 그냥 보내줄 테니 가라!”


“낄낄.”


이치암과 다른 병사들이 남자를 비웃었다.


그러나 남자는 그들에게 용무가 있는지 비키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이~ 가라니까?? 안 가?”


“쟤. 뭐야! 이 분이 누군지 모르는 건가. 낄낄.”


낄낄되는 병사들 사이에서 이치암만이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칼을 뽑았다.


“네 녀석은 뭐냐!”


그러나 남자는 아무 말없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았다.



이치암이 순간 흠칫했다.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수주의 오합지졸 아니냐.”


“뭐라고!!”



다시 보더라도 남자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병사들을 이끌고 백성들을 속일 정도의 지능은 있는 이치암이었다.


평상시였으면 상대가 범상치 않은 자임을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음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좋지 않은 명령을 하였다.


“귀찮다. 알아서 해라. 아니다. 저 녀석을 죽여라! 새터 마을에 저 놈의 목을 걸어야겠다.”


이치암이 명령하자 병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빼어 남자에게 다가갔다.


나라의 녹을 먹는 병사들이라고 하기엔 건달과 같은 모양이었다.



남자는 달려드는 병사들을 가볍게 피함과 동시에 칼자루로 그들의 목을 강타했다.



퍽!!


“큭.”



퍼억!


“끄윽.”



소유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상대를 한 번에 가볍게 제압했다. 저 자는 이류 최상급 아니 일류에 진입한 솜씨가 분명하다. 어디서 저런 자가 나타난 걸까.’



모든 병사들이 쓰러지는 건 오래지 않아서였다. 이치암이 그제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무기를 버리고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남자가 이치암을 잡으려 하기도 전에 소유가 그 앞을 막았다.


“넌 뭐냐.”


“나? 수주의 백성 정도?”



퍽!!


소유는 주먹으로 이치암의 배를 강하게 갈겼다.


“크어어억!!”


이치암이 뱃속에 든 것을 모조리 토해냈다. 아직 소화되지 않은 탁주와 닭고기가 뒤엉켜 역겨운 현장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가 소유에게 말하였다.


“뭐냐?”


소유는 대답대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는 이치암을 발로 걷어찼다.


이치암이 고통스러운지 대굴대굴 구르다 남자 앞에서 멈췄다.


“에이. 바지에 더러운 거 묻었네.”


소유가 바지를 탁탁 털었다.


남자는 소유가 적이 아닌 것을 알았다. 이치암을 자신에게 보낸 것 또한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일 것이다. 덤덤한 소유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남자는 이치암의 주머니를 뒤져 마을 사람에게서 훔친 돈을 찾았다.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물건 중 값이 나가 보이는 몇 가지 물건을 빼앗았다.


“돈이나 챙기지 그런 건 뭐 하러 챙깁니까?”


소유의 물음에 남자가 답했다.


“팔아서 그들이 먹은 음식값으로 쓸 것이오.”


“그럼 그 돈은 어찌할 것이오?”


“물론 마을 사람들에게 돌려줘야지.”


남자가 당연하다는 듯 말하였다.



소유는 내심 감탄했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자가 있구나.’


남자 또한 소유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둘은 갑자기 의기투합하여 함께 술을 마시기로 했다.


그러나 소유는 가진 돈이 없었다.



소유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이치암의 칼을 주웠다.


“그건 뭐 하러 가져가오?”


“술값이오.”


소유가 남자를 향해 칼을 던졌다.


남자가 피식 웃곤 소유와 함께 좀 전 주막으로 다시 갔다.


주모가 그들 앞에 술과 찬을 놓았다.



소유는 남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남자의 이름은 ‘순’이었다. 진명은 아닐 것이다.


“자네 이름은 혹시 요순시대의 임금에서 따온 건가?”


그러자 순이 웃으며 말하였다.


“어? 유식한 소리를 하는 거 보니 책도 좀 읽었나 보군. 하지만 아니야. 며칠 전 모시던 주인에게 받았을 뿐이야. 순직한 전임자의 이름이라고 하더군.”


“죽은 사람의 이름을 받은 거라고?”


“크크. 그래. 그렇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아.”



소유의 예상처럼 순은 평범한 남자는 아니었다.


학식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군과 관련된 지식은 수준급이었다.


그의 가문은 과거에는 제법 이름 있는 무장을 배출한 집안이었으나 언제부턴가 뛰어난 무인이 배출되지 않았다.


순의 증조부는 어느 권세가와 말다툼하였고, 그 결과 화를 피하기 위해 도성을 떠나 수주로 내려왔다.


순의 조부는 범인이었고 부친 또한 매한가지였다.


고작 2류 정도 되는 무관 몇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순은 제법 싹이 보였다. 어릴 때부터 칼과 병법을 좋아했다.


가문은 순을 키우기 위해 모든 힘을 다했다. 그는 가문의 미래이며 희망이었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순은 1류에 진입할 수 있었고, 그는 도성의 근위대가 되어 왕의 곁을 지켰다.



‘얼마 전 근위대장님의 직속 팔인대가 된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 아마 불편해할 거야.’


순이 생각했다.



둘은 탁주를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소유는 모처럼 내지에서 말이 통하는 술친구를 만나 기분이 좋았다.


순의 경우 외모와는 달리 내성적인 성격이라 근위대 내에서도 말벗이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고향에서 친우를 사귀게 되어 좋았다.


‘팔인대로 활동하기 전 고향으로 내려온 건 잘한 일이군.’ 생각하는 순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순. 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돈을 되찾아 돌려주려고 한 거야?”


“엉? 소유 네 녀석 또한 나와 같은 마음으로 군관을 따라간 것 아닌가.”


‘물론 그렇겠지.’


소유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순이 말하였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은가. 그들이 폐하의 이름을 팔았으니.”


“뭐?”


“죽어 마땅한 죄임이 분명 하나 내 자네를 봐 참았네. 처음 만나는 친구에게 피를 보일 순 없지 않나. 흐. 흐. 감히 폐하의 이름을 팔다니. 백성들이 폐하를 욕할 게 분명하니 내 이 재물을 돌려주고 해명함이 마땅하네.”


“...”


“그나저나 수주에 나와 같은 마음인 자가 있다니 정말 놀랍네. 10년 지기를 만난 기분이야.”


순이 기분 좋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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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자광의 계책(2) 24.02.13 10 0 11쪽
36 자광의 계책(1) 24.02.08 12 0 12쪽
35 충무의 난(5) 24.02.07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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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충무의 난(3) 24.02.05 9 0 11쪽
32 충무의 난(2) 24.02.02 9 0 11쪽
» 충무의 난(1) 24.02.01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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