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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람 님의 서재입니다.

Legion(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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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냐람
작품등록일 :
2020.05.19 23:42
최근연재일 :
2021.02.24 23: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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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26,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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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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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군단 (1)

DUMMY

에반의 이동은 마치 거인이 달리기를 하듯 땅을 딛을 때마다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그녀는 가볍게 땅을 밟는 것만으로 에드로 향하는 망자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그들 중 대부분을 전투 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


‘짐이 너무 섣부르게 나선 것이 아니라면 좋겠는데..’


시선을 세크매트에게로 고정하고 주먹을 움켜쥐어 그녀가 가장 아끼는 무기인 거대한 건틀렛을 소환한 에반은 행여나 자신이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하지만 리버티타스가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도와줄 이가 없었으니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건틀렛이 완전한 형상을 갖추고 에반의 전력이 담긴 주먹이 세크매트를 향했다. 그녀의 주먹이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모든 적들은 휩쓸려 날아갔고, 그 궤적의 끝에서 주먹은 세크매트의 볼을 향해 가고 있었다.


쿠-웅-!!


세크매트에게 충돌하며 발생한 파동은 그녀의 주먹이 지나간 반대편으로 쏟아졌고, 그녀의 주먹이 집어삼킨 한 쪽 군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쪽 군세들은 세크매트의 바로 옆부터 거진 지평선이 보이는 곳까지 존재 자체가 소멸해버렸다.


“성질 급한 건 여전하구나..”

“흥!”


비록 이미 죽은 자들이지만 평범한 필멸의 존재들이라면, 이렇듯 간접적인 공격만으로 소멸해버릴 정도로 상상하기 어려운 강함이었음에도 세크매트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에반은 세크매트의 손을 발로 차고 리버티타스의 곁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세크매트를 경계하는 한 편 리버티타스의 상태를 살폈다.


인상을 쓰고 있지만, 초점을 잃은 눈동자.


분명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신성력으로 행해진 주술 탓에 완벽한 무방비 상태가 된 것은 분명했다. 에반은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가능만 하다면 자신의 전력으로 그녀를 쓰러뜨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크매트는 에반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엔비투스 사이에서 얽힌 비극의 원흉이었다. 에반의 마음 속 깊이 그녀에 대한 증오가 피어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신이다. 이 세상에 만연해있는 개념과도 같은 존재, 부정하고 싶어도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지.’


에반 역시 헬리아에게 편애를 받던 존재이다. 하지만 헬리아가 그녀에게 쥐어준 것은 다름 아닌 ‘힘’. 단순한 ‘힘’으로는 결코 그녀를 나타내는 문자를 지울 수 없었다.


에반은 눈동자를 돌려 그녀의 뒤에 있는 리버티타스를 쳐다봤다. 세크매트를 상대로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리버티타스를 지키며 버티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그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뭐야, 눈동자에 대가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세크매트가 에반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비아냥대자 에반은 이를 갈며 대답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나본데, 짐이 봉인된 이유는 신들이 짐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야. 짐은 지금 당장 네 년을 씹어죽여도 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

“아하하하하!!! 오만도 병이지.. 헬리아는 신들의 분노로 애완동물이 죽을까봐 안전한 곳에 숨겨 놨을 뿐인데.. 그 이는 딱하기도 해라.. 애완동물이 멋대로 도망쳐 나왔네? 아, 그러고..”


쿵-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가볍게 올린 세크매트의 손바닥은 에반의 건틀렛을 막고 있었고, 감히 형언하기 힘든 두 존재는 서로 노려보며 그 자세 그대로 대치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에반의 움직임에 따른 후폭풍이 밀려왔다. 대지가 으깨지고 칼바람이 요동쳐 주위를 쓸어냈다. 에반의 후방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붕괴해가는 와중에 세크매트가 서있는 자리만은 평온한 듯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헬리아의 며느리한테 말이 좀 심했네, 미안~”


제법 산뜻하고 가볍게 사과한 세크매트는 이내 정색하고 두 눈을 보다 날카롭게 뜨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말을 끊고 그러실까?”


세크매트와 그녀를 닮은 사자의 형상이 동시에 에반을 후려쳤다. 에반은 건틀렛으로 충격을 흡수하고 후방으로 물러나며 데미지를 줄였지만, 거의 10,000년만에 느껴보는 팔의 저림에 다소 놀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쿵-!!


이윽고 세크매트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에반은 또 다른 세크매트의 거대한 주먹에 그대로 그녀의 주먹을 내다꽂았고, 두 주먹 사이의 충격은 일대를 폭파시킬 것처럼 확산되고 또 확산됐다.


에반은 그녀의 공격에서 그녀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녀를 상대로 리버티타스를 지킬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곁눈질로 그녀가 지켜야할 사람을 보고 생각했다.


‘버티는거야 문제가 없겠지만.. 부디 창, 자네가 이 마지막 시련을 이겨내길 바라겠네.’


그리고 다시 한 번 저려오는 팔에 있는 힘껏 힘을 줘서 그녀와 힘겨루기 중이던 팔을 밀어넘겼다. 분명 공격의 유효함은 에반쪽이 우세했다. 하지만 ‘신’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그녀의 힘이 그녀를 상처 입히지는 못했는지 세크매트는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자네만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걸세..’


에반은 군단이 마지막 시련을 막아내리라는 예언을 떠올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넋을 잃은 리버티타스를 쳐다보고 마음을 다잡은 뒤 시선을 세크매트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레 심연의 어둠에 덮쳐진 리버티타스는 그 심연이 머금은 어둡고 깊은 부정적인 감정의 늪에 빠져가고 있었다.


늪이란 벗어나려 할수록 깊어지는 것, 리버티타스는 그가 빠져있는 감정 속을 허우적대다가 이윽고 자신을 감싼 공간이 이질적인 무언가라는 사실 자체를 망각해버렸다.


망각이 있은 후 다시금 그를 덮쳐오는 불안한 감정들, 무게감이 느껴지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향해 끝없이 욕지거리를 내뱉는 알 수 없는 형상에 의미 없는 대꾸를 하고 있었다.


“아냐! 단 한 번도 에스를 버린 적 없다. 단 한 순간도 고향을 잊은 적 없어! 그건.. 그것들을 이겨내기 힘들었기 때문에 잠시 벗어났을 뿐이다!!”


검게 물든 세크매트의 심연 안에서 리버티타스를 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깨비를 상대로 변명하는 그는 빠른 속도로 지쳐갔다. 그의 마음속에서부터 만들어진 허깨비는 스스로 만들어낸 변명의 맹점을 찌르며 리버티타스를 곤란하게 했기 때문이다.


에스 최후의 날, 도망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는 목소리나 진작에 고향을 도우러 나타나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목소리.


“자기야.. 왜 우릴 버린거야..”

“..아빠..?”


자신을 원망하는 아내의 목소리와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딸의 원망어린 목소리는 리버티타스의 가슴에 못을 박는 듯 찡하게 그의 심장을 죄어왔다.


“아냐.. 이게 최선이었다고! 저스티티아, 당신도 잘 알잖아!!”


그것이 실재하는 현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저 무시하기에는 그것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몇 번이나 메아리치듯 울리고 있었다. 이때쯤 리버티타스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빠졌는지조차 완전히 망각하기 시작했다.


울먹이는 아내와 딸을 손에 붙잡으려 손을 펼치자 그들은 천천히 가루가 되어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에스의 마지막 날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잃은 상실감에 내려앉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자니 그의 귓가엔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가.. 그대가 조금만 더 빨리 자신을 용서하고 전장에 합류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에반?!”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자 처참한 꼴을 한 에스의 폐허와 에반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뿐만 아니라 갈기갈기 찢겨 죽은 루드라의 사체나 날개가 꺾인 채 목숨만을 부지한 리슈나가 시야에 들어왔지만, 그들은 애써 리버티타스를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봐, 에반!! 대체.. 어떻게 된거지? 우리가 진건가?!”

“하하.. 보면 모르겠나.. 짐이 노력해봤지만, 쉽지 않았지..”


에반의 너머로 에스를 지키다 죽어간 병사들이 보였다. 에이라와 시온의 페이건 그리고 아시리아의 병사들의 시체 역시 한 무더기나 쌓여있었다.


“흐..흐흐윽.. 아..아버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마이어츠 스라가 그의 아버지의 시신을 붙들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리버티타스는 그에게 손을 올려 그를 위로하려 했지만, 스라는 붉은 눈동자를 시퍼렇게 뜨고 리버티타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이..!! 당신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우리 가족은 행복했을 텐데..!! 우리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냈을 텐데!!!”


위협적이진 않지만, 원망이 섞인 저주의 말을 들은 리버티타스의 마음은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목놓아 서럽게 부르고 있는 그의 아버지는 리버티타스의 분신인 창이 유일하게 제자로 거두었던 마이어츠 베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만약에라도 내가 문례에서 베일을 줍지 않았더라면, 녀석이 이렇게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진 않았을지도 몰라..’


스스로를 비난하는 생각을 하자 허깨비들의 증오, 분노, 광기가 리버티타스에게 향했다. 예상은 했지만 매서운 에반의 적의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저스티티아의 적의 혹은 베일의 적의가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정말이지 쓸모없구나, 쓰잘데기 없는 인간아!”


그러던 중 루드라가 그를 보며 이를 드러내고 비난의 말을 읊을 때, 리버티타스는 뭔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인지’를 갖게 되었다. 어쨌거나 직전까지 시체와 다름없던 그가 ‘평소처럼’ 헛소리를 늘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절망의 나락 속에 빠져있던 리버티타스가 그런 사소한 계기로 현실을 마주하자 그의 귓가엔 여태까지 들리지 않던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이봐! 정신 좀 차려봐!!”

“하아..!”


그리고 그 목소리에 집중하자 리버티타스의 의식은 어둠 속에서 벗어나 아주 느긋하고 푸근한 언덕 위로 빠져나왔다.


리버티타스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곳은 언제나 창이 꿈속에서 보았던 추억의 장소, 작지 않은 나무 한 그루가 서있고 멀리에는 에스가 한 눈에 보이는 익숙한 장소였다.


정신없는 허깨비들에 치였던 탓인지 잠깐이나마 정신줄을 붙잡은 리버티타스는 똑바로 정신을 차리려 주위를 경계했다. 그리고 자신을 깨운 남자가 나무에 기대 편히 앉아있는 것을 보고 인상을 구기며 말을 걸었다.


“누구냐.. 너는..”


정신 공격을 경계하며 허깨비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웃긴 일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무에 몸을 기대고 앉아있는 그는 리버티타스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마음 속 깊이 익숙한 형상을 하고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경계를 풀고 말을 걸고 만 것이다.


그는 리버티타스나 저스티티아 그리고 에콸리스와 같은 군단병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단정한 입만이 바깥으로 드러나게끔 갑옷과 어울리는 투구를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투구는 가로 선으로 길게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틈이 나있었고, 그것은 또 다시 가운데가 나뉘어있었다. 나눠진 중앙에서 위쪽으로 제법 날렵해 보이는 장식이 달려있었고, 그것과 비슷한 장식이 마치 투구에 귀가 달린 것처럼 양쪽에 달려있었다.


처음 보는 투구의 모양이 익숙하게 느껴진 것은 아주 오래 전에 사라진 에스의 전승에서 언급되는 진정한 ‘군단장’의 상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신조차 두려워하는 군단을 지휘했던 에스 최초의 군단장의 상징이라 불렸던 투구처럼 말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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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하루 중 가장 어두운 때(1) 21.01.25 72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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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오판 : 매듭짓는 운명의 가닥(4) 21.01.20 73 2 13쪽
172 오판 : 매듭짓는 운명의 가닥(3) 21.01.19 68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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