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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람 님의 서재입니다.

Legion(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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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냐람
작품등록일 :
2020.05.19 23:42
최근연재일 :
2021.02.2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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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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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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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여명(1)

DUMMY

쿠-웅!!


동쪽 하늘에서부터 하늘을 양쪽으로 가르며 에드 상공에 날아든 빛줄기는 운석에 충돌하기 직전에 두 갈래로 쪼개져 하나는 운석에, 다른 하나는 지상으로 추락했다.


땅으로 떨어진 빛의 잔상은 오크 로드와 혈투를 벌이고 있는 에드의 남쪽에 사뿐히 내려앉았고, 겉보기와는 다르게 깃털이라도 내려앉은 듯 착지한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익숙하고 혐오스러운 기운이군. 내가 늦진 않은 모양이야.”

“..설마.. 창 아저씨..?”


우연히 도착한 곳이 남쪽 전장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들려온 친근한 목소리에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쓰여진 운명’ 이라던 에반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리버티타스는 고개를 돌려 베일을 살폈다. 문례강에서 만났던 꼬맹이에 대한 기억과 다시 그와 재회했던 때의 기억이 마치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처럼 머릿속을 헛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보며 지어지는 미소와 그의 부상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 기억이 온전히 본인의 것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커다란 증거이기도 했다.


“창이라.. 그래. 꼬맹아. 여기서 또 보는구나.”

“하하하, 이거야 원.. 약한 모습 보이기는 싫지만 정말 적절한 때에 와주셨군요!”


리버티타스는 여유롭게 웃어 보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베일의 곁에서 부상당한 어깨를 붙잡은 채 리버티타스를 쳐다보던 페이건은 달라진 그의 기운을 보다 더 명확히 인지하고 그에게 물었다.


“..무언가 달라진 것 같군.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이야. 그게 부디 헬리아님께 해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데..”


신살자의 권능은 누군가가 신앙심을 품는 대상에게 위협적인 힘이 된다. 그것은 유일신인 헬리아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고, 헬리아 역시 그것을 알면서 그들을 창조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페이건에게 있어서 리버티타스는 이 상황을 타개할 회심의 인물임과 동시에 자신의 신을 위협하는 위험 종자이기도 한 셈이었다.


“걱정마라, 페이건.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테니.”

“그렇다면 다행이고..”


애초에 헬리아에 대적할 이유따윈 에스인들에게 없었다. 다만 그 뿐인 이야기를 마치고 리버티타스는 등을 돌려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존재를 마주했다.


“아저씨,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조심하십쇼..! 여태 만났던 어떤 녀석들보다 위협적입니다.. 어쩌면 용사 녀석이 떠나기 전에 있던 사건만큼이나..”


베일은 지금까지의 전투를 떠올리고 걱정스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눈을 올려 쳐다본 리버티타스의 등에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언젠가 보았던 용사의 뒷모습처럼, 그는 그 자리에 마치 이 순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우뚝 서있었다.


“..엄청난 놈인 것처럼 등장하더니.. 고작 인간인가..”


그 때 동굴에 울리듯 아주 낮고 어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일이 시선을 올려 리버티타스의 뒤를 보자 그 곳엔 리버티타스보다 여섯 배는 거대한 오크 로드의 그림자가 보이고 있었다.


믿음직한 존재의 등장에 긴장이 풀려서일까, 베일은 자신이 상대하던 오크 로드가 어마어마하게 거대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어쩌면 자신보다 작은 그의 지원군이 오크 로드의 상대가 되지는 않을지 그것이 염려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아저씨를 도와야..!’


하지만 전투에 몸을 싣고 광전사처럼 전투를 이어가던 때와는 달리 그의 몸은 좀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부상당한 팔목이 아려왔고, 금이 간 정강이뼈가 찌릿했다.


그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페이건은 그의 곁에 다가가 그를 앉히고 그의 몸에 신성력을 사용해 치료를 시작했다.


“당신만이라도.. 아저씨를.. 저 분을 도와야합니다.”

“아니, 그의 등장만으로 이 전투는 끝이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하하.. 아무리 웃자고 하는 소리라도 전투 중에 그런 농담을..”

“자네는 안보이나?”


페이건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베일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고 주위를 살폈지만, 주변에는 리버티타스를 경계하고 다가오지 않는 마물들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말입니까?”

“하하하!! 보이지 않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들리지도 않겠구만, 그래.”

“대체 무슨 소리를..”


이번엔 페이건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베일은 그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에 인상만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리버티타스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군단은 들리는가!!!”


마치 전음 마법이라도 쓴 듯 그의 목소리는 아주 청명하게 온 에드에 울려퍼졌다. ‘들리는가’ 라는 부분은 정말이지 몇 번이나 베일의 귓가에 메아리치듯 울리고 있었다.


쿵쿵!


그리고 이어 갑작스레 대지가 울렸다. 그의 호령에 맞춰 흔들린 대지는 에드에 있던 모든 존재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슨 수작인가..!”


리버티타스의 호령에서 흘러나오는 용맹하고도 강인한 기운은 여태껏 전장을 압도하던 오크 로드마저도 긴장하게 만든 것 같았다. 오크 로드는 양손으로 그의 검을 붙잡고 리버티타스를 노려봤다.


하지만 리버티타스는 그의 눈 앞에 서있는 적을 아랑곳 하지 않고 그의 말을 이어갔다.


“지금!! 이 땅, 우리의 고향 에스는!! 적의 침략을 받았다!! 쓰라린 패배의 그 날처럼!!”


쿵쿵!


“우리는 이미 큰 패배를 겪었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가 죽었는가!! 우리의 숨이 멎었는가!!”


쿵쿵!


리버티타스의 목소리가 몇 번이나 에드에 울려 퍼지던 도중 오크 로드의 대검은 남색 빛에 물들기 시작했다. 베일의 목청이 리버티타스를 향해 오크 로드의 공격을 피하라는 부르짖음을 내지를 때, 남쪽으로 보이는 먼 하늘에서 푸른 섬광이 끌고 간 운석이 폭발을 시작하고 있었다.


리버티타스의 등 너머로 휘둘러지는 오크 로드의 공격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운석의 폭발은 베일로 하여금 뼈저리게 ‘패배’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베일의 얼굴이 절망이 드리우려 할 때, 그의 귓가엔 리버티타스의 마지막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결코 침략에 굴하지 않으리라..!”


그 문장이 읊어진 직후 오크 로드는 포효했고, 운석은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눈부신 절망의 빛으로 베일이 자연스레 눈을 감는 순간 리버티타스는 방패를 들어올렸다.


“군단이여, 모습을 드러내라.”


그리고 그가 마지막 한 마디를 속삭이듯 내뱉자, 전장엔 폭발의 빛보다 더 밝고 찬란한 빛의 군단이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히타님!! 아시리아를 지켰던 빛의 병사들이.. 하지만 숫자가 어마어마합니다!”

“이건 대체.. 설마 창씨..?”


나히타는 직전부터 에드를 가득 채우는 강렬한 기운에 무언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의 정체가 일전에 창이 소환했던 군단병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하던 차였다.


게다가 그 숫자는 아시리아를 지켰던 수 십, 수 백이 아닌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였다.


“이..이게 창씨의.. 힘이라고요..?”

“그래. 짐이 말하지 않았느냐, 쿠레아. 창은.. 아니 리버티타스는 어쩌면 짐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존재라고 말이다.”

“...”


상황을 지켜보던 쿠레아 역시 군단의 등장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에반은 쿠레아가 자신의 이름을 정정하리라 생각하고 혀를 차고 있었지만, 쿠레아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럴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도 그럴테지..”


에반은 에드시 전역에 산개해있는 군단병을 하나하나 쳐다보고 생각했다.


‘하나하나가 쿠레아와 같은 수준의 힘을 지닌 신살자의 병사들이다. 그런데 이 숫자라니..’


언제나 농담처럼 했던 말이지만, 어쩌면 정말로 이 세상.. 가온의 ‘전설’로 분류되는 자신과 대등한 힘을 지닌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에반은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6,000.


한 명 한 명, 고대 에스의 견고한 갑옷과 방패 그리고 검과 창으로 무장한 군단병의 숫자가 무려 6,000명이었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정의의 집행관처럼 견고했고, 자유의 집행관처럼 신속했으며, 평등의 집행관처럼 노련했다.


그들은 한 순간에 나타나 에드의 중심부에서부터 에드를 ‘침략’한 이들을 밀어내듯 격파하며 바깥으로 향했다. 그들의 진격은 어떤 병사들보다 빨랐고, 그들의 전투는 그 어떤 국가의 군대보다도 효율적이었다.


군단병의 등장과는 별개로 리버티타스를 향해 휘두른 오크 로드의 공격은 위협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루할 정도로 느리군.”


하지만 리버티타스의 창끝은 이미 오크 로드의 심장을 꿰뚫고 그를 남쪽 성문 아래의 절벽으로 밀쳐내고 있었다. 리버티타스는 오크 로드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며 내는 괴성을 듣고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호령했다.


“군단이여!! 방패를 들어 조국을 수호하라!! 결코 이 땅을 파괴하게 두지 마라!!”


쿵쿵!


호령을 하자마자 들려오는 거대한 대지의 울림, 그것은 군단병이 방패로 땅을 내리찍는 소리였다.


군단병이 일제히 방패를 들어올리자 군단의 방패에서는 칠흑같은 어둠을 밝히는 찬란한 빛의 보호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대열을 맞추자 보호막은 빠르게 하나가 되어 영역을 넓혀갔고, 이내 보호막은 에드시를 완벽히 덮어버렸다.


그리고 운석의 폭발이 보호막에 도래했다. 폭발에 휘말려 초토화되는 황야에서부터 폭발과 더불어 엄청난 돌풍이 몰아치는 듯 했다. 폭발은 직전에 에반이 가루로 만들어버렸던 마정석의 가루들과 반응해 더더욱 거센 불꽃을 만들어냈다.


화염은 방어막을 따라 하늘로 치솟아 올랐고, 보호막의 내부에서 지켜보는 화염의 상승은 마치 에드가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빠진 듯 한 착각을 들게끔 만들었다.


누군가에겐 찰나와도 같은 시간동안 엄청난 전투력을 과시한 리버티타스는 폭발이 일어난 하늘을 올려다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한심한 자식이 멈추라니까.. 또 갖다 박아가지고..”


루드라의 등을 빌려 서둘러 에드로 향하던 리버티타스가 에드의 인근에 다다랐을 때, 그에게 속도를 줄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듯 루드라는 결코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본인이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그의 경로에 추락하던 운석과 부딪치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뛰어내리기 직전에 루드라가 남쪽에 뭔가 보인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뭐 쓸데 없는 말이었겠지.’


폭발에 휘말려 루드라가 죽지는 않았을까 라고 리버티타스는 아주 잠깐 그를 걱정했지만, 겨우 그 정도에 죽을만큼 나약하지 않을거라고 스스로 납득한 뒤 남쪽 전선을 지키려 애쓴 베일과 페이건에게 다가갔다.


“고생 많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구나.”

“하하.. 아저씨는 언제나 저를 놀래키시는군요.. 아저씨가 조언했던 대로 좀 더 평범하게 살았다면 저도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을까요?”

“푸하하! 글쎄다. 적어도 지금처럼 우스운 소리는 안하지 않았을까?”


베일은 애써 고통을 참으며 리버티타스에게 웃어보였다. 리버티타스는 그런 베일의 낌새를 눈치채고 페이건에게 치료의 경과를 물었고 페이건은 더 이상 전투는 무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 어차피 이 이상의 전투는 없을거다. 무리하지 마라.”

“그야.. 이런 어마어마한게 있으면 그럴만도 하겠죠.. 천만 다행입니다. 하하..”


리버티타스는 베일의 쓴 웃음에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음을 알아챘지만, 그가 결코 자신을 탓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이윽고 폭발이 잦아들고 다시 에드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렸다. 에드시의 절벽 아래로 머나먼 지평선 끝까지 아무 것도 남지 않고 모든 것이 사라져있었다.


리버티타스는 군단의 대열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폭발이 일은 후 바람을 타고 날아온 먼지를 손에 쥐었다. 갑옷 너머로도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손을 펼쳤고, 손에 쥔 먼지는 바람을 타고 연기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흩날리는 연기 너머로 하늘에 떠있는 심연처럼 불길한 남색의 빛기둥이 흐릿하게 보이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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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세크매트의 강림 (1) 21.01.28 69 1 13쪽
» 여명(1) 21.01.27 69 1 12쪽
177 하루 중 가장 어두운 때(2) 21.01.26 72 1 13쪽
176 하루 중 가장 어두운 때(1) 21.01.25 72 2 13쪽
175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3) 21.01.22 70 2 14쪽
174 오판 : 매듭짓는 운명의 가닥(5) 21.01.21 70 2 15쪽
173 오판 : 매듭짓는 운명의 가닥(4) 21.01.20 73 2 13쪽
172 오판 : 매듭짓는 운명의 가닥(3) 21.01.19 68 2 14쪽
171 오판 : 매듭짓는 운명의 가닥(2) 21.01.18 65 2 13쪽
170 오판 : 매듭짓는 운명의 가닥(1) 21.01.15 70 2 12쪽
169 일곱 번의 시련(3) 21.01.14 6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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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일곱 번의 시련(1) 21.01.11 65 2 12쪽
166 후회하지 않기 위해.. (4) 21.01.08 6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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