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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수선화 님의 서재입니다.

벚꽃, 조선에 흩날리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김한나
작품등록일 :
2018.01.01 10:45
최근연재일 :
2018.03.01 07:19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5,976
추천수 :
20
글자수 :
149,458

작성
18.01.22 09:15
조회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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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9쪽

4부 쫓겨나는 두 사람 ( 3 )

일제치하에서 소학교에서 만난 두 사람은...




DUMMY

동혁은 옆에 누워 있는 그녀를 조심스레 안앗다. 그들은 오래도록 누워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는 구름들을 좇으며 행복해 했다.

“ 내가 당신을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아?”

“ 아뇨.”

“ 당신이 처음 부령소학교에 와서 영철이를 심하게 때린 후 괴로워하는 걸 보고 있을 때였지.”

“ 그럼 난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아요?”

후꾸꼬의 물음에 그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 내게 와서 사과하라고 호통을 칠 때였죠.”

“ 난 일본에 다녀와서 당신의 진가를 알 수 있었소. 당신이 진심으로 조선의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걸. 그리고 선택한 거요, 당신을.”

“우리 전주로 가야잖아요?”

“전주로 가기 전에 먼저 결혼식을 올려야지.”

“어디서요?”

“물론 여기 서지.”

“···”

“싫어요?”

“아니에요. 아무도 없이 우리 둘이서만 결혼식을 한다는 게···.”

“아무도 없긴. 저길 봐요. 숲 속에서 지저귀는 산새도 있잖소?”

산새의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후꾸꼬는 텅 빈 오두막 집 부엌에서 남아 있는 그릇 중에서 작은 그릇 하나를 집어 들었다.

뒤에 있는 우물가로 가서 그릇을 깨끗이 씻어 솟아오르는 물을 가득 담았다.

앞마당에서 두 사람은 보는 이 없이 정화수를 가운데 두고 맞절 을 했다.

후꾸꼬의 볼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는 것을 그는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간단하게 둘 만의 식이 끝나자 그는 후꾸꼬를 으스러져라 안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두 사람은 그곳을 떠나 오수 징검다리까지 걸어가 나란히 섰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냇물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아래를 봐요. 해가 자꾸만 흘러가도 저 시냇물 속에 다시 떠요.”

“맞소. 우리도 해처럼 밝게 삽시다.”

“네.”

“앞으론 이보다 더한 시련이 있을 거요. 내가 지켜 주리다.”

“고마워요.”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동혁의 귓전을 울렸다.

‘불쌍한 사람.’

두 사람은 기차를 타고 전주로 향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리 편치 못 했다.

차창 밖으로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알몸으로 햇빛에 구릿빛이 된 얼굴로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벼 이삭이 있는 논은 적막하리만큼 조용했고, 떼 지어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 떼가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전주에 온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거처로 가서 동혁이 새로운 방을 얻을 때까지 따로 생활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후꾸꼬는 어머니에게 두 사람의 결혼을 알렸다.

“오까상, 저희 두 사람 결혼했어요.”

“뭐라고? 너희들끼리?”

“예.”

고개를 푹 숙이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말없이 두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그곳에서도 쫓겨난 게로구나? 그래도 그가 좋으니?”

“예.”

“불쌍한 것.”

어머니는 측은한 눈빛으로 오래도록 딸을 바라보더니 가만히 두 손을 놓고 나가 작은 상자를 꺼내 가지고 왔다.

“네 결혼에 쓸 돈이었단다.”

상자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후꾸꼬의 손에 쥐어 주었다.

“···미안해요.”

“요긴하게 쓰도록 해. 우리 9월 초순에 이즈미하고 모두 센다이로 간다.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있어야 해.”

“예.”

고개를 끄덕이는 후꾸꼬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후꾸꼬의 어머니는 그녀를 안고 오래도록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며칠 후 신문사 근처 다방에서 만난 동혁은 후꾸꼬에게 부탁을 했다.

“신문사 일로 너무 바쁘니까 당신이 방을 구해 봐요.”

“예.”

“나 오늘 취재하러 떠나니 다녀와서 연락하겠소.”

“잘 다녀오세요.”

후꾸꼬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녀도 함께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정류장에서 동혁을 보내고 돌아서는데 모리무라가 후꾸꼬의 어깨를 탁 쳤다.

“어떻게 된 거예요?”

“우리 결혼했어요.”

“네? 소문도 없이 그렇게 하기에요? 어디에서 한 거예요?”

“아무도 없는 빈 집 앞마당에서요.”

“우리 이렇게 서서 이야기할 게 아니고 어디 가서 차라도 하면서···.”

“차는 방금 마셨는 걸요. 누구와 약속 있는 건 아닌가요?”

“그 사람도 동경에 다녀온다고 떠난 걸요.”

“그럼 걸어요.”

두 사람은 정류장에서 교동을 지나 한벽루를 향하여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빨래터에는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미역도 감고, 서투르게 방망이로 하얀 빨랫감을 두드리며 빨래를 하고 있었다.

“결혼이라니···두 사람 다 정말 대단해요.”

“누구도 축하해 주지 않았는 걸요, 뭐.”

후꾸꼬의 목소리가 젖어 들고 있었다.

“그건 각오했던 거잖아요. 난 부럽군요.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 다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이게 진정한 용기가 되나요? 설득도 못하는 바보들이죠.”

“그리 간단히 설득할 수도 설득 당할 수도 없는 문제니까요. 아무튼 축하해요.”

모리무라의 축하한다는 말에 그녀는 수줍게 웃어 주었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한바탕 소나기가 시원스레 쏟아졌다.

두 사람은 한벽루 아래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 옆으로흐르는 시냇물 위로 비가 쏟아지며 하얀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플라타너스 잎이 더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빨래를 하던 아이들이 물속으로 들어가서 장난을 치며 웃고 있었다.

머리 위의 빗방울을 털어 내며 후꾸꼬가 말없이 흐르는 시냇물을 보고 있었다.

소나기가 그치고 실비가 되어 해가 다시 떠오르며 무지개가 하늘 높이 걸렸다.

“어머 무지개예요.”

후꾸꼬가 곁에 서있는 그녀에게 환호하며 말했다. 모리무라도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기도 하네요.”

두 사람은 무지개가 희미하게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젠 나 방을 구하러 다녀야 해요.”

“방도 구하지도 않고 결혼식부터 했어요?”

“그렇게 된 걸요. 그 밤에 오갈 데도 없었거든요.”

“가엾어라. 참 우리 집 맞은편 골목에 방을 세놓는다고 하던데가 볼래요?”

“그래요? 가 봐요.”

후꾸꼬가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자 빙그레 웃으며 그곳을 떠났다. 모리무라와 함께 간 곳은 전주사범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뒤에 산이 있어서 후꾸꼬의 마음에 쏙 들었다.

마음 좋은 노부부가 적적하여 세를 놓게 되었다는 그 집은 조용하고 아담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곧 이사할게요.”

“그렇게 해요. 우리도 적적하지 않아서 좋겠수.”

할머니가 웃으며 후꾸꼬의 손을 잡아 주었다. 취재에서 돌아온 동혁은 후꾸꼬가 구한 방을 보며 만족해 했다.

그와 후꾸꼬가 노부부에게 인사를 하자 조선인과 일본인임을 알고 당황했다.

“가네다입니다.”

“창씨개명을 했구만요이.”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예.”

“한번 주기로 한 방이니 내 번복하지는 않겠소만···내년엔 다른 방을 구해 보도록 하시오.”

“예.”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쳐서 그 집을나오고 말았다.

그날 밤 동혁은 하숙집에 있는 짐들을 정리하여 이사를 했다.


신문사에서 며칠 휴가를 얻어서 두 사람은 경성으로 늦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두 사람이 기차를 타고 가는데 쨍쨍한 햇빛에 푸르른 벼들이 일제히 그들에게 축하의 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듯 서로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밤늦게 도착하여 여관에 묵고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고 창경원으로 가서 여러 가지 동물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연못에서 작은 배를 저으며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창경원 옆 종묘를 걷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두 사람은 종묘 안에 있는 제사를 지내는 곳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때 돌 틈에서 나온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귀여워요.”

그들은 모처럼만에 평안한 쉼을 즐기고 있었다.

“비가 그쳤는데 이제 우리 어디로 갈 건가요? 경성사범학교도 보고 싶어요.”

후꾸꼬가 그를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종묘에서 나온 두 사람은 경성사범학교가 있는 안국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학교를 구경하고 나서 두 사람은 해가 기울기 시작한 종로 거리로 향했다.

종로 야시장이 그때 당시 명물임을 동혁은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거리를 활보하며 즐거워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그들은 종로 거리를 다시 걸었다.




오월 그 눈부신 날 아카시아 향기 날리던 날에 내 어머니는 우리 모두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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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10부 아버지의 어깨 위로 출렁이는 바다 ( 4 ) 마지막회 +1 18.03.01 269 0 8쪽
43 10부 아버지의 어깨 위로 출렁이는 바다 ( 3 ) 18.02.28 71 0 8쪽
42 10부 아버지의 어깨 위로 출렁이는 바다 ( 2 ) 18.02.27 95 0 8쪽
41 10부 아버지의 어깨 위로 출렁이는 바다 ( 1 ) 18.02.26 113 0 8쪽
40 9 부 사탕 두 개 ( 5 ) 18.02.23 72 0 4쪽
39 9 부 사탕 두 개 ( 4 ) 18.02.22 81 0 7쪽
38 9 부 사탕 두 개 ( 3 ) 18.02.21 541 1 8쪽
37 9 부 사탕 두 개 ( 2 ) 18.02.20 335 0 9쪽
36 9 부 사탕 두 개 ( 1 ) 18.02.19 88 0 8쪽
35 8 부 그리움, 그 처연한 아픔 ( 5 ) 18.02.16 99 0 6쪽
34 8 부 그리움, 그 처연한 아픔 ( 4 ) 18.02.15 85 0 9쪽
33 8 부 그리움, 그 처연한 아픔 ( 3 ) 18.02.14 112 0 9쪽
32 8 부 그리움, 그 처연한 아픔 ( 2 ) 18.02.13 89 0 9쪽
31 8 부 그리움, 그 처연한 아픔 ( 1 ) 18.02.12 101 0 9쪽
30 7부 움막을 짓고 ( 5 ) 18.02.09 98 0 7쪽
29 7부 움막을 짓고 ( 4 ) 18.02.08 90 0 9쪽
28 7부 움막을 짓고 ( 3 ) 18.02.07 80 0 8쪽
27 7부 움막을 짓고 ( 2 ) 18.02.06 95 0 7쪽
26 7부 움막을 짓고 ( 1 ) 18.02.05 89 0 8쪽
25 6 부 현해탄을 바라보며 ( 4 ) 18.02.02 97 0 6쪽
24 6 부 현해탄을 바라보며 ( 3 ) 18.02.01 92 0 7쪽
23 6부 현해탄을 바라보며 ( 2 ) 18.01.31 539 0 8쪽
22 6 부 현해탄을 바라보며 ( 1 ) 18.01.30 104 0 7쪽
21 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 ( 4 ) 18.01.29 247 0 4쪽
20 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 ( 3 ) 18.01.25 79 0 8쪽
19 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 ( 2 ) 18.01.25 95 0 9쪽
18 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 ( 1 ) 18.01.24 98 0 9쪽
17 4부 쫓겨나는 두 사람 ( 4 ) 18.01.23 99 0 6쪽
» 4부 쫓겨나는 두 사람 ( 3 ) +2 18.01.22 159 1 9쪽
15 4부 쫓겨나는 두 사람 ( 2 ) 18.01.19 10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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