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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라 님의 서재입니다.

네크로맨서가 종말을 씹어먹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원라
작품등록일 :
2023.01.05 00:23
최근연재일 :
2023.01.21 01:05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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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3
추천수 :
498
글자수 :
133,139

작성
23.01.0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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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4화.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DUMMY

<아포칼립스 속 네크로맨서>


4화.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

대강당에 도착한 가을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

웅성웅성.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안내 방송을 듣고 바로 이동했음에도 벌써 이 정도 인파가 모여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누군가가 사람들을 이곳으로 대피시킨 것이 분명했다.

가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선배, 아무래도 누가 미리 손을 써놨나 본데요?”

“그러게, 누군진 몰라도 수완이 쓸만한데.”


잠시 후,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청년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청년이 조심스럽게 손에 든 마이크를 조작하자 잡음과 함께 강당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둘.”


둘의 시선이 동시에 청년에게로 향했다.

뿐만 아니라, 강당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를 쳐다보았다.


“이 정도면 얼추 다 모인 것 같군요. 저는 총학생회장입니다, 상황이 상황인 지라 인사는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청년은 단상 위에서 대강당에 모인 이들을 둘러보더니 서둘러 입을 열었다.


“몇몇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지금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 말에, 대강당에 모인 인파가 놀란 듯 한 차례 술렁였다.

누군가 손을 들며 질문했다.


“나갈 수 없다뇨,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다들 아시다시피 갑자기 학교에 괴물들이 나타났습니다. 학교 밖으로 도망쳐보려 했으나 알 수 없는 벽에 막혀 나갈 수가 없더군요.”

“그럼······.”

“예, 사실상 갇힌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벽이라면 다 같이 힘을 모아서 부수고 나갈 수는 없는 건가요?”

“저희도 그 생각을 해서 시도는 해봤습니다만··· 벽돌이나 야구방망이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벽에서 튕겨 나갈 뿐 소용없었습니다.”


학생회장은 당연히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준비했던 말을 술술 내뱉었다.


“게다가 계속해서 억지로 나가려고 할 시 단체 페널티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와 함께 나타난지라 저희로서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다 포기하고 이대로 여기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겁니까?”


학생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방법이 있더군요. 여러분들을 이곳에 부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학생회를 총동원해서 조사해 본 결과··· ‘해방 열쇠’라는 아이템을 사용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템이요? 아이템이라면, 게임 아이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다들 눈치채셨겠죠? 세상이 게임처럼 변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손에 쥐고 계신 것들이 바로 그 증거라고 볼 수 있죠.”


그의 시선이 사람들이 들고 있는 물건으로 향했다.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무기였다.


“검, 메이스, 방패, 활 등 모두 현대에선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을 여러분이 보란 듯이 들고 있는 지금, 이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겠습니까?”


창을 들고 있는 청년이 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저희가 가진 무기로 벽을 부수기라도 하겠단 겁니까?”

“좋은 지적입니다. 확실히, 퀘스트 보상으로 얻는 만큼 뭔가 특별한 옵션이 붙어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희는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뭡니까, 그 방법이라는 게.”


불만 어린 목소리에, 학생회장이 이제부터 본론이라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현재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밖으로 나가는 데 필요한 ‘퀘스트 열쇠’는 다음 메인 퀘스트의 보상으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다시 한번 술렁이는 인파.


“다음 메인 퀘스트가 진행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대강당에 있는 모두가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이현 학우님? 혹시 한이현 학우님 자리에 계십니까?”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이현의 미간이 곧장 찌푸려졌다.



*

가을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선배? 혹시 선배랑 아는 사이에요?”

“그럴 리가,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야.”


총학생회장 김철민.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있다.

공부 잘하고, 인망 두텁고, 외모도 꽤 괜찮게 생겨서 인기가 많다고. 하지만 그게 다였다.

총학생회장과는 분명한 초면이었다. 반대로 그가 자신을 알 리도 없고 말이다.

가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갑자기 선배 이름은 어떻게 알고 찾는 걸까요?”

“아까 랭킹에 나 혼자만 이름이 나왔었잖아. 그거 보고 아는 거겠지.”

“아하. 그럼 선배한테서 뭘 얻어내려고 하겠네요?”

“명분을 앞세우면서 반강제적인 희생을 요구하겠지. 뭔가 힘이 있으니까 혼자서 잡은 게 아니냐, 힘이 있으면 사람들을 도와라. 하면서 말이야.”


이현이 뻔하다는 듯 대답했다.


“거기서 거절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죽어도 상관없냐는 식으로 나올 거고.”


가을이 정색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그냥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굳이 왜 그런 식으로······.”

“계속 나를 밑에 두고 수하처럼 부릴 생각인 거야. 처음이 어렵지, 한 번 도와주고부터는 계속해서 부탁할걸?”


이현이 조소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보면 날 보고 따라오려는 사람이 생기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이 만들어지겠지.”

“······.”

“뒤늦게 후회하면서 나가려고 하면 나 하나만 믿고 따라온 사람들인데 이대로 버릴 셈이냐고 압박을 줄걸? 그러면 게임 끝.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벗어날 수 없어.”


말을 듣고 있던 가을의 눈이 점점 크게 떠졌다.

놀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부탁을 들어주면 결국 저 사람은 나를 부하로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무리의 수장이 되는 거야.”


원래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선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눈앞에 상황만 보고도 이 정도까지 멀리 내다보고 있을 줄 몰랐다.

마치 잘 짜인 극본을 직접 쓴 작가처럼, 모든 상황이 이현의 손 위에서 굴러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와, 선배 진짜 똑똑하네요. 저런 함정을 판 사람도 대단한데, 그 위에 선배가 있네요.”


이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선을 옮겼다.


“저 정도는 함정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아니야. 그냥 뻔한 수법이지. 저렇게 계속 열심히 찾으라 해, 난 나갈 생각 없으니까.”


다시 한번 이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이현 학우님, 한이현 학우님 정말 안 계십니까?”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현아! 야 한이현! 너 아까 들어오는 거 다 봤어, 빨리 안 나올래?”


익숙한 목소리, 말투에서 느껴지는 껄렁거림.

이현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시선이 향한 곳엔 낯이 익은 얼굴의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의 얼굴을 알아본 이현이 질색하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상민. 저 꼰대도 총학생회였지, 참.”


새삼 떠오른 생각에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이현이 인파 사이에서 번쩍하고 손을 들어 올렸다.

이를 본 가을이 당황했다.


“설마 나가시게요?”

“응.”

“방금은 안 나가신다면서요?”


황당한 얼굴로 묻는 가을.


“생각이 바뀌었어.”


이현이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


“상대가 뭘 준비했든 결국 정면에서 깨부수면 그만이야.”


정작 당사자라고 하기엔 너무 여유로운 태도에 가을이 의아하듯 물었다.


“뭔가 따로 생각해둔 방법이라도 있는 거예요?”


이현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다.


“방법이랄 게 따로 있나, 누가 나한테 지랄한다 싶으면 그냥 싹 다 엎어버리면 되지. 그 과정에서 사람 몇 명 죽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다 보면 조용해지겠지.”


가을이 깜짝 놀라 이현을 바라봤다.


"선배 사람도 죽여 봤어요?"

"응."

“······농담이죠?”

“농담 아닌데?”


아무 감정이 없는 듯한 그 눈빛이 마치 ‘믿든 안 믿는 네 자유지만, 거짓은 아니란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현의 말에 가을이 경악했다.


“와, 아까도 그렇고 그 몇 년 사이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지?”


그녀가 놀란 입을 크게 하고 물었다.


“선배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람이 이렇게 변했어요?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말했잖아, 이세계로 끌려가서 마왕 족치고 왔다니까. 정 이해가 안 가면 너도 한번 가보던가. 장담하는데 나랑 똑같이 변할걸?”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고요?”

“어, 정말이야.”


가을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일이 면면들을 확인하고 있던 상민이 이현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씩 입꼬리를 말아 올린 상민이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학생회장한테 귓속말로 뭐라 속닥거렸다.

잠시 후 학생회장이 입을 열었다.


“아, 다행입니다. 저기 지금 계신다는군요. 여러분 혹시 길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학생회장의 손을 따라 좌중의 시선이 이현에게로 쏠렸다.

부산스러운 소음과 함께 이현의 앞으로 길이 만들어졌다.

모세의 기적과도 같은 현상에, 가을이 넋을 놓고 바라봤다.


“안 와?”

“네? 저까지 가요?”

“이런 인파 속에서 한 번 헤어지면 다시 찾기 힘들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 가을이 바로 수긍했다.

이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고, 가을이 그 뒤를 따랐다.



*

단상 위로 올라간 이현에게 학생회장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마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친분을 과시하고 미리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기 위함이리라.

이현이 여유롭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받아드렸다.

학생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총학생회장 김철민입니다.”

“한이현입니다.”

“옆에 계신 분은···.”

“제 후배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 역시 눈치껏 후배는 왜 데리고 왔냐는 식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통성명을 마친 학생회장이 느릿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한참 찾았는데 혹시 뒤쪽까지는 마이크가 잘 들리지 않았나요?”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지만, 왜 자신의 불렀는데 빨리 나오지 않냐고 은은하게 탓을 하는 듯한 어투였다.

여기서 죄송하다고 사과하면 상대방한테 한발 물러서고 시작되는 것이다.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것이 뻔히 보였다.


‘성격이 급하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바로 수작을 부리다니.

대학교에서 머리가 좋다고 알려져 있던 사람이라 어느 정도 수준인지 내심 궁금했던 이현이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세렌디아의 수많은 암투 속에서 살아남은 이현이 보기엔 그냥 우물 안 개구리였기 때문이다.


“저 말고 다른 동명이인 찾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보다 저는 갑자기 왜 찾으신 거죠?”


짤막하게 답한 이현이 학생회장을 빤히 바라봤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란 뜻이었다.

학생회장의 눈썹이 일순간 꿈틀거렸지만 금세 제 모양을 되찾았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귀한 분을 모셔두고 실례를 했네요. 다름이 아니라,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목을 잠시 가다듬고는, 마저 입을 열었다.


“혹시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혼자 클리어하신 한이현 씨 본인 맞으실까요?”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까 생각하던 이현의 앞에서, 상민이 학생회장에게 투덜거리듯 말했다.


“철민이 형,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쟤는 아니라니까요?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축제에서 짐 나르는 게 힘들다고 저한테 설설 기던 녀석이 어떻게······!”

“상민아.”


학생회장이 상민의 말을 끊듯 짤막하게 대답했다.


“가만히 있어 봐. 지금 내가 너한테 물은 게 아니잖아.”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말의 높낮이가 매우 싸늘했다.

아무리 망나니 같은 이상민이라도 학생회장이 정색하자 순순히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형.”


그 모습을 재밌게 지켜보던 이현이 학생회장과 눈을 마주쳤다.

이현이 상민을 향해 보란 듯이 싱긋 웃었다.


“본인 맞습니다만?”

“······!”


상민은 무어라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코앞에서 학생회장이 지켜보고 있던 터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하고 있는 듯했다.

분위기를 보고 대충 둘이 어떤 관계인지 파악한 학생회장이 이상민을 툭 치며 빠지라는 눈짓을 보냈다.

대놓고 이현을 자신의 밑으로 거두기 위해서라면 상민 따위 얼마든지 내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 의미를 못 알아들었을 리 없었던 상민이 당황한 듯 떨면서 입을 열었지만.


“혀, 형······?”

“상민아, 보는 눈이 많다. 너까지 이럴 거야? 형 도와주기로 했잖아.”


마이크에 송출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내 상민이 풀이 죽은 채로 뒤로 물러났다.

다시 이현에게로 시선을 돌린 학생회장이 과장되게 팔을 벌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혹시 본인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메인 퀘스트로 받은 추가 보상이라던가.”


그 말에 이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보여주는 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어째서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형태의 보상이 아니라서요.”

“과연,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의외로 학생회장은 순순히 넘어가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두 눈이 이현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현 씨가 강해지는 거라면 저희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그 말에 대답한 것은 옆에 있던 가을이었다.

동의도 없이 멋대로 진행된 황당한 발언에 당황해서였다.

가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학생회장이 잠시 이현의 눈치를 보고는 너스레를 떨었다.


“무슨 의미긴요, 말 그대로입니다. 아군이 강해지는데 싫어할 동료가 세상에 어딨겠습니까? 대신, 당분간만큼은 이현 씨가 앞장서서 고생을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동료라뇨? 선배는 그쪽 일행에 합류하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요?”

“그럼 설마 퀘스트로 얻은 모든 보상을 날름 독차지해놓고 이대로 발 뺄 생각이셨습니까?”


학생회장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듯 옆으로 기울였다.


“지금은 재난 상황입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이라고요. 근데 이현 씨가 그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죽으라는 소리와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그게 왜 그렇게 돼요? 선배가 자기 힘으로 얻어낸 보상인데. 당신들을 도울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선배의 선택이지, 의무가 아닐 텐데?”

“결과적으로 모든 보상을 독점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상을 얻을 기회를 빼앗지 않았습니까?”


가을이 헛숨을 들이켰다.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잠자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인파들이 재차 술렁였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동의하듯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 우리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래서야 너무 불공평하잖아.”

“옳소! 이런 상황에선 다 같이 돕고 살아야지! 공평하게 보상을 나누든지 해야지, 그걸 혼자만 독점하는 게 말이 되냐!”


한번 피어난 의심의 불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여론이 자신 편으로 기운 모습을 확인한 학생회장이 거보라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초면이라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그랬는데, 저는 지금 이현 씨와 대화하고 있는 겁니다. 이현 씨 후배분이 아니라요. 불청객은 빠지시죠.”


대놓고 빠지라는 듯한 말에 모욕감을 느낀 가을이 발끈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불청객이라는 말에 별달리 반박할 수는 없었는지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가을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툭 하고 가볍게 얹었다.

이현이었다.


“거봐.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그저 그의 어깨를 한차례 짚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가을은 뭔가 마음이 안정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다니까. 이런 족속들이 하는 수작이야 항상 뻔하지.”


눈앞에서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이현의 말에 학생회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수작이라뇨, 그럼 이현 씨는 지금 여기 있는 모두를······.”

“입 닥쳐.”


이현이 말을 딱 끊으며 학생회장과 눈을 마주했다.

강압적인 반말에 학생회장은 곧장 입을 열어 반박해보려 했으나 막상 두 눈을 바라보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잔디가 깔린 스산한 공동묘지를 연상케 하는 눈동자였다.

오싹.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순간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시선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당연하게도 시선의 정체는 찾을 수 없었다.


“뭔가 크게 착각하는 게 있나 본데.”


한 차례 뜸을 들인 이현이 입을 열었다.


“난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영웅 같은 사람이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악당에 가까운 사람이지.”


그리고는 모든 이들에게 똑똑히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고했다.


“죽기 싫으면 스스로 발버둥을 쳐. 그 나이 처먹고들 무작정 해달라고 애새끼처럼 징징거리지 말고.”


일순 강당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가득 메운 고요함이 발밑을 맴도는 듯했다.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는 내 팔다리에 매달려 빌붙을 생각하지 말란 말이야.”


차갑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한 목소리는 듣고 있던 이들의 피까지 차갑게 식혀 버리는 느낌이었다.

이현의 서늘한 시선이 학생회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써봤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겁에 질려 파르르 떨리는 눈가는 이미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이현이 싸늘하게 일갈했다.


“기억해 둬. 넘어가는 건 이번 한 번뿐이다. 두 번은 없어.”


낮게 깔린 이현의 목소리가 학생회장의 귓가에 비수처럼 날아가 꽂혔다.


“알아들었으면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작가의말

연재 2일차

네크로‘멘’서가 아니라 ‘맨’서였다.

뒤늦게 수정해밧지만 이미 늦엇다. 큰일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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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23.01.06 1,110 3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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