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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님의 서재입니다.

폐하를 베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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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작품등록일 :
2021.02.14 17:49
최근연재일 :
2021.08.31 23:5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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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2,952

작성
21.03.30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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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4. 연기 전쟁 (4)

DUMMY

“전황은 어떻지?”


명우는 정탐 겸 유인을 위해 진지를 벗어났다. 그에게 바깥 상황을 묻는 콘츠의 표정은 신중했다. 명우는 다른 병사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최대한 목소리를 죽였다.


“좋지 않아. 두루미가 전멸했고 부엉이는 후퇴했어.”

“참수리는?”

“몰라. 거기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조졌군.”


콘츠의 짤막한 감상에 명우는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인 점은, 아직 전선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지.”


창밖으로 해가 저물려 하고 있었다. 그들이 고립되기 전 마지막으로 전달받은 볼프람의 명은 짧고 간단했다.


‘내일 아침에 후퇴해라.’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명령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하게 느껴졌다.


5구역의 병사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세를 취해왔다. 바깥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적의 중심에는 기묘한 향로를 피우는 병사들이 돌아다녔다. 그 향을 맡은 적병은 다시 울부짖으며 전선으로 들이닥쳤다. 전선은 볼프람이 준비한 모든 수를 동원해 간신히 틀어막고 있었지만, 내일 아침 해를 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낡은 병영 안을 바삐 움직인 두 부대는 최상층에 이르렀다. 명우가 갈라두었던 병사들이 아래층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좋아. 그럼 이제 남은 작전은 하나뿐이로군.”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시선에 두며 콘츠가 말했다.


“나는 위에서 놈들의 시선을 끌고, 너는 아래에서 최대한 놈들을 저지한다.”

“알고 있어. 무운을 빌지.”


명우가 주먹을 내밀었다. 문자 그대로 태생이 군인인 그들에게 긴말은 필요 없었다. 적을 향한 두려움은 신병 시절에 극복해야만 했다. 콘츠도 담담하게 주먹을 맞부딪쳤다.


“무운을 빈다.”


콘츠가 궁수대를 호명하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물수리중대가 명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각오를 다졌거나 체념했을 그들에게서는 전투를 앞에 둔 굳은 얼굴만 보였다.


“시작할까?”


다소 맥빠지는 명우의 말에 몇몇이 피식 웃었다.


하룻밤을 살아남는 전투가 시작되려 했다.



콘츠는 자세를 한껏 낮추고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콘츠처럼 자세를 낮춘 병사들이 다가왔다.


“연달아 쏘지 마라. 각을 넓혀라. 서로 사격을 살펴라. 단 한 순간이라도 발각을 늦춰라. 임무는 어디까지나 적의 진군을 늦추는 것뿐이다.”


가장 어린 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손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런 손으로는 제대로 화살을 먹이지도 못한다. 콘츠는 병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니 다들, 오래 살아남는 걸 목표로 삼도록.”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각이 깨진 부대의 생존자들이다. 사선은 익숙하다. 그러나 죽음이 익숙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래 살라는 대장의 말에 의지했다. 죽음은 각오 되는 바가 아니었고 다만 늦추는 노력만 가능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장은 그 노력에 힘을 보태고 싶어 했다.


콘츠가 손짓으로 병사들을 신중하게 배치했다. 이 경우 집중사격은 효율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이 건물을 중심으로 사정거리가 닿는 범위 내의 모든 적을 끌어들여야 한다.


얇고 넓게 배치된 병사들이 난간 뒤에 몸을 숨겼다. 콘츠는 배치를 마친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직접 섰다.


“준비.”


콘츠가 주먹을 들었다. 병사들도 신호를 주목한다는 뜻으로 함께 주먹을 들었다.


“사격 개시.”


콘츠가 먼저 난간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짧은 순간에 적을 포착한 콘츠는 망설임 없이 활을 쏘았다.




“시작됐군.”


창가 벽에 바싹 몸을 기댄 명우가 중얼거렸다. 창밖으로 화살 몇 줄기가 지나쳤다. 화살에 맞은 적병이 비틀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콘츠의 박자는 신중했고 주변에 빈 건물은 많다. 놈들은 화살이 어디서 날라오는지 금방 파악하지 못했다.


“이 작전이 얼마나 소용 있을까요?”


병사 한 명이 맞은편 벽에서 속삭였다. 쓰러지는 적병을 보아도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차라리 성에서 농성하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명우는 그 불안감을 이해했다. 적에게 고립되었으니 개죽음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성에 틀어박히면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쩌게?”


아직 병역기간이 아이, 노인, 임산부, 그들 중 일부는 후방 요새화에 자원했다. 그래도 생활의 바탕이 되는 민간인은 숱하게 많았다.


“하지만 볼프람 장군님은 저희를 버리시는 선택을······.”

“옛날, 볼프람 장군님의 주요 일과가 뭔지 아냐.”


지금에 비하면 전쟁이 아직 소꿉장난이던 시절, 볼프람은 서류에 몰두했다. 지금처럼 전투보고나 전략수립을 위해서가 아니다. 볼프람의 가장 큰 할 일은 전사자를 위한 추도문 작성이었다.


명우는 아직 신병이던 시절을 기억했다. 볼프람은 전사자가 발생할 때마다 전사자를 아는 모든 사람을 소집했다. 그리고 전사자의 내력을 읊게 했다. 볼프람은 모든 내용을 신중하게 듣고 추도문을 작성했다. 책 한 권 분량에 이르는 추도문은 며칠 밤을 지새우고서야 완성되었다.


한가로운 시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으나, 볼프람에게는 그렇기에 매달릴 수 있는 숙원이었다. 명우는 그런 집정관을 이해하지 못했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 붓을 놀리는 볼프람은, 경계근무를 서면서 하품을 하는 자신보다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끝없는 전쟁이 시작된 후에야 명우는 그런 볼프람을 이해했다.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실려 나가는 전사자는 이제 셀 수도 없었다. 집단으로 화장되는 전사자는 연기와 함께 잊혔다. 죽음은 죽음으로 덧씌워졌고, 거기서 과거를 더듬는 기억이란 희미해지기 마련이었다.


볼프람의 작업은 그렇기에 의미가 있었다. 볼프람의 일과는 이제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는 병사 중에서도 고참을 만나면 투덜거리고는 했다.


‘전쟁이 끝나고 남은 추도문을 작성하려면 대를 이어야 할 팔자로군.’


그런데도 볼프람은 이곳에서 버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의 일과가 수명이 넘도록 이어지는 것을 각오한 바였다. 명우도 그의 각오를 알았다. 그러니 이것은 개죽음이 아니다. 필요로 하는 임무였다. 볼프람은 패배를 각오하지 않고, 삶의 바탕이 파괴되지 않도록 유의하며, 적을 격파할 계획을 세웠다.


아무도 헛되이 잊히지 않게 하려는 볼프람의 절박함은 그런 것이었다. 볼프람의 각오는 더 많은 사람을 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수렴한다.


“놈들이 옵니다.”

“둔한 새끼들, 이제야 눈치를 깠나 보군.”


적은 저격이 이루어지는 건물을 특정해냈다. 그들은 곧 옛 병영으로 몰려들었다. 몇몇은 벽을 오르려 하고 있다.


명우가 작은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아래층으로 퍼졌다. 그리고 물수리중대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창틀에 발을 걸친 적병이 물수리중대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이미 그의 배를 창이 뚫은 뒤였다.


“밀어내라!”


경악에 찬 적병이 허공에 떠밀렸다. 그런 모습이 병영 곳곳에서 반복되었다. 벽을 오르는 적병의 노력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병영이니만큼 장애물이 설치된 외벽에서 경로는 한정돼있다. 창틀을 디디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적들을 노리고 물수리중대는 머리를 찌르거나 노출된 배를 찔렀다.


“1층에 적 침입!”

“좋아! 버틸 생각 말고 슬슬 물러나!”


명우가 난간에 발을 걸치고 아래를 향해 활을 쏘았다. 계단에 막 발을 올린 적병의 목덜미에 화살이 꽂혔다.


명우에게 시선이 쏠린 동안 시체를 밟고 넘어선 적병의 발목에 밧줄이 걸렸다. 팽팽했던 밧줄은 쉽게 끊겼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적병은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말뚝을 보았다.


물수리중대의 전술은 백병전에 있지 않다. 따라서 그들은 최전선에서 다소 외떨어진, 시선에 따라 뜬금없는 곳에 배치되고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물수리중대였기에 행해지는 배치였다.


시가전에 특화된,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피해를 끼칠 수 있는 함정 전술이 물수리중대의 무기였다.


물수리중대는 조금의 시간만 주어지면 어느 전장이든 요새로 만들었다. 그것이 평지든, 건물이든, 언덕이든 제한은 없다. 게다가 이곳은 전선 유지를 위한 병영이었던 건물, 이 이상 물수리중대에 어울리는 환경은 없었다.


“당겨!”


명우가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병사들의 구호가 들렸다. 동시에 벽 한쪽이 무너져 계단 위를 덮쳤다. 돌 더미에 처박힌 적병들이 몸부림을 쳤다. 명우와 주변 병사들이 그들의 무방비한 급소에 차례차례 화살을 쏘았다.


적병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죽음이 기습했다. 계단에 발을 올리면 바닥이 무너졌고 방을 열면 도끼가 내리찍었다. 병사들은 미끼이자 작동장치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대장!”


창으로 엮은 방벽에 갇힌 적병이 저항하고 있었다. 대여섯이 한꺼번에 창대를 붙잡고 밀어내려 했다. 그 앞에서 낑낑대는 병사들이 명우를 불렀다.


“지금 간다!”


활을 몸에 걸고 명우가 난간을 밟고 뛰어내렸다.


그대로 몸을 날린 명우가 방벽에 힘껏 몸을 부딪쳤다. 방벽이 적병의 몸을 파고들었다. 창이 꽂힌 부위에서 피가 터졌다. 명우는 병사들과 함께 뒹군 채 뛰어내린 난간을 올려보며 새삼 높이를 실감했다.


“휴, 발 헛디뎠으면 중대의 수치로 기억됐겠군.”

“됐고 손이나 잡으십쇼!”


명우가 병사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적의 1차 공격은 서서히 정리되어갔다.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지만 이상을 깨달았는지 다음 공격은 아직 오지 않았다. 명우는 한숨 돌리며 병사들을 점검했다.


“벽 담당은?”

“다소 희생이 있었습니다.”


병사 한 명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창문으로 침입한 적병으로 인해 전사자가 발생했다. 각오한 바였지만 명우는 혀를 찼다.


“아래층은 포기하고 위로 올라간다. 함정은 최대한 발동되기 쉽게 설정해둬. 콘츠에게도 그렇게 전해라.”

“예.”


입구 쪽에서 또 함정에 걸린 적병이 밧줄에 매달려 떠올랐다. 명우는 태연하게 놈의 머리에 화살을 맞추었다.


그 순간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멀지 않은 곳이다. 명우는 방 하나에 뛰어 들어가 창밖을 살펴보았다.


노을이 비추는 6구역의 거리, 일단의 무리가 다가왔다. 적의 중심에 해당하는 부대였다. 명우는 순간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러나 애써 태연하게 말을 내뱉었다.


“미친 늙은이 같으니라고. 저딴 꼬락서니로 뭘 하겠다고.”


그곳에는 5구역의 집정관, 팔미르가 있었다. 여전히 살가죽이 벗겨진 채, 말뚝에 묶인 채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를 에워싼 부대가 이 건물을 노리고 똑바로 다가왔다.


“집정관께서 직접 우리랑 한 판 뜰 작정인가보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명우가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물수리중대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온갖 공구와 재료로 무장한 그들은 이 순간에도 함정을 설치해갔다. 작동된 함정 중 성한 것들은 재건되었다. 물수리중대는 소모와 함께 재생을 시작한다. 그들이 있는 곳이 요새였다.


“올 테면 오라지.”


명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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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 연기 전쟁 (6) 21.04.01 39 3 11쪽
36 35. 연기 전쟁 (5) 21.03.31 32 3 12쪽
» 34. 연기 전쟁 (4) 21.03.30 38 3 11쪽
34 33. 연기 전쟁 (3) 21.03.29 30 3 12쪽
33 32. 연기 전쟁 (2) 21.03.26 4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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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 창과 방패 (1) 21.03.22 3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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