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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fle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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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266 회
조회수 :
201,564
추천수 :
2,609
글자수 :
1,493,079

작성
16.06.04 09:48
조회
1,028
추천
12
글자
11쪽

43화-마법사, 그리고 마술사(3)

DUMMY

검은 밤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별들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중에는 한 여인을 사랑한 남자의 눈물이 어려있기도 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이들을 죽음으로 인도한 예언도 있었으며 앞으로 일어날 누군가의 이야기도 있다.

별들의 틈에서 비춰지는 미래의 한 단면에 아인즈의 입가가 미소를 머금었다.


“아직 끝은 아닌가 보군요.”


무언가를 더듬는 듯이 손을 들어올려 허공을 어른거리던 그가 문득 입을 열었다.


“루이드(Ruid Yz), 손님이 올 것 같군요. 준비를 해 주세요.”


그의 말에 방의 한켠이 일렁이더니 한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둘러싸고 있는 잿빛 머리칼에 탁한 느낌이 드는 회색 눈동자를 지닌 이다.

그는 곧 목례를 올리더니 나타날 때처럼 허공을 일렁이며 사라졌다.

딸깍.

아래에서 작게 울리는 소리에 시선을 내려보니 와인과 잔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루이드가 가져다 놓은 것이리라.

언제나 자신을 제 일에 두고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미소가 배어 나왔다.


“잘 마시도록 하죠. 루이드.”


하늘을 바라보며 와인을 음미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경첩의 마찰음이 들리며 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손님이 방으로 들어왔다.


“일주일 만에 뵙습니다.”


“음.”


그가 제시한 일주일의 시한의 끝에 자신을 찾아온 티리드를 보던 아인즈의 얼굴에 흐릿하게 미소가 어렷다. 덤덤한 얼굴을 하고는 있지만 그의 눈빛은 모종의 결심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심이 어떤 것인지도.


“이것 참.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군요.”


“마법사가 되고 싶다더군요.”


“바르군요. 그대는.”


“우매합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부끄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로의 정확히는 아인즈가 모든 것을 유추할 수 있었기에 대화는 띄엄띄엄 건너뛰면서. 하지만 확실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티리드의 미소로 일련의 대담은 마무리 되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단순한 낭비일 테니까. 이미 결정을 내리고 본래의 길로 돌아온 마법사에게 왈가왈부 해 봤자 더 이상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고.


“후후, 감사합니다.”


그의 웃음에서는 한 가닥, 길이 엿보였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어떤 것. 아인즈는 그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그가 앞으로 포이멘을 책임져야 할 테니 그에 걸 맞은 격이 필요하리라.


“마도란, 마법이란 세계로부터 마나를 차용해 쓰는 술(術)이지요. 마나는 마력이 되고, 마력은 마법이 됩니다. 그대의 마법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려 하고 있습니까.”


“제······ 마법은······”


뇌리를 강타하는 충격에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환희로 가득 찬, 하지만 쾌락과 같은 저급한 종류의 것이 아닌 드높은 이치에 닿은 자의 그것.


“저는 세계의 저울추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의 한마디와 함께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티리드를 중심으로 더 멀리, 더 강하게. 새로이 길에 들어서 마침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이를 세계는 기꺼이 받아 들였다.


‘세계의 저울추를 움직이는 이’


수많은 마도의 길 중 그는 가장 가운데에 위치한 길을 골랐다. 자신과는 확연하게 다른 길.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결국 그도 도착하는 그 끝에는 같은 것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마법사란 본시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이지만 그로 인해 파생된 마법은 그 진리를 이용해 규칙을 비틀지요. 그대가 고른 길은 참된 마도의 길이군요.”


술사는 저울추를 속이며 저울을 조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저급. 가장 아래의 하찮은 수작일 따름이다. 진정한 마도는 세계의 정당한 허락을 받아 저울추를 더하거나 혹은 그 위치를 바꾼다.

그는 마침내 ‘진짜’ 마법사가 된 것이다.


“새로이 길에 들어선 것을 축하합니다. 부디 지금의 그 마음, 그 길을 잃지 마십시오.”


허공에 웃음을 남기며 그가 배경에 녹아 들었다. 이제, 학파에서의 일은 끝이다.


* * *


쏴아아아아.


“하악, 하악.”


터벅, 터벅.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 수도 아드리아의 대로를 걷는 이가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얼굴은 확인 할 수 없지만 그, 아니 그녀의 외모는 완벽함을 가릴 수는 없었다.

완전에 가까운 신체와 빛나는 은발. 하지만 부러진 검과 넝마가 되어버린 옷, 부서진 갑주는 그녀가 험로를 걸어 왔음을 알려주었다.


“하아, 하아.”


얼마나 그렇게 힘겨운 걸음을 옮겼을까. 그녀의 고개가 들려지며 멍한 눈이 드러났다. 푸른 빛이 아름다운 눈동자.

아무런 힘도 없이, 빛도 없이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한 저택의 대문에 멈춰 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고르기를 한차례 문고리에 손을 가져갈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나?”


“아, 아아.”


그녀의 얼굴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돌아갔다. 그곳에는 검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남자가 서 있었다.


“아, 아아아아아.”


찾았다. 드디어, 드디어. 마침내 찾아냈다. 마침내 이곳에 도달했다.


“루나!”


“마스터······”


긴장이 풀리며 다리의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스터······!”


“루나!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 마······스터······!”


의식이 흐려져 간다.


‘안 돼, 이러면 안 되는데!’


“루나! 정신 차려!”


‘아직, 내겐 해야 할 일이······! 할 말이!’


“루나!”


그녀의 의식이 속절없이 어둠으로 빠져 들어간다.


‘마스터, 아가씨께서······’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외침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의식이 완전히 끊어졌다.


* * *



18. 에아, 납치, 분노


똑, 똑, 똑.

방안에 구비된 시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울렸다. 고고한 마법의 산물이 이 시계는 아인즈가 직접 만들어낸 물건이다.

정확성은 말할 필요도 없이 정확하고 그 안에 담긴 고아한 술식은 규칙적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로이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루나······”


침대에 누워있는 루나를 보며 아인즈는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자신이 탄생시킨 최초의 호문클루스. 그리고 에아의 보호자.

그녀가 어째서 그토록 만신창이가 되어 이곳까지 왔을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이곳까지 자신을 찾아 왔을까. 무엇 때문에?


“루나······”


아니, 알고 있다. 그런 것. 이제 막 시작점에 선 이들 정도는 손쉽게 처리가 가능한 그녀가 이렇게 처참하게, 그것도 홀로 이곳에 찾아왔다는 것은 그녀가 어찌 해 볼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도대체······ 누가······!”


누가 이렇게 했나. 그것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녀가 이런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은 에아의 신변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누가?

무엇을 목적으로?

어떻게?

에아는 세계수다.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 그에 걸 맞는 힘을 갖추고 있을 뿐더러 그녀의 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엘프들이 자리하고 있을 터였다.


“제발······!”


그녀에게 아무런 일이 없기를 기원한다.

그녀에게 아무런 해가 없기를 기원한다.

그녀가 무사하기를 기원하다.

그 아이가, 그 아이가 울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아인즈를 모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곳, 이 저택의 주인이며 모두의 정신적 지주이다. 그가 흔들린다는 것은 곧 그들 모두가 흔들린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빠.”


“마스터······”


“스승님은······ 괜찮을까요?”


“글쎄······”


게럴트는 쓰게 웃으며 확답을 주지 못했다. 그는 집사로서 아인즈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해 왔다. 그렇기에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봐 왔다.

그의 습관, 그의 웃음, 그의 표정, 그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까지.

그렇기에 그에게 에아라는 딸이 어떠한 무게를 지닌 존재인지 이곳에 모인 그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의 존재중 그녀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도. 아마 그녀가 원한다면 그는 약간의 주저함은 있을지 몰라도 자신을 비롯한 호문틀루스들 모두를 폐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문제가 생겼다?


“으음······”


‘상상할 수도 없군.’


그의 주인은 너무도 강대하다. 그의 이치는 저 드높은 곳의 이치에 도달해 있으며 그의 능력은 지도가 의미가 없어지는 수준의 힘을 내포한다.

그가 만약 분노로 스스로를 감싸고 세상을 향해 포효한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준의 대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은······ 그저 기도할 밖에.”


게럴트의 한숨이 모두의 심정을 대변 하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 * *


‘여긴······ 어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둡고 포근하고 따뜻하다는 정도.


‘움······직여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일일까. 가만히 둘러보니 손목과 발목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아, 아아······!’


속박이다. 구속구다. 검고, 사악하고, 차가운 그런.


‘아, 아아······!’


끔찍하다. 너무나 끔찍하다. 저 기억의 아래로 감춰 두었던 기억이 고개를 쳐들었다.

불타오르는 마을, 화마에 휩싸인 숲. 비통한 비명을 지르는 수많은 생명들.

그리고 끔찍한 그 ‘무엇’.


‘안돼! 안돼!’


막으려 발버둥 치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다. 그녀는 단지 처연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다. 세계에서 단절된 채 눈물을 흘렸다. 자신은 그렇게, 무력하게 그녀를 놓치고 말았다.


‘안돼! 제발, 제발 이렇게 무력하게 잃을 수는!’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다. 그저 속으로 절규하고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목소리를 부여잡은 채 가슴을 그러쥘 밖에.


‘아아아······ 나는, 나는! 이다지도 쓸모가 없어······ 나는 어째서······?’


견고한 정신이 무너져 간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격과 그때부턴 서 있던 시작점의 위치가 그녀를 흔들었다.


‘나는, 나는! 내게 힘이! 힘이 있었다면!’


마침내 사도(邪道)가 외도(外道)가 그녀를 침식해 온다.

고고한 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순수했다. 너무나 하얗고, 순수해서 너무나도 더럽혀지기 쉬운 그런 백지.


‘아아, 아아아! 죄송합니다. 마스터, 송구합니다 아가씨. 제가, 제가 너무나도 미력한 탓에 소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정신차려!”


‘아!’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물들어가던 영혼이 일깨워진다. 따뜻하고, 무뚝뚝하고, 단호한. 하지만 너무나도 듬직하고 의지하게 되는


‘마스터.’


그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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