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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회빙환은 질병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신비록
작품등록일 :
2024.03.13 18:23
최근연재일 :
2024.05.08 17:55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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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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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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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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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12

DUMMY

"때에 따라 다르지만 분기별로 가끔 이리 모입니다."

"그치 그치, 이제 스승님 살 날도 얼마 안남았으니 한 번씩 얼굴도장이라도 찍어둬야지 않겠소? 안 그렇습니까 스승님. 커허허허."

"최형 못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아서라, 무혁이 말이 맞다. 내 생이 저무는 마당에 찾아주는 제자들이 많으니 다들 고맙구나."


아닙니다 스승님.

오래 사셔야지요!

가게의 테이블마다 마스터 로한에게 덕담 한 마디씩 터졌다.


그 뒤로 인사를 나눈 이들은 유명인도 있고, 각성만 하고 헌터활동을 하지 않는 무명인도 있고. 개인적으로 마스터 로한에게 수련한 무사들도 있었다.


정말로 마스터 로한에게 얼굴도장을 찍을 목적이었는지, 나와 인사를 나누고는 대부분 가게를 떠났고 처음 대화를 나눈 세 명의 헌터만이 한적해진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제가 협회와의 일정이 있어 토요일에는.."

"그럼 이리 하겠느냐, 수요일과 목요일은.."


나만 쏙 빼놓고 마스터 로한과 세 명의 헌터가 서로 무어라 대화하며 일정을 조정하더니, 결론이 났는지 나를 불렀다.


"막내, 이리오거라."

"예 마스터 로한."


나는 차무혁이 살짝 빼준 의자에 앉았다.

내가 앉자 마스터 로한은 돋보기 안경을 코에 걸치고 손에 쥔 종이 한 장을 살피며 말했다.


"그럼 수요일과 목요일은 구가 맡고, 차무혁이가 금요일이랑 화요일?"

"예, 맞습니다."

"그래, 금요일 화요일은 차무혁이가, 토요일은 세희지?"

"네, 맞아요."

"아쉽겠네 막내 유 동생, 우리 엘소주모델 신 헌터가 하루 뿐이라서?"

"왜 이래 정말 너구리같이.. 오라버니들도 아저씨 다 됐어!"

"커허허허."

"실례합니다만 지금 무슨 일정을 짜시는건가요?"


내 물음에 마스터 로한이 돋보기 안경을 치켜올렸다.


"네 수련일정표다. 이 노구가 늙어서 일주일 내내 널 가르치다가는 가을단풍도 못 보고 선배님들 따라갈 듯하여 제자들 손을 좀 빌렸다. 현역에서 일하는 아이들이니 실전에서 써먹히는 제대로 된 배움이 있을게야."


신세희, 구종선, 차무혁이 날 가르친다고?


싸인이라도 받아놔야 하나 고민했는데..

유명한 건 둘째치더라도, 이 정도 급의 헌터를 고용하려면 비용도 천문학적일거다.


"사형으로서 사제를 가르치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부담가지지마십시오. 되려 스승님의 사사에 누가 될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구종선이 내 눈매를 읽고 먼저 답하고는 내게 관심을 표했다.


"그런데 유 사제께선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신출내기라 하셨지요?"

"네, 얼마 안됐습니다."

"각성자등록은 하셨습니까?"

"아뇨, 아직.."

"듣기로는 스승님께서도 감탄할만한 여성 무재가 직접 이곳에 내방하여 사사를 원하셨다는데, 이미 길드에 들어있으신지?"

"뭘 그렇걸 묻고 그러나, 으이."

"최 사형, 그래도 같은 유파라면 필요할 때 서로 끌고 당겨주는 게 있어야하지않겠습니까."

"그런가?"

"제 아무리 결이 순하고 청백하다 하더라도 그 짧은 기간에 우리 류를 깨달은 지재, 그를 발견해낸 무재 여인의 본적이라도 알아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종석은 내게 한지수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했다.

아무리 막내 막내하면서 친근하게 대해주지면, 이들은 헌터사회에 속한 야수들.

일반인인 내가 함부로 대응하긴 어려운 자들이다.


"글쎄요. 자기 이야기하는 걸 워낙 싫어하는 친구라.. 기회가 되신다면 언젠가 마주 할 수 있으실겁니다."

"오호, 여자친구야? 으이?"


최무혁이 덩치에 어울리지않게 실실 웃어대며 물어왔다.

한지수와 그런 관계라는 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자자, 앞으로 볼 일도 많은데 사설은 그만 집어넣고 서로 연락처나 교환하자구요. 나 조금 있다가 촬영있단 말이야, 단체채팅방 하나 만들게요!"


신세희가 기세좋게 폰을 꺼내 들며 끼어들었다.

저번주까지만 해도 모니터 너머로만 보고, 마주 할 일도 없던 헌터들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이모티콘까지 몇 개 주고 받으니 더 기분이 묘해졌다.


"그럼 스승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건강하쇼 갈수록 거북이 같아져."

"스승님 또 봐요~ 유 의사도 다음에 봐~."


왜 반말이지? 내 나이가 더 많지 않나?

신세희의 발랄한 인사를 끝으로 가게가 조용해졌다.


"막내."

"네, 네!"

"따라오거라."


마스터 로한이 지팡이를 쥔 손으로 뒷짐지며 나를 불렀다.

지하훈련장로 가는 문이 열렸다.




***




지난 번에는 요리사 로만만 뻔질나게 드나들었을 뿐, 마스터 로한은 지하훈련장으로 내려오지않았다.

내가 드래곤샹귤러스류 오러를 터트리고, 확인하러 한 번 내려와서 내 온몸을 두들기며 살피고는 귀가를 허락했을 때 빼고.


"헨리 형제는 오늘 없습니까?"

"훈련갔다."

"훈련이요?"

"신출내기 막내한테 기세로 눌렸는데 자존심이 있는 남자라면 파스타 면이나 뽑고 있겠느냐."


기세로 눌리다니. 말이 대련이었지,

나는 헨리 형제의 털 끝 하나도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다.


"그럼 설마.. 마스터 로한께서.."

"예끼, 다 늙은 노인네랑 주먹다짐이라도 할 셈이냐. 이론공부다. 오늘만 이론공부이니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휴."


마스터 로한의 설명과는 다르게,

칠판과 책상이라도 놓여 있을 줄 알았던 훈련장에는 수 십 가지의 냉병기들이 어지러히 늘여져있었다.


"...무기고 정리라도 하는 중이셨습니까."

"해야지, 네가."

"제가요?"


막내 막내 거리더니, 이런 잡일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눈으로 보이는 오러는 정순해졌구나. 그렇다면 오러를 보는 눈은 얼마나 타고났는지 봐야지. 무기를 정렬해보거라."


일종의 실기테스트.

단순히 무기의 크기나 무게가 아니라 무기가 품고있는 마나량이나 오너량을 인식해서 배열하라는 뜻 같았다.


나는 가장 흉흉한 살기를 띄는 참도부터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뿜어져 나올듯한 장창, 불꽃무늬의 도끼를 시작으로 하나씩 바닥에 배열했다.


"어찌 이 도를 제일 좌측에 두었느냐."

"가장 위험해 보여서 그랬습니다."


참도는 검날 전체에 보랏빛 오러가 철철 흘러나왔다. 본능적으로 쥐기도 싫은 기운이었다.


"아직 오러무구나 성유물이 쓰이는 걸 본 적이 없나 보구나."


있긴 있다. 한지수가 어스 써펜트를 도륙할 때 쓰던 반월창.

그 때는 일반인의 눈이었지만, 척 보기에도 평범한 무구는 아니었다.


"계속 하거라, 네 안목을 좀 살피자구나."


괜시리 저렇게 말하니까 잘못된 순서로 놓고 있는 기분이었다.

응? 모든 무구를 정렬하자 평범한 반지 하나가 바닥에 깔려있었다.


"스승님, 이것도 정렬합니까? 누가 잃어버린 거 같은데."

"정렬하거라."


오러는커녕 무게도 가벼운 얇은 철반지.

나는 철반지를 가장 우측에 놓고 정렬을 끝마쳤다.


"어느건 잘보고 어느건 놓치고 있구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였다."


중국의 손자병법에서 나온 인용문이다. 남해를 재패중인 어느 성좌가 멋대로 고쳐 쓰긴 했지만.


"전투가 벌어질 때 인지해야 할 것은 상대가 함양한 오러가 구 할이고 상대가 들고 있는 무구가 일 할이다. 허나 오러는 쓰는 이에 따라서 숨기기도 부풀리기도 십상이니 네가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상대의 손에 쥔 무구를 먼저 살펴야한다. 어찌 표정이 그러느냐?"

"저야 괴수들과 싸울 일도 별로 없기도 하지만, 마치 사람이랑 싸울 걸 염두해두라는 말씀같아서 그렇습니다."


마스터 로한이 주름진 얼굴로 미소지었다. 그러고는 내 말을 싸그리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어찌 이 참도를 제일 좌편에 둔 것이냐. 가장 강할 듯 하여서?"

"그렇습니다."

"무엇이 느껴지느냐."

"날카로운 살기 같습니다."


마스터 로한이 고개를 주악거렸다.


"그래.. 막내, 네가 보기에 이 참도는 누가 썼을 것 같느냐."

"...빌런 아닐까요? 흉악한 사람이 썼을 것 같습니다."

"무구란 재료와 장인에 의해 그 성질이 정해진다. 허나 그 무구를 오래 쓰는 자가 저도 모르게 혹은 의도하여서 무기의 성질을 더 날카롭거나 무겁게 바꾸기도 하지, 빌런이라.. 팔 점 정도 주마."


참도의 손잡이를 쥔 마스터 로한이 한 손으로 가볍게 움직였다.

분명 아까 내가 옮길 땐 더럽게 무거웠는데, 마스터 로한은 손잡이에 달린 풍성한 털이 바람에 누운 갈대처럼 쓰러질 정도로 빠르게 허공을 베어냈다.


"백 점 만 점에 팔 점이다. 막내."


마스터 로한이 몇 번 휘두르자, 아까까지만 해도 검신에서 흘러내리던 흉포한 보랏빛 오러는 사라지고 고고한 울림이 느껴지는 금빛 오러가 잔잔히 빛났다.


"이 참도는 일천 구백 구십 칠 년도에 사망한 가디언의 것이다. 쓰던 이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겠지, 당시 일본과 중국에서 넘어오던 야쿠자와 삼합회들에게는 죽음의 사신으로 불리던 블랙 요원이니까."


마스터 로한은 빛나는 참도를 보며 잠시 추억에 빠진 듯 우수에 젖었다가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에게 베어나간 범죄자 중에는 악마계약자도 여럿이 있었는지 저렇게 검날에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걸 일반인인 내가 어떻게 아는가.


"내 친우를 빌런으로 불렀으나 한 눈에 그 원혼을 알아챘으니 팔 점은 주마. 보자, 이 창은 어찌하여 두 번째에 두었느냐."

"뭔가 마법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차가운 느낌이요."

"그건 정답이구나. 실제로 저 창에 마나를 불어넣는다면 하급 빙결마법을 쓸 수도 있다. 허나 이 창은 그리 강한 무기가 아니다. 헌터가 되면 요청에 따라 보급해주기도 공산품이지."

"그렇습니까?"


굉장히 화려해 보이는 외관도 한몫하긴 했지만, 마법을 쓰게 해주는 창이 보급품이라니,


"옆의 도끼도 같은 것입니까?"

"저건 아예 다른 성질이란다. 이 창은 마석을 이용하여 마나를 뿜어내는 도구라면, 이 도끼는 불을 빨아들이는 도끼지. 라바 골렘처럼 불꽃을 생명력으로 쓰는 괴수들에게 특화된 무구다."


마스터 로한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일반인은 접하기도 힘든 희귀한 물건들의 설명이었기에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머릿 속에 집어넣었다. 귀신을 부르는 검, 성좌가 내려준 운석으로 벼린 화살촉부터 강철보다 단단한 목검, 닿는 것만으로도 살이 녹아내리는 단도. 저런걸 맨손으로 만지게 하다니..


"그럼 마지막으로 이건."


외관과 다르게 특이하거나 강한 무기가 가득이었다.

이정도쯤 되니, 내가 마지막에 두었던 반지도 어떤 특별한 힘이 숨겨져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오러를 불어넣으면 전신을 둘러주는 갑옷이나 무형의 검같은 걸 쥐게 해주는 보물이 아닐까?


"이건 죄수의 반지다. 착용자가 약해지지."

"...그게 끝입니까?"

"유일하게 순서를 맞춘거니 상으로 주마."


나는 마스터 로한이 던진 철반지를 손에 쥐었다.


"죄수의 반지요."

"보기에는 그래도 너처럼 아직 오러를 다스리는데 익숙하지 않은 자에게는 유용한 물건이지, 넌 경험에 비해 너무 많은 오러를 품고있으니 항시 손에 착용하고 다니거라."


시험삼아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자 집중하면 미친 듯이 뿜어졌던 오러가 훨씬 힘겹게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겁나서 바로 빼자 마스터 로한이 지팡이를 바닥에 툭툭 쳤다.

내가 다시 반지를 끼자 고개를 끄덕이셨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빼지말고, 오러를 쓸 때는 반지를 이겨낸다는 각오로 써야만 할 것이다. 에구구. 오랜만에 무거운 것들을 쥐었더니 아이고야."


마스터 로한은 등을 두드리면서 벽에 놓인 나무의자에 가서 앉았다.

방금까지만해도 거대한 언월도를 휘둘러놓고는.. 엄살처럼 보였다.


"혹시 질문 하나하여도 되겠습니까?"

"물어보거라."


나는 한참 이어지던 무기설명 때문에 꾹 참고 있는 궁금증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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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p39 개와 늑대의 시간 - 5 +2 24.04.21 242 10 16쪽
38 ep38 개와 늑대의 시간 - 4 +6 24.04.20 291 14 13쪽
37 ep37 개와 늑대의 시간 - 3 +1 24.04.17 338 19 12쪽
36 ep36 개와 늑대의 시간 - 2 +4 24.04.16 348 16 12쪽
35 ep35 개와 늑대의 시간 - 1 24.04.15 373 19 13쪽
34 ep34 푸른 수염의 사나이 - 3 +3 24.04.14 380 23 11쪽
33 ep33 푸른 수염의 사나이 - 2 +6 24.04.13 411 24 14쪽
32 ep32 푸른 수염의 사나이 - 1 +3 24.04.12 476 20 12쪽
31 ep31 누구나 비밀은 있다 - 2 +5 24.04.11 535 30 12쪽
30 ep30 누구나 비밀은 있다 - 1 +3 24.04.10 555 28 11쪽
29 ep29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 4 +5 24.04.09 584 27 12쪽
28 ep28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 3 +6 24.04.08 592 25 11쪽
27 ep27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 2 +4 24.04.07 654 31 13쪽
26 ep26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 1 +8 24.04.06 689 36 11쪽
25 ep25 프롤로그 +11 24.04.05 736 53 13쪽
24 ep24 +5 24.04.04 706 36 14쪽
23 ep23 +1 24.04.03 654 37 12쪽
22 ep22 +2 24.04.02 667 27 11쪽
21 ep21 +1 24.04.01 693 35 11쪽
20 ep20 +1 24.03.31 707 39 12쪽
19 ep19 +1 24.03.30 708 41 11쪽
18 ep18 +4 24.03.29 716 33 12쪽
17 ep17 +2 24.03.28 744 34 11쪽
16 ep16 +4 24.03.27 738 36 12쪽
15 ep15 +5 24.03.26 768 44 11쪽
14 ep14 +2 24.03.25 802 40 12쪽
13 ep13 +1 24.03.24 824 4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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