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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Light 서재입니다.

신인 GODMA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BrainLight
작품등록일 :
2019.09.20 09:55
최근연재일 :
2019.12.25 08: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34,335
추천수 :
2,420
글자수 :
408,390

작성
19.12.11 08:00
조회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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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중립의 시간 (2): 지구에선

DUMMY

한율은 예나의 오른쪽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예나는 잠든 한율을 깨우지 않으려고 살며시 어깨를 빼고 베개를 베어주려는데, 한율이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났다.


"근데 누나, 동현이 형은 누구예요?"

"뭐...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동현이 형요. 오토바이 잘 타는 형. 그 형은 누구냐구요?"


한율은 아직 잠이 가득한 눈으로 예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율이가 동현 선배를 어떻게 아는 거지?


예나는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으...응 아는 선배야. 그런데 어떻게 동현 선배를 알아?"

"꿈에서 봤어요. 오토바이를 정말 잘 타는 멋진 형이던데. 누나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그럼 공항에서 본 그 아저씨랑 동현 형이랑 서로 아는 사이에요?"


"응... 아주 가까운 친구였어."

"그랬구나. 뭐, 괜찮아요. 누나가 누구를 좋아하든 상관없어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난 내 소울메이트가 잘 지낼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켜줄 책임이 있으니까."

"누가 율이 소울메이트인데?"

"또 또... 그런다. 정말 몰라요? 누나죠. 신예나 PD님."


예나는 한율의 말을 듣고 몹시 당황했다.


"잠깐만, 나 화장실 좀 갔다 올 게."


예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박동 소리가 점점 커져 비행기 전체를 울리는 것 같은 느낌에 급히 핑게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누나! 바로 앞 화장실에 파란불이 들어왔는데 왜 그렇게 먼 데로 가는 거예요?"


예나는 한율이 하는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빠르게 통로를 따라 뒤쪽 화장실로 향했다.


나도 참...

어린 친구가 장난으로 하는 말에 이렇게 민감할 게 뭐람.

하지만 더이상 놀림을 당하는 건 안 되지.

가서 바로 정리를 해줘야겠어.


예나는 화장실 통로에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사이 한율은 승무원에게 간식을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먹고 있었다.


"배고프죠. 누나 기다리다 오래 걸리는 것 같아 먼저 먹었어요. 이 비행기 부리토가 정말 맛있거든요. 누나가 좋아할 것 같아서 내가 많이 달라고 했어요."

"난 배 안 고파."


예나는 관심이 없는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에이, 그럴 리가요. 음료는 카모마일 차로 가져다 달라고 했어요. 숙면에 도움이 되니까."


어? 내가 차를 즐겨 마시는 건 또 어떻게 알았지?


"수련을 하면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몸에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을 스스로 가려서 먹을 수 있게 돼요. 오성 원장님은 그게 '기운이 철난 거'라고 늘 말하셨죠. 그러다 보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의 몸에 맞는 음식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돼요."


한율은 예나가 묻지도 않았지만 차를 주문한 이유를 줄줄이 설명했다.


"그렇구나..."


예나는 한율이 하는 감각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 그새 마음이 풀어졌다.


"이거 하나 먹을 게."


예나는 한율의 테이블에 있는 부리토 하나를 가져다 자신의 테이블에 놓았다.


"근데, 누나. 왜 내게 화난 거예요?"

"내가? 나 화 안 났는데."

"아닌데. 분명히 아까 배 안고프다고 할 때는 얼굴에 화가 많이 나 있던데. 내가 한 말이 기분 나빴어요?"

"아...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구."


예나는 자신이 하려던 말을 한율이 먼저 꺼내자 당황스러워 부리토만 쳐다보다가 포장을 벗겨서 먹는 척했다.


"동현 형이랑 그 아저씨랑 친구라니까 그럼 그 아저씨도 형이라 불러야겠네. 이름이 뭐에요?"

"이한정. 한정 선배야."

"이한정? 선배? 좋아요. 그럼 동현 형이랑 한정 형이랑 두 사람 다 누나를 좋아했는데, 그래서 괴로워했던 건가요?"


한율은 테이블에 놓인 부리토 두 개를 다 먹고 때마침 승무원이 가져온 카모마일 차를 받아서 한 잔을 예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부리토 식으면 맛없는데. 어서 먹어요. 누나가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누나 거 남은 하나는 여기 주머니에 넣어둘 게요."

"고마워."


예나는 한율이 준 카모마일 차를 받았다. 은은한 국화향이 코끝에 스몄다. 차를 몇 모금 마시자 몸이 금세 더워지면서 나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나도 이제 좀 자요. 앞으로 온 시간만큼 더 가야 하니까."

"맞아... 그래서 힘들었어."


예나는 차를 다 마시고 나서 테이블을 접은 뒤, 등 뒤에 두었던 베개와 담요를 꺼내 무릎에 놓으며 말했다.


"동현이 형이 왜 멋진 줄 알아요?"

"오토바이 잘 타는 게 멋지다며."

"물론요. 근데 정말 멋진 점은 누나가 다른 형을 좋아하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누나를 미워하지 않고 좋아했다는 거예요."


갑자기 예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동현 선배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도 눈물이 나...


예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손에 낀 반지를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지구에선 아직 동현이 형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지구에선?


"지구에서는 내가 사랑하면 그만큼 상대에게서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사랑받지 못 할까봐 두려워하고. 그러다 원하는 기대에 어긋나면 사랑이 증오가 되죠. 심해지면 자신이나 상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거고."

"사랑이란 관계인데 어떻게 일방적일 수 있어. 주고 받아야 공평한 거지."

"누나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동현 형에게는 미안하고 한정 형에게는 동현 형 때문에 솔직하지 못했던 거 잖아요."


예나의 얼굴이 빨개졌다.


진짜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진짜 사랑은 대가를 바라면서 주고 받는 게 아니라구요. 거래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예요. 가슴이 원하는 대로 그냥 주는 거구 또 그냥 받는 거죠."


사랑은 거래가 아니다.

오성 원장님도 그런 비슷한 말을 내게 했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나도 여러 사람을 좋아한다면?"

"사실 그게 정상이에요. 지구에서는 그런 관계라면 질투와 시기, 증오와 미움이 섞여서 문제이지만요. 내가 아는 별, 음... 그러니까 누나에게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온 별에서는 서로 사귀는 사람이 네 명이 되거나 그 이상이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뭐야, 율이가 온 별? 그게 어딘데? 안드로메다나 프로키온이라도 되는 거야?"


농담인지 진담인지 늘 알 수 없는 얘기만 하는 아주 독특한 애야.


예나는 한율의 말에 우울했던 표정이 명랑하게 바뀌면서 한율을 놀렸다.


"에이, 누나는 내 말 안 믿는구나. 그래도 할 수 없어요. 아무튼 그 별에서는 사랑이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관계가 가능해요. 파트너에게 집착하는 마음 자체가 없어요."

"그게 가능해? 사랑하면 함께 있고 싶고, 나만 사랑하기를 원하는 게 당연한데."

"사랑이란 감정이 왜 일어날까요?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아님 운명?"


아니 잠깐만..! 내가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이런 철부지랑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글쎄,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

"그니까, 그런 끌림이 왜 일어나느냐구요? 내가 누나에게 느끼는 것처럼 말이에요."


예나의 심장소리가 다시 커졌다.


안 돼, 안 돼!

말려들면 안 돼~!


"그걸 알면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괴로워할까? 대부분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르며 일어나는 일들인데."

"그 끌림은 소울메이트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소울메이트...?


"그렇다면 한때는 그런 끌림으로 열렬하게 사랑했다가 이내 식어 버리는 건 왜 그런 거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실망하고 원망하고. 소울메이트라면 그렇게 변질되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

"누나 말이 맞아요. 그건 소울메이트라고 말은 하지만, 소울메이트의 진짜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율이가 생각하는 소울메이트는 뭔데?"

"소울메이트는 말 그대로 영혼의 성장을 위해서 만나는 파트너예요. 근데 영혼이 뭔지 사람들은 잘 모르죠. 그러니 말은 그럴 듯하게 하지만 호르몬이 작용하는 기간 동안만 관계가 유지될 뿐이에요. 이내 다들 시들해지는 거죠.

그리고는 다시 또다른 사랑을 찾죠. 늘 호르몬을 자극하는 그런 사랑을 원한다면 영원히 만날 수는 없겠지만요."


내가 이런 어린 친구의 소울메이트라고?


"누난 내 이야기 들으면서 지금도 생각이 많은 거 알아요. 내가 누나를 놀리고 있는 거는 아닐까 생각하죠?"

"그래 맞아. 솔직히 말할 게. 율이가 내 소울메이트라면 왜 난 율이한테 아무 느낌이 없는 거지?"

"그건 누나가 아직 나보다 감각이 덜 열려서 그런 거예요. 감각이 살아나면 누나도 곧 느끼고 알 수 있게 돼요."


제발 그런 혼란스러운 일은 그만 일어나기를...


"누나가 뭘 두려워하는 건지 알아요. 지난 일처럼 또 복잡한 감정으로 불행한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운 거죠?"

"율이는 아직 어려서 잘 몰라.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를 말이야."

"네, 그쵸. 내가 누나보다 현생의 경험이 적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전생까지 더한다면 그리 쉽게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죠."

"전생?"

"네에, 전생. 내가 바닷가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시 살게 되고, 스승님을 만나서 알게 된 사실은 만나는 인연들은 다 이유가 있다는 거였어요."


자살?

그럼 율이가 벌써 죽음을 경험했단 말이야?


예나는 자신 또한 이미 여러 번 그런 마음이 들었던 시간들을 기억해 냈다.


하지만 시도할 용기가 없었지.

그런데 어린 한율이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갔다 왔다고?!


갑자기 한율이 다르게 보였다.


"괜찮아요. 그런 일이 제게는 오히려 새로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새로 태어나다니...?"

"네, 몸이 아니라 정신이요. 그렇다고 자살 경험을 찬양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사람다마 인생에서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는 다 다르니까.

전 제게 가장 힘겨웠던 상황이 오히려 뜻하지 않은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는 제 경험을 말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나이보다 성숙하기도 하고, 때론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 건가...


"아까 만나는 인연들은 다 이유가 있다고 했지?"

"네, 깨어서 볼 수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저절로 알 수 있어요."

"깨어서 본다고?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그냥 자신의 말과 행동을 또다른 눈으로 보는 거예요.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듯이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거죠. 그렇게 볼 수 있게 되면 자기 앞에 나타난 인연도 알아볼 수 있어요."


내 안에 있는 또다른 시선


예나는 치유의 사원에서 일어난 예기치 않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면 무얼 알게 되는데?"

"만난 인연들이 이번 삶에서 자신이 풀어야 할 문제에 어떤 도움을 주려고 왔는지를요. 그게 꼭 사랑하는 사람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반드시 좋은 관계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구요. 오히려 나쁜 관계가 공부에는 더 큰 도움이 되기도 하죠.

저를 매일 때리고 괴롭혔던 그 아이들처럼요. 그래서 모든 인연은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하는 거구요."

"그런 인연을 이해하면 여러 사람을 질투도 하지 않고 소유하려는 마음도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럼..."

"그럼요. 서로의 영혼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만난 거니까요."

"그럼 육체적인 관계나 결혼은? 그 별에서는 그런 관계도 여러 명이 같이 공유를 하는 거야?"

"그런 육체적 관계는 지구에서도 이미 흔한 문화잖아요. 다른 별나라를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죠. 그런데 누나는 사랑과 성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구나. 꼭 그렇지는 않은데."


성에 대해서 뭔가 아는 듯한 이 말투는...?


"그래? 그럼 플라토닉 러브 platonic love 같은 관계를 말하는 건가? 육체적인 관계가 없는 정신적인 사랑?"

"내가 말하는 건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러면?"

"에너지 교류만으로도 사랑이 가능하다는 거죠. 직접적으로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 않더라도 완전한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진화된 별에서는 다 그렇게 에너지로 사랑을 나누어요. 사랑하는 사람과도, 자연과도, 그리고 우주와도요."




- 신인 GODMAN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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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5 manu3571
    작성일
    19.12.11 17:36
    No. 1

    만나는 사람들 모두 나의 완성을 돕기 위한 인연들이라구요?!... 분명 고마운 게 맞는 거죠?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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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립의 시간 (2): 지구에선 +1 19.12.11 165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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