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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름

네? 제가 아이돌이라고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이나름
작품등록일 :
2021.05.22 04:52
최근연재일 :
2021.10.31 20:40
연재수 :
1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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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36,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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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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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외전 - 김진의 아이돌이 된 이유

DUMMY

삶의 일상이 무료하단 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였다.


흔하게 초중고를 다니던 내게 누군가가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얼굴도 반짝이고 햇살도 반짝이는데, 이게 사람인가 태양인가 싶었다.


“아이돌 관심 없어요?”

“아이돌이 뭐예요?”


당황한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을 때는 진짜 반짝임이 두 배로 느껴졌다.


“그 비타민 이온 음료에 붙어있는 사람 맞아요?”

“네, 아이돌 이현이라고 합니다.”


아이돌이라는 존재의 여부를 처음 알아낸 순간이었다.


아이돌이란 건 다 이렇게 빛나는 건가 싶어서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근데 아이돌은 뭐 하는 거예요?”

“노래 부르고 춤추고 랩 하는 직업이죠.”

“와, 되게 돈도 못 벌고 고생만 할 것 같은 직업인데요?”


돈도 못 벌고 고생만 더럽게 하는 얼굴 잘생긴 사람들만 하는 직업.


부모님이 매일 했던 말이 넌 공부도 못하고 키만 더럽게 크니까 농구나 하지 않겠냐고 했었다.


그것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지만.


“엄청 벌어요.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얼마 버는데요?”

“억은 기본으로 벌죠.”


느긋하게 선글라스를 접는 이현과 달리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한 번도 노래나 춤, 랩 어느 것도 해보지 않은 내가 할 수는 없는 일 같았다.


“저도 할 수 있어요?”

“네, 저도 저기 못생긴 매니저 형이 잘생긴 형을 데려다 놓고 이렇게 꼬셨거든요.”


돌아본 곳에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사기꾼 인상이 보였다.


한수 형이 나중에 들었을 땐 그 자리에서 좌절했다고 하지만, 그건 훗날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형은 돈 많이 벌어요?”

“몇십억은 벌죠.”

“그거 어떻게 해요? 저도 하고 싶은데.”


그 정도 돈이라면 영혼을 팔아도 되는 돈이었다.


까짓 아이돌 해보겠다고 인생에 얼굴만 빼면 평범한 김진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JH 엔터로 오디션 보러 와요.”

“동요밖에 모르는데, 동요 불러도 돼요?”

“저도 동요 불렀어요. 난 곰 세 마리 불렀는걸요.”

“그럼 전 상어 가족 부르면 되겠네요.”


의문의 동질감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현은 아주 커다란 차에 타면서 여유롭게 자리를 잡자 뒤에 와글거리는 남자들이 있었다.


“야, 너 아이돌 알아?”


길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으며 친근하게 묻자 고개를 들어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이었다.


“엉? 알지. 우리 이버블링이 이번 주 1위잖아.”

“돈 많이 벌긴 해?”

“야! 당연히 많이 벌겠지. 근데 넌 누군데, 나한테 말을 걸어?”

“지나가다 같은 학교에 학년이라서 말했는데?”

“아, 그래?”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진짜 아이돌이란 건 그게 다인 건가 싶어서.


“근데 왜 나한테 하라고 하지.”


충동적으로 걸어간 JH 엔터는 생각보다 컸다.


오디션 절차에 따라서 본 오디션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동요를 불렀고, 춤을 몰라서 막춤을 췄다.


“잠깐 카메라 테스트를 좀 해볼까?”


카메라까지 보는 사람들의 반응에 그저 눈만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상한데, 정말 이상한 거 아는데.


“노래보단 랩에 맞겠어. 얼굴이 저 정도면 비주얼로 넣어도 될 것 같고.”

“근데 너무 몸이 삐걱거리지 않아요?”

“이현 눈이 틀린 거 봤어? 걔 눈은 진짜 뭐 달렸어. 걔를 캐스팅 팀으로 넣어야 한다니까?”

“그건 맞지만요···. 얼굴만 빼면······ 이라고 하기엔 너무 잘생겼네요.”


졸지에 얼굴로 합격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엄마, 나 합격했어.”

“뭔 합격? 그건 또 뭐야?”


자다 깬 어머니는 눈을 손으로 비볐다.


학교에 올 시간이 된 애가 오지도 않다가 오디션 합격했단 소리를 누가 믿나.


“나 이 얼굴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지X을 해. 지X을··· 아이돌 하고 싶음 하던가.”

“나 돈 진짜 개 많이 벌 수 있대. 이 얼굴이면 된다던데?”


왠 졸라 잘생긴 남자가 그랬거든.


나와 똑같다고.


그럼 나도 그렇게 많이 벌 수 있지 않겠냐며 철없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언제 건강하게 크라고 했지. 고생하는 직업 바란댔어?”

“그러면서 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잖아. 엄마가.”

“네가 하고 싶어서 본 거 아냐. 어떻게 부모가 돼서 그걸 하지 말라고 해?”


어머니는 피곤한지 하품을 쩍 하면서도 아들의 표정을 살폈다.


혹시나 강요로 한 건가 싶었는지 어깨를 잡고 얼굴을 본다.


“왜? 누가 강요했어? 시켰어? 하라고?”

“아니··· 새삼 우리 엄마 졸라 쿨하다는 걸 느껴서.”


그렇다면 다행이라며 잡은 어깨가 머쓱한지 슬쩍 뺀다.


어머니의 방식이 조금 투박하긴 했어도 누구보다 자기를 걱정하고 있는 걸 알기에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해보고 싶어. 돈도 많이 벌고 나도 할 수 있다고 하니까, 해보려고.”

“그래, 해라. 대신 계약할 때 꼼꼼히 볼 거야.”

“응, 엄마.”


계약을 정말 꼼꼼히 본다는 건 맞았는지 계약 찍는데, 어머니는 정말 신중했다.


“그럼 교육은 필수라는 거죠? 똥 멍청··· 아니라! 귀한 제 아들이 진짜로 교육이 되나요?”

“하하, 저희는 공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따로 인성, 성에 관한 교육도 다 받습니다.”


다른 것보다 내 교육에 관한 것에 관해 물어보는 것이 훨씬 많았지만, 할 수 있다는 것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시크한 어머니는 쿨하게 계약서 쓰자마자 가버렸고 그날로 연습생이 될 수 있었다.


“춤은 기본기만 하면 늘겠다. 재능이 있는데?”

“감사합니다.”


처음이었다.


무언가 잘한다, 재능이 있다는 말은.


항상 공부도 못하고 성격도 나쁘다고 한 소리를 듣던 김진이었다.


“너 뭐야, 다리 왜 절어? 아프면 쉬어야 할 거 아냐. 병X아.”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욕을 생각하면 고쳐야 하는데 싶다가도.


“넌 진짜 고쳐야 한다니까? 걱정하는데, 왜 욕을 하냐고. 네가 욕쟁이 할머니야 뭐야?”

“걱정해줘도 지X하네.”

“아, 데뷔하면 쟤도 욕 안 하겠지. 설마 욕으로 논란이 뜰까.”

“쟤 그래도 착하잖아. 저 얼굴에 저 키에 흠 하나는 있는 게 인간적이야.”


욕은 많이 했어도 한 번도 모난 소리나 잘못된 행동으로 힘들게 한 적이 없었다.


춤 실력이야 재능이 있었고, 친화력도 좋은 편이었다.


“그게 가장 큰 문제라는 거야. 데뷔 조에 유현 형이랑 정한 형이 있긴 한데, 제지보다는 허허 웃는 타입이잖아.”


엄마가 쓰는 만큼은 욕을 썼긴 했지만, 아이돌을 하면 고쳐야 하나 입을 비죽였다.


“알아서 되겠지···.”



* * *



데뷔 조를 뽑는데, 배우준, 새하얀과 같이 뽑혀서 올라갔다.


비주얼로 봤을 때나 배우준의 인지도를 생각해도 정말 괜찮은 조합이라고 생각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 진짜 오디션에서 상어 가족 불렀어?”


먼저 다가온 건 배우준이었고, 새하얀은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다.


상처를 달고 다녔지만, 진도 놀다 보면 멍들고 까진 적이 많았기에 그러려니 했다.


“밥 같이 먹으러 가자. 막내도.”

“저도요?”

“응, 자꾸 다쳐오니까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홀로 여유로운 배우준이었다.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모르면서.


배우준과 1년을 보내며 데뷔를 앞두고만 있었던 때였다.


“넌 진짜 배우준 때문에 욕 줄었다. 데뷔해도 배우준이 막아줄 듯?”

“야, 당연하지. 그래서 아이돌 데뷔만 남겨놔서 좋겠다?”

“좋겠지, 꿈꾸던 건데.”


온종일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었는데, 거리감이 든다면 내가 너무 꼬인 걸지도 모른다.


애써 웃으면서 넘기려고 했지만, 묘하게 날카로운 친구들이었다.


“아, 이제 너 데뷔해서 우리랑 거리 두고 싶겠구나.”

“야, 미안하다. 내가 너무 늦게 알았네. 가자, 혼자 있고 싶으시다는데.”


이젠 물 마시는 것도 혼자 마셔야만 했다.


익숙하다고 넘기고 싶었지만, 그날따라 왜 연습실이 생각났는지.


“다들 연습 안 하고 뭐 해?”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자 굳은 표정의 멤버들과 실장님, 한수 형이 보였다.


지독한 이 침묵이 뭘 의미하는 건지 몰라서.


“뭐야··· 뭔 일인데?”

“학폭 논란 터져서 아무래도 배우준이 나갔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문을 닫는 것도 까먹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잘못 들었어야만 했다.


“에이, 거짓말··· 거짓말을 누가 이렇게 쳐.”

“글은 올라갔고··· 회사에 증거 사진까지 보냈더라고. 배우준은 말이 없었고.”

“그럼, 말을 들어보고 정해야지. 이게 무슨··· 당사자는 말도 안 했는데!!”

“진아···.”

“다 뭐하냐고!!”


데뷔 조가 되면 핸드폰을 반납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전화 주세요. 형.”

“아니, 원칙이···.”

“달라고요, 전 들어야겠으니까!”


한수 형에게 받아낸 핸드폰으로 배우준에게 연락한다.


연결음이 끊겼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도망가는지 이해가 안 됐다.


받을 때까지 연락했지만, 받지 않는다.


“왜 안 받냐고··· 왜 안 받아···.”


우리 함께 데뷔하기로 해놓고 이렇게 말도 없이 떠나면 다냐고.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였던 진에게 처음 생긴 시련이었다.


“새로운 멤버가 아무래도 들어와야 할 것 같은데···.”


실장님의 말이 듣기가 싫었다.


방금 나간 멤버를 버리고 새 멤버로 바꾸려는 것이 사람으로서 그게 맞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을 어떻게 상품처럼 취급해? X발··· 진짜······.”


배우준 때문에 참았던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막아줄 사람이 없을 테니까 멈출 줄을 모르고 나오는 욕에 연습을 게을리했다.


새 멤버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차피 데뷔도 밀린다.


“받아, 좀···.”


배우준이 연락을 받아서 해명하고 모든 걸 되돌리길 바랐다.


그는 연락을 받지 않았고 결국 새 멤버로 온하나가 들어왔다.


“이름 온하나, 나이 18살임.”


초딩 같은 말투, 자신보다 작은 키, 배우준과 다른 느낌의 얼굴.


모든 것이 배우준과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게 더 열 받게 했다.


“우준이 파트에 하나가 들어가면 되겠네.”

“넹.”


왜 쟤가 배우준 자리를 채워야 하는 건지.


“난 네가 싫어. X발, 그냥 아주 몸에 개미가 지나다니는 엿 같은 기분이라고.”


그런 그를 붙잡고 욕이라도 하고 비난이나 실컷 해서 쫓아낼 생각이었다.


온하나는 생각보다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응, 나도 네가 싫어. 아주 아주 싫다고.”

“난 근데 데뷔해야 해. 너도 그렇잖아?”


애써 당황한 걸 지우고 싫다는 듯이 표정을 와락 구긴다.


그런데도 끄떡없이 무덤덤한 온하나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냥 싫었다.


이렇게 이중적인 사람은 싫었다.


“그러니까 날 좀 예쁘게 봐줘. 난 진짜 이걸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러니까.”

“··· 내가 싫다며?”

“싫다고 밀어내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나는 너와 붙어 다닐 거고 어떻게든 너와 친해질 거야.”


무심한 표정을 지우고 장난기가 넘치는 얼굴로 손을 내밀며 진의 손을 억지로 끌고 와서 마주 잡는다.


급하게 손을 떼려는데, 그의 말에 뗄 수가 없었다.


“난 너와 데뷔를 해야만 하니까, 싫으면 넌 날 밀어내. 난 네 옆에 붙어있을 테니까.”


그건 배우준과 비슷해서.


그래서 그랬다.


단순한 변덕.


연락받지 않은 친구가 미웠으니까.


“야!! 당연히 야식은 치킨이라고!! 우리가 무슨 민족이야? 치킨의 민족이야! 알아?!”

“응~ 그건 배X의 민족이고요. 밤엔 피자임! 암튼 그럼 수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친해질 생각은 없었다.


막내가 학폭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나는 정말 좁은 식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하나에게 미안했던 것 같다.


“야, 피자 먹을래?”

“아니, 치킨 먹을 거임.”


결국, 치킨과 피자를 시켜서 나눠 먹는 진과 하나는 TV를 본다.


재밌는 예능을 하기에 깔깔 웃으면서 보다가 하나가 다리를 건네주며 물었다.


“그래서 연락 안 하려고?”

“뭐가?”

“아니, 내가 오기 전에 멤버였던 사람.”

“됐어, 왜 연락해··· 날 피하는 사람에게.”


하나는 눈을 데굴 굴리며 피자 한 조각을 들어 입에 물었다.


피자가 조금 식었는지 치즈가 굳었지만, 맛은 있었다.


역시 치킨보다 피자라며 우물거리던 하나가 말한다.


“모르지, 그쪽도 너에게 연락할 용기가 없는 걸지도.”


디핑소스에 푹 찍는 하나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갈릭 디핑소스에 파마산 치즈까지 뿌려서 입에 넣는 모습에 진은 치킨 다리를 물어뜯었다.


맛있었다.


역시 자신은 치킨파였다.


“연락해봐, 아님 문자라도 남기던가. 친구잖아, 둘이 정말 친했고.”

“··· 너 전에 있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해?”

“아, 혹시 내 눈치 보면서 연락 안 했던 거?”

“아니!! 누가 그렇대?! 허, 참 웃기네.”


다리를 덜덜 떨면서 치킨을 먹는 모습이 웃겨서 하나는 엣지 부분을 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얼굴에서 다 티가 나는 진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연락해봐, 분명 대화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눈치 보느라 연락 안 하다가 진짜 친구 잃으면 곤란하니까.


“됐어··· 치킨 다 먹었으면 내가 먹는다?”

“난 피자 먹을래, 네가 치킨 먹어.”

“아니, 치킨 먹는다더니 왜 피자를 먹어?”

“나만 맛있는 거 먹을 순 없잖아! 너 치킨 좋아하니까 시켰다! 왜!”


감동한 건지 쭈뼛대는 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 다 티 나는 걸 보면 얘는 일반인으로 살았으면 아주 큰 문제가 생겼을 거다.


“먹기나 해! 근데 피자 디핑소스 왜 이렇게 많이 시켰어?”


디핑소스를 뜯는 하나를 보며 치킨을 발골하고 있는 진이었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게 TV를 보면서 말한다.


“네가 소스 없이는 피자 안 먹길래. 먹을 것 같아서 많이 시켰지.”

“안 그렇게 생겨놓고 섬세하네.”

“욕하지 마. 너도 같아.”


우리는 조용히 각자 음식을 먹었다.


어색한 말을 서로 아무렇지 않게 한 것에 대한 후유증이었다.


어색한데도 치킨은 정말 맛있었다.



* * *



만나기로 한 카페, 약속 시각에 도착한 진은 앉아있는 한 남자를 보고 걸어간다.


긴장되는 탓일까 손에 땀이 흘렀다.


바지에 쓱쓱 닦아낸 땀과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선명해진다.


“배우준?”

“오랜만이네.”

“그러게.”


선글라스를 내리고 웃는 배우준의 얼굴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은 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사이라는 것이고.


“잘 지냈냐?”

“잘 지냈지. 나야 하기만 하면 대박을 터트리는 사람이잖아.”


장난스럽게 말하는 배우준의 말에 옛날로 돌아가는 기분이 느껴졌다.


실내의 더운 공기와 다소 추워진 날씨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 넌 잘 지낼 것 같았어. 그때도 그랬잖아.”


서로 말을 안 하고 조용히 빨대를 휘저으며 애꿎은 음료만 마시고 있었다.


그 침묵을 깨는 건 배우준이었다.


“내가 연락을 안 했던 거 있잖아. 의도적으로 답 피했던 거···.”

“··· 어, 그거.”


느릿한 말투, 그건 배우준이 곤란하거나 진심을 말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내가 물 흐릴 것 같더라고, 아이돌 된 널 보면 부러워서 괜히 심술을 부릴 것 같기도 했고.”


생각보다 내가 대인배가 아니라서 말이야.


이젠 아니라며 푸스스 웃어버리는 우준이었다.


여전히 아이돌이 되고 싶은 건 아니라는 생각에 괜히 씁쓸해진다.


우리는 항상 데뷔를 목표로 달렸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게 당연한 건데, 왜 이렇게 섭섭한 건지.


“그렇지만 재밌었어, 너랑 친구였던 때도 그리웠고 새하얀이 계속 그러더라. 너한테 연락 한 번 해달라고.”

“막내가?”

“응, 막내가. 그거 보고 느꼈지. 아, 너희 그룹은 진짜 끈끈하구나. 부럽다.”


나도 그렇게 내 편이 든든하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너도 편안해 보이고 이젠 욕을 내뱉지도 않고 침착하게 바뀌었잖아. 분명 널 이렇게 오게끔 만든 사람들도 다 멤버들이었겠지.”


씁쓸하게 웃는 배우준은 조용히 손가락을 테이블에 톡톡 치면서 눈동자를 굴렸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나는 학폭이 아니었지만, 스스로 두려워서 숨은 거였다.


내가 내 복을 찬 것과 다름이 없는데, 애써 그곳에 물이나 흐리지 말자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렸다. 사실 아직도 조금은 부럽고 그렇지만, 이젠 어느 정도 나도 여유롭거든.”


배우준은 본래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뭐든 이뤄내고 순수한 진을 지켜주는 멤버들이 있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아이돌도 하니까.


그게 배가 많이 아팠다.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고 한 번 멤버였다면 우리 멤버니까.”

“어?”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고개를 들었지만, 진이 웃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 어깨에 힘 하나 없는 상태로 환하게 웃었다.


“활동을 같이 안 한다고 멤버가 아닌 건 아니잖아.”


진은 이때까지 한 적이 없던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내가 나가서 계획 다 무너지고 그랬잖아. 다들 별로 안 좋아할 거고···.”

“아니, 다 좋아할걸. 나도 그렇고 우리 멤버들도 그렇고.”


컵의 표면에 물방울이 맺혔다.


흐르는 물방울이 바닥에 닿자 컵 모양으로 자국이 남았다.


컵이 비워진 진과 달리 여전히 음료가 반이나 남은 배우준이었다.


“만나서 노래도 같이 부르고 숙소에 찾아와. 콘서트도 와! 콘서트 초대해주면 우리도 갈게.”

“김진···.”

“친구잖아. 멤버였던 것 이전에 우린 친구였으니까.”


배우준의 여유로운 표정이 완전히 무너졌지만, 김진은 여전히 활짝 웃고 있었다.


그게 정말 진심이라는 듯.


여전히 그때와 같이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배우준의 입매가 잘게 떨려온다.


“다 컸네. 어린 애처럼 굴던 김진 어디 갔어?”

“넌 애가 다 됐고.”

“그렇··· 네, 나 애가 됐네.”


넌 그렇게 크고 있는데, 나만 시간이 멈춰있었던 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씁쓸했다.


“그래도 지금 네가 더 인간미 느껴져서 좋네. 전엔 너무 어른스러워서 형 느낌이었는데.”

“무슨···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랬어. 어른 같아서 유현 형이 너 맨날 리더 하라고 했잖아.”

“그랬지··· 그랬었네. 그땐.”


시간이 째깍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잠깐 시간 낸 거라고 돌아가 봐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나의 뇌는 굳어버린 것 같았다.


시간을 보는 것도 잊은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야, 일어나. 너 늦겠다.”


피식 웃으며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나는 김진은 개운해 보였다.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일어나는 진을 쳐다보는 우준이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어디 가냐는 듯 쳐다보는 시선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너 일정 있잖아, 내가 그것도 모를까 봐? 너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아는데.”

“조금 더 있어도 되는데?”


급하게 핸드폰 시계를 보는 우준과 달리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펑크니, 인성이니 논란이 뜨기도 좋았다.


아이돌 생활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돌아가는 구조를 알았다.


“오늘이 날이 아니잖아, 다음엔 숙소 초대 한 번 할게. 우리 숙소 개 좋음.”

“풉, 야··· 말투 어디서 옮아온 건데? 완전 초딩 같았다. 방금.”


눈을 데구르르 굴리던 진이 우준을 보며 웃었다.


있다고, 멤버 중에 되게 어른스러운 척하는 놈 하나가.


배우준은 못 알아듣겠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가자며 고개를 까딱였다.


“또 보자.”


완전히 비워진 컵 두 개와 배우준의 개운한 표정이 카페 유리로 보였다.


진의 옆으로 키가 작은 남자 하나가 다가와 옆구리를 콕 찌른다.


“대화는 잘했고?”


태연하게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하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본다.


“뭐야, 감시했어?”

“아니, 난 끌려왔지. 저기 멤버들 다 있어.”


돌아본 곳에는 숨었다고 나름 몸을 구기고 있는 멤버들이 보였다.


의심스러울 만큼 마스크와 모자, 목도리까지 한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아니, 다들 거기서 뭐해? 그게 숨은 거야?”

“못 찾은 네가 할 말은 아닌 듯.”

“뭐래.”


기분 좋은 미소로 멤버들에게 다가가는 진은 멤버들과 함께 돌아가면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었다.


이유는 진과 하나가 먹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적당히 먹어. 배탈 나.”

“쟤네 벌써 두 개나 먹었어.”

“형, 좀 천천히 드세요. 하루 하나씩만 드시라니··· 아니, 또 까요?”


세 개를 먹는 모습에 기겁하는 하얀과 유현이었지만, 정한은 묵묵히 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 고생했다는 듯, 하지만 진은 오늘 정말 기분 좋은 날이었다.


“아니, 우리가 먹겠다는데, 왜 말림? 우리 부모님도 안 말림.”

“그렇지, 나와서 아이스크림 먹는 건 국룰이라고.”


이렇게 가족 같은 멤버와 함께 있고 오래된 친구도 되찾은 날이니 말이다.


다음 날, 배탈이 났긴 했지만··· 그것도 나름 추억이니까.


“오늘은 치킨 각이다!”

“안 돼, 너 살 너무 쪄서 살 빼야 한다더라.”

“악!”


살 빼는 건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진이었다.


“난 왜요!! 난 살 안 쪘어!”


하나도 같이 포함되니 이번에도 외롭진 않을 것 같았다.


작가의말

꽤 길었을 텐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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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외전 - 최초의 회귀자 (END) +3 21.10.31 199 11 15쪽
146 외전 - 정선우(첸시)에게 주어진 기회 +2 21.10.31 116 5 14쪽
145 외전 - 은유현의 아이돌이 된 이유 +2 21.10.10 116 7 18쪽
144 외전 - 매정한의 아이돌이 된 이유 +2 21.10.04 120 7 15쪽
» 외전 - 김진의 아이돌이 된 이유 +3 21.09.27 135 9 21쪽
142 외전 - 온하나의 아이돌이 된 이유 +2 21.09.24 186 9 14쪽
141 True Ending +6 21.09.18 342 13 14쪽
140 작별 +(짧은 외전) +5 21.09.17 262 13 14쪽
139 시스템의 끝 (5) +7 21.09.16 230 11 13쪽
138 시스템의 끝 (4) +2 21.09.15 156 10 15쪽
137 시스템의 끝 (3) +1 21.09.14 166 15 14쪽
136 시스템의 끝 (2) +2 21.09.13 173 13 13쪽
135 시스템의 끝 (1) +2 21.09.12 193 12 12쪽
134 꿈을 꾸는 이유 (19) +1 21.09.11 177 12 15쪽
133 꿈을 꾸는 이유 (18) +2 21.09.10 161 14 14쪽
132 꿈을 꾸는 이유 (17) +3 21.09.09 158 13 17쪽
131 꿈을 꾸는 이유 (16) +2 21.09.08 162 12 13쪽
130 꿈을 꾸는 이유 (15) +2 21.09.07 166 14 14쪽
129 꿈을 꾸는 이유 (14) +1 21.09.06 158 11 12쪽
128 꿈을 꾸는 이유 (13) +3 21.09.05 178 12 16쪽
127 꿈을 꾸는 이유 (12) +1 21.09.04 168 10 14쪽
126 꿈을 꾸는 이유 (11) +2 21.09.03 162 11 13쪽
125 꿈을 꾸는 이유 (10) +2 21.09.02 173 9 13쪽
124 꿈을 꾸는 이유 (9) +3 21.09.01 177 12 13쪽
123 꿈을 꾸는 이유 (8) +3 21.08.31 203 13 14쪽
122 꿈을 꾸는 이유 (7) +2 21.08.30 186 14 16쪽
121 꿈을 꾸는 이유 (6) +2 21.08.29 194 1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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