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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래 님의 서재입니다.

이야기 무덤의 살아있는 성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글나래
작품등록일 :
2021.01.18 17:25
최근연재일 :
2021.04.15 16:05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360
추천수 :
119
글자수 :
171,217

작성
21.02.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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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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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이사.

DUMMY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다.


당연하게도 ME12차원은 멸망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지인들 관점에서 해피 엔딩이었냐고 한다면··· 그건 또 조금 애매하다.


당장 생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식량 문제는 여전히 남아서 그들을 괴롭혔다.


동쪽 곡창지대가 자연 정화되기까지 수십 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하나둘씩 돌아온 세피울 기업의 공장에서 일하고 식량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국제법에 최저 임금 따위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


사람들은 온종일 죽도록 일하고도 하루 겨우 먹을 정도의 음식만을 배급받을 수 있었다.

지구의 산업혁명기의 유럽 뺨치는 광경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대륙을 절반 가까이 뒤덮은 침식은 자연스럽게 세피울의 용병들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저레벨 악귀들을 잡아서 나온 마석을 세피울, 혹은 세피울 못지않은 기술력을 가진 차원에 가져다 팔았다.


이렇게 의뢰를 받지 않고 마석만 모아가는 용병들, 통칭 채굴꾼들의 유입은 경제를 활성화했다.

이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전통’ 식당과 ‘전통’ 시장들이 생겨났다.


한 가지 재밌는 건, 전통 요리를 파는 식당도, 세 왕국의 문화가 담긴 기념품을 파는 가게의 주인도 모두 세피울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와 도로시는 그나마 한적한 도시 중 하나에 집 하나를 얻어서 그냥 조용히 지냈다.


중간에 나는 세피울에도 두 번 갔다 왔지만, 이번엔 암살 시도 같은 건 없었다.

아무래도 저번에는 평소 내가 자주 가던 퓨스타에 들른 게 꼬리를 밟힌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도로시는 그동안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잃어버린 수명을 채우는 데 집중했다.


“준비는 다 됐어?”

“진작에 끝났지~.”


저번처럼 당장이라도 이 차원에서 도망쳐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속을 세피울로 만들어 놔서 나쁠 건 없었다.


“아, 이거 은근히 긴장되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는 6개월 전에 도로시가 안 간다고 버텨서 못 했던 일을 마저 하려고 하고 있다.


콱!


앞마당으로 나온 나는 SS12를 바닥에 박아서 고정했다.


도로시가 먼저 마력을 끌어올리며 산들바람을 일으켰다.


바람에 섞인 마력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산들바람은 이내 돌풍으로 변했다.


휘오오오오···!


그녀의 몸이 점차 인간의 형체를 잃고 슬라임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원래 마령인이란 초 고농도의 마력이 의지를 가진 것이다.

따라서 육체의 형상이란 게 의미가 없는 게 정상인데···.

그런데도 자아 정체성 때문에 하나의 형상을 갖는 게 보통이다.


10레벨 이상의 마령인들은 자신의 형상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아직 너무 먼 이야기.

그래서 이런 꼼수를 쓰기로 했다.


예상했던 대로 반쯤 흐물흐물해지다가 그 상태에서 더 변하지 못하는 도로시.

그녀에게 나눠서 저장된 내 서시를 통해 우회 접근해 마력의 통제권 일부를 양도받았다.


전생에서 대마법사라고 불린 이후로는 마력 컨트롤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건만, 이번엔 좀 힘들었다.


이목구비가 완전히 사라지고 팔, 다리, 몸, 머리의 구분도 점차 흐려진다.


“으에에엑··· 기분이 이상해애애···!”


슬슬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도로시는 이제 완전 온라인 게임 초보자 사냥터에 흔히 있는 슬라임처럼 변했다.


“너도 좀 더 해봐!”

“최대한··· 하고 있어어어···.”


금방이라도 원래의 사람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은 그녀를 쭉쭉 잡아 늘여서 내 마력회로 안으로 끌어당겼다.


으어어억, 하는 소리를 내는 도로시.


점차 회로 안에 있던 순수한 마력이 밀려나고, 그 자리를 도로시가 채웠다.


다른 누군가가 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감각은, 뭐랄까······.


존나 무서웠다.


여기서 통제가 풀려서 얘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 난 ‘뻥!’ 하고 터진다.


이 섬뜩한 감각을 조금도 더 느끼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바로 포탈을 활성화했다.


[활성화까지 29초.]


[28초.]


[27초.]


.

.

.


[포탈이 활성화됩니다.]




-*-*-*-




메시지도 전부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차원문을 넘었다.


미친 듯이 달려서 입국 심사장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1구역을 벗어나, 2구역, 3구역, 4구역에 5구역까지 지나쳐 오염지대까지 갔다.


도로시가 마력회로에 들어가 있는 바람에 마력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

그대로 택시를 보내고 오염지대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슬슬 더는 버티기 힘들어질 때쯤 도로시를 꺼냈다.


“으으으, 무슨 기생충 뽑아내는 느낌이야···.”

“뭐 임마? 기생충이라니!”


순식간에 원래의 인간 여성의 형상으로 돌아가는 도로시.


일부러 이틀 정도를 그 자리에서 야영한 뒤, 오염구역을 벗어났다.


그대로 돌아가기엔 시선을 너무 많이 끌 것이 뻔했기에, 그녀는 미리 준비해 둔 후드티를 입고, 얼굴을 다 가리는 가면을 썼다.

대낮에 이렇게 꽁꽁 싸매고 다니는 것도 은근히 시선을 끌긴 하겠지만.


이번엔 택시가 아니라 지하철을 타고 다시 1구역으로 돌아갔다.


“아니 이게 무슨 시간 낭비야, 대체.”

“어쩔 수 없잖아? 너 신분을 오염구역에서 자연 발생한 마령인이라고 할 건데, 그거에 맞춰야지. 여기 CCTV가 한두 개도 아니고.”

“에효···, 나도 알긴 알아. 힘들어서 그러지.”


확실히 그녀는 많이 지친 기색이었다.


형태를 바꾸는 과정에서 마력을 많이 잃은 모양이다.


이번엔 늘 내리는 종점이 아니라 그보다 한 정거장 앞에 있는 중앙 행정센터 역에서 내렸다.


지구와 마찬가지로 잡다한 것들은 구역별로 최소 10개씩은 있는 지방 행정센터에 가서 처리하거나 아예 인터넷으로 해도 된다.

하지만 마령인의 신분 등록은 그런 ‘잡다한 일’에 포함되지 않는, 꽤 중요한 일이었기에, 번거롭게 1구역까지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오염구역에서 마법 연습을 하다가 만났다고요?”

“네.”

“레벨은 8로 측정이 되고······. 꽤 높네요?”

“인간들 도시 들어갈 마음 없었다. 밖에서 오래 살았다.”


담당 공무원의 말에 도로시가 일부러 말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척, 어눌하게 답했다.


이후에도 그녀는 공무원의 질문에 이런 식으로 답답하게 대답했고,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이 일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던 건지, 그는 30분 만에 시민권을 내어줬다.


그리고 이건 나도 몰랐던 건데, 이런 식으로 자연 발생 마령인을 데리고 온 사람에게는 1억 셀의 보상금이 나온다고 했다.

거기에 시민권을 받은 마령인에게 정부에서 주는 온갖 지원금까지 더하면 꽤 많은 꽁돈이 생길 예정이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4구역으로 향하고 있을 때, 도로시가 물었다.


“이제 또 뭐가 남은 거더라?”

“치안 좋은 곳에 집 구하는 거랑 너 마력 충전하는 거.”


그녀가 반신반의하는 말투로 재차 물었다.


“근데 그거 진짜 가능한 거야? 마령인한테 마력을 넣어 주는 거 말이야.”


아, 그걸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나.

확실히 중세 수준의 차원에서 평생을 산 사람에겐 말도 안 되는 기술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마령인에게 마력을 넣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안 그래도 굉장히 길던 그들의 수명이 사실상 무제한 연장된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돈만 있다면 평범한 인간도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피울에서 이는 별로 대단한 기술이 아니었지만.


“네 생각만큼 그렇게 대단한 기술도 아니야. 여기 말고도 마도 공학이 어느 정도 발전한 차원들은 그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어.”

“아니,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그렇지···.”

“나도 자세히는 몰라. 최소한으로 정제한 마력을 역 정제하는 방식이라고 하더라고.”


물론 꽤 비싸긴 하지만.


역시 여기선 돈만 있으면 못 하는 게 없다.




-*-*-*-




4구역, 그중에서도 솜씨 좋은 경찰 업체가 담당하는 지역에 있는 집을 얻었다.

그냥 구매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차피 오래 살 집은 아니었기에 월세로 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저희 E 시큐리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으니, 믿고 계셔도 됩니다!”


지구나 1, 2, 3구역과는 달리, 4구역에서는 경찰의 보호나 소방(消防) 서비스 등을 모두 보험의 형태로 가입해야 했기에 이것 역시 바로 끝내버렸다.


삐빅!


경찰 업체 직원이 나가자마자 또 알림음이 울렸다.


[블랙스트림 배터리]


열어준 문으로 들어온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가슴에 붙어있는 검은 명찰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어지간한 냉장고보다 좀 더 커 보이는 종이상자를 수레에 얹어서 끌고 들어왔다.


“가랑님 본인 맞으신가요?”

“네.”

“옙. 그러면 여기 서명 부탁드립니다.”


남자가 내민 태블릿에 대충 서명을 하고 나머지 두 명이 조립하고 있는 마령인 전용 마력 충전기를 바라봤다.


새하얀 금속 재질로 된 원통형 충전기는 조립하고 나니 상자에 들어있을 때보다 더 커져서, 높이는 천장에 닿을 정도에 너비도 가로세로 2m씩은 돼 보였다.


서명을 받은 남자는 설치를 돕는 대신, 홀로그램을 띄워서 간단하게 주의사항을 얘기해 주었다.


“마력 교환 비율은 대략 10:1 정도입니다. 마력 사용 요금은 당연히 꽤 많이 나올 거고요, 이거 하나까지는 괜찮아도 마력 많이 잡아먹는 제품을 하나 더 동시에 쓰시면 두꺼비집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거 쓰실 때는 기왕이면 그러지 않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설치 기사 셋이 빈 상자를 비롯한 쓰레기들을 깔끔히 가지고 나가자, 비로소 집이 조용해졌다.


“와··· 미친. 정신없어······.”


도로시의 말이 내 심정을 대변해 줬다.


그도 그럴 게, 오늘 하루 동안 한 일이, 도로시 시민권 발급, 관련 지원금 신청하기, 집 계약하기, 사설 경찰과 소방 서비스 가입, 거기에 방금 끝낸 충전기 설치까지, 총 5개였다.


나 역시 정신은 정신대로 피곤하고 몸은 몸대로 피곤한 상태였다.


도로시도 피곤했는지 어디 구석에 처박혀서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자는 것 같기도 했는데, 눈이 보이지 않다 보니 확실하진 않았다.


나 역시 한숨 자려고 했으나,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한답시고 집안 곳곳에 방어 마법을 떡칠하느라 밤을 새워 버렸다.

덕분에 여기, 15층은 핵융합 폭탄에 직격당해도 1분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땅 위의 벙커’가 됐지만, 내 체력은 완전히 고갈됐다.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시 밤이 찾아온 이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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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살아있는 별. (1부 완결.) 21.04.15 66 1 12쪽
30 잠입(2) 21.03.30 27 1 11쪽
29 잠입(1) 21.03.11 34 3 11쪽
28 우주전.(3) 21.03.04 34 1 11쪽
27 우주전.(2) 21.02.24 44 2 11쪽
26 우주전.(1) 21.02.22 49 4 12쪽
» 이사. +1 21.02.20 56 3 11쪽
24 재앙 사냥.(3) +2 21.02.18 58 3 11쪽
23 재앙 사냥.(2) 21.02.16 64 4 12쪽
22 재앙 사냥.(1) 21.02.15 47 4 11쪽
21 암살자? 21.02.13 54 4 12쪽
20 SS-12 21.02.12 56 4 11쪽
19 암시장. 21.02.11 74 3 12쪽
18 차원의 멸망.(1) 21.02.09 58 4 11쪽
17 파멸의 거인.(3) 21.02.08 58 4 11쪽
16 파멸의 거인.(2) 21.02.06 59 3 12쪽
15 파멸의 거인.(1) 21.02.05 59 3 12쪽
14 군인 론.(1) 21.02.04 68 3 11쪽
13 계약자 만들기.(2) 21.02.02 68 3 12쪽
12 계약자 만들기.(1) 21.02.01 74 4 13쪽
11 도로시 구하기. 21.01.30 67 4 13쪽
10 인간, 안드로이드, 그리고 엘프. 21.01.30 70 4 14쪽
9 탈주 안드로이드. 21.01.28 85 4 13쪽
8 커피 농장 테러범 잡기.(4) 21.01.26 80 6 14쪽
7 커피 농장 테러범 잡기.(3) 21.01.25 83 5 11쪽
6 커피 농장 테러범 잡기.(2) 21.01.23 103 5 11쪽
5 커피 농장 테러범 잡기.(1) 21.01.22 119 5 11쪽
4 전생과의 계약.(4) 21.01.21 11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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