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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래 님의 서재입니다.

이야기 무덤의 살아있는 성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글나래
작품등록일 :
2021.01.18 17:25
최근연재일 :
2021.04.15 16:05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361
추천수 :
119
글자수 :
171,217

작성
21.02.1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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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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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암시장.

DUMMY

인류력 12061년 2월 12일


그동안 최소한의 잠을 자거나 내가 음식을 먹기 위해 멈추는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이동하기만 했다.

내 내상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속도를 조절하기는 했다.

그래도 정신적으로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는 길에 스태프를 고쳐 보려고 시도했지만, 도저히 비전문가인 내가 뭘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안드로이드 꼬맹이들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지만,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숨어 지내고 있기를 바랄 수밖에.


같이 지낸 건 한 달밖에 안 됐고 사실상 내 일상을 박살 낸 주범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긴 했다.

그새 정이라도 든 건지.


데려오면서 이용하겠다느니 어쩌니, 냉정하게 말해놓고 막상 이렇게 되니 자꾸 생각이 난다.

복수에 대해 마음을 굳혀 놓고도 이렇게 무르게 굴어서야···.




-*-*-*-




인류력 12061년 2월 27일


아이루아 왕국을 완전히 벗어났다.


벌써 왕국 동부는 악귀들로 뒤덮인 마경으로 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피울의 기업들은 아예 이 차원에서 하나둘씩 발을 빼는 중이라고.


9레벨 악귀면 확실히 세피울 군이라고 해도 벌레 잡듯이 처리할 수 있는 놈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인 건 맞는데······.

기업들이 아예 발을 빼는 상황은 뭔가 이상하다.


설마 이 차원을 완전히 버리기로 결정했을리는 없고.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




인류력 12061년 3월 9일


아무래도 세피울이 이 차원을 완전히 버리기로 한 모양이다.


아이루아 왕국은 완전히 멸망했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세 왕국도 벌써 국토의 20%가량씩을 상실했다.


현지인들은 마왕을 물리칠 용사를 찾고 있지만,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건 안 나타날 거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차원이 악귀에 의해 멸망하거나 멸망 직전까지 갔지만, 용사 따위가 구원해 낸 차원은 단 하나도 없었거든.

내가 전생에 살던 지구도 마찬가지였고.


세피울이 버리기로 하면 그냥 멸망하는 거다.

현실은 동화책이 아니다.


도로시는 저번 주쯤부터 계속 기운이 없다.

고작 이 정도 안 쉬고 이동한 걸로 마령인이 지쳤을 리는 없으니, 아마 심리적인 거겠지.


자기 ‘나라’도 아니고, 무려 자기 ‘차원’이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데 기운이 날 리가 없긴 하다.


원래는 대륙 중앙쯤에 있는 인적 드문 산속에 오두막 같은 거 하나 지어놓고 몇 달 정도 숨어 지낼 작정이었지만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일단 대륙의 서쪽 끝까지 가 봐야겠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




인류력 12061년 4월 21일


대륙의 서쪽 끝, 해안에 도착했다.


지원에 대한 소식은 아예 없고, 대규모 난민촌이 대륙 서부 곳곳에 형성됐다.

난민들은 물론이고 이제는 모두가 굶주리기 시작했다.


ME12b차원의 곡물 생산은 대부분 동부의 국가들이 맡고 있었는데 싹다 멸망해 버렸으니.

이대로 1년만 더 가면 귀족들까지 굶을지도 모르겠다.




-*-*-*-




인류력 12061년 5월 30일


아무래도 세피울에 한 번 갔다 와야겠다.


원래는 내가 안드로이드 이스케이피들 데리고 도망친 걸 빌&조니가 잊을 때쯤, 그러니까 한 6개월쯤 있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근데 상황이 좀, 아니 많이 달라져서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첫째로, 새 스태프가 필요하다.

스태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증폭기가 형체도 못 알아볼 정도로 타버렸다.

이건 장인이 아니라 장인 할아버지가 와도 못 고친다.

새로 사는 수밖에.


둘째로, 내상 치료제가 필요하다.

그간 도로시를 이 차원에서 빼낼 방법을 찾고 있었고, 얼마 전에 찾아냈다.

다만, 최상의 컨디션으로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난이도가 극악이다.

당연히 이렇게 내상을 줄줄이 달고 있는 상황에선 100% 실패한다.


굉장히 비싼 주제에 일회용이라, 그동안은 살 엄두를 못 냈던 물건이긴 한데···.

이제는 고레벨 악귀들 잡아서 나온 마정석이 넘칠 지경이라 그거 팔면 돈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새 스태프 값도 이 돈으로 치르면 되겠지.


관건은 속도.


아직 빌&조니는 탈출한 안드로이드들 찾는 데 신경을 쓰고 있을 거다.


단순히 값만 비싼 게 아니라, 최신 기술이 들어간 극비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탈출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은 죄다 살인멸구(殺人滅口) 하려고 혈안이 돼 있겠지.


내가 돌아왔다는 걸 눈치채기 전에 위에서 말한 두 목표를 다 달성하고 차원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




귀환 포탈을 타고 돌아온 세피울은 너무 평화로워서 오히려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


방금까지 있던 차원은 지옥이 따로 없었는데, 여기 사람들은 그냥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 괴리감에 불편함을 느낀 것도 잠시, 벽에 붙은 현상수배 리스트를 발견하고 그리로 다가갔다.


예상했던 대로 내 얼굴은 거기 없었다.


정부군과 싸우긴 했지만, 애초에 그들이 하던 일 자체가 어딘가 구린 일이었던 만큼 공식적인 수배를 때리지는 못한 모양이다.

빌&조니 역시 자기네가 개발하던 안드로이드를 분실했다는 걸 경쟁사들에게 알려서 좋을 게 하나 없으니 정부와 비슷한 입장일 터.


[···내리실 문은 오른쪽. 오른쪽입니다.]


온갖 투명화와 인식 저해, 환상 계열 1, 2위계 마법들을 사용해서 지하철에 무임승차 했다.

당연히 돈이 아까워서 그런 건 아니다.


뭐든지 대중교통 요금을 결제하려면 전자신분증을 인증하고,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보는 정부가 관리하는 빅데이터 저장소에 저장되는데···.


아무래도 ‘정부는 기업을, 기업은 정부를 견제한다’는 세피울의 설립 이념을 아무도 안 지키는 것 같다는 말이지.


지상으로 올라오니 익숙한 풍경이 날 반겼다.

익숙하다고 해서 내가 그걸 좋아한다는 건 아니지만.


불법 마약을 과다복용했는지 침을 질질 흘리면서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백발의 노인.

굳이 ‘불법’ 마약이라고 하는 이유는 식약처의 공식 인가를 받은 ‘합법’ 마약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합법이라고 해서 몸에 안 해로운 건 아닌 주제에 또 더럽게 비싸서 잘 팔리는 건 아니지만.


으히히히,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는 노인을 무시하고 최대한 CCTV를 피해가며 퓨스타로 향했다.




-*-*-*-




문 옆에 붙어있는 현상수배 포스터에 내 얼굴이 있나 습관처럼 확인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번 돈을 술이랑 도박에 다 탕진하기라도 하는 건지 내가 올 때마다 있는 도박꾼들을 피해 카운터로 향했다.


코앞에서 인식 저해 마법을 부분적으로 해제하자 그제서야 날 눈치채고 작게 놀라는 사라.


“너···! 도망간 거 아니었어? 뭔 일인지는 몰라도 너 찾는 사람들이···”

“쉿. 당장 해야 할 일만 몇 개 처리하고 바로 사라질 거야. 그러니까 무기점 문 좀 열어줘.”


사라는 조금 긴장한 눈치로 카운터 뒤편의 철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작업대에 앉아서 지루한 듯 하품을 하던 아론 역시 날 보고는 잠이 확 달아난 표정을 지었다.


끼이이- 쿵.


제니가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둘 다 너무 믿으면 안 될 것 같다.

이 정도 반응이면 내 목에 비공식적으로 걸린 현상금이 대체 얼마일지 감도 안 잡힌다.


퓨스타는 기본적으로 이런 일에 끼지 않는다는 원칙을 상당히 엄격하게 지킨다.

하지만 모든 일에 절대라는 건 없는 법.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하긴 해야겠지.


“자네 저번에 스태프 사간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그새 경지가 오른 건가?”

“아뇨. 증폭기가 완전히 망가져서 새로 사야 할 것 같네요. 그리고 마정석도 좀 팔고요.”


와르르.


그간 모아 놓은 5~6레벨급의 마정석들을 작업대 위에 쏟았다.


착 가라앉은 눈으로 마정석 무더기를 바라보는 아론.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2분쯤 지속됐을 때,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정도 양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네.”

“7세대 증폭기까지 다루는 곳에서 고작 이 정도를 감당 못 한다고요?”


대놓고 ‘당신 의심스럽소’ 하는 눈빛으로 노려보니 아론이 불편한 표정으로 입을 몇 번 달싹였다.


“···더 위험하네.”

“뭐라고요?”

“7세대 증폭기 빼돌리는 것보다 자네랑 엮이는 게 더 위험하단 말일세!”


아론이 따발총 쏘듯 말을 쏘아냈다.


“그래, 당연히 이 정도 마정석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지. 근데 그게 자네 거잖나! 지금 자네 목에 비공식 현상금 걸어놓은 대기업만 두 개에 정부도 은근히 관심 갖고 있네. 미안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자네와 엮일 수 없어. 적어도 1년간은.”


시발.

대기업 두 개?

빌&조니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고?


“자이언트 사(社)네.”


내가 다른 하나가 누구냐고 묻자 아론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검은색 티켓 하나를 내밀었다.


“암시장 입장권일세.”

“······.”

“저번에 자네 스태프에 넣은 7레벨 증폭기도 거기서 구한 거네. 마지막 의리로 주는 거니 판매든 구매든 거기서 해결하게. 무려 대마법사가 관장하는 곳이니 적어도 거기서만큼은 안전할 테지.”


그렇게 별 소득 없이 퓨스타를 나왔다.


품에서 금색으로 고풍스러운 무늬가 새겨진 검은색 티켓을 꺼내,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사실 양식만 티켓같이 생겼을 뿐, 조금만 가까이서 봐도 글자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괜히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지.”


티켓에 마력을 조금 불어넣자 소유자의 눈에만 보이는 얇은 푸른색 실이 뻗어 나왔다.


허공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트는 실을 따라가니 4구역과 5구역의 경계에 절묘하게 걸쳐 있는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짓다 만 듯, 회색 콘크리트가 다 드러난 모양새였으나 티켓은 명백히 그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접근 금지 푯말을 무시하고 내부로 들어가니 금과 은, 그리고 각종 보석류로 장식된 해골이 어디선가 툭 튀어나왔다.


[티켓을··· 찢어 주시오···.]


해골이 머리를 울리는 기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면에서는 도로시의 목소리와 비슷했지만, 해골의 목소리는 신비하다기보단 기괴하고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그의 요구대로 티켓을 찢어서 내밀자, 해골은 이빨이 듬성듬성 빠져 있는 턱으로 반절을 물고는 몇 번 씹더니 꿀꺽 삼켰다.


[이걸 쓰시오···. 이걸 쓰지 않아서··· 발생하는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소···.]


해골이 입을 크게 벌리니, 거기에서 초록색 가면 하나가 튀어나왔다.


머리통만 있는데 대체 어디로 삼키고 어디에서 나온 건지 궁금해하고 있는데, 해골의 눈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즐거운··· 쇼핑··· 되시길···.]


당황할 새도 없이 연기에 휘감겼고, 이윽고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시야가 암전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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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잠입(2) 21.03.30 27 1 11쪽
29 잠입(1) 21.03.11 34 3 11쪽
28 우주전.(3) 21.03.04 34 1 11쪽
27 우주전.(2) 21.02.24 44 2 11쪽
26 우주전.(1) 21.02.22 49 4 12쪽
25 이사. +1 21.02.20 56 3 11쪽
24 재앙 사냥.(3) +2 21.02.18 58 3 11쪽
23 재앙 사냥.(2) 21.02.16 64 4 12쪽
22 재앙 사냥.(1) 21.02.15 47 4 11쪽
21 암살자? 21.02.13 54 4 12쪽
20 SS-12 21.02.12 56 4 11쪽
» 암시장. 21.02.11 75 3 12쪽
18 차원의 멸망.(1) 21.02.09 58 4 11쪽
17 파멸의 거인.(3) 21.02.08 58 4 11쪽
16 파멸의 거인.(2) 21.02.06 59 3 12쪽
15 파멸의 거인.(1) 21.02.05 59 3 12쪽
14 군인 론.(1) 21.02.04 68 3 11쪽
13 계약자 만들기.(2) 21.02.02 68 3 12쪽
12 계약자 만들기.(1) 21.02.01 74 4 13쪽
11 도로시 구하기. 21.01.30 67 4 13쪽
10 인간, 안드로이드, 그리고 엘프. 21.01.30 70 4 14쪽
9 탈주 안드로이드. 21.01.28 85 4 13쪽
8 커피 농장 테러범 잡기.(4) 21.01.26 80 6 14쪽
7 커피 농장 테러범 잡기.(3) 21.01.25 83 5 11쪽
6 커피 농장 테러범 잡기.(2) 21.01.23 103 5 11쪽
5 커피 농장 테러범 잡기.(1) 21.01.22 119 5 11쪽
4 전생과의 계약.(4) 21.01.21 11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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