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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2077약먹는 천재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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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웰시꾸기x
작품등록일 :
2023.03.06 18:06
최근연재일 :
2023.03.15 18:20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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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수 :
63,107

작성
23.03.1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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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화 한빙검(寒氷劍)

DUMMY

청아의 무기 자랑이 끝나고, 우리는 겨우겨우 은행 로비로 들어섰다. 경비원들은 무기를 보관해두는 상자를 두 개나 더 가져와야 했다.

내부에서 차분한 음악이 들려왔다. 거기에 머스크와 우드 사이에 적절히 균형을 잡은 냄새가 콧등을 간지럽혔다.

직원은 고층으로 향하는 승강기 앞에 섰다.

검은색으로 통일된 직원의 복장은 고급스럽고 정갈했다. 전반적으로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전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 은행의 검은 속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거기다 센트럴이 아닌 브릿지 마켓에 위치한 제2 금융에 속하는 하북은행. 검은돈이라도 일단 돈이면 출처는 따지지 않았다. 

그들이 제1금융권을 따라잡기 위해 뒤에서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올라탄 엘리베이터는 귀가 먹먹해질 즈음 멈추어 섰다.

 

-띵동.

 

[40층, 플래티넘 라운지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정장을 입은 덩치가 그들을 맞이했다. 아는 얼굴이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백웅이었다. 은행 직원은 그에게 우리를 인계했다. 그녀는 문이 닫힐 때까지 기계적인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인사했다. 

프로는 프로구먼. 나는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백웅에게 물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 입니까?”

 

대답은 예상과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백웅의 뒤에 있던 창백한 얼굴의 설란이 말했다.

 

“너희가 내릴 때 정신을 차렸거든. 백웅에게 이야기해서 바로 이곳으로 왔다.”

 

그녀의 몸에는 여기저기 그을린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몸도 성하지 않은데 제일 먼저 여기로 오라 한 이유가 뭘까.

 

“일단 자세한 건 방에 가서 얘기하지.”

 

그녀는 우리를 방으로 이끌었다. 준비된 방은 여섯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하나가 있는 작은 회의실이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백웅이 문을 닫아 밀폐시키자 방 안은 일행의 숨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조용해졌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내가 이런 일로 쓰러질 것 같으냐?”

 

청아가 설란에게 물었다. 그녀는 아마 병원에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것보다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

“할 일이요? 설마······. 제 짐작이 맞는 건가요?”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내 머릿속에서 본 무엇인가 때문이겠지 하고 추측할 뿐이었다.

 

“제 머릿속에서 대체 뭘 본 겁니까?”

 

나는 설란에게 물었다. 그녀는 나를 잠시 바라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에서 약간의 두려움을 볼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군. 그게 대체 뭐였는지.”

“저도 제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모릅니다. 제게는 과거에 대한 어떤 기억이 없습니다.”

“과거가 없다? 글쎄, 그곳에는······.”

 

그녀는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본 것을 묘사하자면 먼저 칠흑 같은 어둠과 형형색색의 선. 데이터의 선들은 점차 모여들며 면을 형성했고, 그 면들은 도시와 같은 형체를 이루었다.

그렇게 도시와 똑같이 생긴, 그러나 더 어둡고 깊은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추상적인 묘사에 바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계속 설명을 들었다.

그녀들은 거기서 마치 깊은 물 속에 잠긴 듯 계속해서 깊이, 더 깊이 내려가야 했다. 마침내 다다른 곳에서는 수많은 시간의 잔상과 마주했다. 

 

“우리는 공간의 끝에서 넘어갈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보았다. 어쩌면 ‘올드넷'이 아니었을까? 그곳엔 모든 것이 존재하더군.”

 

그녀의 말에 의하면 거기서 데이터의 끝을 보았다. 

 

“거기에는 모든 게 존재했다.”

 

 그 순간, 손끝에 저릿한 기운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스파크가 튈 것 같았다.

어쩌면 그녀가 본 것은······내 머릿속에 들어 있던 원작 소설일까? 만약 그녀가 자신이 소설 속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이야기는 어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 눈앞에는 어느덧 거대한 얼음의 성이 나타났지. 그게 뭐였을까? ······난 결론을 내렸다. 그게 우리가 애타게 찾아 헤매던 빙궁이라고.”

 

그녀는 이제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새로운 빙궁의 이름······.”


잘못하면 이 소설의 개연성은 전부 무너질 수 있었다.


“그것의 이름은 그러니까. 아···아이, 아메······.”

 

응? 설마.

그녀가 말을 더듬으며 떠올리려는 뭔가가 뭔지 알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그거.

 

“혹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맞다.”

 

스파크가 튈 듯했던 손끝이 다시 잠잠해졌다.

 

“뭔지는 몰라도 새로운 빙궁의 이름 같더군.”

 

“그게 아니야······.” 나는 나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녀가 ‘원작'에 대한 뭔가를 알아차렸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옆에서 듣던 청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도 아무것도 모르기는 매한가지.

 

“맞습니다. 스승님, 이분은 전대 빙주(氷主) 님의 환생이 분명합니다. ‘빙백신검'의 사라진 구결을 이미 체득하고 계셨습니다.”

 

아마 그녀들은 멸문한 빙궁의 생존자들로 추측되었다. 그게 빙공에 능한 이유였다.

 

“허허허, 환생한 빙주라고······?”

 

가볍게 현기증이 일었다. 나는 중얼거리며 그녀들의 대화를 곱씹었다.

 

현시점에서 빙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빙궁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올드넷'에 빙궁의 모든 데이터를 저장했다는 일종의 도시 전설이 존재했다.

원작에서 ‘빙백신검’은 그렇게 남아 있던 ‘비급' 데이터를 우연히 얻어 익힌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원작의 후반부. 그러니 초반인 지금, 그녀들이 내 빙백신검을 보고 빙주니 빙궁이니 하며 놀라는 것도 이해가 간다.

 

“만약 정말로 청아의 말이 맞는다면, 우리가 당신 머릿속에서 본 것은 ‘넷’ 속에 남아있는 빙궁이 분명해. 우린 그것을 길잡이 삼아 진짜 빙궁을 찾을 수 있을 테지. 오래된 예언처럼 말이야.”

 

설란의 말에 청아도 거들었다.

 

“스승님. 전 그게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동화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청아야. 정말로 빙궁의 위치를 알고 있는 환생자라니. 솔직히 난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청아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설란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생존자셨던 나의 스승께서는 늘 빙주의 환생이 나타날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진짜로 나타날 줄이야.”

 

음······. 

단단히 오해가 있는 듯한데.

 

그때 설란이 백웅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준비한 상자 하나를 꺼냈다.

 

“네가 진정한 빙궁의 주인이자, 우리들을 이끌기 위해 나타난 수장의 환생이라면.”

 

-달칵.

 

상자가 열리자, 그 안에는 푸른빛을 내는 검이 하나 들어있었다. 

 

“자격을 증명해라.”

 

검은색의 검신과 일체로 이어지는 손잡이에는 낡은 가죽끈이 매여 있었다.

 

“과거에 북해빙궁 주변에서만 발견되었던 만년한철로 제작된 검이다. 이름은 한빙검(寒氷劍)이지.”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이건 상당히 탐난다. 

그녀의 설명이 맞는다면 빙백검귀인 내 설정과 아주 찰떡인 무기가 아닌가. 

 

아, 아니지. 

정신 차려 준다고 아무거나 넙죽 받아먹는 게 말이 되냐?

 

“이건 극한의 냉기를 버티기도 하지만, 스스로 냉기를 내뿜는 물건이다. 지금은 검신만 남아 있으나 네가 진정한 빙궁의 주인이라면 쥐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잠깐만, 냉기를 내뿜는다고? 그럼 알아서 음기가 모인다는 얘기?

 

“스읍.”

 

순간 침이 입 밖으로 흐를 뻔했다. 거의 굴러들어온 꿀통이잖아? 

결국 나는 스스로를 다시 설득해야 했다.

 

그래, 만진다고 죽기야 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내가 냉기를 다루는 사람인데? 난 극음지체란 말이야. 내가 곧 냉기 그 자체란 말이지. 살짝 쥐었다가 의수가 아작날 거 같으면 바로 사출 버튼을 누르자. 어차피 너덜너덜해진 의수잖아?

 

에레잇!

 

그렇게 나는 홀린 듯, 검을 쥐었다.

 

-부르르르르.

 

아직 작동하는 왼손으로 쥐자 검신이 거칠게 진동을 일으켰다. 

마치 오랜 시간 만져지지 않아 야생으로 돌아간 고양이가 오랜만에 인간의 손길이 닿은 듯 격하게 발톱을 세웠다.

 

검을 잡은 손부터 서리가 맺혀 팔을 타고 올라왔다. 마치 나에게 누구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윽.”

 

잠깐이지만 강한 냉기로 인해 쿡쿡 찔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팔을 타고 올라오던 서리는 걱정과 달리 팔꿈치를 넘어오지 않았다.

 

난 네 새 주인이란다. 좋게 말할 때 줄 잘 서자. 난 겨울에도 무조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먹으니까. 

아, 참고로 이 동네에 커피는 있지만 ‘미국’은 없다. 그래서 검이 말귀를 알아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남다른 기개가 검에게 전해진 모양이다. 이제는 검이 내뿜는 것이 냉기가 아니라 마치 따스한 온기처럼 느껴졌다.

 

“흐음······. 뭐 아무렇지 않은데요?”

 

나는 설란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그래 네 말대로 일단 쥐라 그래서 잡긴 했는데. 더 뭘 해야 하는 거지? 라는 표정으로.

나의 아무렇지 않은 반응에 설란의 머리 위에도 물음표 하나가 떠 있는 느낌이었다. 

 

“어······.”

 

설란은 자신을 보고 있는 백웅과 청아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쭈뼛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빙주를 뵙습니다.”

 

그러자 백웅과 청아도 이어서 나에게 무릎을 꿇었다.

 

“소녀, 빙주님을 뵙습니다.”

“빙주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그날, 

꿀······.

아니 한빙검을 얻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빙궁의 주인이라는 칭호도 얻었다.




***




“어이, 세진! 오랜만이야!”

 

누군가 인사를 건넨 것은 내가 사는 아파트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걸터앉은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술병을 든 넉살 좋아 보이는 아저씨였다. 

 

“잘 지내시죠?”

 

이곳은 내가 사는 아파트니까, 아마 나를 잘 아는 이웃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는 내 옆에 서 있는 청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친구?”

“아. 뭐.”

 

아뇨, 빙주가 된 저를 목숨 바쳐 호위하는 빙궁의 무사입니다. 오픈 기념 증정품 같은 거예요. 라고 설명하기는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보기 좋아. 헤헤, 끅!”

 

그는 딸꾹질하다 그만 발을 헛디뎌 계단 위에서 넘어졌다. 데굴데굴 구르는 와중에도 “으어어···! 파이팅!” 하는 쓸데없는 소리를 해댔다. 

음,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군.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 넌 어때?”

“저는 빙주님이 몸을 완전히 회복하실 때까지 곁을 지키겠습니다.”

 

아 건강 얘기였구나. 그녀의 말이 맞다. 최근 쉰 적이 없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 해도 로봇은 아니다. 좀 쉴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팔도 말을 듣지 않으니 교체하기 전까지는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삑삑삑삑.

 

아파트는 나에게 너무나 익숙했다. 의식하지 않아도 방의 위치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아마 이건 몸의 주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행동이기 때문이겠지.

 

문득 내가 사용했던 빙백신검의 제1결을 떠올렸다. 내가 그 기술을 쓸 수 있었던 이유도 그저 몸에 익어서 그랬나? 

아니다. 난 원작을 읽었을 뿐이지 ‘초반부’ 세진의 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하다. 

 

어떻게 나는 모르는 기술을 쓸 수 있었을까.


“집이······.”

“왜?”

“생각보다 깔끔하십니다.”

 

생각보다? 괜히 뭐라 하면 꼬장꼬장해 보일까 일단 쿨하게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허리춤에 냉기를 내뿜고 있는 한빙검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쓸만해 보이는 무기를 받긴 했지만 제대로 쓰려면 그에 걸맞은 의수도 필요하고, 검집이나 손잡이도 만들어야 할 것 같······.

 

“으컥?!”

 

그 순간 입안에서 핏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빙주님!?”

 

옆에 있던 청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작가의말

‘올드넷’은 네트워크 세상의 끝에 있는 거대한 벽을 넘어야 도달 가능한 영역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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