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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님의 서재입니다.

일단은 트럭에 치여 이세계물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SF

완결

이상훈
작품등록일 :
2019.04.06 16:19
최근연재일 :
2020.01.26 18:00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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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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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147,050

작성
19.04.0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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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Ep1. 에덴왕국 일상편

DUMMY

이세계물이라고 불리던 장르가 있었다. 어느 날 어떠한 일을 계기로 현실과는 다른 차원에 가게 된다는 내용의 장르였다. 여러 이유로 꽤나 비웃음을 사기도 했던 장르였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을 완벽하게 요약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현실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평범하게 학교에 가던 날 골목길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트럭을 본 것이었다. 그러고 깜빡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마치 판타지 소설에서 볼법한 세계에 있었다. 회색 벽돌에 둘러싸인, 마치 내가 있던 시대로부터 몇백년은 과거라고 느껴질 만한 풍경들과 마법사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나의 생각이자, 착각일 뿐이었다. 내가 겪은 일을 요약할 수 있는 단어는 전혀 이세계물이 아니었다.


지난 일을 잠깐 회상하고 있으니 나의 바로 뒤에서 낯익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는 거야?”

안면이 있는, 다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흑색의 로브를 어깨에 대충 걸친 긴 흑발의 한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냥 별것 아니야.”

나는 그렇게 답하며 그녀와 보폭을 맞추며 같이 교육센터를 향하여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로, 나를 거둬준 분의 딸이기도 하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나는 어느 날 발견된 석관과 같은 물건의 안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나에게 그때의 상세한 기억은 없으나,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물건을 열은 사람, 그러니까 아마도 고위마법사들이 무언가 이것저것을 물었으나 그 질문이 무엇이든 내가 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조차도 내가 왜 이곳에서 깨어났는지 하는 질문들에 제대로 답변을 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때의 나는 꽤나 그 상황에 겁을 먹기도 했었다. 깨어나자마자 겪는 상황이 그렇다면 겁을 먹는 것도 무리는 아닐뿐더러, 당시에 그들이 내가 혹시 악마가 아닐까 하고 경계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들이 험악하게 대해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그들과 내가 계속 앉아서 대치를 해나가는 상황에 마리아의 아버님이 오셔서 그들과 무언가를 이야기하더니 나를 집으로 데려가서 보살펴주시기 시작하였고 그 길로 나는 그의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된 것이었다. 뭐, 대부분은 아버님의 이야기와 내 추측을 섞은 것이지만. 아무튼 전혀 상관도 없는 나를 보살펴주시고 가족으로 함께 지내게 해주시기까지 한 그는 상당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대인배라고 하던가?

“하여간 너는 귀여운 구석이 없다니까. 이 누님에게는 좀 편하게 대해도 될 텐데 말이야. 가족이잖아?”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어왔다. 가족. 일단은 그러했다. 마리아의 아버님이 나를 거두면서 나는 그분의 가족에 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마리아의 동생은 아니다. 그녀와 나는 분명히 동갑이다. 뭐, 분명히라고는 했지만 일단 세계가 다르니 확신은 할 수 없다.

“무슨 맨날 누님이래. 우린 같은 나이라니까. 학교도 똑같이 다니잖아.”

“그래봤자 그 나이는 네가 하는 말뿐이잖아. 내가 너 하는 거 봤을 때, 분명히 내가 연상이라니까.”

그녀는 매일같이 자기를 누님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렇게나 동생이 필요한 것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끔 져주려고 해도 그녀의 능글거리는 그 웃음기를 보면 도저히 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가 않았다.

“굳이 따지면 네가 제일 애 같거든. 유치하게 뭐 하는 거야.”

그녀는 그야말로 생각이 바로 드러나는 타입의 성격으로, 가끔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초딩이냐’는 표현이 떠오르고는 했다. 이 세계에는 초등학생이 없으니 초급수련생이라 해야 하나? 하지만 이런 표현을 그녀에게 그다지 잘 하진 않는데······.

“뭐라는 거야!”

그녀의 장난기 섞인 외침과 함께 등에 고통이 찾아왔다. 그녀가 손바닥으로 내 등을 살짝 친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완력은, 쓸데없이 뛰어난 그녀의 운동신경을 그대로 따라가서 손바닥으로 살짝 친 것만으로도 마치 주먹에 강타당한 듯한 고통을 받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웬만하면 그런 표현을 그녀에게 잘 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니까 아프다고······”

“에이 뭘 그런 걸로 죽어가는 소리를 내고 그래. 아직 애구만.”

그리고 그녀도 분명히 알면서 때리는 것이 분명했다. 그에 대한 증거로 때리고 나서 내 얼굴을 보며 짓는, 이제는 음흉하다고까지 생각이 되는 그녀 특유의 입꼬리가 능글거리는 웃음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또 한 대 맞을 것이 분명하니,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함께 몸 안으로 삼키기로 하였다.

그래도 그런 그녀의 친밀한 태도로 인해, 어느새 나는 그럭저럭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있던 그 세계에 비하면 건물이나 여러 가지로 낙후되어 있어 불편함은 있으나, 그런 건 어쩔 수가 없겠지. 마법이 있는 세계가 오히려 내가 있던 곳보다 더 불편하다니 어찌 되어먹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래도 마법이라는 것도 만능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 시험 준비는 했어? 너 마법에 엄청 약하잖아.”

“마법을 못 쓰는 건 어쩔 수 없잖아. 난 애초에 이곳에 속한 존재가 아니니까.”

“교육자님에게 그렇게 말해봐.”

뭐, 그녀는 만사가 태평하다시피 하여 매일 이렇게 싱글벙글하면서 나를 놀려온다. 장난과 웃음이 많은 성격을 보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으나······.

“너 말이야, 좀 배려심이라는 걸 갖는 게 어때?”

배려심은 좀 갖추는 게 좋을 거란 말이야.

“걱정 마, 난 마법도 공부도 운동도 그리고 배려심도 모두 다 완벽하니까. 단지 너에게만은 예외일 뿐이야.”

뭐 그것은 사실이었다. 교육센터 안에서도 그녀는 친절함과 활동성, 그리고 성적으로 인기가 높은 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를 예외로 두지 말아 줄래?”

“에이, 가족 좋다는 게 뭐겠어.”

그 말이 원래 그런 의미로 쓰이는 것이었나?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나와 마리아는 어느새 교육센터에 도착하게 되었다. 교육센터는 어린아이들이 마법사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교육을 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 중요성을 나타내듯, 다른 고위마법사들의 건물만큼은 아니더라도 회색 외에도 색색의 벽돌로 넓게 구성되어 꽤나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님과의 연결을 연상시키는 듯 뾰족한 높이의 지붕이 흙색의 벽돌로 건물의 위로 몇몇개 올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높이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아마 다른 고위마법사들의 공간에 비해 그 급이 낮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가게와 주택이 단순히 벽돌이나 나무로 허술하게 지어져 있는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교육센터의 건물에서 보이는 웅장함은 여전했다. 그 때문인지 나는 교육센터의 안으로 들어갈 때면 내 키의 네 - 다섯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문 앞에서 그 웅장함에 압도감을 느끼고는 했다. 그러한 압도감에 내가 잠시 문 앞에 멈춰 서 있었는데

“뭐해? 빨리 들어가자. 그렇게 서 있는다고 시험까지의 시간이 멈추거나 늘어나진 않는다?”

마리아가 그런 나를 보고는 위와 같이 말하며 먼저 들어갔기에 나도 그녀를 따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어땠어 시험은?”

시험이 끝난 후 교육센터에서 나오자마자 그녀가 한 질문이었다.

“······”

내가 그렇게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니 마리아가 흐흐 거리는 재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시험 전날에 공부 도와준다고 했잖아. 정말이지. 아버지가 보면 뭐라고 하겠어.”

아버님 이야기를 꺼내는 건 반칙이라고. 그녀의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서는 은인이나 다름없어서, 그녀는 그 점을 흔히 이용해 먹고는 했다. 대체 어떤 친절하다는 사람이 그런 점을 이용해 먹는 거람. 내가 그렇게 뾰루퉁하는 표정을 짓고 있자 그녀는 내가 할 말을 예측이라도 했는 듯 먼저 말을 이었다.

“이 세계에 아직 적응이 안 됐다고 하려고?”

그리고 그 예측은 정답이었다. 은인님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변명거리였다. 그리고 그런 변명은 꽤나 잘 통하기도 하였다. 꼭 틀린 말도 아니니까. 은인님과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마리아 덕분에 이 세상에 그나마 빨리 적응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어렵단 말이지. 나도 노력은 하고 있지만 역시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이자 중심이 되는 것은 마법사인데, 마법을 쓸 수 없는 나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마법을 쓸 수 없는 것도 나뿐만은 아니었기에 그저 자기변호에 편한 변명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이 세계에서 태어났지만 마법을 쓸 수 없는 존재는 그리 드물진 않다. 아무래도 선천적인 재능이란 게 있는 모양이다. 비록 마법을 쓸 수 없어도 마법 무기로 마법사들의 일에 어느 정도는 참여할 수 있으며, 그 외에 지식이라는 것 역시 마법사들의 일에는 중요하니까.

“그렇지 뭐.”

나는 마리아의 말에 그렇게 대충 답변하고는, 그냥 서둘러 골치 아픈 생각을 접기로 하였다. 어쨌거나 난 돌아갈 세계가 있다고. 이 세계에 대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봤자 쓸데없어. 하지만 어떻게 돌아갈지에 대한 단서는 여전히 나오지가 않았다. 일단 차원 이동과 관련된 마법은 이 세계에도 알려져 있지 않은 듯했다. 다만 성의 밖에 있는 악마들은 그것과 관련해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소문이 있을 뿐. 아마 고위마법사들도 그러한 소문 때문에 다른 차원에서 온 나를 추궁해서 뭔가를 알아내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지만은, 나도 전혀 아는 것이 없으니 무용지물이지. 눈을 떠보니 여기였는걸. 이러한 내용은 나의 은인이신 분에게도 이미 이야기를 드렸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실망스러운 듯한 내색은 보이지 않으셨다. 아마 그분이 나를 거둬준 것은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정보보다는 낯선 세계에 떨어진 한 외로운 아이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집을 향하여 시장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한 과일가게의 앞에 소란이라도 일어났는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악마다!”

그 소란 속에서도 이 한 가지 문장은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성이 소란 속에서 인파를 무너뜨리고 빠져나왔다. 나이는 그렇게 먹어 보이지 않았으나, 확실히 수련생인 우리들과는 달리 어른이라는 성숙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금빛의 머리를 가진 여성이었다. 그러나 몸 앞으로 맨 단단해 보이는 흑색의, 마치 방탄복과도 같은 느낌이 드는 보호구를 입고 몸에 달라붙는 완전한 검은색 계열의 의상을 갖춘 그녀의 모습은 이 세계와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것과 더불어 앞서 느낀 성숙하다는 느낌을 용맹한 전사의 느낌으로 바꿔줄 만큼 강렬하였다. 그녀를 본 것은 불과 몇 초에 불과하였으나, 이렇게까지 인상이 크게 남았을 정도면 그것이 어느 정도였을지 쉽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인파를 뚫고 마을의 밖을 향하여 달려가는 도중에 그런 그녀가 향하는 방향의 반대에서 그녀를 잡기 위해 하얀 로브의 마법사들이 몇몇 달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 멀어져가는 추격전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굉장한 일이네······.”

마리아는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평소의 경쾌하던 것과는 다른 톤으로 말하였다. 확실히, 이곳이 아무리 변방의 마을이라지 만은 악마와 마법사 간의 추격전을 보는 것이 흔하지는 않다. 악마라? 악마라고 하는 말을 들어서 악마라고 하기는 했으나 과연 정말 악마인지는 모르겠다. 생긴 것만 봐서는 인간과 전혀 다를 게 없으니까. 하지만 교육센터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악마들은 인간을 홀리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뭐, 확실히 내가 있던 세계에서도 악마나 요괴 같은 존재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하기도 한다는 이야기 정도는 있었으니 이해 못 할 것까진 아니지만.

“하지만 악마추격전이 벌어지든 안 벌어지든 네가 더욱 공부해야 하는 건 똑같아!”

그러고 나서 곧이어 마리아는 다시 평소와 같이 쾌활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나를 놀리기 시작하였다.

“아니, 그렇긴 한데······. 아니, 일단은 그렇다고 쳐도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야!”

“뭐, 공부하란 거야.”

아무튼 뭐라고 항변하든 나는 막무가내인 그녀를 이길 수가 없으니 포기하고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을 향해 걸으면서도 무언가를 잊은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무엇인지 도통 알 수는 없어서 걸음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 잊은 무언가의 정체는 집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근데 너 아버지가 부탁한 채소 왜 안 샀어?”

집 앞에서 마리아가 던진 질문에 나는 마리아의 아버님이 돌아오는 길에 음식 재료를 사서 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아니, 알고 있었으면 빨리 말해달라고!”

“아, 그게 나도 방금 생각났거든”

뭐, 일단 약속한 것은 나니까 결국 까먹은 나의 잘못이기는 하다. 하지만, 마리아가 일부러 집에 다 와서야 말해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일부러 그런 거지?”

“글쎄?”

마리아는 입꼬리를 올리고 실실 웃으며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분명히 일부러다.

현재 시각은 하늘이 주황빛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는 시간이었다. 서두른다면 시장에 가서 음식 재료를 사 올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지 뭐. 내일 꼭 오는 길에 사 온다고 하는 수밖에. 마리아 너도 이번엔 좀 기억해줘.”

하지만 그것은 몹시 귀찮았기에 나는 내일을 기약하기로 하였다.

“글쎄?”

“연상의 위엄을 좀 보여 보라니까.”

농담으로라도 그녀를 누님으로 모시는 것은 극구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다.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받는 수 밖에.

“어쩔 수 없지.”

연상의 위엄을 보여 달라는 말에 그녀는 헤실헤실 웃으며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손가락을 나에게 펼쳐 보였다.

쉽구만.

그 이후로는 아버님과의 대화나 가족 식사 그리고 조금의 공부와 같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들이 있었고, 어둠이 등불마저 잡아먹을 것만 같은 시간이 찾아오고서는 나는 늘 그렇듯 불을 끄고 잠을 청하기 위해 천이 깔린 바닥 위로 누웠다. 벌써 이 천장을 보는 것도 꽤나 익숙해졌다. 이렇게 누워있다 보면 가끔 어쩌면 내가 원래 있던 세계는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몇 가지 의문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서 온 것인가? 내가 깨어난 그 석관은 대체 무엇인가? 석관에 대해서는 아버님에게 물어봤으나 고위 마법사들조차 모른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아버님의 말에 의하면 이곳을 다스리고 있는 천사들은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였으나, 그들은 그리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을뿐더러 웬만한 고위급의 마법사들도 그들을 쉽게 뵈러 갈 수는 없다고 하였다. 아무튼 현재 단계에서 확신을 내릴 수 없다는 건 분명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는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런데 악마와의 추격전이라는 색다른 광경을 보게 되어서인지 그날에는 꽤 신기한 꿈을 꾸게 되었다. 이곳이 아닌, 내가 본래 있던 세계의 꿈이었다. 옛날의 기억을 꿈에서 다시 체험했다든가, 만약 내가 그 원래의 세계에 계속 있었더라면 하는 가정 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꿈의 형태가 몹시 흐릿하여 정확히 파악할 순 없었다. 단지 그 꿈에서 나는 다친 상태였고 병원 같은 곳에 있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의사 같은 사람과 아마도 부모님인 두 분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꿈에서 깨고 나서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대체 무슨 꿈이었나 하는 생각을 깊게 해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꿈의 내용이 더욱 흐릿해져 더욱 그러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낯선 세계에 와서 이렇게 지내고 있으면 그런 알 수 없는 꿈을 꾸기도 하는 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어쩌면 향수병이라고 하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그리 강하지는 않아도, 그런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워할 만한 이유도 충분하고, 그러므로 그런 꿈을 꿀 이유 역시 충분했다. 비록 이 세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이 세계는 본래 내가 속하여야 하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은 늘 마음속 한 곳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꿈의 원인을 대충 그러한 것으로 넘기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시 마리아와 함께 교육센터를 향하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짙은 흑색의 로브를 입고 주방에 가자 마리아는 집에서나 입는 너비가 풍성한 옷차림으로 “참고로 오늘 교육센터 쉬는 날이다.”하고 말해왔다.

어쩐지. 음식을 사 오는 약속을 그녀에게도 기억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순순히 순응하는 것이 이상했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능글스럽게 헤실헤실한 웃음에 지고 싶지 않았기에

“나도 알아. 재료 사러 가는 거야.”

라고 태연한 척 말하였다.

“아, 그럼 잠깐 기다려. 나도 같이 가자!”

“아니, 지금 준비해서 언제 간다는 거야.”

“기다리라면 기다리라니까!”

어쩔 수 없다. 마리아가 저렇게까지 막무가내로 주장하면 그냥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시하고 먼저 가봤자 결국 어떻게든 내가 있는 곳까지 따라올 것인 데다가 거기에 추가로 등이나 어딘가에 고통을 사은품으로 안겨줄 것이기에 차라리 그냥 기다렸다가 같이 가는 것이 쓸데없는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리라.

그렇게 시간이 꽤 많이 흐른 후, 몸을 씻고 옷을 입은 마리아가 방에서 나왔다.

“많이 기다렸어?”

마리아가 자신의 백색의 드레스를 뽐내며 이야기하였다.

“넌 역시 그냥 허름한 로브가 제일 잘 어울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뭐 아무튼 시간이 좀 지체됐으니까 빨리 출발하자.”

나는 혹시나 또 어딘가 얻어맞을까 서둘러서 화제를 전환하고는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다행히 전략이 먹혔는지 마리아도 순순히 따라 나왔고, 내가 추가로 얻어맞는 일은 없었다.

시장길은 우리가 늘 교육센터를 향할 때 걷는 길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다. 교육센터를 향해 걷다 보면 교육센터의 너머로 보이는 카테드랄에게 눈길이 가기 마련인데,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홀로 하늘까지 닿도록 높게 지어져 있었다. 외형 역시 아주 독보적이라 내가 본래 있던 세계의 빌딩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카테드랄의 내부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으며 이 에덴 왕국을 이끄는 천사라는 존재들과 허락된 아주 소수의 고위마법사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소문에 의하면 내부가 황금으로 꾸며져 있고, 그곳에 발을 들인 자는 최대의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문이기에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직급이 되는 자와 그 가족들만이 거주할 수 있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있는 퍼즈구역의 사람들도 모두가 그곳에 가는 것을 꿈꾼다. 카테드랄이 일종의 이정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이 퍼즈구역보다 더 바깥에는 하인즈라고 불리는 구역이 있는데, 보다 신분이 낮은 자들이 작물과 동물들을 기르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분명 그들 역시도 왕국의 중심에 위치한 카테드랄을 보며 그곳에 가는 것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카테드랄은 이 왕국의 사람들 모두의 마음속 중심에 있는 이념의 심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카테드랄 생각하고 있어? 거기에 가면 천사들이 너에게 뭔가 좀 가르쳐줄까봐? 그럴 거면 시험부터 잘 봐야하지 않겠어?”

그리고 그곳에 있는 신이나 천사들은 분명히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마리아의 아버님이 말해주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는 종착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직 이 세계에 적응이 되질 않아서 말이야.”

“너 그 말 좀 반칙인 거 알아?”

“하지만 시험에는 안 통하더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카테드랄이든, 신이든 천사든, 그리고 심지어 악마든. 나에게는 여전히 먼 이야기일 뿐이다.

“휴······. 정말이지.”

마리아는 한숨을 가볍게 쉬고는 말을 이었다.

“이래서 나이 먹으면 뭘 할련지. 하인즈로 쫓겨나는 거 아니야?”

확실히, 나는 시험 성적도 그다지 좋다고는 말할 수 없고 마리아 쪽의 집인 렌츠가 피를 잇고 있는 것도 아니라 후에 상황이 잘못되면 그렇게 될지도 몰랐다.

“아, 농사짓는 건 정말 싫은데 말이야. 밥도 주는 것만 먹어야 하고.”

그래도 듣기로는 하인즈의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왕국의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한다는 것 같았다. 뭐, 이세계니까 생각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나?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정 안되면 내가 데려가줄게.”

마리아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됐어. 차라리 하인즈에서 열심히 일해서 왕국에 보탬이 될래.”

“너무하네 정말.”

그렇게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우리는 시장길에 평소랑은 달리 한 가게를 둘러싸며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기 저번의 그 가게 아니야?”

마리아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저번 악마소동의 그 가게였다. 설마 이번에도 악마가 나타난 건 아니겠고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왕국의 중심에 가까운 번화가이자 마을인 퍼즈인데, 악마가 그렇게 자주 돌아다녀서 되겠어?

“이번에야말로 너를 꼭 잡겠다, 루시퍼!”

소동의 한 가운데서 한 근엄한 목소리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외침에 답하듯 소동의 가운데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마음대로 그렇게 이름 붙이지 말아 줄래? 그래도 너희의 동료였었는데 말이야.”

“너 같은 배반자는 동료였던 적이 없다!”

음, 뭔가 딴지걸기에는 상황이 좀 그렇긴 한데. 그게 결국 동료였다는 얘기가 아닌가?

“내 이름은 탈룰라 라일리. 루시퍼가 아니라고.”

여성의 목소리가 이름을 말하자마자 무언가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려왔다. 흡사 무언가가 폭발하는듯한 소리이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를 따라오면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주지. 하지만 도망친다면 이 마법무기로 곧바로 처분될 것이다.”

근엄한 목소리는 아마도 날카로운 목소리를 소유한 여성에게 경고하는 듯했다. 방금 그 큰 소리는 마법무기의 소리였나?

“흥, 나를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이어서 아마 마법무기의 소리로 추정되는 소음이 몇 번 나더니 인파 속에서 저번 악마 소동의 여성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흰 로브를 입은 몇몇 마법사들이 쫓기 시작했다.

“뭔가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졌네.”

마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도 이번엔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동네 치안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거람?

“그건 그렇고 지금 저기 가게에서 살 거 있었는데, 파냐고 물어봐도 될까?”

음, 글쎄. 그나저나 너 치고는 상당히 조심스럽네. 하긴, 이 녀석은 나한테만 배려심이 없으니까.


작가의말

그냥 게임 개발이나 계속 해야했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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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p4. 어서 오세요, 오컬트부에! (2) 19.07.14 44 0 14쪽
12 Ep4. 어서 오세요, 오컬트부에! (1) 19.07.07 43 0 16쪽
11 Ep3. 에덴왕국 탈출편 (6) 19.06.30 56 0 6쪽
10 Ep3. 에덴왕국 탈출편 (5) 19.06.16 46 0 6쪽
9 Ep3. 에덴왕국 탈출편 (4) 19.06.09 43 0 8쪽
8 Ep3. 에덴왕국 탈출편 (3) 19.06.02 60 0 6쪽
7 Ep3. 에덴왕국 탈출편 (2) 19.05.26 49 0 6쪽
6 Ep3. 에덴왕국 탈출편 (1) 19.05.12 142 0 9쪽
5 Ep2. 에덴왕국 탐험편 (4) 19.05.05 68 0 6쪽
4 Ep2. 에덴왕국 탐험편 (3) 19.04.28 64 1 8쪽
3 Ep2. 에덴왕국 탐험편 (2) 19.04.21 79 0 11쪽
2 Ep2. 에덴왕국 탐험편 (1) 19.04.14 138 0 11쪽
» Ep1. 에덴왕국 일상편 +1 19.04.06 368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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