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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서재입니다.

플라스틱 아포칼립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FromZ
작품등록일 :
2023.05.12 13:00
최근연재일 :
2023.08.29 21:10
연재수 :
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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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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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29,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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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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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15. 생존경쟁 (2)

DUMMY

***



적갈색의 원목에 무궁화 무늬가 새겨진 커다란 문.

그 앞을 지키는 경호원 둘이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았다.


“회의 중이십니다. 나중에 찾아오십시오.”


그러나 금속 가면을 쓰고 있는 장신의 남자는 그 말을 듣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백시우 실장님. 지금 선 넘으시는 겁니다.”


“너네 2군이냐?”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켜.”


척!

경호원 둘은 삼단봉을 꺼냈다. 정장 속 체스트 리그에 권총을 차고 있음에도 굳이 삼단봉을 쓰는 건, 경호실장인 백시우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리라.

차각! 차각!

백시우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실장님이 찾아오셨다는 건 따로 전달해드릴 테니까요. 조금만 기다리시죠.”


“비켜.”


콰악!

백시우는 경호원 한 명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어 일격에 쓰러뜨렸다. 곧이어 다른 한 명이 삼단봉을 휘둘렀고, 백시우는 왼손으로 삼단봉을 붙잡아 꺾어버렸다.

으드득!

그리고 오른손으로 경호원의 옆얼굴을 밀어버렸다. 그 손짓 한 번으로 건장한 경호원은 어른에게 대든 아이처럼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퍼억!

백시우는 커다란 문을 발로 차면서 들어갔다.


“실장님.”


비서가 자기 자리에서 산탄총을 들고 일어섰으며, 안쪽에 또 있는 커다란 문 근처에서 경호원 네 명이 모두 삼단봉을 뽑아들고 있었다.

그때 비서는 백시우의 몸 옆면에 산탄총을 겨누면서 말했다.


“무슨 심정이신지 이해합니다.”


“이해한다고?”


백시우는 옆에서 비서가 총을 겨누든 말든 앞만 보았다.


“너희가 나를?”


“상황이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내려진 조치입니다. 나중에 각하께서 차근차근 설명해주실 거예요.”


타닷!

그러나 백시우는 비서를 무시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면서 경호원 한 명을 앞차기로 가뿐히 날려버렸다.

경호원 세 명은 재빠르게 그를 둘러싸서 삼단봉을 휘둘렀다.

부웅!

백시우는 뒤에서 날아든 삼단봉을 고개를 앞으로 숙여서 회피함과 동시에 양쪽에서 날아든 삼단봉 두 개를 팔뚝으로 가드하고 왼쪽에 있는 경호원의 팔을 붙잡아서 엎어치기를 해버렸다.

콰앙!

엎어치기를 당한 경호원이 고통스러운 숨을 토해냈고, 오른쪽에 있던 경호원은 삼단봉을 휘두르다가 백시우에게 손목을 붙잡혀서 그대로 잡아당겨졌다. 동시에 백시우는 뒤에서 달려드는 경호원한테 뒷발차기를 날려버리고 오른손으로 잡아당긴 경호원의 다리를 왼손으로 붙잡아서 거칠게 넘어뜨렸다.

쿠웅!


“으으···.”

“쿨럭···! 쿨럭···!”

“아아아, 씨···.”


비서는 여전히 문 옆 자리에 서서 산탄총을 겨누고 있지만, 백시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할 걸 알기 때문이다.


“그만하시라고요. 면역자가 이런 식으로 힘을 휘두르면···”


“그만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지.”


바닥에 쓰러진 경호원들은 즉시 일어섰으나, 백시우의 기세에 위축되어서 더는 달려들지 못했다.

백시우는 그런 경호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뒤에 있는 비서한테 대뜸 질문한 것이다.


“넌 자괴감도 안 생기냐?”


“네?”


“대통령 역할극에 취한 독재자 밑에서 일하는 거.”


“···.”


비서는 침묵했다.



***



긴 직사각형 테이블에 충무지하국의 권력자들이 한 명씩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 권력자들의 의견을 모아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자는 상석에 앉은 김동인.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을 자칭하는 자다.


“그런데 각하께서는 택트론을 쓰셨잖습니까. 조금 실망스럽군요. 제가 그렇게 못미더웠습니까?”


김동인의 왼쪽에 있는 자는 군복차림의 이광석.

그는 한반도에서 제일 큰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권력자이자, 김동인이 국방부장관이라는 직위를 수여한 중년의 남자다. 그리고 이광석의 위치를 증명하듯 그의 뒤에는 손톱이 비정상적으로 긴 여자와 키가 2m를 넘는 거구의 남자가 서있다.


“심지어 저한테는 말씀도 안 해주시고 비서실장까지 보내셨다고 하던데요. 비서실장 보낼 정도면 1군을 보내셔야 했던 거 아닌가 싶네요.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거하게 실패하셨다고···.”


“사사로운 일이라 장관님께 따로 보고는 드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신방패정부를 너무 얕봤던 게 실책이었죠. 이번 일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서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요? 일단은 알겠습니다. 일단은.”


이어서 김동인의 오른쪽에 있는 중년의 여성이 차갑게 말했다.


“동인 씨. 내가 꽂아준 비서실장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하하. 그럴 리가요.”


“내 눈과 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서 제거하려고 그런 거죠?”


살갗이 매우 창백한 미남을 뒤에 두고 있는 그녀는 충무지하국의 국가안보실장, 박시연이다.


“아니요. 오해입니다. 정도현 실장을 그런 식으로 제거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 말씀을 내가 믿을 수가 있어야죠. 비서실장 바꾸고 싶다고 계속 툴툴대셨으면서.”


“아휴, 아닙니다. 진짜 그런 거 아닙니다.”


김동인의 입장에서 이광석 장관이 외부의 적을 막는 칼이라면, 박시연은 내부의 적을 찾아서 처단하는 칼이다.

이 자리에 모인 세 사람의 공통점은 저마다 지휘할 수 있는 군대가 있다는 것.

김동인은 표면상 충무지하국의 대통령으로서 장관급인 이광석과 박시연의 상관이지만, 실상은 이렇듯 직급보다 실제로 갖고 있는 무력이 절대적 권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대가 시대이기 때문이다.


“정도현 비서실장을 그런 식으로 제거할 생각이 없으셨다면서 왜 2군 떨거지들이랑···. 아니다. 2군까지는 이해할게요. 그런데 왜 용병들을 쓰셨을까? 신방패정부가 그냥 당해줄 것 같았어요?”


“···.”


“거기엔 이태신이 있어요. 알고는 있죠?”


“아, 네. 그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말해봐요. 이태신이 뭐 하는 사람인데요?”


김동인은 애써 박시연의 눈을 쳐다보면서 담담한 척을 했다.


“전부터 도청을 시도하고 있는데, 신방패정부가 지금까지 세력을 확장한 배경에는 이태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 해보세요.”


“아무래도 한준호는 평범한 군경 출신인데, 이태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대학교 졸업장이랑 논문 이외에 찾을 수 있는 게 없더군요. 불필요한 기록을 말소한 겁니다.”


“그래서요?”


“이태신이 학생 시절에 팠던 분야가 푸르가토리움 한국지사의 인공생물학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생존국과 직접적으로 커넥션을 만든 인물은 한준호가 아니라 이태신이라고···. 간주하는 중이죠.”


“며칠 전에 외기권에서 비행체가 지나간 건 알고 계시는지요?”


“······외기권이요?”


그러자 듣고 있던 이광석이 박시연한테 고개를 돌렸다.


“아! 그거 레이더에 잠깐 잡혔었는데! 비행종 아니었어요? 세종시 외곽에 그거요!”


“낙하물이었죠. 그들한테 필요한 물건을 생존국이 직접 보급해 준 거라고요.”


“신방패정부가 그런 걸 요청하면 들어준다는 거네요?”


“엄밀히 따지면 신방패정부가 아니라 이태신의 요청이었겠죠. 제가 알기로 4년 전 푸르가토리움 한국지사에는 시뮬레이터가 두 명인가 세 명인가 있었는데, 이태신이 지금까지 유일하게 살아남은 시뮬레이터라서 그런 취급을 해주는 것 같다고요.”


“아니, 시뮬레이터가 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회사로 치면 부장이나 과장 같은 거 아닙니까?”


“시뮬레이터가 대한민국에 두 명 내지 세 명밖에 없었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4년 전에는.”


“아···.”


“하는 일마다 전부 성공하면서 업적 수준으로 매전 자기 능력을 증명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유일한 시뮬레이터가 된 이태신이 생존국들 입장에서 유리한 일을 해주고 있다는 거죠.”


“그게 민주공화국 재건인가요?”


“네. 다들 알잖아요, 우리랑은 다르게 신방패정부의 한준호는 권력을 다수에게 나누고 있다는 거.”


이광석은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이런 시국에 그런 삽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네.”


“그런 삽질을 생존국들은 원한다는 말이죠. 그들은 철저하게 자유 진영이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유 진영의 국가만 남겨서 신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니까요. 신방패정부는 자기들의 이념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런 삽질을 한 거라고요.”


박시연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픽 웃으면서 김동인을 쏘아봤다.


“까놓고 말해서 나랑 광석 씨가 있다고 해도 전제군주제랑 비슷하잖아요? 충무지하국 포함해서 한반도의 웬만한 정착지들은 전부.”


그러자 김동인은 손깍지를 끼우면서 박시연한테 따지듯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선거 제안에 응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신방패정부가 선전하고 있는 내용이 국민들한테 뿌려졌어요.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제가 내세울 수 없는 공약을 저쪽에서 걸어버린다면, 낙선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낙선하면 뭐 어때요?”


순간, 김동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요?”


“좋잖아요? 박멸연합군 상륙하고 폴리들 몰아내고.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는 건데요.”


“아니···”


“아니면 선거 없이 그냥 한준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시던가요. 동인 씨가 한 자리 받는다는 조건으로. 나는 그것도 좋은데?”


“아니요. 대한민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사태를 극복할 겁니다. 박멸연합군이 상륙하는 순간 우리는 자주성을 잃고 말 겁니다.”


“억지 좀 부리지···”

“그건 맞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광석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걔들이 우리 땅에 있는 폴리들 빨리 몰아내야 한다고 핵이라도 떨어뜨거나 검증되지 않은 생화학 물질이라도 살포하면 어떡합니까?”


이광석의 발언에 박시연은 눈으로 경악을 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박멸연합군이 상륙하는 순간 한반도는 전쟁터, 실험장, 폐허가 될 게 뻔합니다. 차라리 지금처럼 우리 힘으로 영역 넓히면서 차근차근 몰아내는 게 낫지. 몇 년이 걸리든 간에.”


“좋은 말씀입니다. 장관님. 저도 외세에 의해 한반도가 불바다가 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겁니다. 그런 건 제 DNA 단위에서 거부한다고요. 제가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박시연 실장님.”


“알겠어요. 틀린 말은 아니네요. 한반도에서 폴리를 몰아내는 게 느리냐 빠르냐의 차이일 뿐이겠죠. 그런데 들어보세요. 지금 멸망한 세계를 살아가는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건···”


쿠웅!

문 밖에서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박시연은 하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쿠웅!

그러자 그녀 뒤에 서있던 창백한 미형의 남자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면역자입니다.”


또한 이광석의 뒤에 있는 손톱이 긴 여자도 이광석의 귀에 대고 뭔가 속닥댔다.

김동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럴 줄 알았지.”


끼이익!

문이 열리고 백시우가 난입했다.

그 즉시 이광석 뒤에 있던 거구의 남자가 걸어가서 그를 막아섰다.


“어이. 윗분들 말씀 나누는 중이잖아.”


“비켜.”


“추태부리지 말고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지?”


거구의 남자는 오른손으로 백시우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뚜두둑···.

백시우의 어깨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초인적인 악력에 의해 살이 으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백시우는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드륵.

보다 못한 이광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호실장. 면역자라면 경거망동하지 말고 때와 시기를 가려서 행동해야지.”


그 순간, 백시우는 거구의 남자한테 눈길도 주지 않고 자기 어깨를 붙잡은 손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으드득!!!


“끄아아아아!!!”


거구의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면서 무릎이 무너졌다. 그의 손이 유압프레스에 짓눌린 뼈와 고기처럼 으깨져서 손목뼈까지 일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으으으으···!”


박시연 뒤에 있던 창백한 남자가 움직였다.

그러자 박시연이 경고했다.


“가만히 있어.”


창백한 남자는 다시 박시연의 뒤에 그림자처럼 섰다.

그 모습을 살피던 이광석도 마찬가지로 자기 뒤에 있는 손톱이 긴 여자에게 나서지 말라고 눈짓했다.

그리고는 책임의 화살을 돌렸다. 자신이 백시우한테서 느끼는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자기 경호실장 한 명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시는군요. 각하.”


“···.”


“통제되지 않는 면역자는···. 쯧. 됐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마저 나누도록 하죠.”


이광석은 그 말을 끝으로 걸어 나가면서 거구의 등짝을 때렸다.

찰싹!


“사내자식이.”


“이거 총보다 아프다고요···!”


“덩칫값 좀 해라. 그만 질질 짜고 나와.”


“흐으으읍···. 크으···.”


거구의 남자는 백시우의 살벌한 눈동자를 슬금슬금 피하면서 이광석을 따라나갔다.

그리고 박시연은 앉은 자리에서 김동인이 아니라 백시우한테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시우야. 나 여기 있어도 되니?”


“죄송합니다. 나가주십시오.”


“네가 이러는 모습은 처음이네.”


어쩔 수 없이 그녀도 일어섰다.


“처음이니까 넘어가겠는데 다음부터는 이러면 안 될 거야.”


“송구합니다.”


“···특히나 면역자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너는 더 조심해야지.”


“···진심으로 송구합니다.”


그녀는 회의실 문으로 걸어가다가 백시우 옆에 잠시 멈춰 섰다.


“네 엄마 수술 잘 끝난 건 축하할게. 광안병원에서 쉬고 계신다는 소식 들었어.”


백시우는 우두커니 선 자세 그대로 주먹을 꽉 쥐었다.

으득···.

박시연은 그의 주먹을 흘깃 내려다보면서 몇 마디를 더 던졌다.


“그런데 네 엄마가 가끔 거기 주치의나 간호사들을 너로 착각하신다고 하더라. 알고 있었니?”


“···.”


“뭐든지 예방이 중요한 거야. 뭐든지.”


박시연은 대답 없는 백시우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고는 창백한 남자와 함께 나가버렸다.

그리고 문이 닫히기 직전에 김동인의 경호원 여섯 명이 자동소총을 들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각하!”


여섯 개의 총구가 백시우의 등을 겨눈다.

그런데 여전히 상석에 앉아있는 김동인은 그들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와서 뭐 하려고요? 방금 나간 면역자 셋이 달려들어도 못 막는 사람인데. 하하.”


그렇게 경호원 여섯 명까지 자리를 비우고, 마침내 회의실에는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잠시 불편한 적막이 흘렀다.


“각하.”


“미안하게 됐어요. 전부 고려했다고 생각했는데, 용병단이 매수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단 일주일 만이라도 어머니를 돌보고 싶었습니다. 각하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또 싸우라고요?”


“미안해요. 그런데 비상사태 때는 어쩔 수 없이 호출하는 일도 생기는 거예요.”


“무슨 비상사태가 터졌다고 그러십니까?”


“신방패정부가 선전 활동을 강화했어요. 순진한 국민들은 그 말에 현혹되고 있죠. 원래 걔들이 선거 공약으로 아껴둔 내용을 그냥 풀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김동인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게다가 우리 비서실장이랑 병사들을 포로로 잡았어요. 과정에서 죽은 병사들도 분명히 있겠죠. 따라서 선전포고 없이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여기는 중이에요.”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들에게는 장거리 곡사포와 다연장 미사일 발사대가 있어요. 당장 오늘이라도 우리 땅에 뭔가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죠.”


“그냥 처음부터 그들과 협상할 생각이 없으셨다고 하시죠.”


“네. 맞아요. 어떻게 합의하더라도 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었죠. 그래서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요주의 인물인 이태신을 생포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네요.”


“저는 각하의 방식이 점점 마음에 들지 않고 있습니다.”


“저만의 방식은 아니죠. 방금 박시연 실장님이 하신 말씀 잊었어요?”


김동인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버렸다.


“뭐든지 예방이 중요하다고요. 더 늦기 전에 수를 쓰는 것. 참사가 벌어지기 전에 최소한의 출혈로 봉합해버리는 것.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방식을 유지해온 덕분에 살아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도 예방입니까? 무력을 써서 신방패정부를 지워버리겠다는 겁니까?”


“···하나 다행인 건 신방패정부가 생존국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어서 인도적인 방식으로 싸울 거라는 거죠. 큰 군대끼리의 전면전은 없을 것 같네요. 그랬다간 격전지 근처의 폴리들도 문제가 될 테고.”


신인류의 힘은 전면전이 아닐 때 더욱 중요해지는 법이다. 그리고 백시우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충무지하국에서 단연코 가장 강한 신인류다.


“이태신만···. 그 사람만 생포하면 되는 겁니까?”


“그러기 전에 우리 박시연 실장님이 좀 신경 쓰이네요.”


“···?”


“그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하루라도 빨리 그럴 수만 있다면 나를 숙청할 것 같기도 하고.”


“제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분은 못 건듭니다.”


“왜요? 실장님 어머니 친구라서요?”


그러자 백시우는 눈을 부릅뜨면서 신인류 특유의 살기를 표출했다.


“각하···. 적당히 하십시오···.”


“적당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이 씨발놈이 돌았나.”


타앙!

그 순간, 김동인은 테이블 밑에 있던 리볼버로 백시우의 다리를 쏴버렸다.


“···!”


타앙!

백시우는 두 다리에 연달아 총탄이 박혀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김동인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그에게 다가갔다.


“모여서 회의하는데 경호원들 때려눕히고!”


퍼억!

김동인은 딱딱한 구두로 백시우의 몸을 밟았다.


“다짜고짜 들어와서 누구 손이나 으깨버리고!”


퍼억! 퍼억!


“너는 지금 세 사람한테 다 망신을 준 거야!”


그때 백시우가 김동인의 다리를 붙잡았다.

타앙!

그러나 돌아오는 건 복부에 박히는 총탄뿐이었다.


“으윽···.”


“나는 내 경호실장 한 명 제대로 통제 못한 거고! 이광석은 자기가 아끼는 경호원이 너한테 한 방에 쓰러진 꼴이고! 박시연은 네 힘이 아무리 위험해도 본성은 나쁜 애가 아니라면서 잘 봐달라고 했는데 좀 전에 그 깽판을 친 거니까! 네가 세 사람을 얼굴에 다 먹칠을 해버린 거라고!”


그 순간만큼은 김동인의 눈빛이 면역자보다 비인간적으로 보였다.

터억!

총으로 쏘고 짓밟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김동인은 백시우의 머리채를 붙잡고 이마에 총구까지 들이댔다.


“그런데 뭐, 적당히? 그 말이 지금 네 아가리에서 튀어나오는 게 맞아? 내가 아까부터 참다 참다가 진짜.”


“···.”


“너랑 네 엄마 편의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 덕분에 누릴 거 다 누려놓고 이빨 드러내지 말라고. 이 개새끼야.”


“···네. 죄송합니다.”


백시우는 눈을 깔면서 사죄했다.


“하여간 매를 들어야 말을 듣지. 면역자 새끼들은.”


김동인은 뒤로 돌아서 허리춤에 손을 얹고 애써 진정했다.


“우리···. 경호실장님.”


“네.”


“신방패정부랑 박시연은 내가 다른 사람 시켜서 동태를 주시할 테니까요. 실장님은 1군 데리고 울산으로 가주세요. 거기에 택트론 용병들이 숨어있을 거예요.”


백시우는 피로 더럽혀진 바닥 위에 비틀대며 일어섰다.


“제가 가서···.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싹 잡아서 교정본부에 처넣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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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14. 남진 (1) +3 23.07.18 335 22 19쪽
70 13. 임계 (5) 23.07.17 320 21 20쪽
69 13. 임계 (4) +2 23.07.16 341 2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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