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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27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08.15 01:59
조회
75
추천
4
글자
10쪽

Episode104_대전투(12)

DUMMY

아군의 오발 화살에 맞아 생긴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주먹을 뻗는 돌가죽.


그 앞에서 주윤은 절망적인 심정으로 넘어지는 방향이라도 결정하고자 발에 힘을 주었다. 놀라운 반사신경과 순발력으로 나름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돌가죽의 팔이 그를 지나칠리는 없다.


빗맞았다고 하기에도 뭐했다. 옆구리에 가해진 강렬한 일격은 스치자마자 주윤의 의식을 앗아갔다. 그 뿐이 아니다. 몸이 공중에 떠밀려 수 미터는 멀리 날아가더니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주윤의 그 위풍당당하던 몸체가 이제 걸레짝처럼 찌그러져선, 피로 얼룩진 몸뚱아리 하나로 전락해버린 그 모습이, 높이 띄워지면서 전장의 모두에게 보여졌다.


하온과 사라에게도 보였다. 하늘 위에 빨간 물을 들이는, 보기도 역겨운 살점의 비행이.


얼마나 잔혹한 광경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 만으로도 모든 인간에게 절망을, 모든 돌가죽에게 희열을 불러일으키는 소식.


“주윤 대장님이 쓰러지셨다!!!”


“주윤 놈이 쓰러졌다!!!”


양 진영에서 솟구치는 함성, 이를 뚫고 마지막 발악처럼 인간들이 튀어나와 주윤의 몸뚱이를 수호했고, 암살단원 몇이 신속히 달려와 그를 감싸고 후미로 피했다.


그러나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그것 말고 할 수 있는게 있기는 한가 싶었다. 기둥이 사라지자 마자 그의 군사들이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은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전세는 누가 봐도 돌가죽 측에 심각할 정도로 기울고 있었다. 아까와는 정반대의 형국으로, 이제 혁명군이 인간들을 압도하며 싸움을 즐기고 있다. 아니, 이제는 학살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점차 사기가 떨어져가고, 도망치려는 탈영병도 하나둘씩 늘고 있었다. 그리고 지휘관은 말을 타고 달려가 그런 겁쟁이들을 하나하나 칼로 찔러버렸다. 병사의 이탈을 막지 못했다간 군대도 순식간에 붕괴되어버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휘관이 암만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도망자를 참살해봤자, 그로 인한 공포보다는 팔 척 거구의 흉폭한 돌가죽에게 느끼는 공포가 훨씬 상회하는 탓에 병사들은 되려 호시탐탐 도망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도망가지 마라! 아직 형세는 완전히 기울지 않았다! 정신차리면 승리할 수 있다!”


이제는 애처롭기까지 한 지휘관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는 병사는 없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고 희망을 품는 자는 거의 없었다. 솔직히 말해, 승리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 배교자 무리에는 지휘관 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대로면 진형이 붕괴되어서 인간측이 맥없이 적들에게 쓸려버릴 것이다. 돌가죽의 승리가 확정되는 것은 단지 반역자들이 곤란해지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간측의 전멸이다.


“망할, 인간들아! 이대로면 모조리 죽어버려! 너희 도망치는 속도를 돌가죽이 못 따라잡을 리가 있겠어?! 최소한 버티기만이라도 해야한단 말야!!”


급기야는 사라마저 다급한 마음에 병사들을 타박했지만, 죽음이 눈 앞에 보이는 자들에게 그런 속 편한 응원이 먹힐리가 없었다. 그런 말은 살아남을 자신이 있는 사람에게나 통하는 법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행동도 병사들의 주의를 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휘관은, 순간 지휘봉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격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피로에 절어서 절망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인간이란 그토록 비효율적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이 시끄럽고 괴로운 전장 속에서, 머리를 감싸쥐어 잠시라도 안식을 취하기 위해, 손에 든 지휘봉을 떨어트리기 직전의 바로 그 순간.


“동작 그마아아아안!!!”


전장 한복판에서 울려퍼지는, 외침인지 비명인지도 분간할 수 없는 처절한 절규. 전장은 잠시 상대적인 침묵을 맞았다.


소리를 내지른 것은 전열 뒤쪽의 시체처럼 누워있던 존재 하나. 온 사방의 이목을 끈 이 암살단의 대장은. 그 지경이 되고서도 굳이 몸을 일으키더니, 용케도 위엄넘치는 언어로 지휘관을 타박했다.


“지휘관, 데라바! 네 말로는 용기를 얻는 자도, 독려를 얻는자도 하나 없구나! 어설프기 짝이 없도다!”


그 목소리를 낸 것은 분명히 주윤이다. 하지만 너무 탁하고 거칠어진 탓에, 목소리로 그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은 어지간히 예민한 사람이 아닌 한 불가능했다. 그 처절한 목을 떨며 남자는 또 외쳤다.


“보아라!!”


목소리로 누군지를 알아보지 못한 병사들은 모두 기다렸다는 듯 그 말에 따라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그 발언자의 모습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이 전장의 그 누구도 그렇게나 공포스러운 존재는 본 적이 없었다.


끔찍하기 그지 없는 꼴이다. 이미 날아간 한쪽 팔은 그렇다 치고, 그의 몸은 사지 곳곳이 파편에 뭉개져 걸레짝이 되어있었고 얼굴 한쪽은 바닥에 갈려서 뼈가 드러난 듯한 착각이 일었다. 살 곳곳에 쑤셔박힌 화살은 주윤이 움직일 때마다 흔들려서 몸에 난 구멍을 더 벌리고 있다.


몸 사방에선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으며 징그러울 정도로 노골적으로 패인 상처가 흉물스러울 정도로 주윤의 신체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 상태로 애써 중심을 잡아 걷고자 하는 모습이 더욱 기괴해 귀신과도 같았다.


만일 그의 푸르고 값진 옷이 걸레가 되서라도 걸쳐져있지 않았더라면, 세상 그 누구도 이 생김새에서 주윤을 떠올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보는 것 만으로도 불쾌감과 공포를 치솟게 하는 이 괴수가, 이제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가 꽁무늬를 내뺄 정도로 무서우냐! 너희가 명예를 저버리고, 사지 멀쩡히 도망쳐도 수치스럽지 않을 정도로···!”


대체 어디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지를 힘이 남아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피를 토하며 숨이 넘어갈듯 한 상황임에도, 주윤은 한층 더 음량을 높여 모두에게 호통을 내질렀다.


“이 짐승들이···!! 두려우냐아아—?!”


이에 반응하여, 그를 놔둬선 안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돌가죽 전사 몇 마리는 말이 더 이어지기 전에 그를 향해 튀어나갔다.


이제 팔을 뻗댈 기력도 없어보이는, 아니 그 이전에 기적같은 균형감각으로 서있는 것 자체부터가 놀라워보이는 이 인간을, 어째선지 그냥 놔둬선 안된다고 느껴졌다. 그 날카로운 육감은 분명 칭찬할 만 했다.


그러나 감이 조금만 더 날카로웠다면 그런 참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을.


충격적이게도, 그 꼬락서니를 하고서도 주윤은 팔을 휘두르는데 성공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서 적의 바로 앞에서 멈춘 주먹은 늘 그랬듯 번개처럼 충격파를 내뿜었고, 이 그럭저럭 감 좋은 돌가죽은 그대로 조각이 나서 그럭저럭 볼만한 꼴이 되었다.


그나마 감이 더 좋은 돌가죽은 주윤의 낌새를 눈치채고 뒤로 잠시 물러섰다. 그리고 적에게—잘린 팔이 도로 자라는 게 아닌 이상—한번 더 주먹을 날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금 주윤을 공격했다.


이 역시 감이 그렇게까지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주윤은 온 몸을 기울여 그 자를 향해 움직이더니, 사라에게 잘렸던 반쪽짜리 팔을 내밀고 전신을 휘둘러 적을 후려쳤다. 약하지만 정확히 심장을 겨냥한 충격파가 그를 뚫고 지나갔다.

104-1.png

그 돌가죽의 가슴 속에서, 심장 부근의 혈류와 신경이 모조리 뒤틀렸다. 그 쇼크로 단번에 한 돌가죽의 맥박이 멈추었다. 심장마비였다. 등에 실금이 나며 부서진 가죽 사이로 피가 뿜어져나왔다.


터져나간 것은 돌가죽의 심장만이 아니었다. 주윤의 오른팔 역시 그 충격에 휩쓸려 피분수를 터트렸다. 잘린 단면이 찢어져 사방팔방에 혈액이 쏟아지는 모습, 빨간 꽃이 폭발해 흩날리는 모습.

104-2.png

그 붉은 비를 맞으며 주윤은 이를 악물었다. 악악 소리를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싶은 본능을 혀를 깨물며 참아냈다. 죽을 정도로 아프고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주윤은 참았다.


자신을 보고있는 자들을 위해 일체의 엄살도 겉으로 내보이지 않았다. 오른팔에 감겨있던 지혈대를 더욱 꽉 죄이면서도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단지 그의 오른쪽 눈에 처연히 맺힌 눈물방울 하나만이 그의 아픔을 대변할 뿐.


대신 그는, 기울어지는 거구를 뒤로하고, 고개를 당당히 쳐들어 씩 웃어보인다. 악랄해보일 정도로,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었다. 그리고 외친다.


“정말 두려우냐!!!”


그 직후, 쓰러지는 돌가죽의 몸이 땅에 부딪쳐 온 사방에 쿵 소리를 울린다. 어찌나 절묘한 순간이었는지, 인간들에겐 그 굉음이 꼭 전장을 울리는 북소리처럼 느껴졌다.


“팔은 떨어지고, 뼈가 드러나 피 철철 흐르는 이 늙은 몸에도! 맥없이 부서지는 이놈들이 정말 무섭더냐!!!”


그렇게 말을 잇는 주윤의 모습은 너무나 당당하고 용맹했다. 만인의 눈에 비춰지는 그 충격적인 모습을 밝은 태양이 후광을 비춰 빛낸다.


그리고 주윤은 달린다. 온 몸을 질질 끌고간다 표현해도 될 정도로 어설프고 우스운 꼴이다. 그럼에도 계속, 그 넝마짝 몸을 이끌며, 주윤은 외친다.


“싸워라!”


만병의 등을 떠민다.


“싸워라!”


전장을 또 한번 뒤흔든다.


“싸워라아아아아—!!”


도망치려던 발걸음을 돌가죽을 향해 돌린 병사들. 전쟁의 승패가 결정나는 순간은 이로써 조금 더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작가의말

군대 가기 전에 빨리 완결해야하는 나

곧 군대 갈 놈 아니랄까봐 소설에서도 군대 얘기만 주구장창 쓰는 중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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