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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25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05.18 03:23
조회
80
추천
6
글자
11쪽

Episode78_전투의 무게(5)

DUMMY

“너희를 존경한다는 말은 진심이다. 이제까지 정말 열심히 해왔어. 여기서 그만 멈춰도 좋다. 분명 다른 길이 있을거야. 그러니 부탁하건데, 나와 함께 가다오.”


그 말을 들은 순간, 울마저도 잠시 그 말에 혹했다. 어차피 나라의 일이나 뭐가 옳고 그른지 따위는 그에게 딱히 중요하지도 않다. 어찌 살아남을지 앞길이 막막하던 차에 이런 말을 들으니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하온과 사라는 이를 수락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저 자의 말대로 된다면야 분명 더 바랄 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럴만한 믿음을 주었다.


비단 그의 지위나 명성 탓이 아니다.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묻어나오는 굳건한 의지와 청명한 정신이 더할나위 없는 신뢰감을 가져다준다.


솔직히 그들도 끌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겁이나서 이제껏 계속 미뤄두었던 상상 속 미래가 그의 말에 의해 떠올랐다. 언제까지 이 도주를 계속해야하는지, 모든 일이 끝나면 어딜 가야하는지, 영원히 안식없는 방랑만을 해야하는 건 아닌지 막막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온은 모두의 눈을 살피며 무언의 동의를 얻더니, 이내 조용히 용운에게 거절의 뜻을 전했다.


“정말 감사한 말씀이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런지 물어봐도 되겠나?”


“저희는 이제 단순 안위만을 생각하여 도주를 계속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당신의 조국은 이제 학살과 멸종이라는 커다란 죄를 범하려 하고 있고, 지금 달려가지 않으면 막을 일말의 희망조차 없어집니다.”


울도 결국 이에 반대하진 못했다. 암만 그래도 용운을 완전히 믿기는 어렵거니와 돌가죽과 인간 간의 전쟁이 그로써도 딱히 달갑지는 않은 것이었다. 대신 하온은 한가지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저희가 부탁하건데, 부디 그냥 보내주실 수는 없나요? 일이 끝난다면 제 발로 재판대에 서겠습니다.”


그리고 용운의 대답은 정말 빠르고 칼같이 돌아왔다.


“그건 안된다.”


“부탁합니다, 나라님은 지금 돌가죽의 멸망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종족이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다른들, 그 종족 자체에게 살아갈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닙니까? 분명 타협할 여지가 있을 것인데···! 지금이 아니면 막을 방법이 없단 말입니다!!”


하온이 마지막 희망을 담고 그 말을 외쳤지만, 용운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할 뿐, 그러다 결국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분명히 밝혀두지, 그럴 수는 없네.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재판대 위에서 그 말을 증언하는 것 뿐이다.”


“그 탓에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될지라도요?”


“나도 안다. 국가도 얼마든지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어쩌면 내가 틀린 판단을 내려 곧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는 일. 국가는 너희를 반역자라 부르고, 너희는 그 국가에게 저항하고 있으니, 나는 한쪽 말만 들어선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을 내릴 수 없어. 너희 진심과 별개로 모종의 오해가 있었을지 누가 알겠나?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바로 섣부른 판단을 보류하고, 너희를 재판대 위로 데려가는 것이지.


더군다나 군인으로써 군인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제멋대로 군다면, 너희가 무엇을 이룬들 그 국가는 결코 올바르게 돌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내 말이 틀린가?”


하온은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론으로 따지자면 억지를 부리는 쪽은 하온이고, 올바른 쪽은 용운의 말 아닌가.


뭐라 말 할 것도 없는 완벽한 협상결렬이었다. 울은 씁쓸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마침내 용운도 분위기를 읽고 더이상의 설득을 포기했다.


“그러나, 자네들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이러고 있을테지. 그렇다면 좋다. 각자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


사라는 창을 뽑아들었다. 하온은 흑광석에 집중력을 모아넣기 시작했다. 울과 사루비는 점점 멀찍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 앞의 용운 역시 사슬을 절그럭 대며 당겼다. 이에 연결된 그 육중한 철구가 믿기 힘들 정도로 가볍게 떠올라 그의 팔뚝에 매달렸다.


“한가지 말은 해두겠다.”


용운의 팔이 힘차게 휘둘러지며 철구를 붕붕 돌려댔다. 강한 바람이 퍼져나가며 그 위압감에 멀리 있는 하온마저 움찔했다.


“이렇게 된 이상, 뼈 한두군데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때려눕혀서 데려가겠다!!”


불살 선언을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이 남자 한 명 밖에는 없을 것이다.


철구에 이 이상 가속도가 붙기 전에 사라가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갔다. 저런 육중한 무기를 쓰는 상대에게는 선공권을 주지 않고 빠르게 공격을 몰아붙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용운은 그 즉시 팔을 쭉 뻗어 휘둘러 철구를 앞으로 끌어냈다. 사라는 뭔가를 직감하고 다급하게 속도를 줄이며 땅에 발을 긁었다. 엄청난 각력을 소모해 간신히 멈춘 그 바로 앞에 적의 철구가 떨어졌다.


그 엄청난 무게가 그대로 떨어지면서 땅 위로 부딪쳤고, 주변의 땅이 크게 울리며 흙과 모래, 돌멩이 따위가 튀어올라 터져나갔다. 그 진동이 사라의 발을 타고 그대로 온 몸으로 흘러들어온 탓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건 진퉁이다. 속이 비었거나 더 가벼운 소재를 쓴 것이 아니라, 그냥 통짜 쇳덩이를 둥글게 깎아서 사슬로 묶어놓은 무식한 물건인 것이다.


이런 물건을 대체 어떻게 들고 휘두르는 건지, 암만 사라의 몸이 딴딴해도 맞았다간 반죽행이다.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그러나 상상할 틈도 없다. 생각해보니 적의 반대쪽 손에는 또 반대쪽 철구가 하나 더 있지 않은가! 아직도 얼얼한 다리를 그대로 뒤로 빼내 황급히 뒷걸음질 치려 했다.


아니, 이번엔 뒷걸음질로 못피한다! 이번에 용운이 회전시키는 철구는 아까보다도 사슬을 길게 잡고 더 큰 원을 그리며 붕붕 돌리고 있어서 사거리가 두, 세 배는 더 길다.


앞, 옆, 뒤, 위 어딜 가든 피하긴 글렀다. 그렇다면 회피 이외의 것을 해야 한다. 사라는 창을 땅에 꽂아넣고 그 흙더미를 튕겨내 적을 향해 대량의 모래를 뿌렸다.


잠깐의 움찔함에 이제 막 휘둘러지려던 용운의 철구가 아주 약간 방향을 바꾸었고, 사라의 예리한 눈이 그 틈을 포착해냈다. 경로의 아래쪽, 공격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겼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대로 몸을 뒤틀었다. 거의 땅에 붙었다 싶을 정도로 기울어서, 철구는 아슬아슬하게 사라의 위를 스쳐갔다. 호쾌한 풍압이 살벌하게 그녀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이대로 쓰러지면 더 큰 빈틈을 노출시키는 셈이겠으나, 사라는 넘어지기 직전에 팔꿈치로 땅을 강타했다. 그 강한 힘으로 몸 전체가 강하게 튕겨나와 이내 무게중심은 다시 돌아왔고, 사라는 아까와 같이 수직으로 서있었다.


반면 용운은 방금 그 무거운 철구를 전력으로 휘둘렀다. 암만 큰 힘이 있어도 그 정도의 반동이라면 철구를 거둬들이기 힘들 것이다. 즉 지금이 바로 적이 공격할 수 없는 빈틈이라는 것이다.


재빨리 땅을 박차고 적에게 돌격하기 직전, 등 뒤에서 무언가가 사라의 몸을 끌어당겼다.


“우와앗!?”


그녀를 당긴 것은 하온이었다. 사라로썬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적을 쓰러트릴 기회가 눈 앞에 왔는데, 왜 방해하는 거지?


그 의문은 곧바로 그녀의 얼굴 앞을 스쳐지나간 철구 덕에 즉시 해결되었다.


그 악조건 속에서도 용운은 용케 그 무게를 제어하고 곧장 세번째 공격을 날려댄 것이다. 징한 놈! 저런 짓을 하려면 팔 힘이 얼마나 세야 하는거야?


바로 앞에 있던 사라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공격이었지만, 뒤쪽에 있던 하온이 이를 보고 뒤로 당겨준 덕에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라의 몸이 하온과 함께 뒤로 나뒹굴었다. 하온이 후욱대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생각해보니 급한 마음에 사라를 뒤로 끌어내긴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해낸거지?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힘이 솟아난다는 그런 현상일까?


“아, 내 뒤통수...”


심지어 얼떨결에 바닥에 패대기까지 쳐버린 모양이다. 미안해라. 반면 용운은 그 육중한 공격을 몇 번이고 날렸음에도 아직 쌩쌩해보인다.


“내가 상상한 것 보다도 훨씬 움직임이 빠르군. 역시 너희는 굉장한 소질이 있어. 가능하다면 나중에 내 부하로 와줬으면 할 정도다.”


적을 칭찬할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모양이다. 지금껏 수많은 적들을 상대해왔다지만 이런 인간은 처음본다. 과연 용장이라는 평은 괜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때 갑자기 적의 모습이 사라졌다. 별 기척도 없이 조용하게 픽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놀랍게도 적은 하늘 위까지 높이 뛰어올라있었다. 그것도 저 무겁디 무거운 철구를 들고 말이다. 미친··· 저 커다란 무게추를 양 쪽에 끼고 저 높이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강한 각력이 필요한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사라라고 해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적은 그 위에서 양쪽으로 사슬을 빙빙 돌렸다. 쌍방향으로 돌아가는 철구 두 개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모른다. 그것도 공중에서!


적의 오른손에 들린 철구가 곧장 하온에게 날아갔다. 저 커다란 물건이 총알처럼 빠르게 쏘아지는 걸 보면 세상의 물리법칙이 잘못되었나 의문을 품게 할 정도다. 사라가 급박하게 창을 뻗어 철구를 쳐내려 했다.


그러나 그 무게로 인해 되려 사라의 창이 밀려서, 적의 철구는 방향이 약간 비껴가는 선에서 그쳤다. 그 충격을 받아낸 팔과 다리가 무지하게 얼얼해서 덜덜 떨릴 지경이다.


하온의 옆에 철구가 떨어졌다. 그 충격에 꼭 벼락이 치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땅이 부서지며 흩뿌려진 모래와 돌멩이에 하온의 몸이 옆으로 넘어졌고, 철구는 아예 땅에 박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땅을 깊이 패어냈다.


“하···!”


사라는 하온의 이름을 부르짖으려 했으나, 곧 하온을 걱정할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아직도 공중에 떠있던 용운이 이번엔 사라를 향해 달려들고 있지 않은가.


땅에 무겁게 박혀서 움직이지 않은 철구와 이에 연결된 사슬을 끌어당겨서, 사라에게 접근하는 속도를 가속시켰다. 팔은 크게 휘두르며 철구를 정확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사라는 피해야 했다. 그러나 아까 전 하온에게 날아드는 철구를 막아낸 직후라, 그 충격으로 놀란 다리근육이 똑바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눈 앞으로 적의 일격이 날아들고 있다. 뭘 해야하지? 방어? 공격? 회피? 기도? 포기? 내세 기원?


답이 안보인다. 머릿속이 꽉 차있다. 대체 이 공격은 어떻게 막아내야 하는거야?


사라가 그러건 말건 철구는 무정하게 그녀에게 날아들 뿐이었다.


“사라-!!!”


하온이 사라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었다.


작가의말

끊기가 애매해서 다른 때보다 더 길게 적었습니다.
다음주가 중간고사인데 내가 미쳤지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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