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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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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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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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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344,696

작성
23.11.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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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DUMMY

“좀 와 봐. 보여줄 게 있어.”


눈치 빠른 소우는 그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챘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노련하지 못해, 금세 속셈을 들켜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 타고난 기세와 패기로 사냥감의 입에 기어코 미끼를 물리고 마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상대가 아이들의 사소한 표정에 무관심한 늙은 어른일수록 효력을 발휘한다.


일구는 거절하려는 소우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걱정 말고 가 봐라. 내가 봐주마.”


“아니에요, 아저씨.”


소우가 사양했지만, 일구가 그의 손을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친구들이 같이 놀자 안 하냐?”


일구의 억센 힘에 못 이겨 결국 소우는 손목에 묶은 끈을 풀고 소년들을 따라나섰다. 소우에게 끈을 받아 든 일구는 혀를 찼다.


“이게 목숨 줄이지, 목숨 줄이야.”


그러고는 멀어져가는 소우의 뒷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소년들이 소우를 데려간 곳은 뒤뜰이었다. 앞뒤로 소년들이 둘러싼 탓에 소우는 그들이 뭘 보여주겠다는 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뒤 뜰에 도착하고 나서도 소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우는 문득 불안해졌다.

생각해 보면 소우는 단조마을에 온 이래 또래 소년들과 어울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른들도 이 낯선 이방인을 얼른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소우는 어린 유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과 한데 어울린 적도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몇 걸음 뒤에서 소우를 지켜보며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만 할 뿐이었다.


잔칫날은 모두가 기분 좋은 날이니 아이들도 이제는 소우에게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기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우는 소년들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뒤 뜰 안쪽으로 깊이 들어오고 나서야 소년들이 소우에게서 물러났다. 소우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작은 우리였다. 무릎 위까지 겨우 올라올 정도로 낮고 사방은 장정 하나 겨우 설 만큼 좁았다.


그 안에 작은 개가 한 마리 들어있었다. 개는 웅크린 채로 축축하게 젖은 눈망울을 치뜨고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요괴들의 눈치를 살폈다.


솔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야, 너 이런 거 처음 보지?”


겁에 질린 작은 동물을 구경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소우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서천강에서 봤어.”


소우가 대충 둘러대려 한 말을 소년들은 용케 알아채고 비웃었다. 솔이 말했다.


“웃기는 소리 마. 우리도 평단 아저씨한테 사정해서 겨우 봤는데······”


소우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상단이 들어올 때 우연히 봤어. 이거 보여주려고 데려온 거야?”


그 말에 소년들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더니, 이내 서로를 보며 피식 웃기 시작했다.


“그래, 이깟 개보다야 보라색 날개 달린 요괴가 더 신기하지.”


소우는 불쾌했지만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 그의 생각은 골패에게 쏠려 있었다. ‘일구 아저씨한테 계속 맡겨 둘 수는 없는데······’ 시답잖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더는 자리를 비울 이유가 없었다.


그런 소우의 속내를 눈치챘는지 솔이 소우의 어깨에 제 팔을 둘렀다. 그는 소우와 함께 우리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넌 수괴 처음 보지? 잘 봐. 도견이라는 거야.”


수괴든 아니든, 소우의 눈에는 그저 그런 들개로 보였다.


도견의 길고 검은 털은 윤기 없이 빳빳하기만 했고, 치뜬 눈은 탁한 검은 색이었다. 꼬리는 뒷다리 사이 깊숙한 곳까지 말려 있고, 뾰족한 귀는 머리에 바짝 붙은 채로 누워 있었다. 몸에서는 마른 흙냄새가 났다.


이 짓궂은 소년 중 누가 자신을 먼저 해코지할 것인지 점쳐보기라도 하듯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바쁘게 좌우를 살폈다.


‘집이나 제대로 지킬지 싶은데······’


소우의 시큰둥한 표정을 본 솔이 말을 보탰다.


“이 녀석은 팔지 않고 잡아먹을 거래. 도견을 뼈까지 고아 먹으면 정력에 좋다더라.”


한 솥에 담아도 자리가 남을 만큼 작은 개였다. 이런 개를 뼈까지 고아버리면 아마 고기는 한 줌도 남지 않고 녹아버릴 것이다.


소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솔은 그제야 볼만한 꼴을 봤다는 듯 웃었다.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소우가 저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솔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누구 처지랑 좀 비슷한 것 같아서.”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소우와 이 가련한 개의 처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소우에게는 가족 같은 바림과 골패가 있고, 낡았지만 머물 거처도 있다. 바림이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한 그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단조마을에서 살 것이다.


“그렇게 불쌍하면 풀어주든지.”


소우의 말에 솔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대꾸했다.


“네 말이 맞아. 개 한 마리 풀어준다고 시해 어르신이 손해를 보시겠어?”


그러더니만 고개를 내젓는다.


“근데 나는 하나도 불쌍하지 않더라고. 개 팔자가 불쌍해 봤자지.”


소우는 하마터면 솔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자신을 개 취급하는 이 치기 어린 녀석의 주둥이를 갈겨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말린 것은 그 와중에도 남은 실낱같은 이성이 아니었다.


“여기서 뭣들 하냐?”


평단이 뒷짐을 진 채로 서서 아이들을 꾸짖었다.


“잠깐 구경만 한다더니 웬 소란이야?”


소년들은 평단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소우도 탐탁잖은 표정을 애써 감추며 물러나려는데 평단이 그를 불렀다.


“따라오거라.”


평단은 그를 시해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교족들과 술판을 벌일 거로 생각했던 시해가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서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소우는 의아했다.


소우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시해가 웃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음식은 좀 입에 맞느냐?”


소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귀한 음식은 처음 먹어봤어요.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래, 많이 먹고 가라. 내일도 또 오고.”


“감사합니다.”


“골패는 좀 어떻고?”


“항상 똑같죠.”


짐짓 웃는 소우를 딱하게 바라보던 시해가 그에게 평단이 내온 차를 내밀었다. 소우는 황송한 마음으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쌉쌀하고도 향긋한 내음이 났다. 그제야 갑작스러운 초청으로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졌다.


소우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시해를 쳐다봤다.


시해는 장사꾼에는 어울리지 않는 기품과 권위를 갖춘 사람이었다. 붉은 머리카락 사이 드문드문 자란 새치는 그가 장사꾼으로서 살아온 풍파를, 바위처럼 단단하고 곧게 뻗은 어깨는 그가 이제까지 지켜온 자존심을 증명 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의 날개는 다른 유족들보다 조금 크고 깃털도 풍성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덕이기도 하겠으나, 어쩌면 강인한 그의 천성이 날개로 발현된 것일지도 모른다.


시해는 주름진 눈을 찌푸리듯 웃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네게 부탁할 것이 좀 있는데······”


“어르신께서 제게요?”


소우는 놀라 얼른 찻잔을 내려놓았다.


시해는 보잘것없는 어린 객에게 부탁하는 처지임에도 민망한 기색 하나 없어 보였다. 그는 웃는 낯으로 조곤조곤 말했다.


“바림의 나이가 올해로 열일곱이지?”


“네.”


“보아하니, 너는 그보다 한 두어 살 어릴 듯싶구나.”


제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소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유도에서는 처녀가 열일곱이 되면 시집갈 때가 되었다고 한다. 그보다 더 빨리 가는 처녀들도 많지.”


소우는 뜻밖의 말에 애써 놀라움을 감추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바림은 얼굴도 예쁘장하고 제 아비를 살뜰히 돌보는 것만 봐도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알만 하다. 마을에서도 효심이 깊고 손도 야무지다고 칭찬이 자자해. 바림이 이 마을에 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골패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나마 내가 가끔 사람을 보내 들여다보는 게 다였지.”


바림은 골패의 딸이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골패와 함께 단조마을에 살지 않고 어머니와 둘이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골패는 그사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는데, 얼마 가지 않아 아내가 죽었고, 둘 사이에 남긴 자식은 없었다. 아내를 잃은 충격 탓인지 골패는 시름시름 앓더니만 결국 정신이 나가버렸다.


그렇게 몇 년을 짐승처럼 벌거벗고 동네를 쏘다니며 서천강에 몸을 던지기 일쑤였던 골패를 시해가 불쌍히 여겨 건사했지만, 그가 장사하기 위해 유도를 떠나고 나면, 골패는 득달같이 서천강에 몸을 던졌다.


그가 지금까지 물에 빠져 죽지 않은 것은 순전히 먼저 죽은 아내의 넋이 보살핀 덕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어느 날 갑자기 바림이 나타난 것이다.


바림은 자신을 골패의 딸이라 밝혔고, 스스로 골패의 집에 들어갔다. 골패가 사생아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바림을 의심했다.


정신을 잃기 전까지, 골패는 시해가 신임하는 상단의 일원이었고, 그 덕에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 큰 저택 같은 집 역시 골패가 인계와 마계를 꾸준히 오가며 손수 모은 돈으로 지은 집이다.


사람들은 바림이 어쩌다 골패의 소식을 듣고, 그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딸 행세를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후 바림이 보여준 태도는 마을 사람들의 의심을 무색하게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다.

실로 그때까지

골패는 짐승이나 다를 바 없었다. 길거리며 남의 밭이며 할 것 없이 대소변을 누고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달려드는 통에 쇠사슬에 묶어 두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 골패를 바림은 마치 갓 태어난 자식처럼 돌봤다. 낮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사천강으로 뛰어가는 골패를 따라다니며 그를 달랬고, 그의 대소변을 일일이 닦아주었다.


벗은 몸으로 돌아다니는 골패가 부끄럽고 거북할 법도 하건만 바림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그의 몸을 닦아주었고, 좋은 옷감을 떼어 손수 옷을 지어 입혀주었다. 그렇게 꼬박 2년을 바림은 골패의 딸 노릇을 했다.


시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골패의 집에 사람을 붙여 조사하게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바림은 골패의 재산에 단 한 푼도 손을 대지 않았다.


바림이 정말로 골패의 친딸인지 알 길은 없지만, 친딸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미치광이를 제 몸처럼 살피겠는가.


바림의 지극정성 덕에 골패는 더 이상 벌거벗지도, 네발로 기어다니며 사람들에게 해코지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그는 탕약을 먹어야 겨우 잠에 들고, 물귀신이 들린 듯 서천강에 몸을 던지지만, 바림이 보이지 않으면 눈물까지 쏟으며 그녀를 찾을 만큼, 바림과 골패는 애틋한 사이가 되었다.


“젊은 시절 내가 골패에게 신세를 아주 많이 졌어. 그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광증에 걸린 골패를 내 나름대로 보살핀다고 보살폈지만, 어디 제 가족만 하겠냐? 이제라도 바림이 와주니 내가 다 감사한 마음이었지. 그래도 내가 양심이 있어서 바림에게 돈이라도 몇 푼 쥐어 주려 했는데, 그 영특한 것이 한사코 거절하더라. 그나마 일구 편으로 보내주는 것은 받더라만.”


시해의 말에 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바림도 사실은 일구를 통해 시해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을 것이다. 시해의 말대로 바림은 영특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얘가 점점 나이가 차니 내 마음도 조급해지더구나.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좋은 혼처라도 있나요?”


소우가 애써 담담하게 대답하자, 시해는 한시름 놨다는 듯 빙긋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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