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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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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319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3.11.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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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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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3쪽

서천강에서 태어난 소년

DUMMY

유족의 이름을 따 유도라 불리는 땅. 그 한편에 자리 잡은 단조마을.


머리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어깻죽지에는 붉은 날개를 단 유족들은 단조마을 거리 곳곳마다 오고 가며 온 동네에 활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우물로 물을 뜨러 가는 아낙네, 머리에 큰 짐을 이고 장터로 나가는 장사꾼, 장터에서 음식이며 옷이며 바리바리 사 들고 상기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모녀.


그중에서도 가장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은 바로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녀간에 팔짱을 끼고서, 혹은 젊은 또래들끼리 모여서 곧 있을 마을 잔치에 대해 떠들었다.


“작년에는 너희 언니가 갔으니, 이번에는 너도 가야지.”


“안 그래도 우리 어머니가 아주 벼르고 계신다.”


“이번 잔치는 더 크게 열릴 거래. 교족들도 많이 오겠지?”


“교족들은 어쩜 다들 그렇게 하나같이 잘생겼니? 키도 훤칠하고. 사냥꾼들이라 힘도 좋고, 남자다운 것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


“유족 남자들은 거기에 비하면 비 오는 날 수탉 같지.”


여자들의 말을 들은 젊은 남자들은 그들을 향해 눈을 흘기며 바닥에 침을 뱉거나 들으라는 듯 욕을 지껄였다. 그러면 여자들은 보란 듯이 그 교족 남자들에 대해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우는 마을 잔치니, 젊은 여자들의 혼인이니 하는 것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저씨.”


소우는 심란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잰걸음이었지만, 다급한 발끝이 그가 머지않아 뛰고 말 것임을 미리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좌우를 살피며 연신 중얼거렸다. “골패 아저씨, 어디 계세요?”


그렇게 중얼거리기만 해서야 그가 찾는 아저씨가 들을 리 만무하지만, 소우는 별도리가 없었다.


‘바림이 알기 전에 찾아야 하는데······’


골패가 동거인들에게 말도 없이 집을 나가는 것은 일상다반사로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때마다 골패의 몸이 성하지 않다는 것이다.


혼자서 집을 찾아 돌아올 지각도 없는 사람인 데다, 늘 걸음이 조급한 탓에 돌부리도 없는 길에서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바림은 그 모습을 못 견딘다. 광증에 걸려 무슨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한참 퍼붓고는 혼자 뒤뜰에서 눈물을 훔치는 바림의 모습을, 소우는 몇 번이나 봤다.


이번에도 바림이 울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온 동네를 뒤져도 도통 골패가 보이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나타나야 하는데······’


“야!”


웬 소년이 소우를 불렀다. 소년의 불만스러운 표정이 의아했지만, 소우는 괘념하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솔. 골패 아저씨 못 봤어?”


“또 찾냐? 그러니까 잘 지키고 있었어야지. 이게 대체 몇 번 째야? 아예 목줄을 채우라니까?”


솔이 낄낄대자, 그와 함께 있던 소년들도 서로 마주 보며 웃어 젖혔다. 소우의 눈에는 그들이 꼭 혀를 날름거리며 쉭쉭 대는 뱀처럼 보였다.


“못 봤다는 말이지?” 하며 소우가 몸을 돌이키자, 솔이 버럭 성을 냈다.


“야! 내가 불렀잖아!”


소우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삐딱하게 돌아봤다.


“왜?”


솔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너 들었지? 오늘 시해 어르신 상단이 마저 도착한다고.”


“그래?”


소우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시해 어르신이 그랬잖아. 그래서 조만간 마을 잔치를 연다고. 교족들도 엄청나게 올 거라지?”


소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바림도 곧 있으면 시집갈 나이 아니야? 너 언제까지 그 집에 얹혀살 거냐?”


소우는 삐딱한 몸을 바로 돌려 솔을 똑바로 노려봤다. 솔도 지지 않고 그를 노려봤지만, 소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림이 교족을 따라 시집을 갈지 말지는 바림이 결정할 문제야. 그런 일로 바림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


솔의 친구들이 입술을 삐쭉거리며 소우의 말을 흉내 냈다.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 그러나 솔은 그들에 조롱에 참여하지 않고 그저 소우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주먹을 휘두르지도, 발길질하거나 돌을 집어 던지지도 않는 그를 소우가 경계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솔과 시답잖은 힘겨루기를 하며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소우는 더 말하지 않고 곧장 자리를 떴다. 솔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멀어지는 소우를 노려봤다.


붉은 파도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소우의 보라색 날개가 작은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펄럭였다.




서천강의 나루터에는 사람이 없다. 배웅하는 사람도, 맞이하는 사람도 없이 그저 빈 배들만 선착장에 둥둥 떠 있을 뿐이다.


반년 만에 고향 땅을 밟은 일구는 마중 나온 가족 하나 없다는 사실에 서운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저 무던한 표정으로 갑판 위에 서서 선장이 하는 일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에도 무사 귀향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장이 지푸라기로 만든 인형을 두 손 높이 쳐들더니 그대로 서천강을 향해 집어 던졌다. 인형은 강 위에 둥둥 떠다니다가 점차 강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내리자!”


일구가 말했다. “짐을 내려라!”


사환들은 둘씩, 셋씩 궤짝에 들러붙어서 짐을 내렸다. 궤짝들이 앞서고 그 뒤로 교족들이 나무 우리를 들고 줄지어 배에서 내렸다.


유족 상인들은 인계로 떠날 때마다 교족들과 함께하는데, 그들이 마계에서 잡은 수괴들이 인계에서 제법 비싸게 팔리기 때문이다.


교족은 타고 난 사냥꾼이다. 그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면 사냥감의 냄새를 맡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들이 잡지 못하는 것은 없다. 온 산 천지에 널리고 널린 짐승들이 전부 그들의 사냥감이다. 그들이 모르는 짐승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저 짐승을 잘 잡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뛰어난 수괴(獸怪) 사냥꾼이다.


수괴는 짐승의 형상을 했으나, 짐승보다 더 지혜롭고 기력이 강하다. 수명도 길고, 어떤 수괴는 사람처럼 신통력을 부리기도 한다.


지금 저 나무 우리 속에 있는 작은 개도 그 수괴 중 하나다. 지금은 길바닥을 뛰노는 강아지와 진배없는 모습이지만, 저것이 언제 어떻게 이를 드러내고 포악을 부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저들이 잡을 수 있는 것은 고작 짐승만이 아니다. 하여간 살가죽 아래에 심장이 뛰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자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유족들은 그들에게 인간 사냥을 맡겼다.


교족들이 인계에서 갓 잡은 인간 노예들이 마지막으로 갑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양손과 양발이 묶인 채로 시장에서 파는 생선처럼 한 줄로 엮여 있었다.


“움직여!”


교족들의 재촉에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린 채로 뒤뚱뒤뚱 배에서 내려갔다. 하나같이 어리고, 아리따운 얼굴을 한 아이들이었다.


“고향이 최고다.”


사환 하나가 말하자, 다른 사환들이 웃으며 그를 놀려 댔다.


“인간 기생을 양쪽에 하나씩 끼고서 노래를 부를 때는 언제고.”


“마누라한테 얘기하기만 해!”


일구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시해의 사환 중 인계에서 계집질 한 번 안 한 사람이 있을까. 아마 일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저들은 서로의 치부를 흔쾌히 덮어줄 것이다.


마중 나오는 가족이 없으니, 사환들은 인계에서 먹고 마시고 계집질하며계집질을 하며 즐기던 무용담을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서천강의 유일한 항구라고도 불리는 유도의 주민들인 유족들은 일 년에도 두세 번은 가족들을 서천강으로 보낸다. 서천강 너머에서 장사하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기 때문이다.


마계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유도에서 서천강 너머에 있는 인계까지 뱃길로 고작 사흘이면 갈 수 있다. 그 사이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힐 일은 거의 없다.


서천강의 수면은 대체로 늘 잔잔하고, 그 위로는 늘 순풍이 분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유족들이 가족들을 쉬이 배에 태워 내보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때마다 가족을 떠나보내는 유족들의 마음 한편에는 늘 풍랑이 일고 있다.


가늠할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서천강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불길한 소문 탓이다.


서천강을 사이에 두고 요괴와 인간은 가늠할 수 없는 오랜 세월 서로 반목하며 살아왔다. 서천강에 빠지면 그 육신은 깊은 강바닥까지 가라앉고 그 넋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 물귀신이 된다는 오래된 이야기는, 서로를 향한 막연한 두려움이 빚어낸 산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천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기꺼이 몸을 떨치고 일어난 사람들이 있었다.


마계의 끝자락, 서천강변에 자리한 유도의 주민들은 일찌감치 유도의 지리적 특성을 이점으로 삼았다. 그들은 서천강에 배를 띄워 인계로 향했다.


이 붉은 머리털과 붉은 날개를 가진 족속들은 도통 포기를 모르는 탐험가들이다. 머리가 좋고, 결단력이 있어 마음먹은 일은 기필코 해내고야 만다.


불현듯 나타난 날개 달린 장사꾼들에게 겁을 집어먹은 인간들은 쟁기를 꼬나들고 역정을 냈지만, 유족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계에서 있는 대로 끌어모아 온 물건들을 펼쳐 놓고 다짜고짜 장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물건들을 팔았다. 인계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흔한 것들부터, 마계의 장인들이 손수 만든 사치품과 수괴 사냥꾼들이 목숨 걸고 가져온 수괴의 가죽과 뼈로 만든 가공품들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견물생심이라, 진귀한 물건들을 본 인간들의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유족이 언제부터 인계에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시작했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은 없지만, 서천강 유역에 사는 인간들이 유족 장사꾼들과 거래한 역사가 매우 길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쨌든, 유족들은 그 불길한 소문의 세월만큼이나 오랫동안 서천강에게 빚을 지며 살아왔다.


서천강에는 늘 순풍이 불고, 이제까지 배가 파선한 일은 거의 없었으나, 수면 아래 그 시커먼 속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평생을 유도와 인계를 오간 뱃사람들마저도 물살이 마치 물귀신의 손짓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손짓에 홀려 한밤중 서천강에 몸을 던지기도 한다.


유족들은 서천강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되도록 그곳으로 가까이 가지 않았다. 서천강을 건널 때면 항상 짚으로 만든 제물을 서천강에 바쳤다.


시해의 상단에서 일한 지난 20년 동안 일구는 서천강에 몸을 던지려는 사환들을 봤다. 그 중 둘은 갑판 너머로 몸을 길게 내밀고 있을 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하나는 물에 빠졌으나 가라앉기 전에 건졌다.


그리고 하나는 영영 건질 수 없었다.


물에 빠졌던 그 사환은 그날 후로 배에 오르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며 산다.


시해는 서천강을 건넌 덕에 어마어마한 부를 모을 수 있었고, 그 덕에 일구를 비롯한 그의 상단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자람 없이 살고 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일구는 당장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유도를 떠나고 싶었다.


인계에서 사 온 물건들의 수량을 모두 확인한 사환들은 이를 일구에게 보고했다.


그때 저 멀리서 밤새가 우짖는 것 같은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골패 형님 아닙니까?”


사환의 말에 일구가 눈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과연 골패가 머리를 산발하고 양손을양 손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일구가 혀를 차며 앞으로 나섰다.


“골패, 왜 혼자야? 바림과 소우는? 자네 또 바림 몰래 집을 나왔나?”


골패는 일구를 알아본 듯 잠시 멈춰 서서 그를 빤히 쳐다봤다. 일구가 다가가며 말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바림이 걱정하겠다.”


“바림······” 하며, 골패가 팔을 떨어뜨렸다.


“그래.”


일구는 골패를 다독이며 그의 몸을 뒤로 돌이켰다. 그런데 갑자기 골패가 뻣뻣하게 버티고 서선 어딘가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일구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이키는 순간,


“아아아악——!!”


골패가 순식간에 일구를 뿌리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일구가 뒤늦게 그를 잡았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오히려 그를 붙잡은 일구의 몸이 연처럼 펄럭일 지경이었다.


그는 이빨을 딱딱거리며 두 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겁에 질린 인간 노예들이 있었다.


‘아차, 골패 이놈. 인간을 싫어했지!’


몇 달 고향을 떠나 있었다고, 그새 골패의 성질을 잊어버렸다. 일구는 사환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힘껏 골패를 말렸다. 그러자 골패는 별안간 일구를 향해 이빨을 들이댔다.


“안 돼요, 아저씨!”


그 순간 일구의 눈앞에 보라색 날개가 펄럭였다. 소우였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YADA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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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우와 바림 23.11.22 6 0 14쪽
2 자장가 +1 23.11.22 10 1 13쪽
» 서천강에서 태어난 소년 23.11.22 2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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