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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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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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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3.11.2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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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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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잔치

DUMMY

잔치가 열렸다.


시해의 집은 음악 소리와 교족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교족들은 술기운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저마다 옆구리에 기생을 끼고 벗은 발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상마다 온갖 산해진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음에도 여자들은 부엌을 오가며 새로운 음식을 대령했다.


시해는 대문을 활짝 열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대궐 같은 시해의 집은 발 디딜 틈 없이 시장통처럼 북적거렸다. 거지들은 대문 앞에서 여종들이 퍼주는 쌀밥을 받아 들고 넙죽넙죽 절을 했다.


그러나 소우는 거기 없었다. 바림은 식구들이 잠든 사이에 새벽 일찍 시해의 집으로 품앗이를 하러 떠났고, 소우와 골패는 집에 남아 하릴없이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골패는 늘 그렇듯 헛소리를 지껄이며 온 집안을 쏘다녔고, 소우는 그런 골패는 건사하면서도 용케 집안일을 해냈다.


해가 중천을 지나, 골패가 약 기운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소우는 얼른 골패를 침상 위에 눕혔다. 골패가 자면 그도 한숨 잘 생각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골패는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발작하며 바림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디 있냐! 바림! 바림!”


골패의 발작은 반 시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소우는 어젯밤 가져온 잔치 음식으로 골패를 달래기도 하고, 성화를 내기도 하고, 그도 통하지 않을 때는 붙잡고 하소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소우는 그런 자신의 처지가 딱하게 보였다. 그는 완전히 지쳐버렸고, 골패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세가 등등해졌다. 마치 소우의 기운을 빨아먹기라도 하듯이.


소우는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안 되겠어요.”


그는 발광하는 골패의 몸에 겨우 겉옷을 걸친 뒤 대문 밖으로 향했다. 골패는 잠시 당황하는 것 같더니 이내 신이 나서는 그를 따라 나섰다.


“바림!”


“바림한테는 못 가요. 대신 서천강으로 가요. 좋으시죠?”


골패는 침을 뚝뚝 흘리며 활짝 웃었다. 소우는 골패의 목덜미를 대충 잡아 침을 닦아주었다.




한참을 괴성을 지르며 서천강변을 뛰어다니던 골패는 기운이 다했는지, 앉아서 강물을 향해 돌멩이를 던져댔다.


소우는 조금 멀찍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골패의 발광을 가만히 지켜봤다.


‘저렇게 쏘다니다 날 발견했겠지.’


밤이었고, 별도 보이지 않는 흐린 날이었다고 바림은 말했다. 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것이,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고.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고 먹구름만 불길하게 하루 온종일 하늘을 덮고 있었더랬다.

‘그날 골패는 왜 혼자서 서천강을 떠돌고 있었을까? 바림은 짐짝처럼 골패 손에 들려있던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림의 집에 정착하기로 한 이후로, 소우는 틈이 날 때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나 애쓰면 애쓸수록 그날의 먹구름처럼 머릿속은 캄캄하기만 했다.


소우의 머릿속은 대체로 어둡고 막막하다. 그의 영혼은 그날의 서천강변에 우두커니 서 있다. 강물을 등지고, 단조마을이 있는 저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지만, 영혼의 한쪽 눈은 아득한 강너머를 힐끔거린다.


기억을 잃는 것은 마음이 반편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소우는 온유하고, 지혜롭고, 성실한 사람이다. 바림과 골패가 베풀어 준 은혜를 늘 생각하며,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자 애쓴다.


자신을 거부하며 곁눈길로 괄시하던 마을 주민들에게도 한결같이 친절하다. 단조마을 사람들은 보라색 날개를 가진 낯선 소년이 바림의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 존경을 표한다. 어떤 이들은 골패와 한데 묶어 무시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소우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내가 나로 알고 있는 것 중 진실은 무엇일까? 나는 사실 아주 괴팍하고 오만방자한 사람이 아닐까? 어쩌면 나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고 추방당한 것은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잃어버린 반편이 아득히 멀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수록 그의 두 다리는 바림과 골패가 사는 그 낡고 커다란 집에 깊이 뿌리를 내린다.


‘기억을 되찾았다고 하면 바림이 걱정하려나.’


바림은 진심으로 기뻐해 줄 것이다. 소우가 가족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두 말 않고 그를 보내줄 것이다.


“배곯지 말라며 먹을 걸 바리바리 싸주겠지.”


소우는 제 말에 피식 웃었다.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골패의 자장가가 강바람을 타고 소우의 귓가를 맴돌았다. 소우는 멍하니 노래를 따라 부르다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골패를 달래느라 기운을 모두 쏟은 탓이다.


‘안 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소우는 갑자기 덮쳐온 졸음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나의 작은 새.


비몽사몽 속에서 소우는 자신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꼈다. 작고 따뜻한, 그리고 모래바람처럼 마른 손길이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소우는 하릴없이 그 손길에 자신을 내맡겼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스럭.


수풀 소리가 소우를 깨웠다.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뒤를 돌아봤지만, 보이는 것은 바람이 흔들리는 잎사귀뿐이었다.


“바림!”


골패가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소우는 그 잠깐 사이에 잠이든 자신을 자책하며 얼른 골패에게 달려갔다.




결국 소우와 골패는 폭삭 젖고 말았다. 물장구를 치던 골패는 자신을 방해하러 온 소우의 어깨에 두 번이나 올라탔고, 날개는 다섯 번이나 잡아당겼다. 소우는 그를 떨쳐내느라 세 번이나 물을 먹어야 했다.


물속에서 이미 한바탕 진을 뺀 소우는 물에 젖어 무거워진 몸과 그만큼이나 무거워진 골패를 이끌고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바림이 어떤 잔소리를 해댈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바림이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뒤처리를 해야겠지만, 소우는 그럴 기운이 없었다.


그런데 웬걸, 소우가 대문을 열기도 전에 바림이 대문을 열며 나타난 것이다. 바림은 물에 젖어 하얗게 질린 소우와 골패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만 별말없이 두 사람을 집안으로 들였다.


소우는 입을 꾹 다물고 앞장서 걸어가는 바림의 뒷통수를 불안하게 바라봤다. 골패는 소우의 마음도 모르고 바림의 이름을 연신 부르며 그녀를 향해 손을 휘적거렸다.

“아저씨, 눈치 좀······ 우린 바림한테 죽었어요, 이제.”


소우가 골패에게 속삭였지만, 그가 들을 턱이 없다.


“고생했어.”


바림이 빙긋 웃으며 소우를 돌아봤다.


“춥겠다.”


그리고는 손수 방문까지 열어주는 것이다.


소우는 얼떨떨하다 못해 황송한 기분이었다. 바림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골패의 몸을 손수 닦아주고, 옷도 갈아입혔다. 제가 하겠다는 소우를 뿌리치고 그녀는 골패에게 탕약까지 달여 먹였다.


그리고서는 소우에게도 뽀송뽀송하게 마른 옷을 내주었다. 심지어 그의 젖은 날개를 직접 닦아주었다.


“내가 할게!”


소우가 몸 둘 바를 모르고 몸을 빼자 바림은 그의 등을 가볍게 때렸다.


“가만히 있어. 내가 해주겠다는데, 싫으니?”


“아니, 아니!”


소우가 고개를 흔들자 바림이 까르르 웃었다. 소우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등 뒤로 바림의 온기가 미미하게 느껴졌다. 그의 날개를 닦는 바림의 손길은 마치 깃털을 한 가닥 한 가닥 고르며 쓰다듬듯 섬세했다.


고요한 밤이었다. 벽 너머에서는 약 기운에 취해 잠든 골패가 코 고는 들려왔고, 창가에서는 풀벌레 소리와 수풀을 흔드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소우에게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림의 숨소리뿐이었다.


“소우.”


소우는 바림의 부름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응.”


“내일은 너도 와.”


“잔치 말이야?”


소우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난 괜찮아. 아저씨도 계시고······”


“그러지 말고.”


소우가 웃었다.


“네가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잖아. 오늘도 배부르게 먹었는걸.”


“아버지랑 같이 와.”


바림이 소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도 함께 즐겼으면 좋겠어. 아버지는 걱정하지 마.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봐주기로 했어.”


“정말?”


이라고 대꾸한 소우는 아차 싶었다. 그러나 바림은 좋은 징조를 본 듯 빙긋 웃으며 다시 소우의 날개를 만졌다.


“그럼. 다들 네 생각을 많이 해줘. 네가 우리 가족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말이야.”


소우는 문득 서천강에서 만났던 상단 사람들을 떠올렸다. 냉담한 눈빛으로 멸시하던 사람들. 차라리 골패가 강에 빠져 죽기를 바라던 사람들.


“인간 노예들이 많던데······ 모두 시해 어르신 집에 있는 거지?”


“전부 가둬놨어. 나도 어르신 집에서 일하는 내내 한 번도 못 봤는걸.“


소우가 영 마음을 돌릴 기색이 보이지 않자 바림은 아예 그의 옆에 앉아서는 설득하기 시작했다.


“잔치가 끝나려면 5일이나 남았어. 음식을 얼마나 준비했는지 5일이 아니라 보름 동안 잔치해도 음식이 남겠더라. 어제도 마을 사람 절반은 온 것 같아. 와서 한 끼만이라도 먹어. 좋은 술도 많아. 어르신이 마을 사람들에게도 대접한다고 넉넉히 준비하셨어. 인계에서만 나는 진귀한 과일도 많고. 맞아, 너 수괴 본 적 없지? 이번에 교족들이 정말 신기한 수괴를 잡아왔거든. 교족들한테 부탁하면 구경할 수 있을 거야.”


재잘재잘 떠드는 그 모양새가 어찌나 예쁜지. 옆에 바짝 붙어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바림의 아기자기한 입술을 보며 소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바림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서야 소우는 그 사실을 알아챘다.


‘괜찮겠지.’


소우는 골패의 방으로 향하는 바림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딱 한 끼만 먹고 오는 건데······’




딱 한 끼만 먹고 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산인해를 이룬 시해의 집을 보자니 소우는 별수 없이 마음이 들떠버렸다.


이때껏 소우는 잔치 자리에 참석한 기억이 없다. 잃어버린 기억들 중 그런 유쾌한 기억도 있을 것이지만, 적어도 소우에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소우를 맞이한 사람은 시해의 집사인 평단이었다.


소우가 고개를 숙이자 평단은 그의 어깨를 부둥켜안다시피 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는 소우의 뒤에 서 있는 골패를 힐끗 쳐다봤다. 골패의 허리에는 끈에 둘려 있었고 야무지게 묶은 매듭에 딸린 끈은 소우의 손에 들려 있었다.


평단의 시선을 눈치 챈 소우가 서둘러 말했다.


“아저씨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단속할게요.”


평단은 더 말하지 않고 웃는 낯으로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가장 구석진 곳 빈자리에 그들을 앉혔다.


구석이라고는 해도 여느 상과 다를 바 없이 온갖 산해진미로 풍성했다.


소우는 매듭에 딸린 끈을 짧게 잡아 자기 손목에 묶고 골패가 얌전히 먹을 수 있도록 빈 그릇에 그가 먹을 음식을 덜어주었다. 숟가락도 던지지 못하도록 골패의 손에 단단히 붙들어 매었다. 그러나 골패를 본 주변 사람들은 그를 흘깃 쳐다보며 불편한 기색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저 미친놈이 또 지랄하면 이번에는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다시는 얼씬 못하게 혼쭐을 내야지.” “저놈이 더 문제야. 저놈이 자꾸 골패를 부추기는 거 아냐?” “바림이 쫓아낼까 봐 그러지. 기둥서방 노릇을 한다고 고생이 많다.”


소우는 사람들의 험담을 무시하며 애꿎은 끈만 만지작거렸다. 골패는 끈이 거북한 듯 칭얼거리더니만 그것도 잠시, 맛있는 음식에 정신이 팔려 허겁지겁 입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우는 쉽사리 식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그는 국물과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골패의 턱과 상을 닦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그의 밥그릇에 누군가 고기를 덜어 얹어놓았다.


“좀 먹어라.”


도도의 아버지 일구였다. 일구의 말 한 마디에 소우와 골패를 물어뜯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바림과 도도와의 친분 덕에 소우는 종종 도도의 가족들에게 신세를 지고는 했다. 바림의 손을 빌려 일구가 입던 낡은 옷을 보내주거나 먹을 것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면 소우는 일구가 상전인 시해와 함께 장사하러 유도를 떠나 집을 비울 때마다 그 집에 들러 힘쓸 일에 손을 보태주었다. 무거운 것을 나르거나, 종종 나무를 해다 주기도 했고, 지붕이나 바닥을 보수해 주기도 했다.


일구는 단조마을에서 소우에게 사심 없이 호의를 베풀어 주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소우는 감사 인사를 하며 겨우 한술 입에 넣었다.


일구는 이미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벌겠다. 그는 소우의 술잔을 채워주려 했지만, 소우는 사양했다.


“술에 취하면 아무래도······” 하며 그는 골패를 힐끗 쳐다봤다. 일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도는 좀 있냐?”


“약을 드시면 그래도 좀 얌전해지세요.”


“인계에서 지랄병에 잘 듣는 약이 있다길래 좀 가져왔다. 도도한테 가져다주라고 할 테니 꼭 해 먹여라.”


“감사합니다.”


소우가 한술 더 뜨려는데 누군가 그를 불렀다.


“야.”


열다섯 남짓 되어 보이는 소우 또래의 유족 소년들이었다. 앞장서 있던 솔이 소우를 향해 손짓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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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장가 +1 23.11.22 10 1 13쪽
1 서천강에서 태어난 소년 23.11.22 2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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