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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pen 님의 서재입니다.

회한의 마스커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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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pen
작품등록일 :
2017.10.06 18:42
최근연재일 :
2018.02.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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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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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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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86. 가면과의 이별

Letum non omnia finit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




DUMMY

현동주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보고를 받자마자 출발했다고 가정하면 도착하기에는 꽤 이른 시간이었다. 경광등과 사이렌을 울리고 신호까지 무시하며 액셀을 밟았을 것이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정직 상황이었지만 사건 수사에 복귀하게 해 달라고 서장에게 강력하게 요청한 덕분에 현동주는 수사본부로 복귀했다. 그는 일터에 나와 있을 때 가장 즐겁고 존재감을 느끼는, 타고난 워커홀릭이었다.


“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해 봐.”


장세민은 SECURITY K에 출동해서 CCTV를 분석하다가 도연희의 정체를 알아낸 후 그녀의 집까지 추적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도연희와 인천대교 기념관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 시각에 정체불명의 저격수에게 총격을 당했다는 부분에 이르자 현동주의 안색이 돌변했다.


“ 총격을 받았다고?”


“ 틀림없이 라이플이었습니다. 서 형사하고 조 형사를 보내서 주변을 조사하라고 했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주변이 탁 트인 주차장이라 저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걸 감안하면 적어도 50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쏜 것으로 보입니다. 도연희는 우리가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고 도망치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다리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장세민은 저격수 용의자로 SECURITY K의 조직원들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부분은 나중에 확인을 하고 헤집어야 할 사항이었다.


“ 범인을 밝혔으니 그나마 다행이군. 일단 지금까지의 물증을 확보해. 경비회사의 CCTV 화면도 확보해 놓고 도연희가 복무했던 군부대 지휘관도 만나보고. 그녀가 범인이 확실하다면 도망을 치다 사망한 것으로 상부에 보고하자구. ”


현동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도연희의 소나타가 부순 가드레일을 바라보았다.


“ 히유. 높기도 높네. 저기서 떨어졌으면 도저히 살아날 수가 없겠구만.”


“ 네. 설령 차에서 빠져나왔다고 하더라도 물살이 빨라서 살아남기 쉽지 않을 겁니다.”


현동주는 아내와 장인, 장모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어느 정도 회복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 사실을 잊기 위해 더 열심히 현장을 돌아다니며 일에 몰두하는지도 몰랐다.


두 시간 후 기다리던 인양선이 도착했다. 장세민은 도착한 인양선으로 건너갔다. 크레인 기사와 잠수부들에게 정확한 추락지점을 알려줘야 했다.


“ 저쪽이에요. 네, 맞아요. 그 정도입니다.”


장세민이 가르쳐준 지점을 향해 잠수부 두 명이 뛰어들었다. 바닷물 표면으로 잠수부들이 뿜어내는 공기방울들이 뽀글거리면서 올라왔다. 바다 속 유속이 빠르다면 단시간 내에 차량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가능한 한 빠르게 도연희의 시체를 찾아야 했다.


잠시 후 수면 위로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잠수부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 여기 아래 차가 있습니다.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운전석과 조수석 주위로 피 자국이 있고 앞 유리가 떨어져 나간 상태입니다. 수면에 부딪힐 때의 충격 때문에 운전자는 차에서 튕겨나갔을 겁니다.”


장세민은 크게 낙담했다. 도연희의 시신이 충돌 시 튕겨나갔다면 이제 어디로 흘러갔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일단 차량부터 꺼내고 보죠. 하나씩 해결합시다.”


인양선 위에 있는 거대한 크레인이 천천히 인양용 고리를 수면 위로 내렸다. 잠수부들이 인양고리를 운전하는 크레인 운전사에게 수신호를 보내면서 위치를 조정했다. 인양작업은 고도의 집중력과 끈질긴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인양작업을 지켜보고 있자니 끊은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담배 대신 군것질 거리가 없나 주머니 여기저기를 뒤지고 있는데 아득한 해안선 너머로 늘씬하게 빠진 흰색 요트가 보였다. 팔자 좋은 어떤 금수저가 흥청망청 부를 과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어떤 놈은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이 고생을 하는데 부모 잘 만난 놈은 요트에 앉아서 세월 가는 줄 모르는구만.”


인양용 고리에 매달린 소나타가 바다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가드레일과 수면에 부딪힌 충격 때문에 보닛은 흉하게 일그러진 채 운전석 앞까지 밀려들어간 상태였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에어백은 모두 터져 있었다. 만일 수면과 충돌하면서 차 밖으로 튕겨 나갔다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 저 정도 충격이면 수면에 부딪히기도 전에 정신을 잃었겠는데? 수면에 부딪히기도 전에 죽었을지도 모르겠군.”


현동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말투가 거슬렸지만 일리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크레인은 엉망진창이 된 승용차를 천천히 인양선 위에 내려놓았다. 일그러진 차체를 보고 있자니 새삼 도서실 앞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도연희의 밝은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


“ 자, 여기는 다른 형사들에게 맡기고 장 반장은 서로 돌아가. 사건 해결 기자회견도 준비하고 상부에 올릴 보고서도 작성해야지. 다들 고생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범인을 체포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차선이라도 성과를 올렸으니 빨리 끝내버리라구.”


도연희의 차가 충돌 직전 정차하고 있던 노란색 밴이 다시 떠올랐다. 도연희의 차와 충돌을 면한 직후 그 차와 운전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차가 하필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우연이었을까?


골똘히 그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던 장세민은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구어냈다. 현동주의 말이 맞았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상부에 보고할 거리도 생겼다. 정도를 고집할 때가 아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부하들도 이미 탈진 상태에 내몰려 있었다. 정의 구현은 저 너머에 있었고 안락한 휴식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눈앞에 있었다.


실종사로 결론을 내리고 기자회견만 하면 공식적으로 사건 수사를 끝낼 수 있었다. 수사관들도 쉬어야 했다. 이 사건을 해결했다 하더라도 서에 돌아가는 순간 해야 할 일은 차고 넘쳤다. 쓸데없이 만용을 부려 부가적인 일을 벌릴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


“ I heard about you. Lay told me you are good.”


멋진 체크무니 셔츠를 입은 흰 머리의 백인 남자가 도연희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이야기했다. 나이는 먹었지만 잘 생긴 얼굴에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도연희였지만 간단한 의사 소통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트 위에서는 당장 할 일이 없었고 이 기회에 자신을 구해준 남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Thank you for saving my life.”


도연희는 정중히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 Oh. You’re welcome. It’s our pleasure.”


나이 든 외국인이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은 무척 색다르게 다가왔다.


“ I would like to know about something.”


“ Really? Go ahead.”


“ First of all, I would like to know your name. My name is Do hyun-hee.”


“ Beautiful name. My name is Romanov. But my friends call me Ninja. Do you know about Ninja?”


“ Yes. Almost Korean knows about Japan’s culture and history. Ninja means ‘Shadow Warriors’.”


“ Oh. You know that. Great. Anyway, You can call me Njnja.”


“ Why do they call you Ninja?”


“ Because I was martial art instructor of Spetsnaz in Russia. I am good at hand-to-hand combat and infiltration to enemy.”


도연희는 믿기지가 않았다. 사람 좋은 할아버지처럼 생긴 눈 앞의 노인이 그 무시무시하다는 러시아 스페츠나츠의 격투기 교관이었다니.


스페츠나츠는 살벌하고 혹독한 훈련 과정으로도 악명이 높지만 정작 그들을 세계의 특수부대 중에서도 최고로 만든 것은 어떤 경우에든 적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무자비한 손속이었다.


“ Who is he? The man planning this project.”


“ Oh. He didn’t let you know about himself? Bad boy. Hahahaha.”


로마노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He is Lay. Laymond. best of best. He is retired spy and killer.”


짧은 문장이었지만 세르게이의 말 속에는 도연희가 알고 싶었던 정보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그는 진짜배기였다.


“ He likes you. Maybe you are likely to. Have a good relationship with him.”


“ O.K. Thank you for advice.”


“ Haha. We are all family.”


로마노프는 뭐가 그리 좋은지 도연희에게 손을 흔들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사라졌다.


레이는 고배율 망원경으로 인천대교 아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인양선 위에서 초조하게 수면을 바라보며 인양 작업을 감독하는 장세민이 보였다. 살짝 죄책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지만 모두에게 윈윈인 결과는 이것밖에 없었다.


카멜레온의 옛 동료들과 레이의 스승들은 이번 구출작전에서 여전히 녹슬지 않은 깔끔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현역들도 깜짝 놀랄 실력들이었다. 다들 퇴역한 후 개인 사업을 하거나 관련 업종에서 종사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몸 관리와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연락 후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 다들 좋은 사람들이지? 네가 생각보다 훨씬 잘 해냈다고 다들 놀라는 분위기야.”


“ 그런가요? 전 한 게 별로 없는데요? 세르게이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차 속에서 그냥 수장되고 말았을 거에요.”


“ 우리는 네가 차로 수면에 입수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가드레일을 받기 전에 속도를 줄이라고 한 거야.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을 거야. 이제부터는 세르게이와 로마노프를 따라다니면서 하라는 대로 해. 궁금한 건 뭐든지 물어 봐. 세르게이가 필요한 것을 가르쳐줄 거야.”


“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게 되나요?”


“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게 될 거야. 세르게이와 로마노프는 인맥이 넓거든. 다양한 언어는 물론이고, 국가별 예법이나 문화, 무기 사용법도 배우게 되겠지. 네가 모든 것을 배우면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거야.”


“ 그때가 언제죠?”


“ 네가 얼마나 빨리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못해도 2년 정도는 걸릴 거야.”


“ 그렇게 오래 걸리나요? 연락은 자주 해 줄 거죠?”


“ 얼마든지. 나도 궁금할 테니까.”


“ 오빠한테 연락을 해도 되나요?”


“ 지금 당장은 곤란해. 누군가 오빠를 감시할 수도 있으니까. 너는 당분간 죽은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해. 때가 되면 내가 연락해야 할 때를 알려주지. 절대로 허락 없이 함부로 연락하지 마. 잘못된 행동 하나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 좋아요. 모든 것을 빨리 배워야 할 이유가 두 가지는 생긴 셈이네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세르게이와 로마노프가 빙긋 웃었다. 오래 전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유능하고 믿을 수 있는 파트너이자 스승이었다. 레이는 두 사람에게 작전 계획의 타당성을 물었고 70%의 확률로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들이 확률 70%라고 한 작전은 천재지변이 없는 한 성공한다는 의미였다.


“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 남은 일을 처리해야지. 네게 누명을 씌운 놈들의 가면을 벗길 작정이야.”


“ 경찰에게 넘길 건가요?”


“ 그걸로는 성이 안 차지. 나는 이 나라의 사법 시스템을 믿지 않거든. 그쪽으로 넘겼다가는 비싼 변호사를 사서 무사히 걸어나올 확률이 높으니 그들이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처리할 거야.”


“ 그 장면을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군요.”


“ 나중에 신문이나 방송을 봐. 너는 그럴만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니까.”


“ 기대하고 있겠어요.”


레이는 도연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하늘이 점점 붉게 변해가고 있었다.


도연희는 지난 몇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지난 몇 달 동안 그가 프로메테우스로서 해왔던 일들이 수십 년이나 지난 일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는 이유로 3천 년 동안이나 독수리에게 매일 간을 파 먹히는 끔찍한 고통을 겪던 프로메테우스는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화살로 쏘아 죽인 후 자유를 얻었다. 자신의 인생도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와 마찬가지였다. 이청준이 자살한 후 매일 무거운 죄책감과 중압감에 괴로워하던 그에게 레이는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나 마찬가지였다.


도연희는 객실로 돌아와 젖은 옷을 벗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손을 뻗어 보기 좋게 솟아오른 가슴을 만져보았다. 날렵하게 들어간 허리선과 그 아래 풍만하게 확산되는 엉덩이의 굴곡도 제법 매력적이었다. 똑같은 몸이건만 어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는 프로메테우스라는 가면을 내려놓고 인간 도연희로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Si vis vitam, para mortem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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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90.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18.02.01 92 0 10쪽
90 89. 정면 돌파 18.02.01 7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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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7. 드러난 진실 18.01.27 79 0 15쪽
» 86. 가면과의 이별 18.01.26 205 0 14쪽
86 85. 구사일생 18.01.24 76 0 13쪽
85 84. 위험한 도박 18.01.24 85 0 16쪽
84 83. 은밀한 협상 18.01.23 84 0 12쪽
83 82. 발본색원 18.01.22 76 0 16쪽
82 81. 백주결전 18.01.22 342 0 11쪽
81 80. 킬러의 제안 +1 18.01.17 91 1 14쪽
80 79. 숨바꼭질 18.01.16 99 0 13쪽
79 78. 밝혀진 범인의 정체 18.01.14 89 0 12쪽
78 77. 최고경영자의 두 얼굴 18.01.14 88 0 17쪽
77 76. 완벽한 알리바이 18.01.12 98 0 14쪽
76 75. 셰퍼드와 하이에나 18.01.10 89 0 12쪽
75 74. 복수의 끝 18.01.09 93 0 21쪽
74 73. 사라진 흔적 18.01.08 112 1 8쪽
73 72. 적진 침투 18.01.07 75 0 15쪽
72 71. 프로메테우스의 정체 18.01.07 85 0 12쪽
71 70. ‘그들’의 정체 17.12.31 96 0 15쪽
70 69. 음모가 무르익는 밤 17.12.30 92 1 13쪽
69 68. 반격의 시작 17.12.30 109 0 10쪽
68 67. 하이에나 군단 17.12.29 100 0 10쪽
67 66. 비망록의 비밀 17.12.27 230 0 14쪽
66 65. 의외의 희생자 17.12.27 109 0 14쪽
65 64. 외로운 죽음 17.12.27 96 0 11쪽
64 63. 몸통과 꼬리 17.12.22 109 0 11쪽
63 62. 멕시칸 제노사이드 17.12.19 100 0 14쪽
62 61. 새로운 전쟁의 시작 17.12.15 1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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