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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엔 마약이 흐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도모지
작품등록일 :
2020.08.21 00:57
최근연재일 :
2021.01.08 13:51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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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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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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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9화-카르밀라

DUMMY

설령 같은 혈액형이라도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하는 건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그런데 이 세상엔 악마의 피를 가진 흡혈귀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대량은 아니고 항원만 추출한데다, 피의 주인의 혈주 덕에 일반적인 피에 비하면 괜찮겠지만 서로 다른 피가 섞이는 데 위험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 정도는 진도 충분히 예상하고 각오한 일이었다. 근데 이건 해도 해도 좀 너무한 수준이었다.



"크헉.... 억...."



어지간한 고통에는 반응조차 제대로 안 하는 진이 숨을 헐떡이며 몸을 움켜쥐고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머리를 땅에 문질렀다.


근성이니 적응이니 그런 계열의 문제가 아니었다. 안 죽을 정도로 계산했다더니, 진짜로 딱 쇼크사 바로 직전까지만 왔다.


이 어마어마한 고통 덕에 눈앞에 적들에겐 정말 안중에도 없었다.


한편 갑자기 경계하던 적이 몸을 붙잡고 쓰러져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테일즈본의 클랜원들은 눈치만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뭐야. 저 놈. 갑자기 왜 저래? 약 먹었나?"


"일단은 묶자. 살려서 데려오라는 명령이니까."


"거기! 도련님이랑 친구 분들부터 옮겨. 상태가 심각하다고!"



몇몇 클랜원들은 경수철을 포함한 체인 리쉬를 부축하고 몇몇은 진을 구속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 때까지도 진은 그걸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 배에 뚫릴 큰 구멍으로 모두의 눈이 감길 정도로 강한 바람이 일었다. 바람이 멎자 그곳에는 검은 날개를 가진 까마귀 떼가 서있었다.


아주 낯익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흡혈귀들을 보자, 클랜원 중 한 명의 목청이 높아졌다.



"배. 백사병? 거기다 이매탈이면, 대쾌잖아? 왜 여기에?"


"아니, 온 건 둘째 치고 왜 저 놈을 감싸는 거지?"


"설마 저 놈이 백사병과 연관이 있는 건가?"



날개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은 테일즈본을 상대로 대치했고, 다른 두 사람은 진을 부축했다.


수연과 미오는 난생 처음 보는 고통스러워하는 진의 모습에 온 몸으로 걱정을 표했다.



"어. 어떡해요? 선배 많이 아파 보이는데 빨리 병원 가야하는 거 아니에요?"


"피나는 곳도 없는데, 왜 이런 거예요?"


"....그거 썼냐?"



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하이드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생각보다 부작용이 더 심하네. 두 사람 다 걱정 마. 뒈지게 아프기만 하고 죽지는 않을 거야."


"그것 참 위로되는 말이네요."


"걱정은 나중에 해. 일단은 진이 챙겨. 바로 빠져나갈 거니까."


"곤란합니다. 그건."



수연과 남매들 간의 대화에 테일즈본의 클랜원 중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현재 강함으로는 테일즈본의 3인자라고 할 수 있는 전태영 실장이다.



"아무리 백사병의 분들이라도 저희 로드의 아드님과 친구 분들을 해하려한 침입자를 마음대로 데려가게 둘 수는 없습니다."


"침입자?"



순간, 아나가 접었던 날개를 세차게 펼쳤다. 그러자, 전태영을 포함한 클랜원들의 몸에 잠시 멈췄던 긴장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전후 조사도 제대로 안 해보고, 우리 클랜원을 멋대로 침입자로 몰아?"


"전후 조사를 위해서 생포를 하려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를 넘겨주시죠."


"이것들이 진짜."



아나가 눈을 부릅뜬 채, 천천히 걸어오자 테일즈본에서도 급히 경계 태세를 취했다. 전태영은 자세를 낮추며 클랜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긴 내가 어떻게든 막아본다. 너희는 서둘러서 도련님부터 옮기고 지원을 요청해."



어차피 혼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안 했다.


비록 매번 사고만치는 경수철이긴 하지만, 어쨌든 같은 클랜에 소속된 로드의 아들이다. 이대로 힘에 굴복한 채 유야무야 넘길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전태영은 지금 목숨을 걸었다.



"저. 전 실장님."


"뭐해? 서두르라니까."


"아니, 저.... 로드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걸었던 목숨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황급히 뒤를 돌아 로드인 경태구를 맞이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옆에 서있는 여성을 보고는 그만 인사를 하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



"카. 카르밀라.... 님께서 여긴 왜."


"그냥. 침입자 떴다길래. 어떤 면상인지나 좀 보고. 도와줄 게 있으면 도와주려고. 그래서 쟤들이야? 침입자들이?"


"그. 그게."



카르밀라는 벌벌 떨고 있는 전태영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침입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한순간에 굳어버린 얼굴로 그 침입자들에게 접근했다. 침입자들 역시 카르밀라를 보곤 완전히 얼어붙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어. 어머님?"



정적을 깬 건 아나의 그 한 마디였다.


카르밀라. 즉 샤람 오디티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최대한 빠르게 치고 빠지려 했는데, 설마 이렇게 딱 마주칠 줄이야.


아나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동안, 샤람의 눈에 수연과 미오에게 부축당하고 있는 진이 들어왔다.



".....하이드."



저 평온한 목소리에서 어마어마한 살기를 감지한 하이드는 드물게 말을 더듬었다.



"어? 아, 아니. 네. 부르셨나요? 어무이?"


"진이 상태가 이런 이유. 10초 요약. 여기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당사자가 아니라서 사정을 전부 아는 건 아니지만, 하이드는 아까 포획한 사냥꾼에게 들은 정보를 최대한 요약해서 설명했다.


하이드의 말이 이어질수록, 샤람의 이가 갈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고, 경태구는 몸의 떨림이 더욱 심해졌다.



"그. 그렇게 되서 저희가 진이를 구하러 지금 여기 왔다가, 이렇게 딱 만나게 됐네요. 하하. 우연이라는 게 참...."



하이드는 썰렁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돌려보려 했지만, 이미 이곳은 혹한지옥이었다.


샤람은 고개를 살짝 내려서 진과 눈이 마주쳤다. 진은 그녀가 진위를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다. 조용히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하.... 진짜.”



조금 전의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은 완전히 지워버린 샤람은 클랜원들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경태구의 멱살을 잡았다.


로드가 봉변을 당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했다간 클랜 자체가 위험하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자세한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은데?"


"고. 고정하십....."


"자네 아들이 우리 아들을 납치해서 죽이려 했다는데, 자네 같으면 진정이 되겠어?"



쩌렁쩌렁 울리는 샤람의 목소리에 신입 클랜원 몇 명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경태구도 지금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아들, 이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입양했으니까. 아, 그런 건 됐고. 빨리 그 경수철인지 뭔지 하는 놈이나 빨리 내 앞에 데려와."


"카. 카르밀라님. 도련님은 지금 중상을 입으셔서 지금은 우선 치료를...."


"이봐."



샤람이 경태구의 멱살을 놓고, 거부 의사를 표하는 전태영의 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그 과정을 전태영이 숨을 막혀하는 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지금 너희한테 부탁하는 걸로 보여? 그 놈을 내 앞에 대령시켜 지금 당장. 그 놈 말하는 거에 따라 그 놈만 죽을지, 니들까지 싹 다 죽을지 정할 거니까."


"커헉....."


"대답은?"


"아.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데려오라 시키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손을."



목이 붙잡힌 전태영 대신 경태구가 공손하게 입을 뗐다. 그러자, 클랜원들 중 몇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경수철을 데리러 갔다.


경수철은이 샤람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클랜원들이 찾아왔을 때는 짜증을 냈지만, 진의 정체를 듣고는 말 그대로 고양이 앞의 생쥐 꼴이 된 경수철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거짓 없이 대답해. 대답이 1초라도 늦는 성대는 그 자리에서 꺼내버릴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예. 예....."



경수철은 고장 난 기계처럼 같은 말만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이전에 체인 리쉬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클랜을 창단한 저를 포함한 일곱 명이 전부입니다. 저희가 고용한 놈들은 저희 정체도 모를 테니까요."


"그래? 그럼 너희 클랜한테까지 책임을 물을 필요는 없겠네."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경태구의 얼굴에는 복잡한 심정만이 차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놈이 살아날 방책이 안 보였다. 그만큼 경수철과 체인 리쉬가 지은 죄는 너무나도 무거웠고, 죄질이 나빴다.



"우리 진이를 납치한 이유는?"


"....아. 악마의 피라는 걸 한 번 손에 넣는 김에, 이번 파티에도 올려 보려고."



샤람이 눈을 흘기며 시선을 경태구에게로 돌렸다.



"자네 아들이 준비한다는 선물이 우리 아들 피였나 보네."



경태구는 헙! 하고 숨을 삼켰다.



"좋아. 그럼 이게 마지막 질문이야. 있지."



마지막 문장을 내뱉는 샤람의 어조는 분노에 차있지만 무척이나 낮고 고요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공포스러웠다.


그녀의 등에서 자라는 8쌍의 날개가 공포를 더 가중시켰다.



"내가 널 죽이지 말아야 할 납득이 갈만한 이유가 있어?"


"사. 살려주세요."


"납득이 갈만한 이유라고 했는데?"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두 번 다시 안 그럴 게요. 차. 차라리 감옥에 가라면 갈 테니까. 제발 목숨만은!!!"



경수철은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목숨의 위기에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서 자존심이고 뭐고 전부 던져버렸다.


상대가 심하게 잘못됐다는 게 문제지만.


샤람의 마음은 그런 애원에는 잔물결도 일지 않았다. 처음부터 살려줄 마음 자체가 없었다.. 그냥 진을 건드린 놈들을 곱게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뿐이다.



"납득이 가는 이유가 없으니까, 그냥 죽여도.... 뭐해?"



샤람이 날개를 움직이려던 찰나, 그녀의 눈앞에 경태구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제가.... 모자란 탓입니다. 제 목숨을 드릴 테니, 제발 아들놈의 목숨만은 넘어가 주시길. 처벌은 제가 확실히...."


"됐고, 꺼져. 조금 전까지 함께 잔을 기울이던 사람을 죽이긴 싫으니까."



그럼에도 경태구는 물러나지 않았다. 샤람은 속으로 혀를 찼다.


사람이 좋은 건 참 좋지만, 이렇게 다 안고 가려는 건 좀 고치라고 그렇게 말을 했건만.


펄럭!


샤람은 날개 하나를 얇게 펴서 칼처럼 만들었다.


경태구가 아무리 애타게 빌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경태구라는 남자에게 가진 호감은 아들인 진에 대한 애정에 비하면 정말 별 것 아니었다.


정확히는 친자매보다도 친한 진의 친어머니, 로라에 대한 애정이었다.


로라가 죽었을 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 샤람의 분노는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차오른 상태였다.


턱.


샤람이 그녀의 손을 잡은 누군가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돌아본 것도 그래서다. 물론 진이 숨을 가쁘게 쉬며 겨우겨우 손을 잡고 있는 걸 보자마자 바로 표정을 풀었지만.



"얘. 얘가 걷기 힘들면서. 왜. 왜 애를 혼자 보네?"



괜히 불똥이 수연에게 튀었다. 수연에겐 진이 잠시만 놔달라는 걸 한사코 말렸다가, 결국 보내준 죄밖에 없는데.



"조금만 기다리렴. 금방 끝낼...."


"그냥 집에 가요. 좀 쉬고.... 싶어요."


“어?”



당사자가 이렇게 말하면 샤람 자신의 위치가 아무리 높다 해도 멋대로 감정대로 하긴 조금 그랬다.



"복수는? 안 해도 되고?"


"복수를 해도 제 손으로 할래요. 어차피 저 놈 목 정도는 원할 때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거기다, 아직 경수철에게는 물어보고 싶은 게 조금 더 남아 있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돌아가요."


"....그래. 당사자가 그렇다면야."



샤람이 날개를 거두며 뒤로 돌아서자, 테일즈본은 긴장이 풀려서 주저앉는 사람이 속출했다.


하지만, 백사병은 달랐다. 특히 아나는 샤람을 본 이래로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샤람은 아나를 지나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나."


"네. 어머님."


"집에 가서 좀 보자꾸나."


"....예."



그 후로 아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헬기 준비시켜 놨으니까, 수연이랑 미오도 타고 가렴. 하이드는 진이 좀 부축해주고."


"예이예이. 잡아. 집에 가게."


"됐어."


"왜? 남자라서 싫냐? 수연이나 미오 불러줘?"


"이젠 혼자서 걸을 수 있어."



아직 몸에 경련이 조금 남아있지만, 이 정도면 걸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확실히 특수한 피라서 그런지, 부작용이 길지는 않았다.



"그럼 됐고. 가자 그럼."


"잠깐만."



진은 발걸음을 돌려서 여전히 무릎 꿇고 있는 경수철에게 접근했다.



"야."


"네? 네...."


"아까랑은 태도가 많이 다르다?"


"제. 제가 귀빈을 몰라 뵙고...."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만, 어차피 경수철은 죄가 넘쳐흐른다.



"도망치지 말고, 어디 조용히 처박혀 있어라. 조만간에 내가 상태 좋아지면 다시 내가 너희를 찾아 올 생각이 거든?"



언제나 오만한 눈빛이던 경수철의 부어오른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저 말이 자신에게 내려진 시한부 판정처럼 들렸다.



"그 때 보자고."



그 말만을 남긴 채, 진은 하이드의 뒤를 따라갔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절대 안 잡힐 확신이 없으면 도망치지 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



백사병 일행이 떠난 후, 경태구는 클랜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온화했던 그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복잡함이 새겨져 있었다.


한편, 그의 아들은 크게 데였으면서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었다.



"아. 아빠. 나 진짜.... 몰랐어. 그 자식이 백사병 소속인지...."



본인이 데인 이유가 뜨거운 걸 만져서가 아니라, 불을 만져서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반성은커녕 변명이나 해대는 경수철을 바라보던 경태구는 계속 고민하던 사항에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전 실장."


"예. 로드시여."


"오늘부터 저 놈을 포함한 체인 리쉬를 평생 동안 자택에서 구금시키겠다. 만약에 도망치려 한다면 죽여도 좋아. 내 허락 없이는 타인과의 접촉도 일체 금지한다."


"자. 잠깐만. 그게 뭔...."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클랜에도 그리 전하겠습니다."


"아. 아빠. 아니지? 농담하는 거지? 나 아빠 아들이라고. 경수철이라고!!! 이거 놔!! 안 놔!!!"



클랜원들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경수철은 자신의 처우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그의 뇌에 번개가 치는 말이 있었다.


경태구는 슬픔을 참는 것 같은 떨리는 목소리로 덤덤히 엄포를 늘어놨다.



"내 막내아들은 오늘 죽었다. 저기 끌려가는 저 놈은 그저 한 명의 범죄자일 뿐이다.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아. 아빠?"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버지의 냉담한 말투에 경수철은 그대로 얼어버렸고, 그 후로는 아무 저항도 못 한 채 속절없이 끌려갔다.


이 날부터 경수철과 체인 리쉬의 수감 생활이 시작됐고, 실제로 죽는 그 날까지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



원래는 미오와 수연을 집에 데려다주고, 저택으로 돌아가려했지만, 수연이 자기 집 근처에는 헬기를 세울 곳이 없어서 그냥 하이드가 차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연안에 내려서 거기 세워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다.



"그건 핑계고, 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 거지? 뭐가 궁금한데? 어무이가 카르밀라인 거?"


"너희 집 남자들은 눈치 하나는 진짜 더럽게 빠르네요."


"네가 궁금할 만한 사항이 그것밖엔 없으니까."



하이드의 말대로 수연은 샤람이 카르밀라라 불리는 것에 많이 놀랐다.


드라큘라, 바토리 다음 가는 인지도를 가진 흡혈귀인 그 카르밀라가 자신의 로드일 줄이야.



"그럼 샤람 오디티라는 이름은 가명이에요?"


"카르밀라도 가명인데 뭐. 애초에 네가 아는 우리 가족들 이름이랑 성까지 전부 다 가명이야. 나도 그렇고, 진도 그렇지."



진이 혼혈이긴 해도, 입양되기 전에 쓰던 이름이 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성까지 포함한 모든 게 다 가명일 줄은 몰랐지만.



"그러면 진이 본명은 뭐에요?"


"바로 눈앞에 있는 내 이름 말고 진이 이름 묻는 거야? 진짜 속보이네."


"윽...."



수연의 새하얀 볼이 가을 단풍처럼 울긋불긋 물들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속보이는 상황이었다.



"그. 그럼 하이드 본명은 뭔데요?“


"....듣고 나서 놀리지나 마."


"내가 이름으로 누굴 놀릴 처지로 보여요?"



알비노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은 수연은 어지간한 개성에는 눈길조차 가지 않았다.


하이드는 그걸 깨닫고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아델하이트."


"그게 왜요? 멋진 이름인데."


“엄청 촌스러운 여자 이름이야. 이거.”


"한국어로는 멋진데요, 왜, 근데 그 두 분은 왜 그렇게 지었대요?"


"아. 몰라. 나도."



저렇게까지 부끄러워하는 걸 보니, 이름에 콤플렉스가 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성은요? 오디티도 가짜 성이면 원래 성이 있을 거잖아요."


"이거는 정식 클랜원 외에는 말하면 안 되는데...."


"어차피 정식 입단식 다음 달이잖아요. 그리고 나 입 무거워요."



하이드는 운전대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다 하지 마. 아니, 그냥 알고만 있고, 아무 말도 하지 마."


"알았어요. 그래서 뭔데요? 하이드 풀네임이?"


"아델하이트 바토리."


“....네?”


"아델하이트 바토리. 고향 식으로는 바토리 아델하이트. 그게 내 본명이야."


"바토리.... 요?“



바토리란 성이 흔하다면 모를까, 수연이 알기로 저 성을 가진 유명인물은 단 한 명뿐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 바토리 맞아. 바토리 에르제베트, 피의 백작부인이랑 우리 어무이랑 친자매야."



에르제베트가 스트리고이 파벌의 톱이라는 건 알지만, 카르밀라와 친자매인 건 처음 알았다.



"....무지막지한 집안이네요."


"이거 진이 친어머니에 버금가는 극비니까. 절대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진이 친어머니요? 악마의 피 말고도 진이 비밀이 또 있어요?"


"슈밤. 이놈의 주둥이가 문제야."



운전 중만 아니었다면 이 깃털 같은 입술을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뒷좌석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결국 하이드는 먼저 백기를 들었다.



"카르밀라라는 소설 읽어본 적 있어?"


"있죠. 그 작가도 백사병의 일원이잖아요."


"내용 알아?"


"알죠. 카르밀라가 영국인인 로라란 소녀랑 만나서....“


"그 로라가 진이 친어머니야."



그 한 마디에 샤람이 왜 그렇게 진을 아끼고 집착하는지에 대한 의문들이 완전히 해소됐다.



"솔직히 에르제베트 이모보다는 로라 이모랑 더 자매 같았지."


“자. 잠깐만요. 그럼 그 로라라는 분도 흡혈귀일 테니까. 진이, 인간이랑 흡혈귀의 혼혈, 담피르에요?”


"그럴 리가. 혼혈 중에 담피르가 태어날 확률이 얼마나 낮은데. 물론 악마의 피에 비하면 흔한 편이지만, 진이는 확실히 인간이야."



그런 식으로 여러 가지 의문을 해소하다 보니, 어느새 차가 집 앞에 도착했다. 수연은 차에서 내려 마지막으로 질문 했다.



"진이 본명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걘 자기 본명 아무한테나 말 안 해. 그 자식한테 좀 특별한 사람이 되면 될지도.“


"....미오는 알아요?"


"아니, 아나말고는 네가 아는 여자애들 중엔 아는 사람은 없을 걸?"


"노력하면 된다는 거네요. 고마워요. 데려다줘서."


"조심해서 들어가."


"잘 가요."



수연은 멀어지는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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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이십면상 20.10.12 67 5 18쪽
23 23화-설마가 사람 잡는다. 20.10.10 60 5 16쪽
22 22화-공조 +2 20.10.09 66 5 19쪽
21 21화-엎친 데 덮친 격 +2 20.10.07 64 7 19쪽
20 20화-남매들의 속사정 +1 20.10.05 83 6 22쪽
» 19화-카르밀라 +1 20.09.29 72 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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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오디티 저택 +1 20.09.03 185 4 16쪽
5 5화-포맷 +1 20.08.30 234 5 20쪽
4 4화-악마의 피 +1 20.08.27 275 8 16쪽
3 3화-진짜들 20.08.26 295 8 14쪽
2 2화-백사병 20.08.26 385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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