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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엔 마약이 흐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도모지
작품등록일 :
2020.08.21 00:57
최근연재일 :
2021.01.08 13:51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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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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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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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6화-체인 리쉬

DUMMY

가장 최근 기억은 차에 타고 가면서 채다미가 준 수면제를 먹고, 그대로 잠이든 것. 당연히 의심했지만 꼭 먹어야한다고 애원하길래, 그냥 먹었더니 한 방에 훅 갔다.


잠에서 깬 후, 가장 먼저 몸으로 느낀 건 휠체어에 사지가 수갑으로 결박되어 있다는 것, 그 다음이 어떤 넓은 방에 있다는 사실이다.


얼굴에는 검은색 더스트백을 뒤집어써서 보이는 건 없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시시덕대는 소리가 들린다.


뿐만 아니라 접시에다 칼질을 하는 소리와 숟가락으로 뭔가를 퍼먹는 소리, 그리고 미약한 피냄새도 난다.



"와. 냄새 죽인다. 괜히 악마의 피가 아니네."


"미친놈아, 침 닦아! 아, 근데 진짜 맛있긴 하겠다. 딱 한 번만 베어 물면 안 될까?"


"좀만 참아. 메인 디쉬는 천천히 즐겨야지."


"그럼 먹는 건 나중에 하고, 일단은 좀 가지고 놀자."


"콜. 피나는 건 안 된다고 했으니까. 부러트리는 건 되지?"


"전기로 지지는 건 내가 할래."



냄새 감평, 입맛 다시기, 장난감 취급. 어릴 때 자주 들었던 레퍼토리다. 여자 목소리가 하나 있긴 했지만, 절대로 동생은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시각 없이 다른 감각으로 대강의 상황을 유추하고 있던 순간, 누군가 진의 얼굴을 덮었던 더스트백을 걷어냈다.


한창 어둠을 즐기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환한 빛 때문에 눈이 눈꺼풀 뒤로 숨었다가 겨우 다시 나왔다.


눈앞에는 20대 중반 정도로 추정되는 남자가 더스트백을 들고 붉은 눈으로 진을 보며 웃고 있었다. 얼굴에는 가면무도회에서 쓸 법한 깃털이 달린 붉은색 가면을 썼다.


남자의 너머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뜯어먹는 사람. 아니, 흡혈귀들이 네 명 있었다. 그 모두가 진을 신기한 동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이젠 적응이 된다를 넘어, 친숙하게까지 느껴지는 눈빛들의 주인들 중 진과 가장 가까이 있는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무시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20평 정도의 공간에 문은 뒤쪽에 하나, 창문은 하나도 없고, 벽과 바닥, 천장에 묻은 붉은 얼룩이 잔뜩 있다.


그리고 아까부터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 처음에는 저들이 먹고 있는 고기에서 나는 냄샌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이 공간 자체에 피 냄새가 섞여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방의 목적과 이런 곳에서 밥을 먹는 저들의 정신 상태가 짐작이 갔다.



"이봐. 인사를 했으면 받아줘야지. 무시당하면 섭섭하다고."



남자가 웃으면서 진의 머리채를 잡으면서 본인 쪽으로 당겼다. 가면 뒤에 숨어서 초승달을 그리는 붉은 눈이 굉장히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야야. 살살해. 울겠다."


"그건 그것대로 재밌을 거 같은데? 몇 대 때려볼까?"


"피가 나면 안 되면 뭘로 때려야하는데."


"불로 지져볼까?"



앞에 있는 남자나 뒤에 있는 그의 친구들은 진이 악마의 피를 가졌을 뿐인 평범한 인간이라 생각했다.


평소에 인간들한테 하던 대로 위협해봤지만 말만으로는 진에겐 어떠한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어이. 하나만 묻자."



두려워하거나 움츠러들기는커녕 오히려 질문을 했다. 지금 진이 저들에게 궁금한 것인 단 하나. 동생에 관해서다.



"여기에 송다인. 있냐?"


"......"



순간 모든 소리가 죽어버렸지만, 금방 되살아났다.



"푸하하! 뭐야. 여기까지 와서 여동생 걱정이야? 참 좋은 오빠네."


"있는지 없는지만 말해."



남자와 친구들은 긴 시간동안 비웃음을 흩뿌리다가 이내 진을 내려다보며 코웃음 쳤다.



"없어. 이거면 됐냐?"


"....그래, 그거면 됐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아예 기대를 안 한 건 또 아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덫에 뛰어든 꼴이긴 하지만 조금 열이 올랐다.



"애초에 이딴 거짓말에 속은 네가 병신이지. 안 그래?"


"인간들이 뭐 그렇지. 기본적으로 생각이라는 걸 제대로 못하나봐."


"어릴 때 부모님한테 안 배웠어?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야야. 저 자식 부모 어릴 때 죽었잖아. 못 배웠을 수도 있지."


"뭐야. 입양한 부모도 안 가르친 거야? 오우, 불쌍한 놈. 거기서도 눈치 보면서 사는구나."



내버려두니 아주 지들 마음대로 떠든다. 어디 언제까지 입을 놀릴 수 있나 보자.



"제법 많이 조사했나 보네."


"사냥에는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하니까. 그렇다고 한낱 인간 한명 잡는데 막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건 아니고."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아는 거야?"



남자는 어깨를 한껏 으쓱하며 자랑스럽게 말을 늘어놨다.



"그냥 네가 악마의 피인거랑, 부모는 죽었고 누나 동생 찾고 있다는 거. 아, 근데 이건 생각할수록 진짜 웃기네. 진심으로 그 둘이 살아있다고 믿는 거야? 꿈은 어릴 때 좀 깨라. 꼬마야."



남자와 그의 친구들이 동시에 비웃음을 터트리는 반면, 진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했다.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족을 모욕하며 꿈을 비웃는 저들에게 화가 났지만 일단은 속에 쌓아뒀다.


터트릴 땐 터트리더라도 그게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한 10년 전 쯤에 플레이그를 운영하는 오디티 집안에 입양됐다. 뭐, 이 정도?"



그래, 그 정도구나.



"혹시나 해서 말해두겠는데, 돈으로 우릴 어찌해보겠다는 생각은 버려. 돈은 우리도 많거든."


"의외네."


"뭐가, 생각보다 너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아나?"


"아니, 당당하게 말한 것치곤 별 거 없어서."



남자는 열심히 한 웅변에 혹독한 비평을 내뱉는 진을 향해 어이없다는 듯 한쪽 입가만 올렸다.



"겨우 인간 하나 잡는 데 그렇게 많은 정보가 필요....."


"경수철. 27살."



갑자기 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남자, 경수철의 솟아올랐던 입가가 바로 내려왔다.


그의 친구들도 음식으로 가던 손을 멈추고 일제히 진을 바라봤다.



"천미그룹의 회장이자 클랜 테일즈본의 로드인 경태구의 막내아들.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사고만 치고 다녀서 집안에서는 거의 내놓은 자식 취급이었지, 아마?"


"이 개새...."



경수철은 가면 너머가 보일 정도로 강하게 인상을 쓰며 진의 멱살을 부여잡고, 진을 휠체어 채로 들어올렸다.



"뒈지고 싶냐? 찢어 죽여주랴?"


"반응 보니까 진위 확인할 필요도 없겠네."



살해 협박에도 태연한 진을 보자, 오히려 경수철의 가면의 눈 쪽에 뚫린 구멍 안에서 눈이 끊임없이 요동쳤다.



'잠깐. 이 새끼 설마 내 신상정보만? 다른 놈들 건....'



경수철의 생각은 금방 현실이 됐다.


진이 고개를 돌려가며 친구들의 신상정보까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다 읊었다.


파란색 가면을 쓴 덩치, 태일원. 노란색 가면을 쓴 멀대, 소경수. 검은색 가면을 쓴 여자, 진나경. 초록색 가면을 쓴 까까머리, 모제기.


누가 누군지, 누구의 자녀며, 어떤 클랜에 속해있는 지까지 모두 말이다.



"너희 5명에 강태상, 이사화까지 더해서 이렇게 일곱 명이서 따로 클랜 만들었지? 정신 나간 재벌 3세들끼리 친목회 같은 거. 이름이.... 체인 리쉬였나?"



거기에 더해 절대로 타인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되는 자신들의 클랜 이름까지 나와 버렸다. 그 덕에 경수철을 포함한 다른 네 사람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무표정하게 그들을 바라보던 진에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조사한 바로는 저들의 부모가 이끄는 클랜들은 분명 백사병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대등한 관계를 소망하는 스트리고이인데, 저 놈들은 아무리 봐도 흡혈귀 우월의식에 찌든 쿠드라크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


저것들이 진짜 내놓은 자식이거나, 클랜에서 체인 리쉬의 존재를 알고도 묵인했거나.



'그건 좀 더 조사해보면 알겠지.'



다시금 정적이 감돌았다. 이번 정적을 깬 건 비웃음이 아니었다.


경수철이 가면을 집어던지고 진에게 윽박질렀다.



"누구야. 어떤 새끼가 말한 거냐고!!!"


"병원에서 시귀 사건 일으킨 니들 친구. 연락 끊기지 않았나?"


"....이사화?"



연락이 안 된다 했더니, 이놈한테 잡혔던 건가?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정보를 아는 저 놈을 죽여서 입을 막아 버리면 그만....



"아, 참고로 말하는 건데, 이 정보 나만 아는 건 아니다. 집안의 힘을 빌렸거든."



순식간에 진을 죽여서 입을 막는다는 선택지가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이 날아가자, 쌓여가던 체인 리쉬의 분노는 진이 아닌 정보누설자에게로 향했다.



"이사화. 그 개 같은 년이...."


"젠장. 뒤질 거면 혼자 뒤질 것이지. 강태상이나 그 년이나 진짜...."


"야, 어떡하냐? 사냥꾼들 더 매수해야 되는 거 아니야?"


"당분간은 다들 조용히 있어야지. 괜히 아빠, 엄마 귀에 들어갔다간 우리만 손해니까."



마치 자기들은 잡혀도 아무 말도 안 했을 거라는 것처럼 이사화를 욕한다. 딱 봐도 10분이면 싹 다 불 놈들이.



"그럼 저 자식은 어떡해? 그냥 보내 줄 수도 없잖아?"



허둥지둥 대는 친구들을 진정시키며 경수철은 결단을 내렸다.


보통 이런 관계에서의 발언력은 각자 집안의 힘에 비례한다. 즉, 체인 리쉬를 이끄는 건, 이들 중 가장 큰 기업의 아들인 경수철이었다.



"어쩌긴. 계획대로 해야지. 저 놈은 오늘 메인 디쉬로 나간다. 아버지한테도 말해놨으니까, 빨리 준비해."


"진짜 믿어도 되는 거 맞지?"


“보험 들어둔 게 있거든.”



그러면서 경수철은 진에게 다가와서 약 1시간 전에 온 문자를 보내줬다.



'뒤처리 완료. 목격자 한 명 이송 중.'



순간 무표정하던 진의 얼굴에 약간의 파장이 일었다.


목격자..... 미오?



"이 목격자, 이름이 분명 유미오라고 했나?"



미오의 이름이 나오자 진은 눈을 질끈 감으며 휠체어의 손잡이를 손으로 꽉 붙잡았다.



"제법 예쁘게 생겼다는데, 뒤처리 간 그놈들이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바라는 게 뭐냐?"


"흐음. 그냥 아가리 닥치고 얌전히 피만 내놔. 그것만 지키면 일단 죽이진 않을게."



인질을 손에 쥐고 다시 전세가 역전되자, 경수철의 입가에는 미소가 떨어지질 않았다. 아주 당당하고 오만한 표정으로 이를 악 물고 자신을 노려보는 진을 내려다봤다.



"뭘 꼬라 보냐? 네가 여기서 일어나면 날 이길 수라도 있을 것 같냐? 인간이 흡혈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냐고."



진은 전혀 굴하지 않고 대답했다.



"너 하나 정도라면 될 것 같은데?"


“붙어 볼래? 새끼야?”


“좋지. 너한텐 묻고 싶은 것도 많아서.”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눈 안 까냐? 윤간 당하는 거 생중계 시켜줘?"


"....."



진은 일단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집에 갈 땐 가더라도, 저 새끼 멱은 따고 간다.



"야, 이 새끼 데려가서 피 뽑아. 아, 안 죽을 정도로만 내장 몇 개 빼서 위에 보내드려."



경수철의 명령에 문 앞에 있던 검은 양복의 사내가, 진을 태운 휠체어를 끌고는 방을 빠져나왔다.


환했던 방과는 달리, 복도에는 전등은 물론 창문도 없어 바깥의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굉장히 어두웠다.


빛이 전혀 없는 어둠 속, 어느 것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지금 진을 끌고 가는 남자의 모습도, 이 복도의 끝도, 조용히 이들을 지나치는 몇몇의 사람들도.


그리고 진의 입가가 만족스럽게 살짝 올라갔다는 것도.


누구 하나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



**



약 1시간 전에 한 사냥꾼 팀이 주차장에 도착했다.


체인 리쉬에 매수된 사냥꾼은 네뷸라 팀만이 아니다. 장재건이 이끄는 플레어 팀 역시 돈을 받고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곤 한다.


오늘 그들의 일은 간단했다. 네뷸라 팀이 타겟을 데려가면 자신들은 그 뒤처리를 한다.


흔적은 지우고, 목격자는 처리한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일이다.


다행히도 오늘의 목격자는 유미오라고 하는 여자 한 명이다. 네뷸라 팀에게 들은 그녀의 인상착의를 보자 팀원들은 미오를 납치하자 했고, 장재건 역시 동의했다.


얼마 전에 납치한 그 여자는 이젠 반응도 없어서 재미가 없었다. 팀원들은 미오의 외모를 보고는 기대감에 사기가 넘쳐흘렀다.


4층에 도착하자마자 아직도 주차장에서 서성이는 그 미오라는 여자가 보였다. 예상대로 굉장한 미모다.


우선은 그녀를 재우기 위해 마취총을 장전하고, 쏘기 위해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장재건은 똑똑히 봤다.


미오가 자신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 것을.



"생각보다는 빨리 왔네?"



기다렸다는 듯한 미오의 짧은 말이 끝난 후, 얼굴에 역병의사 마스크를 쓴 두 명의 외국인과 새하얀 여자라고 밖에 표현 못하는 여자가 플레어 팀을 덮쳤다.


어느 누구 하나 3초를 버티지 못했다. 심지어는 미오도 사냥꾼 두 명을 발차기 한 방으로 벽에 쳐박아버렸다.



'젠장.... 흡혈귀라곤 말 안 했잖아.'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흡혈귀들의 기습에 장재건을 포함한 모든 팀원들이 한순간에 전멸했다.


아니, 기습이 문제가 아니었다.


반대로 플레어 팀이 저들을 기습했어도, 분명히 같은 장면이 펼쳐졌을 것이다. 그만큼 저들과의 힘의 격차가 압도적이었다.


말 그래도 순식간에 상황이 종료됐다.



“잘 돼서 다행이네.”


“그러게요.”



진이 미오에게 말한 대로 남매와 수연과 합류해서 뒤처리 반이 따로 올 때, 그들을 덮친다는 작전이 성공했다. 이제 저들을 매수한 이들에게 정기연락 보내는 것만 주의하면 된다.


한편 플레어 팀은 팀장인 장재건을 제외한 모든 팀원들이 기절했다. 사실 장재건이 깨어있는 것도 저들이 일부로 의식을 남겨놔서다.


이유는 뻔했다. 팀장인 장재건이 아는 게 가장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선...."


"뭐부터 말할까?"



애초에 돈으로 고용된 장재건에게 체인 리쉬에 대한 충성심이나 의리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돈은 좋지만 목숨보다는 아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전부 말했다. 묻지도 않은 것들까지 죄다.


거짓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연이 매혹까지 써가며 확인해가며 들은 정보는 백사병의 클랜원들로 하여금 생각을 정확히 일치하게 만들었다.



"서두르자. 늦었다가 엄마한테 걸리면 우리 진짜 엿 된다."



일행들은 다급하게 사냥꾼들이 타고 온 차에 기절한 사냥꾼들을 쑤셔 넣고 그대로 진이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운전대는 하이드가 잡았다.


내비에 최근 목적지에 가야할 곳이 찍혀 있다. 딱 규정 속도에 맞춰서 열심히 액셀을 밟았다.


왠지 모르게 다급함이 느껴지는 모습에 부외자인 미오는 걱정을 담아 하이드에게 물었다.



"저기, 선배들. 무슨 일 있어요? 설마 진 선배가 위험한 거예요?"


"뭐, 비장의 무기도 있고 별일은 없을 거야. 근데 지금은 그 자식 대신 우리가 위험해졌어."


"왜요?"



하이드가 아나를 돌아보며 대답의 바통을 그녀에게 넘겼다.



"그 체인 리쉬라는 놈들이 지금 배에 타고 있다고 했지? 지금 그 배에서는 테일즈본의 클랜이 주최하는 파티가 진행 중이거든?"


"네."


"거기 우리 어머님도 참석했어."


"아....."



미오도 바로 이해했다.


진을 끔찍하게 아끼는 샤람이 있는 이상, 진의 신변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남매들에게 생겼다.


아무리 진이 스스로 사지에 걸어들어갔다고 해도 흡혈귀가 우글거리는 곳에 혼자 보냈다는 게 걸렸다간 후환이 너무 두렵다.



"빨리 진이만 데리고 빠져 나오자."



일단 체인 리쉬라는 놈들이 진의 여동생에 대해서 아는 이유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



진이 도착한 장소는 작은 수술대가 있는 수술실이었다.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 수술대 주위에는 진을 데리고 온 검은 양복의 사내와 같은 패션의 건장한 남자들이 열 명 정도 있었고, 수술대 너머에서는 의사 가운을 입은 여자가 수술용 장갑을 끼는 게 보였다.


그 여자는 휠체어 바퀴가 구르는 소리를 듣더니, 화색을 띄며 진을 맞이했다.



"채다미?"


"이야, 오래 기다렸는데 이제야 왔네?"



주차장에서 봤을 때의 사무적인 인상과는 정반대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이쪽이 본 모습인가보다.


근데 손에 든 메스와 주사바늘 때문에 전혀 순수해보이진 않았다. 거기다 눈빛은 14년 전에 만난 인체실험을 밥 먹듯이 일삼던 그 미친 의사와 비슷해 보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술시간~~~."



채다미의 입이 정말 귀까지 닿을 정도로 찢어졌다. 도대체 주차장에서는 어떻게 연기했나 싶다. 거짓말의 재능은 둘째 치고 연기력에는 확실히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거기다 모습을 보아하니, 수술이란 게 아까 경수철이 말한 채혈일 텐데, 여기서 나는 피 냄새는 도저히 한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저 여자, 정말 어지간히도 여기서 많은 사람의 배를 가른 모양이다.



"보통 돈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나?"


"아니, 난 돈 안 받아. 대신 모든 수술을 내가 담당하고 있지."



.....뭔 개소리지? 돈은 안 받고 수술만 한다고? 돈보다 사람을 째는 게 더 좋은 건가?



"수술을 하면서 돈 버는 의사나 할 것이지."


"의사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되잖아. 사냥꾼이 된 것도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까 한 건데, 너무 위험하잖아."


"....진짜 미친년이네."



별별 더러운 꼴, 이상한 사람은 다 봐온 진의 기준에서도 채다미는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인간이었다.



"마음대로 생각해. 이제 곧 있으면 살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들 테니까. 아, 그것도 금방 죽고 싶다로 바뀌겠지만. 재밌을 거야."



채다미는 광기 어리게 웃으며 손짓으로 진을 수술대에 올리라고 시켰다. 검은 양복의 남자들 중 한 명이 수갑 열쇠를 들고 진에게 다가왔다.



"아, 저항은 하지 마. 아까와는 상황이 다르니까. 저항하면 죽이지 않는 선에선 다 해도 된다고 했거든. 보자, 넌 얼굴이 아까우니까 사지만 여자 걸로 바꿔볼까?"



채다미가 진을 보고 견적을 재는 동안, 남자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무기를 점검했다.


쇠파이프, 방망이, 가위, 칼 하나 같이 살벌한 흉기들을 일부로 진이 보이게 바닥에 내려치거나, 휙휙 돌리곤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진에겐 저런 건 전혀 위협이 안 된다. 적어도 눈앞에서 진짜로 다른 사람 머리를 박살낸다면 모를까 시늉만 취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그 사실을 모르고 진이 가만히 있는 게 두려워서인 줄 아는 이들이 의기양양하게 웃으면서 먼저 진의 양 손의 수갑이 풀렸다.


그리고 재앙은 시작됐다.


푹.


손이 풀리자마자 진은 풀어준 남자를 끌어당기며 목에 수갑의 고리 부분을 깊게 찔러 넣어서 정확히 경동맥을 찢었다.



"끄어어억....."



남자는 찔린 목을 손으로 틀어막아봤지만, 터져 나오는 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과다출혈로 쓰러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본 남자들과 채다미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네 말이 맞아. 아까와는 상황이 좀 다르지."



그 틈에 진은 다리의 수갑도 풀어서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피거품을 물고 있는 남자가 가지고 있던 전정가위를 빼 들어서 연결부의 나사를 풀었다.



“죽지 않는 선을 지킬 거면 마음대로 해.”



풀린 나사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두 개의 날을 양손에 쥐며, 빠르게 날의 길이와 무게에 적응했다.


그리고는 뻐근한 몸을 풀며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니들을 다 죽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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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설마가 사람 잡는다. 20.10.10 60 5 16쪽
22 22화-공조 +2 20.10.09 66 5 19쪽
21 21화-엎친 데 덮친 격 +2 20.10.07 64 7 19쪽
20 20화-남매들의 속사정 +1 20.10.05 83 6 22쪽
19 19화-카르밀라 +1 20.09.29 71 7 20쪽
18 18화-비장의 무기 +1 20.09.26 65 7 22쪽
17 17화-천차만별 20.09.24 69 5 17쪽
» 16화-체인 리쉬 20.09.23 69 4 20쪽
15 15화-여동생 +1 20.09.21 78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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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신입 20.09.17 79 6 17쪽
12 12화-각자의 역할 +1 20.09.16 91 8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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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권유 +1 20.09.13 94 5 20쪽
9 9화-반쪽짜리 진실 +1 20.09.10 102 6 17쪽
8 8화-번외수사 20.09.06 124 6 18쪽
7 7화-홍설대 실종사건 +1 20.09.05 147 8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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