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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현의 서재입니다.

엘더 사가 - 1부 별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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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현
작품등록일 :
2022.07.21 18:13
최근연재일 :
2023.03.3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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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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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글자수 :
4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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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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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10화

DUMMY

“아직 멀었어? 밥때가 한참 지났잖니.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야.”


예르카는 나무에 기대앉아 커다란 둥근 챙이 달린 모자를 연신 흔들어 대며 땀을 식혔다. 넬은 맥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모닥불 위에 얹은 솥에 국자를 휘휘 저었다. 배고프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인데다 그놈에 깡총벌레를 잡느라 진이 다 빠진 터였다.


귀뚜라미와 말벌을 합친 것 같은 모양에 맹독이 있는 대부분의 생물들이 그렇듯이 검은색 등에 있는 해바라기처럼 생긴 노란 반점이 화려한 경고를 보내는 놈이었다. 한 번 찔리면 사흘은 앓아누워야 한다는 독침을 두 번이나 찔릴 뻔했지만 다행히 피하는 요령을 터득해서 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뛰면 가슴 높이까지 뛰어오르는 녀석을 접시만 한 채집망으로 잡기에는 열에 여덟은 헛손질하기 일쑤였다. 오전 중에 도착해 각자 다섯 마리씩 잡기로 하고 시작한 채집은 점심때가 지나고 나서야 넬이 다섯 마리를 잡고서 끝났다.


‘자기는 겨우 두 마리 잡고 힘들다고 계속 앉아 있었으면서 그렇게 배가 고프면 먼저 밥이나 하지 남일처럼 재촉해대기는. 벌써 하인 취급하기 시작인가.’ 보글보글 끓는 스튜 국물의 거품이 터지면서 올라오는 냄새를 맡으니 오그라든 위가 뱃속에서 마구 요동쳤다.


“후아-, 냄새가 정말 끝내주네, 그 스튜도 산체스의 레시피인가?”


언제 옆에 왔는지 예르카가 넬이 대답하기도 전에 얼른 국자를 뺏어 쥐고는 국물을 떠먹었다.


“하아-, 흐-, 흐-, 아, 뜨거워. 맛있다! 정말 맛있어.”


예르카는 흐- 하고 바람을 들이켜 혀를 식히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 다른 요리책에 있는 거예요. -


“빨리 먹자, 빵은 내가 썰을 게.”


든든히 배를 채운 두 사람이 다시 짐을 꾸려 이동을 시작한 건 늦은 오후였다.


“다음은 연제비꽃이야. 이건 밤에 따야 하니까 도착하면 먼저 야영할 준비부터 해.”


- 왜 낮에 캐면 안 되죠? -


“아, 낮에도 되긴 하는데 난 밤에 딴 것이 필요하거든. 이 꽃은 낮과 밤에 성질이 달라져. 그러니까···, 에이, 넌 말해줘도 몰라.”


예르카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돌리자 넬이 그녀의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


- 나도 알 권리가 있어요 -


예르카가 넬을 쓱 보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하자 넬이 다시 팔을 두드렸다. 자못 진지한 넬의 눈빛은 연제비꽃만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르카는 고개를 기울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네가 약속을 지키니 나도 지켜야지. 그런데 말해줘도 글을 아는 정도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괜찮겠어?”


- 상관없어요. -


“좋아, 남을 가르쳐 본 적은 없지만 내 수준에서 쉽게 말해줄 테니 못 알아들어도 내 탓은 하지 마라. 질문에 질문도 사절이야.”


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흠, 마법이 구현되려면 반드시 세 가지가 필요해. 첫째가 ‘만다라’야. 마법으로 일으킬 현상을 ‘기하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아, 기하적이라는 말을 모르겠구나. 음, 원이나 삼각형 같은 도형을 생각하면 돼. 그런 도형들을 ‘프리어아키’라는 신성어와 함께 이리저리 조합해서 구현하려는 것을 그리면 만다라가 완성되지.”


- 왕이 명령하는 것을 글로 적듯이 마법으로 구현할 것을 기호와 도형으로 표현하는 거로군요. -


예르카의 눈이 동그래졌다.


“엥? 그.. 그래. 쉽게 말하면 그런 셈이야. 너 이해가 꽤 빠른데?”


넬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만다라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구현할 수 있지만 그만큼 많은 기호와 도형을 알고 조합할 수 있어야 실력 있는 마법사라고 할 수 있단다.”


- 당신은 어느 정도인가요? -


“나? 흐음, 솔직히 책에서 본 걸 전부 머릿속에 넣지 못했어. 현상은 유한하지만 사실상 무한에 가깝고 그걸 모두 담기에 내 머리는 호두껍질 속에 알맹이 정도밖에 안되거든. 그리고 만다라는 구성요소를 조금만 잘못 그려도 마법이 실패하기 때문에 차라리 책을 보고 정확하게 그리는 쪽이 나아. 논리적으로 보면 책에 있는 것들은 다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


- 정말 대단하군요. 세상에서 당신이 하지 못할 일은 없겠어요. 마음만 먹으면 세계에 주인이 될 수도 있겠어요. -


넬이 눈을 크게 뜨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응? 하핫,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마법이란 게 그렇게 녹록한 게 아니거든. 그리고 내가 워낙 욕심이 없는 사람이고 머리 아픈 일은 아주 질색이라 세상 일에는 관심이 없단다.”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친 예르카가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 턱을 세웠다.


- 그럼 깡총벌레나 연제비꽃 같은 것들은 마법을 위한 재료인가요? -


“맞아. 넌 정말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구나. 두 번째가 ‘룹파’라고 하는 질료야. 만다라가 마법의 내용에 대한 기록이라면 룹파는 그걸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재료인 거야. 보통 풀이나 벌레 같은 생물이나 청금석 같은 광물을 분말로 가공해서 쓰지.”


- 모닥불에서 불이 마법이라면 태우는 나무가 룹파겠네요.-


“호오, 그거 아주 적절한 비유인걸? 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직접 보여주는 편이 낫겠다.”


예르카는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대고 미간을 모으더니 가방에서 작은 주머니 몇 개를 살폈다.


“좋아, 비를 한 번 내리게 해볼까.”


예르카는 주위를 돌아보다 평평한 작은 바위에 다가가서 목탄을 꺼내들었다. 바위 가운데에 손을 펴서 가늠을 하고는 한 번 긋는 것으로 둥근 원을 매끄럽게 그렸다.


“이건 ‘샤크티’라고 부르는 ‘권능의 선’이야. 이렇게 마법을 담을 틀을 먼저 만들고 이 안에 내용을 그리는 거야.”


예르카는 원 안에 작은 원을 네 개 그려 넣고 각 원의 중심과 테두리를 직선으로 연결했다.


“일단 비를 내리는 내용은 다 그렸어. 그런데 비도 종류가 여러가지 잖니? 가랑비로 할지, 폭우로 할지, 천둥번개를 동반할지 원하는 것을 첨부하면 돼. 요 며칠 건조했으니까. 넉넉하게 내리게 해볼까?”


작은 원마다 알 수 없는 글자들을 하나씩 써넣었는데 그녀의 서재에 있는 책에서 본 것과 비슷해 보였다.


“자, 프리어아키까지 넣어서 만다라를 완성했어. 비는 우리가 가는 반대쪽에 내리게 했으니 비 맞을 걱정은 안 해도 돼.”


예르카는 작은 주머니 세 개를 꺼내 안에 있는 가루를 차례로 만다라의 중앙에 놓았다.


“룹파는 하려는 마법의 속성에 맞는 재료를 써야 해. 비를 부르는데 건조한 성질이나 불의 속성을 가진 것을 쓰면 안 돼. 지금 사용한 건 물맞이꽃에 턱수염 고래이빨, 빗물에 절인 감람석이야. 이렇게 단순한 마법은 보통 두세 가지 재료가 쓰이는데 A와 B, 그리고 둘을 연결시키는 C 이런 식이지. 마법이 복잡할수록 들어가는 룹파도 종류가 많아져서 각각의 비율을 잘 맞추는 것이 아주 중요해.”


- 이제 남은 게 전에 말한 영창인가요? -


“그래, ‘만트라’라고 하는 건데 신들의 언어인 프리어아키를 직접 소리 내는 거야. 영창을 해야 진짜 마법이 발동되는 것이지. 만트라를 외울 때는 반드시 정신을 집중해서 의미를 되새기며 발성해야 돼. 그러면 만트라의 파동이 아카샤를 공명시켜서 만다라에 기록된 것을 구현시키는 거야."


- 만트라는 모닥불을 피울 때 처음 장작에 가하는 열 같은 것이군요. -


“역시나 이해가 빠르구나. 제법 머리가 있어서 제대로 배우면 참 잘할 텐데 네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게 정말 아쉽구나.”


예르카는 혀를 끌끌 차고는 만다라를 향해 숨을 크게 들이키고 영창을 시작했다. 넬이 알아들을 수 없는 길고 짧은 소리를 내었는데 발음 하나마다 귀를 넘어 머릿속을 울리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영창 속에서 어지러움을 느낄 때쯤 갑자기 만다라의 선들이 또렷해지더니 밝은 빛을 내기 시작하자 중앙의 가루에서 희뿌연 것이 일며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거슬러 예르카가 말한 방향으로 흘러가 그곳에 있는 숲 위에서 점점 커져갔다. 이윽고 예르카의 영창이 끝났을 때 숲 위를 뒤덮은 거뭇거뭇한 먹구름이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봐, 이제 좀 있으면 저기에 시원하게 비가 내릴 거야. 마법을 실제로 보니까 어때?”


예르카가 이마를 가볍게 쓸며 말했다.


-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해요.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잠시 집중한 것만으로 날씨를 바꿀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워요. -


눈을 휘둥그렇게 뜬 넬을 보고 예르카는 팔짱을 끼며 씩 웃었다.


“자, 강의가 끝났으니 어서 일하러 갈까? 영리한 노예 아가씨?”


예르카가 가슴을 펴고 앞서 걸었다.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반신반의 했었는데 마법은 진짜 가능한 것이었어. 이 힘을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복수는 물론이고 엘그로브도 되찾을 수 있어!’ 넬은 카스노아를 죽이지 못한 뒤로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미래가 명확해진 것 같아서 저절로 기운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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