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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현의 서재입니다.

엘더 사가 - 1부 별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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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현
작품등록일 :
2022.07.21 18:13
최근연재일 :
2023.03.31 18:30
연재수 :
112 회
조회수 :
3,888
추천수 :
64
글자수 :
411,114

작성
23.02.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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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03화

DUMMY

“거기 너! 검을 풀어서 이리 던져. 허튼 수작 부리면 너희 둘 다 죽는다.”


“우린 당신들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멜스트롬에 휩쓸린 뒤에 깨어나 보니 여기였어요. 저 애를 쫓은 건 마을을 찾아 도움을 받으려고 한 것뿐이라고요.”


“속이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군, 멜스트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 섬의 사방에 있는 멜스트롬을 무사히 지나왔다는 건 투아모의 배를 따라왔거나 뱃길을 알려준 배신자가 있는 거겠지. 어서 검을 버리고 무릎을 꿇어!”


남자들이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리고 애런과 나자리아를 겨누며 포위를 좁혔다.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대고 주위를 돌아봤다.


“아무래도 우리가 가면 쓴 자들과 한 패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애런이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라고 해도 도무지 믿질 않으니 어쩔 수가 없군요. 저들에게 잡히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일단은 승기를 잡고 다시 이야기해요.”


나자리아가 주먹을 쥐고 싸울 자세를 잡았다. ‘불필요한 싸움은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군.’ 애런은 검집 째로 쥐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겨눴다. 서너 걸음 정도 간격까지 포위가 좁혀지자 나자리아가 먼저 한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남자가 힘껏 쇠스랑을 휘두르자 나자리아가 살짝 몸을 놀려 피하고 남자의 턱에 주먹을 꽂았다.


그녀보다 몸집이 배나 더 큰 남자가 맥없이 다리를 휘청거리는 사이 쇠스랑을 낚아챈 나자리아는 옆 사람의 다리를 걸어 쓰러뜨리고 쇠스랑의 자루 끝으로 가슴을 찍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이 쓰러진 것을 보고 다른 남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애런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장대들을 향해 물수제비 식을 썼다. 세 개의 장대가 빠각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사이 옆에서 곰방메가 머리로 날아왔다. 몸을 한 걸음 뒤로 빼자 두툼한 나무 덩어리가 휙 하고 코앞을 지나갔다.


쿵 하고 땅을 찍은 곰방메를 밟고 누르자 당황한 남자가 자루를 당겨 빼내려 했다. 그 사이 남자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고 뒤돌며 잎새가르기 식으로 낫을 든 남자를 쓰러뜨렸다. 남은 세 사람 중에 살집이 많고 덩치가 가장 큰 남자가 굵은 나무 방망이를 휘두르며 애런에게 덤벼들었다.


반 걸음씩 뒤로 물러날 때마다 붕붕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일어난 바람이 애런에게 닿았다. 애런은 방망이가 그리는 큰 궤적 사이로 남자의 가슴을 힘껏 내리쳤다. 검이었다면 두툼한 가슴이 갈라지며 핏줄기가 뿜어졌겠지만 속이 꽉 찬 베개를 누르는 것처럼 검집 모양으로 살이 눌리기만 할 뿐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애런과 남자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남자가 씨익 웃으며 한 손으로 애런의 목을 덥썩 움켜쥐었다. 애런은 숨이 꽉 막힌 채 천천히 땅에서 발이 떨어졌다. 발을 버둥거리며 검집으로 상대의 어깨를 내리쳤지만 방망이로 받아낸 남자는 더 억센 힘으로 목을 조였다. 방망이를 어깨에 걸친 남자가 시선을 애런의 이마에 맞췄다.


애런은 악다문 입이 점점 풀리는 것을 느끼며 검집을 잡은 왼손을 뒤로 빼었다가 앞으로 쭉 내밀었다. 남자의 방망이가 어깨에서 떨어지는 순간 검집에서 튀어나온 손잡이 끝의 무게추가 남자의 미간과 콧등 사이를 때렸다. 악 소리를 내며 얼굴을 부여잡는 남자의 뒤통수에서 퍽 소리가 났다.


남자는 눈이 풀리며 무릎을 꿇더니 커다란 덩치가 천천히 앞으로 기울었다. 그 뒤로 망토자락이 사뿐히 내려앉는 나자리아가 보였다.


“괜찮아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애런이 쓰러진 남자들을 지나 앞으로 나섰다. 모여있던 남자들이 각자 들고 있는 것으로 애런을 겨누며 술렁거렸다.


“힘센 팔라프가 쓰러졌어!”, “단 두 명이 저 정도면 놈들이 떼로 오면 어떡하지?”, “우리도 투아모처럼 당하는 거 아냐?”


“조용!”


테아누가 작살로 땅을 쿵쿵 두드렸다.


“우린 당신들을 해치러 온 게 아닙니다! 보세요, 이 사람들 중에 죽거나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애런은 뽑지 않은 검을 들어 보이며 쓰러진 사람들을 가리켰다. 테아누가 사람들을 돌아보고 바나우와 눈을 맞추고는 애런을 향해 걸어왔다. 작살을 겨누며 다가오는 테아누에게 나자리아가 공격할 자세를 취하자 애런이 손을 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테아누는 두 사람에게 경계를 풀지 않으며 천천히 뒤로 돌아가 쓰러진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애런의 말대로 고통스러워하긴 했지만 어느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엎어져 있는 덩치 큰 남자를 돌려 눕히고 가볍게 뺨을 두드렸다.


“정신차려, 힘센 팔라브.”


팔라브가 미간에 두터운 주름을 잡으며 몇 차례 눈을 껌뻑이고는 일어나 앉아 신음소리를 내며 뒤통수를 문질렀다. 테아누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애런에게 다가왔다.


“어젯밤에 저 아이를 만나기 전에 가면을 쓴 자들과 싸움이 있었어요. 어쩌다 보니 모두 죽고 말았지만 우리도 그자들이 누군지 몰라요. 우린 정말 조난자들입니다.”


테아누는 애런과 나자리아를 유심히 보았다. 아직 앳된 티가 남은 얼굴의 소년은 낡은 검 한 자루에 흙과 재로 얼룩진 옷차림이고 여자는 무기도 없이 망토 밖으로 늘어진 붉은 끈 말고는 아무것도 걸친 게 없어 보였다. 싸움 실력은 뛰어났지만 일부러 이 섬에 와서 투아모를 습격한 자들이라고 보기에는 행색이 너무 변변찮았다.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손짓을 하자 몇 사람이 나와 쓰러진 사람들을 부축해 데려갔다. 팔라브는 두 남자가 부축하려는 것을 뿌리치고 팔등으로 피투성이가 된 코밑을 훔치며 애런과 나자리아를 노려봤다.


“우리가 오해를 한 것 같군. 진심으로 사과하지. 난 테아누라고 하네.”


테아누가 작살을 거두고 내민 손을 애런이 맞잡았다.


“오해를 풀어서 다행이에요. 전 애런이고 이쪽은 나자리아입니다.”


나자리아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데 갑자기 테아누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애런? 혹시 성이 게일인가?”


“어? 제 성을 어떻게 아시죠?”


테아누는 고개를 내밀고는 미간에 힘을 주며 애런의 얼굴과 차림을 요목조목 살펴보았다.


“일단 따라오게.”


애런은 나자리아와 눈을 맞추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테아누를 따라 길을 열어 준 사람들 사이를 지나 지붕이 하얀 3층 건물로 향했다. 1층은 벽이 없이 줄지어 늘어선 굵은 기둥이 건물을 받치고 안에는 십여 명이 마주 앉을 만한 긴 타원형 테이블이 있었다.


기둥마다 아랫부분에는 파도와 넝쿨 형태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중간에는 여러가지 식물이, 윗부분에는 바람과 구름이 형형색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들을 따라온 남자들과 여러 방갈로에 숨어있던 여자와 아이들까지 건물 주변에 모여 애런과 나자리아를 보며 웅성거렸다. 테이블 상석에 바나우가 앉고 테아누가 한 쪽에 두 사람을 권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바나우가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여긴 카나우라는 마을이고 난 촌장인 바나우요. 오해를 해서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서로 피해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바나우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요기할 만한 것을 가져오고 여기 이 숙녀분께 입을 것을 챙겨드리거라.”


중년 여자 둘이 나자리아를 2층으로 데리고 갔다.


“아르나.”


테아누의 부름에 젊은 여자 하나가 곁으로 왔다. 커다란 암갈색 눈에 짙은 속눈썹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테아누가 그녀에게 귓속말로 무어라 하자 휘둥그레진 눈으로 애런을 보았다. 궁금한 표정의 애런과 눈이 마주치자 아르나가 테아누에게 귓속말을 했다.


테아누가 고개를 흔들고 손짓을 하자 아르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났다. 아르나는 밖으로 나가면서도 의혹이 담긴 커다란 눈으로 몇 번이나 애런을 돌아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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