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거물현의 서재입니다.

엘더 사가 - 1부 별의 조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거물현
작품등록일 :
2022.07.21 18:13
최근연재일 :
2023.03.31 18:30
연재수 :
112 회
조회수 :
3,889
추천수 :
64
글자수 :
411,114

작성
22.12.26 18:30
조회
37
추천
0
글자
8쪽

85화

DUMMY

애런과 뒤렉은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가쁜 숨을 내쉬는 입안으로 들어온 물방울에서 바닷물인지 땀인지 모를 짠맛이 났다. 보트 양옆에 네 개의 노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맞바람 속에서 날갯짓하는 잠자리 같았다. 회전하는 물살의 힘을 받은 보트는 빠르게 소용돌이 밖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오르막길 중간에 걸린 마차처럼 비스듬히 뒤로 기운 채로 더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넬과 나자리아가 선수를 붙잡고 체중을 실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애런은 양팔이 뻐근해지면서 점점 노가 무겁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칠면조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된 뒤렉의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 너머로 거대한 입을 벌린 소용돌이가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쿠르릉 소리를 내며 바닷물을 끝없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뒤렉씨도 한계인 것 같아. 점점 힘은 더 빠지는데 어쩌지?’


“나즈! 넬!”


큰 소리로 외쳤지만 소용돌이 소리에 묻혀 두 여자에게 닿지 못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배에 힘을 단단히 주어 다시 부르고 나서야 나자리아와 넬이 고개를 돌렸다. 애런이 고갯짓으로 노를 가리키자 얼른 넬이 뒤렉의 노 하나를 건네받고 나자리아는 애런의 옆에 앉아 노를 잡았다. 모두들 힘을 다해 노를 저었지만 애런의 생각과 달리 각자 노젓기가 달라 점점 보트가 뒤로 내려갔다.


“하나!”


“둘!”


애런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구령이 작은 말소리 크기로 들려 제대로 전해지지 않자 옆에 앉은 나자리아가 함께 외쳐 구령을 더했다. 덕분에 뒷자리의 넬과 뒤렉도 구령에 따라 노 젓는 박자를 맞출 수 있게 되자 보트가 기울어진 바다를 조금씩 올라갔다.


‘됐어, 조금만 더 하면 벗어날 수 있겠어.’ 보트의 앞부분이 소용돌이의 가장 바깥쪽 경사를 넘어서자 네 사람은 동시에 활짝 웃는 얼굴로 큰소리를 질렀다. 순간 뚝! 하고 뒤렉의 노가 부러졌다.


“아니!”


바다 거인이 보트 뒷부분을 옆에서 손가락으로 튕긴 것처럼 갑자기 보트가 뒤로 쭉 빠지면서 뱅그르 돌았다.


“꽉 잡아요!”


모두가 애런의 외침보다도 먼저 본능적으로 몸을 수그리고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보트에 달라붙었다. 현기증이 나도록 네댓 바퀴를 돌고 나서야 멎은 보트는 세찬 물살을 타고 커다란 원을 그리며 소용돌이 중심을 향해 가고 있었다. ‘큰일이야. 이렇게 끝날 순 없어.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애런은 굳은 얼굴로 동료들을 보았다. 나자리아는 미간에 굵은 주름이 잡히도록 눈썹을 모으고 고개를 저었고 뒤렉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을 턱 벌리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하고 있던 넬이 갑자기 번쩍 눈을 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크게 흔들리는 보트에서 중심을 잡아가며 뒤로 가서 나무통들을 고정시킨 밧줄을 풀었다.


“으! 으!”


보트가 쏠리며 기울어진 나무통들이 넘어지려고 하자 넬은 재빨리 양팔을 벌려 감싸며 몸으로 막았다. 뒤렉이 얼른 와서 함께 나무통들을 받쳤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우?”


뒤렉 덕분에 나무통들이 자리를 지키자 넬이 그중 하나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뚜껑을 열었다. 식수로 채워둔 물이 보트 바닥으로 촤악 쏟아졌다. 재빨리 뚜껑을 닫고 밧줄을 단검으로 자른 뒤 나무통 중간에 달린 고정용 고리에 끼워 자기 몸에 묶고서 다른 이들에게 나무통을 가리켰다.


“그래! 저렇게 하면 보트가 뒤집혀도 다들 물에 뜰 수 있겠어요!”


애런이 나무통을 잡고 눕히자 나자리아와 뒤렉도 하나씩 잡고 속을 비웠다. 보트 바닥에 절인 고기와 말린 과일들이 이리저리 떠다니며 종아리에 부딪혔다. 하얀 물보라 속에 숨은 인어들이 보트 밑에 달라붙어 있는지 바닥 아래 여기저기에서 주먹으로 두드리는 것 같은 진동이 울려댔다.


모두가 나무통을 몸에 묶는 동안 소용돌이의 검은 아가리 근처까지 이른 보트에서 쩍쩍 소리가 나며 여기저기에서 물이 솟았다. 뒤렉은 발아래에서 튀어 오른 물줄기가 수염을 때리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뒷걸음쳤다. 넬은 모두에게 보트 밖을 가리키고는 굳은 얼굴로 손을 들어 보였다.


“안돼요!”


애런이 손을 뻗어 잡으려는 사이 넬은 주저 없이 나무통을 끌어안고 보트 밖으로 몸을 뒤집었다. 울려대는 굉음 때문에 첨벙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저만치서 나무통을 잡고 떠오른 넬이 보였다. 갑자기 보트에서 화살을 맞은 사슴이 죽기 전에 내는 마지막 울부짖음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남은 세 사람은 나무통을 안고 보트 가장자리에 앉아 서로 눈을 맞췄다. ‘다들 꼭 살아서 봅시다.’ ‘나자레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아.’ ‘부디 자라엘 님께서 굽어살피시길.’ 모두가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동시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텀벙! 물거품 소리와 닫힌 창 너머에서 나는 돌풍 소리가 애런의 귀를 채웠다. 바다에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혼이 떼로 달라붙은 것처럼 물살이 애런의 온몸을 휘감고 흔들었다. 정신없이 휩쓸려가며 바닥난 숨을 쥐어짜느라 코에서 거품을 계속 내뿜는 중에 천사의 손길이라도 닿은 것처럼 갑자기 몸이 위로 쑤욱 올라갔다.


“커헉!”


막힌 숨을 토해내는 애런을 세찬 물살이 매섭게 휘갈겼다.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하고 눈이 따가웠지만 얼른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물살이 너무 빨리 움직이는 데다 소용돌이 안이 터널처럼 어두컴컴해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새까만 물과 하얀 물보라, 부서진 보트 조각이 바람개비의 무늬처럼 하나의 선이 되어 돌고 바람 소리도 물소리도 아닌 이상한 굉음이 머릿속까지 울려댔다. 수평선이 사라지고 거칠게 회전하는 거대한 물의 벽을 마주하며 애런은 젖은 머리가 꼿꼿이 일어서는 것 같았다.


‘정말 나 대신에 리케가 죽어서 벌을 받는 걸까? 이렇게 바다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자니도 없는 데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잖아. 뒤렉씨, 나즈, 넬 부디 무사하길 바라요.’


풍차에 올라탄 것처럼 빠르게 소용돌이 속으로 내려가는 애런은 뭔지 모를 것이 퍽! 하고 뒤통수를 때렸다고 느낀 순간 갑자기 불을 끈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졌다.






닫힌 눈꺼풀 너머로 얼보이는 노란 빛이 머릿속을 가린 검은 장막을 걷어냈다. 빛이 점점 붉은색으로 변하며 따뜻해진 눈꺼풀이 조개가 입을 벌리듯 서서히 벌어졌다. 물에 번진 오래된 그림책처럼 흐릿한 흑갈색 배경에 멜론만한 노란 덩어리가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눈꺼풀을 서너 번 깜빡거리자 흑갈색 나무 천장에 흔들리는 램프가 선명하게 보였다.


옆에서 들어온 환한 빛이 천정의 그늘을 걷어내면서 만화경 같은 아름다운 문양이 드러났다. 색이 다른 나무를 마름모와 육각형으로 조각내서 규칙적으로 배치한 문양은 보기에 따라 꽃 같기도 하고 별처럼 보이기도 했다.


빛을 따라 곁눈으로 눈동자를 발치 옆으로 돌리자 쏟아져 들어오는 빗살에 눈이 시려서 미간을 찡그렸다. 커다란 격자 창문 밖에서 펄펄 끓는 쇳물을 부어 만든 것 같은 태양이 바다에서 몸을 떼어내며 사방으로 빛을 쏘아보내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아 소리를 냈다.


“어머! 정신이 드셨군요.”


빨강 머리에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소녀가 활짝 웃으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짙은 갈색 눈망울에 주근깨가 콧등에서 양 뺨으로 걸친 소녀는 신기한 듯 얼굴을 들이대고 내려다 봤다.


“세상에, 눈동자도 녹색이었네요? 그 머리칼을 볼 때마다 신기했는데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요.”


아자니는 그제야 자신이 낯선 공간에 누워있다는 것을 깨닫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누구시죠? 여긴 어딘가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엘더 사가 - 1부 별의 조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안내 (9월까지) 23.03.31 7 0 -
공지 각 회마다 삽화를 넣을 예정입니다 23.03.12 13 0 -
112 112화 23.03.31 8 0 9쪽
111 111화 23.03.27 12 0 8쪽
110 110화 23.03.24 17 0 9쪽
109 109화 23.03.20 17 0 9쪽
108 108화 23.03.17 14 0 8쪽
107 107화 23.03.13 14 0 9쪽
106 106화 23.03.10 13 0 8쪽
105 105화 23.03.06 13 0 9쪽
104 104화 23.03.03 14 0 8쪽
103 103화 23.02.27 16 0 8쪽
102 102화 23.02.24 14 0 8쪽
101 101화 23.02.20 15 0 8쪽
100 100화 23.02.17 17 0 9쪽
99 99화 23.02.13 18 0 8쪽
98 98화 23.02.09 20 0 8쪽
97 97화 23.02.06 21 0 8쪽
96 96화 23.02.03 22 0 8쪽
95 95화 23.01.30 22 0 9쪽
94 94화 23.01.27 22 0 8쪽
93 93화 23.01.23 25 0 9쪽
92 92화 23.01.20 23 0 9쪽
91 91화 23.01.16 28 0 8쪽
90 90화 23.01.13 28 0 9쪽
89 89화 23.01.09 30 0 7쪽
88 88화 23.01.06 27 0 10쪽
87 87화 23.01.02 38 0 8쪽
86 86화 22.12.30 35 0 8쪽
» 85화 22.12.26 38 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