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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석의 서재

귀환자는 신을 찢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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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손영석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9.09 19:12
최근연재일 :
2024.09.18 19:0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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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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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글자수 :
78,656

작성
24.09.10 19: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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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004. 성대한 환영

DUMMY

이한결이 대신 계산해주고 나왔다.

빚지는 건 껄끄러우니 가까운 시일 내에 빠르게 갚아야겠다.


밖으로 나온 후 그를 따라갔다.


“어이가 없네. 어떻게 김치찌개가 한 그릇에 2만 5천 원이냐?”


진심으로 분노해서 청와대 부수러 갈 뻔했네.


“20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어······ 20년 전에는 한 그릇에 얼마였죠?”

“3천 원.”


이것도 밥집이나 분식집에서 먹을 때 이야기지, 학생회관에서 먹었다면 2,200원 정도면 충분했다.


“신들이 서울에 만신전을 지은 뒤, 한국 경제는 많이 바뀌었어요.”

“망했어?”

“반대죠. 엄청나게 성장했어요. 현재 국민소득은 8만 불 정도니까요.”

“와우.”


진심으로 놀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경제 기사에는 2007년에 사상 최초로 한국의 국민소득이 2만 불을 돌파할 수도 있다고 해서 호들갑 떨었는데.


“다만······ 그만큼 빈부격차도 심해졌어요. 교단이나 헌터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의 소득만 급격하게 늘어났으니까요.”

“경제가 성장하면 빈부격차도 당연히 심해지겠지.”

“근데 그게 좀 많이 심해요. 보통은 월 200만 원, 많아야 300만 원 정도 버니까요.”

“김치찌개가 2만 5천 원인데?”

“그렇게 팔아도 남는 게 없다고 들었어요.”

“자영업자가 남는 게 많다고 한 적 있냐?”

“진짜 힘든 것 같아요. 폐업률이 매년 사상 최대를 찍고 있으니까요. 재룟값보다는 서울의 집값이 워낙 많이 올라서 그런 거긴 한데······.”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서울의 집값이 올라? 왜? 위험하니까 떨어져야 하지 않나?”

“역으로 가장 안전한 곳이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헌터들이 지키고 있는 곳이니까요.”

“그 헌터들이 치고받을 수 있잖아. 하루아침에 뚝딱 수리되지도 않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 텐데.”

“괜찮아요. 신이 있으니까요.”

“헌터의 싸움에 신이 나선다고?”


아까 전엔 살짝 기대했다.


혹시 토르가 나타나지 않을까.

토르는 얼마나 강할까 등등.


하지만 토르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게다가 신이 나타났다고 해도, 이미 죽었으면 어쩔 도리가 없잖아.”

“약간의 오해가 있네요.”

“뭐가?”

“제가 말한 신은 보험의 신을 말씀드리는 거였어요.”

“보험의 신?”


보험 판매왕인가?


“손해보험으로는 튀케 & 포르투나 교단이 유명하고요, 생명보험으로는 오딘 교단이나 아누비스 교단이 유명해요.”


아는 이름이 나오자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튀케는 잘 모르겠지만, 포르투나라면 행운을 뜻하는 포춘(Fortune)의 어원이 된 행운과 운명의 여신.

오딘은 북유럽의 주신, 아누비스는 이집트 신화의 죽음의 신 아닌가?


근데 보험의 신이라니.


“포르투나는 행운과 운명의 여신이니 보험 같은 성격이 있다고 치자.”

“여신 튀케 님도 운명과 행운의 여신이에요. 튀케 님은 그리스 신화, 포르투나 님은 로마 신화 출신이시죠.”

“오딘이나 아누비스는 보험이랑 대체 무슨 상관인데?”

“오딘 님 하면 떠오르는 게 뭔가요?”

“궁니르, 슬레이프니르, 라그나뢰크, 발할라의 전사들.”

“발할라의 전사란 뭐죠?”

“생전에 싸우다 죽은 전사들을 모아 종말을 대비하는······ 아!”


깨달음을 얻었지만 어이가 없다.


발할라는 죽고 난 뒤에 보상해주는 거고.

생명보험은 죽고 난 뒤에······ 어라?


“아니지. 생명보험은 다쳤을 때도 보상해주잖아.”

“오딘 교단이나 아누비스 교단도 그래요.”

“아······.”

“다른 점이 있다면 죽었을 때 사망 보험금이 나오는 게 아니라, 사후 세계에 안락하고 풍요로운 곳으로 안내한다는 거지요.”


내가 보기엔 사망 보험금을 꿀꺽하려고 입 터는 것 같은데.


“확인할 방법이 없잖아.”

“신화의 이야기가 증거입니다.”

“어이가 없네. 그 포르투나나 아누비스 걔네들은 보험의 신이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하든?”

“오히려 권장하고 있지요.”

“······그래?”


이건 또 의외네.


“생각해 보세요. 그리스 로마 신화든, 북유럽 신화든, 메소포타미아 신화든 그 신화가 나온 이후로 세상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나요?”

“엄청 많이 바뀌었지.”

“예를 들어 인터넷의 신이 된다면 세상의 정보를 쥘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불리는 거지, 그런 권능을 갖추는 건 아니잖아.”


석유왕으로 불린 해서 모든 석유를 지배하는 건 아닌 것처럼.


“된다고 하네요.”

“어떻게?”

“그······ 잘 모르겠어요. 신화학을 연구한 사람들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어요. 예를 들어 에로스는 원래 아프로디테의 아들이 아니고, 가이아와 마찬가지로 태고의 고신이였는데······.”


이한결은 자신이 아는 내용을 최대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본인도 잘 이해 못 한 탓인지 설명이 무척 난잡했다.


“그래서. 많은 인간들이 그렇게 믿으면 그만한 권능을 갖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교단은 자신이 모시는 신에게 새로운 권능을 바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지요.”

“뭐하러 그러지?”

“예?”

“권능을 바치는 게 아니라, 그냥 다 같이 ‘신은 인간의 노예’라고 생각하면 노예처럼 부려먹을 수 있잖아.”

“어······.”


이한결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런 악마 같은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는 듯이.


“그······ 어려울 거예요. 인식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교단도 새로운 권능을 바칠 때, 모시는 신의 원 권능과 연결하는 작업부터 한다고 했어요.”

“흐음. 그렇구나.”


나중에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언젠가 부딪힐 수도 있으니, 적이 될 수도 있는 존재의 강점과 약점은 확실히 알아둬야겠지.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네? 저는 진우 씨를 따라가고 있었는데요?”

“난 널 따라가고 있었는데?”


순간 정적이 흘렀다.


띠리링~


때마침 침묵을 깨는 멜로디가 흘러나왔고.


“잠시만요.”


이한결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언제봐도 신기하네.

예전에 택배 하던 분들이 쓰는 PDA폰 같기는 한데, 펜이 아니라 손으로 터치하는 것도 신기하고, 무척 얇은 것도 신기하고.


“어.”

“왜?”

“그, 그게······.”


이한결은 떨리는 손으로 내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 계속 그의 환심을 사서 옆에 있어라.


“어쩌죠? 제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추적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세상이 많이 발전했네.

핸드폰으로 위치추적도 하고.


이거 괜찮은 거 맞나?


“그래서?”

“예?”

“그걸 굳이 왜 보여줬냐고.”


내가 싸운 상대도 토르 교단이고, 이한결도 토르 교단 소속이니 그가 나에게 일부러 접근해서 위치를 확인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몰랐다는 듯이.

그리고 그것이 죄악이라는 듯이 미안해하고 있다.


“죄송해서요.”

“뭐가 죄송한데?”

“저 때문에 진우 씨의 위치가 노출되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너는 교단을 위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한다는 이야기니?”

“그건······.”


이한결은 무척 혼란스러워 보였다.

젊은 나이라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았나 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생존이 걸린 전투에서는 옳고 그름도 없고, 정도도 사도도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가 패배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낭만이니 정의니 따지는 건 이기고 나서 포장해도 된다.


“받아.”


팅~


나는 아공간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넘겼다.


빚은 한국 돈으로 갚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이번엔 놈들도 진심으로 오는 모양이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금으로 되어 있으니 2만 5천 원 값은 될 거다.”

“그 말씀은······.”

“가라. 네가 여기 있으면 마음 놓고 싸울 수 없다.”


귀환하고 나서 아직 진정한 강자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한결을 보호하면서 너끈히 싸울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싸우기 전에 확신하다가 죽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봤으니까.


“뭘 하실 생각인가요?”

“내게 어금니를 드러낸 자는 철저하게 깨부순다. 그뿐이야.”

“위험해요. 이번엔 사도급이 올 수도 있어요.”

“사도가 아니라 토르가 직접 온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다.”


싸워서.

쓰러뜨린다.


“······마치 전쟁의 신 같네요.”

“전쟁은 좋아하지 않아.”

“그런가요?”

“전투는 하고 싶은 놈들끼리만 하면 돼. 근데 전쟁은 하고 싶은 놈들이 하기 싫은 놈들을 밀어 넣는 거잖아. 정작 자기들은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 말이지.”


억지로 전장에 끌려와서 공포에 가득 질린 놈들을 베고 있자면 싸우는 이쪽도 기분이 더럽다.

반면 안전한 곳에서 편하게 명령질만 하는 놈들을 내버려 두는 것도 기분 더럽다.


그래서 원칙을 정했다.

전쟁을 원하는 놈들만 죽여주겠다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마왕 토벌 이후 유스티아 대륙에 들끓었던 전란이 종결할 수 있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서 자라. 네가 자고 일어날 때쯤이면 다시 평화가 찾아올 테니까.”

“······네.”


이한결은 그대로 사라졌다.


“자, 그럼 시작하지.”


손가락을 튕겨서 이쪽 주변을 날아다니는 드론을 그대로 격추했다.

그것을 신호로 강력한 뇌기를 발산하는 수많은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검진혁 서장님. 토르 교단에서 강력한 빌런 출현을 통보했습니다.”

“빌런?”


빌런의 뜻을 직역하자면 악당이다.

범죄는 매일 끊임없이 일어나고, 누구나 악당이 될 수 있는 만큼 빌런의 출현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교단에서 신고하는 빌런은 달랐다.

이능의 힘을 보유한 헌터 범죄자라는 뜻이며, 평범한 경찰은 완전무장한 채 다발로 달려들어도 잡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이 자가 바로 새로이 지목된 빌런입니다.”

“······음?”


검진혁 경무관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많이 봤던 얼굴인데.


그래.

20년 전에 실종된 막냇동생을 닮았다.


“이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능력은?”

“이 영상을 보십시오.”


검진혁은 필요한 부분만 편집된 영상을 보았다.


“······.”


알아낸 것이라곤 ‘빠르고 능숙하게 피했고, 빠르고 정확하게 타격’했다는 것뿐.


아니.

하나 더 있다.


“전투력이 1?”

“다른 영상을 보더라도 1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기계 오류는 아닌 듯합니다.”

“움직임으로 보아 전사계 헌터인 것 같은데, 전투력을 속일 수 있다면······.”


전사와 속임수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전쟁의 여신이자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그러하며, 헤라클레스도 열두 과업을 달성할 때 무지막지한 완력만 이용한 것이 아니다.


전투에서 속임수란 비겁한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것.

특히 동양의 신들이 이러한 성향을 많이 띈다.


한국 신 중 최강인 자청비도 농업의 신이지만, 최강이라는 칭호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강력한 신이며, 동시에 남장 설화에서 비롯된 거짓말을 매우 잘하는 여신이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지? 그렇다는 건 ‘명단’에 없다는 거고······ 헤르메스 교단에 협조를 요청해 봤나?”

“예. SNS를 전부 뒤져보았지만, 그와 관련된 내용은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는 건 이전에는 없던 능력자라는 건데······.”

“북한에서 넘어왔을 수도 있습니다. 악마의 추종자 말입니다.”

“중국에서 왔을 수도 있고.”

“예?”

“아니다.”


검진혁은 국정원에서 일하는 동생의 말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성천자가 중국의 신인 황제 헌원씨와 자신을 동일화하는 실험에 성공한 것 같던데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중국은 이제 ‘명단’에 없는 어마어마한 수의 헌터를 찍어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의 공작인가, 아니면 악마의 농간인가.”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점은 바로 저 얼굴.

20년 전에 실종된 막냇동생과 너무나도 닮았다.


과연 이게 우연일까.


“SOU(Special Operation Unit) 지원을 요청해.”

“예?”

“경찰특공대 지원을 요청하라고.”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는 결코 월권이나 권력의 남용이 아니다.

토르 교단에서 ‘강력한’이라는 수식어를 쓸 정도의 빌런이라면 국가 안보를 생각했을 때 아무리 철저하게 대처한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온 것을 성대하게 환영해주지.”


정체가 뭐냐에 따라 환영의 방식은 달라지겠지만.


북한에서 온 악마의 하수인이라면 은탄 세례로 환영해줄 것이고.

중국에서 온 공작원이라면 철저한 대처와 강력한 외교적 규탄으로 환영해줄 것이고.


그리고 만약.

정말 가능성이 작긴 하지만, 실종된 동생이라면······.


“내 주먹으로 환영해줘야겠지.”


검씨 가문의 네 형제 중 둘째.

검진혁은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헌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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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11. 천마 신앙 (1) +1 24.09.17 96 1 13쪽
10 #010. 해후 (3) +2 24.09.16 122 1 14쪽
9 #009. 해후 (2) 24.09.15 140 3 14쪽
8 #008. 해후 (1) +1 24.09.14 174 2 14쪽
7 #007. 신화의 탄생 (3) +1 24.09.13 180 5 15쪽
6 #006. 신화의 탄생 (2) 24.09.12 179 4 12쪽
5 #005. 신화의 탄생 (1) 24.09.11 188 5 13쪽
» #004. 성대한 환영 24.09.10 196 4 13쪽
3 #003. 신살자의 귀환 (3) 24.09.09 238 5 12쪽
2 #002. 신살자의 귀환 (2) 24.09.09 269 7 14쪽
1 #001. 신살자의 귀환 (1) 24.09.09 325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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