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3)
정신을 차린 나는 익숙한 침대의 위에 누워있다.
수확의 신전에서 제공했던 방의 침대에 누워있는 나. 그리고 내 옆의 샬롯.
“후우”
깊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내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문이 열리고 키리류에가 안으로 들어온다.
“깼어?”
나지막하게 묻는 키리류에. 키리류에는 내가 앉아있는 침대에 걸터앉는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내가 정신을 잃기 전 샬롯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던 앤더슨의 사이로 날아다녔던 한 마리의 나비. 그것은 분명 키리류에의 수족이었다.
“어째서 날..”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려져있는 방문으로 앤더슨이 들어온다. 앤더슨은 방에 있는 의자를 하나 끌고 와 그곳에 앉는다.
앤더슨은 짧은 주문으로 거울을 하나 소환하더니 그것을 나에게 건넨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라고 한다. 나는 앤더슨의 말대로 거울 속 내 자신을 쳐다본다.
거울 속에는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전혀 다른 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산발의 머리와 충혈된 눈, 완전히 검게 변한 눈 밑, 그제야 나는 내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이곳에 온 뒤로 다른 사람은 전혀 듣지도 않고, 그렇게 스스로를 망가트리면 어떡하자는 거야?”
키리류에는 나에게 핀잔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걱정으로 가득 찬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샬롯도 이렇게 너 스스로를 망가트리면서까지, 무너트리면서까지 자신을 찾아주기는 원하지 않아.”
앤더슨은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정말 살아도 산 게 아닌 것 마냥 반쯤 미쳐버린 나를 보며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할지 걱정하던 샬롯은 키리류에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키리류에는 앤더슨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강한 방법을 쓰더라도 일단 진정부터 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난..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전부 라마누스에게 빼앗겨버렸단 말이야..”
라마누스는 가만히 내 말을 듣더니 팔짱을 끼고 말한다.
“너의 그 증오가 얼마나 날카로울 지는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감히 헤아릴 수는 없겠다만 너를 보고 따라오는 이 모두를 한번 돌아보라고, 네가 지금 안고 있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건가?”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키리류에를 쳐다본다. 그리고 나를 보고 따라와 준 설향과 샤프를 떠올린다.
"자네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나 생각하게, 또 만약 자네가 샬롯을 되돌렸다 할지라도 자네가 망가져버리면 그것이 의미가 있겠나?"
샬롯에게 내가 어떻게든 널 되돌리겠다고 약속했고 또 다짐했다. 그 절망의 구덩이 안에서 어떻게든 희망의 줄기를 찾아 샬롯의 손을 끌어잡은 나였다. 하지만 나를 보고, 또 나만 믿고 따라오는 샬롯은 내가 무너져버리면 다시 그 절망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리고 말 것이다.
빠른 것은 좋다. 하지만 그 전에 튼튼해야 한다. 무너지지 않게 굳건해야만 그 다음의 빠름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샬롯을 꼬옥 껴안는다. 그리고 키리류에에게 미안하다고 나지막하게 말한다.
“흥! 거.. 걱정시키지 말라고.”
키리류에는 부끄러운 듯 선홍의 홍조를 짧게 띄우더니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뭐, 몸조리 잘하라고, 얼마나 머물던 이 수확의 신전은 자네를 환영하니까 말이야. 죽음의 신전에 관해서는 내일 모두를 모아서 말해줄 테니까 오늘은 그냥 몸 추스르는데 전력을 다하라고!”
앤더슨은 나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네더니 특유의 마법으로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버리고 만다.
행동거지가 조금 특이하기는 하지만 앤더슨은 교양 있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보면 앤더슨을 미친 놈이라고 말하던 슈발리에와 키리류에가 조금 이해가 가질 않기도 한다.
- 작가의말
아침 커피는 정신건강에 너무나도 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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