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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K의 서재

전치 12주의 역대급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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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즉
작품등록일 :
2021.08.18 00:47
최근연재일 :
2021.09.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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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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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1화.[범지구적으로]

DUMMY

진월도의 평평한 해안가.


두두두두-!


평화롭던 그곳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려앉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름 아닌 소형 헬기였다.


드르륵!


착륙한 직후 헬기의 문이 열리더니, 이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나온다.


김관엽, 민우진, 차민희. 셋 다 EC 연구소에 소속된 이들이었다.


"드론이 찍은 장소, 어딘지 파악했어요?"

"대충 알 것 같다. 너무 늦으면 안 될 텐데······."


관엽은 다급한 어투로 민우진의 질문을 받았다.


세 사람의 복장은 EC의 독성 기운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는 방어복.


모르긴 몰라도 심각한 상황인 것이 분명했다.


타다다-!


쉴새없이 달린 세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숲지에 들어왔다.


사방이 온통 거목이었지만, 관엽은 어렵지 않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몇 분이나 달렸을까.


이들은 무성한 숲지의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다름 아닌 이곳이 목적지였다.


깊게 파인 땅, 부러진 나무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짙게 깔린 EC의 기운.


그 흔적이 이곳에서의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맙소사······. 드론 카메라로 본 것보다 훨씬 심각하잖아?"

"지친 후에 싸운 게 이 정도라니······."


민우진과 차민희는 혀를 내두르며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짙게 깔린 EC의 중심에는, 만신창이가 된 채 엎드러져 있는 두 남자가 있었다.


이진현과 센도 테츠야. 방금까지 대결을 펼치던 능력자들이었다.


"소···소장님, 어떻게 할까요? 둘 다 기절한 건가요?"

"음······일단 우진이 너랑 내가 한 명씩 들쳐업자. 아니다. 민희야, 들것 가져왔지?"

"아, 네. 가져왔어요."

"그럼 너희 둘이 테츠야를 들것으로 날라라. 내가 진현이를 업고 가겠다."


관엽은 두 연구원에게 지시를 내린 후, 쓰러져 있는 둘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두 명 다 심각한 상처를 입었지만, 다행히도 숨은 붙어 있었다.


하지만 둘 다 기절해 있는 바람에, 얼핏 보면 누가 승리하였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관엽은 대결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진현아······미안하다.'


그는 쓰러져 있는 진현의 왼손을 꼭 잡았다.


순간 눈물이 핑 도는 것 같았지만, 그는 자제하고 진현을 들쳐업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우선은 부상자를 치료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도 잘해 주었다.'


이 생각을 끝으로, 관엽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일전이 끝을 맺는 순간이었다.




* * *




관엽과 연구원들이 타곤 온 헬기에는, 기본적인 치료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다시 해안가에 도착한 그들은 응급 처치를 취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능력자는 의식을 되찾았다.


물론 '의식'을 되찾았다고 했지······멀쩡하다고 하진 않았다.


"아! 아아아! 좀 살살 해 주세요."

"사내 자식이 엄살은······. 그냥 약 바르는 건데 이게 뭐가 아파?"

"거기만 아프다고 한 적은 없어요. 그냥 온몸이 다······아무튼 진짜 아파요."


진현은 본의 아니게 민우진의 집중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정신을 차린 테츠야에게 관엽이 말을 걸고 있었다.


"어때······정신이 좀 드나?"

"네······뭐. 아, 제가 한국말 할 줄 안다는 거 모르셨죠?"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아무튼······기절하기 직전의 기억은 있어?"

"······네."

"그럼 결과에 대해선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겠군."


관엽은 복잡한 눈빛으로 테츠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테츠야는 그 눈빛의 의미를 대강 알 것 같았다. 동시에 관엽이 뭘 원하는지도.


"압니다. 그러니 인정하겠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그는 후후 웃으며 자신의 패배를 시인했다.


그 말에 차민희, 민우진, 이진현의 시선까지 모두 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테츠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연구원 분들도 드론 카메라를 통해 봤겠지만······특히 이진현 너는 왜 놀라는 거지? 날 기절시킨 게 너인데 말이야."


테츠야는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분명히 그는 심장에 EC로 된 탄환을 맞았으나,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며 진현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다시금 몸싸움이 시작되었고, 오른팔을 못 쓰는 진현은 계속해서 맞기만 했다.


그러나 진현이 오른팔을 간신히 들어올린 한 순간의 타이밍이 있었다.


스르릉-!


쇠로 된 날붙이가 갈리는 소리.


진현은 가까스로 오른팔을 치켜올렸고, 숨겨져 있었던 두 번째 칼날이 깁스 위로 드러났다.


-하아···하아······칼을 두 개나 준비하다니, 준비성이 철저하네. 내가 부러뜨릴 걸 예상했나?-

-그럴 리가······. 하아, 그냥 형태 변화가 풀리면서 감춰진 게 드러난 것 뿐이야.-


진현의 말대로, 좀 전의 날카로웠던 그의 깁스 형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진현은 응고된 다량의 EC를 견디기 힘들었고, 결국 전투깁스의 '형태 변화'를 더는 유지할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크기만 크고 흐물흐물한······깁스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무언가.


-진짜······마지막이야.-


진현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팔을 치켜들었다. 코어를 중심으로 몸이 박살날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기어코 팔을 휘둘렀고, 동시에 깁스에 달린 칼날이 테츠야의 어깻죽지를 한번 더 내리그었다.


서걱-!


-커헉! 으으······.-


테츠야는 누가 봐도 많은 양인 피를 토했다.


이미 한계인 것이 자명했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현이 한발 더 빨랐다.


타앙-!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총성. 분명히 아까와 같은 소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날아간 탄환이 테츠야의 오른쪽 옆구리에 박혔다.


-아···아아······.-


진현도 힘을 다 써버린지라 완벽한 조준은 어려웠지만, 테츠야에게 고통을 주기는 충분했다.


이내 신음을 가장하여 울부짖는 테츠야.


그도, 진현도 점점 의식이 흐려져 가고 있었다.


-아까 말했었지······내 EC를 담은 만큼 탄환의 제작이 어렵다고. 그래서···그래서 하나밖에 못 가져왔어. 이건······당신이 아까 뽑아낸 걸 다시 주운 거야······.-

-커······커헉! 커헉!-

-당신은 방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사실은 방심한 거야. 그쪽이 전투깁스를 장착했거나······아니면 그에 준하는 무기만 있었어도······승부를 가릴 필요도 없···었겠지.-


진현은 마지막 말을 내뱉은 후, 이내 기절했다.


테츠야의 거듭된 공격으로 인해 깁스는 거의 쪼개지다시피 했고, 그에 따른 고통이 상상을 초월했다.


때문에 진현은 자신이 체력이 다한 건지, 고통으로 인해 쇼크가 온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진현의 의식이 끊어졌다.


다만 한 걸음 앞서, 기절한 테츠야의 몸이 쓰러졌을 뿐이다.


그것이 전투의 마무리였고, 동시에 승부의 결과이기도 했다.


사실 진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정말로 당신을 이겼다고?"

"그래. 애초에 이건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드론에 찍힌 영상이 증거물로 남았고, 무엇보다 영상은 양국에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으니까."


테츠야는 깨끗하게 결과를 인정하며 킥킥 웃었다.


이상했다. 분명 대결에서 졌고, 따라서 내기에서도 졌다.


따라서 일본에 돌아가면 상당한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도 이상하군. 재능 없는 놈이 재능 있는 놈에게 패배했는데······왜 이리 홀가분한 건지."


참 기이할 노릇이었다.




* * *




그 후 상황은 빠르게 일단락되었다.


규칙에 의해 테츠야는 패배를 인정했고, 한국 측도 이를 동의했다.


그리고 두 능력자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기에, 간단한 응급처치 후엔 둘 다 거동이 가능해졌다.


특히 테츠야의 경우엔 총탄이 심장을 강타했지만, 피부에 두른 EC의 방어막 덕에 깊이 박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할 일만 남은 것.


다시 말해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저는 타고 온 배를 이용해 바로 일본에 돌아가겠습니다. 가서 엄청나게 깨지겠지만······기왕이면 빨리 끝내는 게 좋죠. 아, 내기 보상에 관련해서는 추후에 따로 연구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대결 중 살벌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테츠야는 다시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 한국을 지배하겠다며 외칠 때만 해도 영락없는 악당인 줄 알았는데······.


진현은 왠지 테츠야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렇기에 진심을 담아, 그 역시 예의 바른 인사를 건넸다.


테츠야는 싱긋 웃으며 진현의 악수를 받아 주었다.


"제가 당신을 봐 주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방심을 했든, 뭘 했든 진 건 진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제가 대결 중에 했던 말들은 너무 담아 두지 마시죠. 재능 없는 능력자의 쓸데없는 참견이었을 뿐이니까요······. 다만, 이것만은 명심하세요."

"네?"

"앞으로 능력자의 업을 이어나가면, 저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려움이 닥치게 될 겁니다. 부디 그때도 자신의 생각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랄게요."


그가 이렇게 정성 어린 말을 하는 것은, 진현을 예뻐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대결 중 진현에게서 자신의 옛 모습을 봤고, 진현 또한 이를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좋네요. 그럼 전 이만······기회가 되면 또 보죠. 꼭 좋은 능력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재능이 있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테츠야의 신형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진현은 짧은 시간의 대결로, 테츠야에게 재능 있는 능력자라 인정받았다.


테츠야의 그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는, 당장은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이걸로 내 재능을 확인했다기엔······아직 부족하다.'


진현은 주먹을 굳게 쥔 채 생각에 잠겼다.


헬레나 브리스니체, 그리고 센도 테츠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두 남녀는, 아이러니하게도 진현에게 비슷한 뉘앙스의 질문을 던졌다.


-이진현 씨는 능력자로서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네가 능력자의 짐을 짊어질 수 있는 그릇이 되는가?-


아, 물론 질문의 의도나 내용 자체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진현은 이 두 문장으로부터 같은 바를 느꼈다.


'그만큼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거다. 그리고 능력자의 길이 험난하다는 거겠지. 확실한 목표나 재능이 없으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세계라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진현도 지쳤는지 더 이상은 머리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대변하듯, 어느새 다가온 관엽이 진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 깁스의 상태가 만신창이인 건 알지? 헬기 타. 빨리 연구소로 돌아가자."

"와······드디어 좀 쉴 수 있겠네요."

"그래. 가서 깁스도 수리하고, 며칠 동안은 푹 쉬는 거다."


이진현과 진월도의 첫 번째 인연은 그걸로 끝이 났다.




* * *




그 이후로 며칠, 진현은 지친 몸과 마음을 휴식하는 기간을 가졌다.


말 그대로 '휴식'에만 몰두했기에······그는 바깥 세상에서 무슨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와 센도 테츠야의 대결 장면을 찍은 동영상 파일.


그 파일은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 정부에 전송되었고, 동시에 각국의 대표 EC 연구소도 그것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 그 파일을 받은 곳은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국제 EC 능력자 협회'의 본부.


협회의 관계자에게도 그 영상은 흥미로운 소식이었다.


'능력자들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풋내기 D급 능력자가 C급 능력자를 꺾었다'라는 매력적인 소문.


헬레나와 같은 협회 소속 능력자들을 시작으로, 그 소문은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흐르자, 이제 그 소문은 국경을 넘어 범지구적으로 뻗어 나갔다.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인도, 러시아······그 외 다수의 국가들.


그곳에 있는 EC 능력자들에게도, 그 소문은 다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다가왔다.


"있잖아, 자네 그거 들었나?"

"아, 그 소문!"

"그 영상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못 믿겠어······."


그렇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진현이라는 능력자의 존재는 알게 모르게 널리 알려지고 있었다.




항상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8월도 어느덧 끝나가네요. 독자님들 모두 건강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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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호랑이굴로] +1 21.09.04 33 1 16쪽
27 26화.[지워진 능력자 (3)] 21.09.03 24 1 13쪽
26 25화.[지워진 능력자 (2)] 21.09.02 24 0 14쪽
25 24화.[지워진 능력자 (1)] 21.09.01 46 1 13쪽
24 23화.[깁스의 목소리] 21.08.31 42 1 13쪽
23 22화.[한/미/일] 21.08.31 38 1 12쪽
» 21화.[범지구적으로] 21.08.30 52 0 13쪽
21 20화.[진월도(眞月島)의 총성] 21.08.30 39 1 11쪽
20 19화.[합법적 하극상 (3)] 21.08.29 45 1 12쪽
19 18화.[합법적 하극상 (2)] 21.08.28 42 0 13쪽
18 17화.[합법적 하극상 (1)] 21.08.27 52 0 12쪽
17 16화.[1차 업그레이드: 전투깁스] 21.08.26 46 1 12쪽
16 15화.[전초전] 21.08.25 47 1 12쪽
15 14화.[한일전, 자신 있어?] 21.08.24 47 0 12쪽
14 13화.[내기 할래?] 21.08.23 48 1 12쪽
13 12화.[바다 너머의 불청객] 21.08.22 56 0 13쪽
12 11화.[헬레나 브리스니체] 21.08.21 55 1 13쪽
11 10화.[히어로 (2)] 21.08.20 50 1 13쪽
10 9화.[히어로 (1)] 21.08.20 51 0 14쪽
9 8화.[서열 정리 (2)] 21.08.20 53 1 11쪽
8 7화.[서열 정리 (1)] 21.08.20 54 0 15쪽
7 6화.[전학생 아니고 편입생] 21.08.20 55 0 12쪽
6 5화.[8,760시간의 고난] 21.08.20 65 1 13쪽
5 4화.[EC 연구소, 그리고 능력자] 21.08.20 67 0 13쪽
4 3화.[새로운 세계] 21.08.20 71 1 11쪽
3 2화.[Emperor Cast.황제의 깁스] 21.08.20 78 1 12쪽
2 1화.[다시 없을 기회] 21.08.20 85 1 13쪽
1 프롤로그.[불행은 대부분 성실한 사람에게 일어난다.] 21.08.20 13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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