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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y 님의 서재입니다.

남쪽 하늘에 뜨는 별, 天南星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퓨전

HaLy
작품등록일 :
2019.01.24 00:53
최근연재일 :
2021.04.15 22:10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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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1
추천수 :
8
글자수 :
405,756

작성
19.02.1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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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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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6화 엇갈린 마음

DUMMY

찌그덕-


별채의 일각협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김 내관이었다.


성헌과 이야기를 나눈 뒤, 차마 은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대청마루 끝에 앉아있던 오 내관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


“행랑방을 지키고 섰던 놈이 자리를 비웠습니다.”


저하께서 그토록 기다리시던 소식이다.


허나, 이 소식을 은에게 전해야 하나 오 내관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행랑방에 있는 그 아이가 대제학 대감의 여식이라니......


그러나 오 내관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문이 낸 궁근소리를 듣고, 은이 방에서 나와 버렸기 때문이었다.


“김 내관. 정녕 행랑방을 지키던 청지기가 사라졌느냐?”


“네 저하. 놈이 사라지자마자 얼른 이리로 왔사옵니다.”


“그래, 되었다. 오 내관. 어서 가자. 신을 이리 다오.”


몸이 달은 은이 발부터 내밀었다.


더는 은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오 내관은 댓돌 위에 놓여있던 태사혜를 들어 은의 발에 신겨주었다.


신발을 신은 은이 댓돌 아래로 내려왔다.


“김 내관, 어서 앞장서거라. 행랑채로 가자꾸나.”


은의 재촉에 김 내관이 잰걸음으로 행랑채를 향해 나섰다.



***




“아씨 또. 또.”


말녀가 세계의 어깨를 톡하고 쳤다.


세계가 무슨 일이냐는 듯 말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씨 또 입술 씹으셨잖아요.”


“내가? 언제?”


“방금 이요.”


또 입술을 씹었다고? 정말 없던 버릇이 생겨버렸다.


제4세계의 이세계란 아이의 행방, 꿈에서 그리던 이상형인 윤단혜.


그들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자 나도 모르게 입술을 씹었나보다.


“왜요? 심심하셔요?”


말녀가 말이 없는 세계를 향해 물었다.


“이 좁은 방에 갇혀 있으니 답답하지 않겠어?”


“내일이면 두 분 궁으로 돌아가신대요. 조금만 참으셔요.”


내일이면 돌아간 다라......


단혜란 그 여인이 궁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한동안 보지 못할 것이다.


손대면 베일 것 같은 날렵한 V라인 얼굴. 고양이 같은 날카로운 눈매, 오똑한 콧날, 시원한 입매에 딱 떨어지는 옆선까지......


정말 완벽한 내 이상형인 그녀.


10년간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도 그토록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한 번 더 그 완벽한 얼굴을 보고 싶다.


물론 만나서 어찌하겠다는 건 아니다. 지금 내가 연애할 상황도 아니고.


제4세계에서 난 한낱 계집종일 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는 건 신분의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성별의 벽도 있다는 것.


게다가 그쪽은 유부녀.


그녀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그러니, 그저 한 번 더 보고 싶을 뿐. 정녕 다른 마음은 없었다.


답청도 꽃을 그저 보러 가는 것이지 않은가.


그래. 난 화려한 꽃이 보고 싶은 것이다.


세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씨. 어디 가시려고요.”


“내, 꽃을 보러 가련다.”


“꽃이요? 무슨 소리셔요. 아까 성헌 나리 말씀 못 들으셨어요? 오늘은 제발 그냥 가만 계셔요.”


“이 집안에도 꽃이 있지 않으냐. 어디 멀리 가려는 것이 아니다.”


“정 그리 답답하시면 요-기 행랑 마당만 한 바퀴, 같이 도셔요.”


갑갑해 하는 세계가 안쓰러웠는지 말녀가 먼저 지게문을 열고 나갔다.


세계도 이어 나가려는데, 곧바로 말녀가 되돌아 들어와 지게문을 잡고 섰다.


“왜?”


“아씨. 나가시면 아니 되겠어요. 여기 계셔요.”


“왜 그러는 건데?”


세계의 궁금증에 답이라도 하듯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흠. 거기 있는 것을 아니 나와 보거라.」


저 목소리는......그 허여멀건한 세자?


쟨 또 왜 와서, 나오라 마라 하는 거야?


“아씨. 나가시면 안 돼요. 혹여 아씨 정체가 들키면 어떡해요.”


「나와 보거라. 잠깐이면 되느니.」


은이 다시 재촉했다.


“자꾸 나오라는 데 어떡해?”


“조금 있으면 칠복이가 올 거예요. 얜 밥상 들고 어디까지 간 거야.”


말녀는 문고리를 잡은 채 발을 동동거렸다.


「어허. 아니 되겠구나. 김 내관. 네가 저 문을 열어 보거라.」


잠깐의 기다림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은은 결국 문을 열어라 명을 내렸다.


“말녀야. 저 사람 세자야. 이 나라의 왕자라고. 어차피 지가 하고 싶은 대로 할걸. 비켜봐.”


세계는 문고리를 잡은 말녀의 손을 걷어내고, 문을 열고 나갔다.


며칠 만에 본 세계의 모습에 은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정말 보고 싶었소. 그간 잘 지내었소.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채 은은 세계의 얼굴을 훑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툇마루에 선 세계의 얼굴은 잔뜩 찡그려져 있었다.


“아니 왜 자꾸 저를 찾아오시는 거죠? 갑자기 들이닥쳐서 이름을 물어보지 않나. 물놀이하고 있는데 불쑥 나타나질 않나. 대체 왜 그러세요?”


세계가 불퉁한 목소리로 은을 향해 물었다.


그러나 은의 대답 대신, 오 내관의 살찬 호통이 떨어졌다.


“네 어느 안전이라고 그리 불충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냐. 당장 고개 숙이지 못할까.”


오 내관의 말에, 은을 노려보던 세계는 눈을 내리깔았다.


“조용히 하거라. 시끄럽게 하면 아니 된다 네가 그러질 않았느냐.”


은이 나직한 목소리로 오 내관을 책망하곤, 세계를 향해 말을 이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내 너를 가까이서 보고 싶구나.”


잠깐 머뭇거리던 세계는 댓돌 위의 짚신을 신었다.


“아씨......”


뒤이어 툇마루로 나온 말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세계의 옷자락을 잡았다.


“괜찮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이미 한번 죽었던 몸, 이제 무서울 거 없어.


세계가 마당으로 내려와 섰다.


“고개를 들어 보거라.”


“아까 저분이 불충하다고 하던데요. 그리 봐도 될까요?”


세계는 여전히 불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된다. 되고말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거라.”


세계가 서서히 고개를 들어 은을 바라보았다.


저 깊은 눈. 반짝이는 샛별 같은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다.


은은 마치 깊은 눈에 빨려 들어가듯 세계를 불쑥 끌어안았다.


“이거 왜 이러세요!”


은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한 세계가 그를 거칠게 밀쳐냈다.


이 새끼가 돌았나. 왜 지멋대로 안고 지랄이야.


세계에게 밀쳐진 은이 비틀거리자 얼른 오 내관이 은을 잡았다.


“이, 이게 뭣 하는 짓이냐. 감히 저하를......”


“갑자기 안으니 그렇죠. 세자 저하는 아무나 막 이렇게 안아도 되나요?”


남자가 힘도 없지. 밀쳐낸다고 저렇게나 비틀거린다고?


그러니 밤일도 제대로 못 하는구먼.


“김 내관. 당장 저 아이를 무릎 꿇게 하여라.”


오 내관이 분기탱천하여 말했다.


“아니다. 내 잘못이다.”


은이 미안해하며 세계에게 이어 말했다.


“깜짝 놀랐소? 미안하오. 내 마음이 앞서 그랬소.”


마음이 앞서 그랬다?......뭐야, 얘 나 좋아하는 거야?


대체 왜? 그 예쁜 마누라를 옆에 두고, 존못인 나를?


얘 고자라더니 눈도 삐었구만. 아주 여러모로 고자야.


세계가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은이 세계를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하얗고 작은 손. 부드럽다. 이 작은 손으로 고된 일을 하다니. 가슴이 아프구나......


어느새 은에게 잡혀있는 자신의 손을 보고 세계는 기가 찼다.


세계가 잡힌 손을 빼려 하자, 은은 더 꼭 세계의 손을 붙잡았다.


“이거 놓으세요.”


“잠깐만. 내 잠시 네 손을 잡고 있으면 아니 되겠느냐?”


은이 세계를 보며 간절히 말했다.


세계가 다시 한 번 거절의 뜻을 표하기 전에 내관들이 그를 만류했다.


“저하. 이제 그만 별채로 드시지요. 청지기 녀석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주변을 살피던 김 내관이 다급하게 말했다.


“저하. 오늘은 이쯤 하시지요. 어서 별채로 가셔야 합니다.”


오 내관 역시 은을 재우쳤다.


은은 아쉬움을 삼키며 세계의 손을 놓고 이어 말했다.


“내 다시 오마.”


“저하, 어서 이리로.”


은과 그 일행이 황급히 일각문으로 사라졌다.


“아씨도 얼른 들어오셔요.”


말녀가 서둘러 세계를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



“빈궁마마. 괜찮으시옵니까.”


조 상궁이 휘청거리는 단혜를 감싸 안았다.


“빈궁마마.”


단혜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내가 방금 무얼 본 것이란 말인가.


저하께서 여인을 안으셨다. 나 아닌 다른 여인. 그것도 계집종인 아이를......


역시 저하의 눈빛에 그 아이가 있었다.


사랑으로 들뜬 마음이, 설렘이 저하에게서 느껴졌다.


나에겐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빈궁마마. 사랑채로 드시겠나이까?”


“아니다. 별채로 돌아가자꾸나.”


아무래도 아침에 봤던 저하의 눈빛이 걸려 오라버니께 여쭈어보려던 차였다.


허나, 더는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빈궁마마. 이쪽으로 돌아가시지요.”


조 상궁의 말에도 단혜는 행랑방을 향해 나아갔다.


대체 어떤 아이기에 저하께서 그리 좋아하신단 말인가.


나와 무엇이 다르기에 저하께서 그리 연모하신단 말인가.


단혜는 행랑방 일각문 너머를 꿰뚫어 보듯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삐걱-’


그때, 일각문이 열리고 세계가 나왔다.


“아씨 어디 가시려고요.”


“찝찝해서 손 좀 씻으......”


툇마루에 선 세계와 단혜의 눈이 마주쳤다.


“빈궁마마......?”


다시 한 번 보고 팠던 단혜를 보자 세계의 동공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저 저 요사스러운 것. 어서 내려와 예를 갖추지 못할까!”


조 상궁이 감때사납게 쏘아붙였다.


조 상궁의 말에 정신을 차린 세계는 버선발로 바닥에 내려와 읍했다.


“너무 아름다우셔서 저도 모르게 바라보았나이다. 용서하시옵소서.”


사실이었다. 단혜를 바라보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세자빈으로서의 품격이 보이면서도 육감적인 색향.


그 아름다움의 묘함에 세계는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반해 버렸다.


그런 세계를 보고 단혜는 허구픈 웃음을 웃을 뿐이었다.


내가 아름답다?


제 낭군과 초야도 치르지 못하는 내가,


제 서방에게서 애정의 눈빛조차 받지 못하는 내가,


그런 내가 아름답다?


온당치 않다. 저 계집종마저 나에게 연사질을 하는구나.


세계를 쳐다보던 단혜가 할 말을 잃고는, 어정어정 협문으로 향했다.




***




고요했다. 은과 단혜 사이에는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방 안에는 등나무 꽃 향만이 그득했다.


단혜가 먼저 원앙침을 베고 누웠다.


‘후-’


은이 등촉의 불을 끄고, 단혜의 곁에 누웠다.


다시 방 안에 침묵이 내리깔렸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방금 보았던 세계의 얼굴이 떠올랐다.


잠시였지만 안았을 때 맡았던 살 내음이 생각났고,


작고 하얀 손이 기억났다.


그렇게 세계를 떠올리자, 은의 몸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은이 단혜의 몸 위로 제 몸을 겹쳤다.


단혜의 얼굴에 세계의 얼굴을 찾았고,


단혜의 목덜미에서 세계의 살 내음을 찾았다.


은은 손을 내려 단혜의 몸을 훑어 내려갔다.


은의 몸이 뜨거워졌다. 단단해졌다.


단혜는 은의 변화를 느꼈다.


단혜는 서서히 눈을 떠 자신의 입술을 탐하고 있는 은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 눈 속에는 내가 없다.......


은이 단혜의 목덜미를, 그녀의 젖가슴를 세계의 것인 양 거칠게 탐하였다.


저하가 바라는 여인은 내가 아니다.......


“저하”


단혜가 나직하게 그를 멈춰 세웠다..


단혜의 목소리에 은은 환영 속에서 깨어났다.


뜨거움이 사라진 은이 허망하게 단혜의 곁에 누웠다.


단혜는 풀어헤쳐 졌던 침의를 정제하곤, 돌아누웠다.


잠시 은의 들뜬 신음으로 가득 찼던 방안이 다시 고요해졌다.




***




“마님. 조 상궁님께서 오셨습니다.”


“어서 드시라 하여라.”


쌍순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씨 부인이 답했다.


조 상궁이 방안으로 들자, 서씨 부인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맞이해주었다.


“어서 드시게. 조 상궁.”


그녀가 자리에 앉아 서씨 부인이 몸이 달아 물음을 내놓았다.


“간밤의 합궁은 어찌 되었는가?”


“그게......합궁하시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그런......”


크게 기대했던 서씨 부인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어젯밤에도 지난번처럼 좋은 징조를 보였나이다. 이제 곧 합궁하시게 될 듯하옵니다.”


“내 그리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네. 조 상궁이 우리 빈궁마마를 잘 보살펴주시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내 부탁함세.”


“그런데 말입니다...한 가지 걸리는 게 있사옵니다.”


조 상궁이 은밀히 미타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것이 무엇인가?”


“행랑채에 있는 계집종. 그 아이를 치워야겠습니다.”


“행랑채에 있는 계집종이라......”


집 안에 있는 계집종들을 떠올리다, 세계에게 생각이 머문 서씨 부인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그 아이가 왜?”


조 상궁이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아무래도 세자 저하께서 그 아이를 심중에 품으신 듯 보였습니다.”


“무어라!!!”


놀란 서씨 부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주위를 경계하던 조 상궁 서씨 부인을 진정시켰다.


“목소리를 낮추시지요.”


“내 놀라 그만.”


“아무래도 그 아이를 이 집에서 내보내셔야겠습니다. 저하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시지요.”


“암. 그리해야지. 그래야 말구. 아니 그래도 그 아이가 눈엣가시였네. ”


서씨 부인은 울분이 괴어올라 이를 악물었다.




***




“그게 무슨 소리오! 내 지난번에 그렇게 일렀거늘.”


안형이 서씨 부인을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서씨 부인은 물러나지 않았다.


“이제 더는 못 참겠습니다. 그깟 계집종이 무에 중요합니까. 우리 빈궁마마의 앞길을 막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저는 이 집에 두지 않을 것입니다.”


“부인 말대로 이제 우리 집 계집종에 지나지 않소. 그 아이가 무슨 힘이 있어 빈궁마마의 앞길을 막는단 말이오.”


서씨 부인이 답답하다는 듯 비양한 투로 말했다.


“참으로 도학군자이십니다. 어찌 이리 세상일에는 어두우신지. 그 아이에게는 권세보다 더한 미색이 있질 않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오?”


“그 아이의 미색이 결국은 일을 냈습니다. 세자 저하께서 그 아이를 심중에 두셨다 합니다.”


“......”


안형의 미간에 깊은 내 천자가 그려졌다.


“우리 성헌이의 마음을 흔들더니 기어이 세자 저하까지 그리 만들어 버렸답니다. 것 보십시오. 내가 그리 그 아이를 내보자 하지 않았습니까. 죽은 사람과의 의리가 뭐라고 그 아이를 집에 두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단 말입니까.”


서씨 부인은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의분을 쏟아냈다.


“내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당장 그 아이를 이 집에서 내보낼 것입니다.”


서씨 부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알겠소. 부인. 부인의 뜻, 잘 알겠소. 내 저 아이의 다른 거처를 알아볼 터이니, 잠시만 말미를 주시오.”




***




“빈궁마마와 세자 저하께서는 환궁하셨나이까?”


설화가 안형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며 물었다.


“......”


“하긴, 환궁하시지 않으셨다면 여기 오시지 않으셨겠지요. 제가 미련한 질문을 드렸나이다.”


“너는 정녕 모르는 일이 없구나. 빈궁마마와 세자 저하께서 우리 집에 거둥하신 일도, 환궁하신 일도 이곳에 앉아 모두 알고 있구나.”


안형이 채워진 술잔을 들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대감께서 지금 몹시 고심 중이시라는 것도 알고 있나이다.”


“그러하다. 내 마음이 萬端愁心(만단수심)으로 가득 찼구나.”


“무에 그리 괴로우신 겝니까?”


설화가 다시 빈 잔에 술을 채우며 물었다.


“......”


“혹시, 송원 어르신의 여식 일입니까?”


“자네가 그걸 어찌 아는가.”


안형이 놀라 물었다.


“대감께옵서 방금 그러시질 않으셨습니까. 제가 이 방에 앉아서 모르는 것이 없다고.”


“혹 영상대감께옵서도 그 아이에 대해 알고 계시는가?”


“모르시옵니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저는 비록 천한 기생이지만, 송원 어르신의 인품과 학식을 연모하였나이다. 헌데,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옵니까?”


“저하께서 그 아이에게 연심을 품으신 듯하네.”


“어찌 그런......”


“하여 그 아이를 더는 우리 집에 둘 수 없을 듯한데. 그 아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안형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술을 털어 넣었다.


설화는 안형의 술잔에 술을 채워 넣으며 말했다.


“허면, 이곳으로 데려다 놓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안형이 체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이곳은 영상 대감께서 자주 찾는 곳이 아닌가. 혹여 그 아이가 익태의 여식임을 아시는 날에는 어떤 해코지를 하실지 모르는 일이네.”


설화는 세운 무릎 위에 손을 가지런히 놓고, 옹골차게 말했다.


“본디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요. 아마 이곳이 그 아이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 될 것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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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경고 19.03.30 74 0 15쪽
24 23화 연결고리 19.03.26 70 0 17쪽
23 22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19.03.19 71 0 15쪽
22 21화 백단향에 묻은 비밀 19.03.11 73 0 13쪽
21 20화 너는 대체 누구냐!! 19.03.07 79 0 14쪽
20 19화 마지막 행하(行下) 19.02.28 77 0 16쪽
19 18화 그를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19.02.24 75 0 14쪽
18 17화 위험한 적일수록 가까이에 두는 법 19.02.20 97 0 15쪽
» 16화 엇갈린 마음 19.02.17 111 0 17쪽
16 15화 이 세계에 있어야 할 이유2 19.02.15 93 0 15쪽
15 14화 이 세계에 있어야 할 이유 19.02.15 97 0 15쪽
14 13화 납득하고 포기할 수 있는 방법 19.02.11 89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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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벚꽃과 매화, 살구꽃의 구별 19.02.07 97 0 14쪽
11 10화 곡우(穀雨) 19.02.06 93 0 15쪽
10 9화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오? 19.02.02 92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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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화 그러는 그쪽은 누구세요? 19.01.31 98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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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화 내가 있던 자리 19.01.29 104 0 16쪽
5 4화 합궁의 절차 19.01.28 164 1 17쪽
4 3화 이 세계의 살아가는 방식 19.01.27 117 1 18쪽
3 2화 나는 누구고, 어디에 있는 거지? 19.01.26 132 0 16쪽
2 1화 사팅장(史㯑障) 19.01.25 231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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