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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y 님의 서재입니다.

남쪽 하늘에 뜨는 별, 天南星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퓨전

HaLy
작품등록일 :
2019.01.24 00:53
최근연재일 :
2021.04.1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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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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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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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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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2화 나는 누구고, 어디에 있는 거지?

DUMMY

“그거 들으셨습니까?”


“무엇을요?”


새앙머리를 한 생각시 둘이 계조당 담벼락 아래서 속닥이고 있다.


먼저 말을 꺼낸 생각시 하나가 고개를 빼 주위를 살피곤,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내일 밤, 세자저하와 빈궁마노라가 합궁을 하신대요.”


“그리하면 무얼 합니까. 합궁이...합궁이 아니질 않습니까.”


“글쎄, 이번엔 다를 거랍니다.”


“뭐가요? 2년 동안 치르지 못한 초야가 내일은 치러진답니까?”


“관상감 명과학교수께서 내일이 두 분에게 3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길성 고조(吉星高照)의 날이라고 하셨답니다. 특히 복성(福星)이 가장 빛을 발하는 날이라 내일은 무조건 좋은 씨를 잉태하실 거라고요.”


“에이, 난 또 뭐라고.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요. 제대로 입태(入胎)를 못 이루는데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래서 중전마마께서 이번엔...”


“이번엔 뭐요?”


궁금증에 몸이 달은 생각시가 뒤엣말을 재촉했다. 말을 꺼낸 다른 생각시가 목소리를 한층 더 낮추고 속삭였다.


“아 글쎄...마경(馬莖)을 준비하셨답니다.”


“마경이라면 말의 거시기가 아닙니까? 세상에...녹편(鹿鞭)도 모자라 마경을요? 아이구...망측해라.”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세자저하의 음위(陰痿)를 치료하시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계시다 합니다.”


“걔서 뭣들 하는 것이냐!!!!”


속닥이던 생각시 둘의 머리 위로 서릿발 같은 지청구가 쏟아졌다. 청색 치마에 녹색 당의를 입은 채 벼린 눈빛으로 생각시 둘을 노려보고 있는 것은 빈궁전의 조 상궁이었다.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게야. 정녕 치도곤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생각시 둘은 감때사나운 조 상궁의 기세에 바닥에 엎드려 바들바들 떨 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만두어라.”


그때 조 상궁의 뒤에서 단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빈궁마마, 입이 새털처럼 가벼운 이 천한 것들은 그냥 두면 아니 되질 않겠사옵니까. 궁문을....”


“좋은 일을 앞두고 있다. 괜한 소란이 일어나서 좋을 게 무에 있을까.”


조 상궁의 말을 다시 단혜가 막아섰다.


“......”


“조 상궁, 날이 참 좋구나. 낙선재로 가자꾸나. 매화꽃이 참으로 곱더구나. 답청(踏靑)을 하자꾸나.”


뒤돌아 낙선재로 향하는 단혜의 얼굴엔 왠지 모를 처연함이 느껴졌다.




***




조강이 끝내고 자선당으로 돌아온 은은 서안을 앞에 두고 무언가 깊게 생각하고 있다.


그의 상념을 깬 것은 오 내관이었다.


“저하, 무얼 그리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까 서연에서 배웠던 논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저하, 그리 공부가 좋으십니까?”


“너는 공부가 싫으냐?”


“네, 저는 싫사옵니다.”


“다행이구나. 공부를 좋아하는 내가 세자고, 공부를 싫어하는 네가 내관이니.”


“그러하옵니다. 다행이옵니다.”


세자의 농에 오 내관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무엇을 배우셨나이까?”


“子夏問曰(자하문왈), 巧笑倩兮(교소천혜), 美目盼兮(미목반혜), 素以爲絢兮(소이위현혜) 何謂也(하위야).”


“교소천혜 미목반혜라...고운 웃음에 예쁜 보조개, 아름다운 눈에 반짝이는 눈망울. 미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그래서 그리 생각이 깊으셨던 겁니까?”


이번엔 오 내관이 빙그레 웃으며 농을 건넸다.


“역시 너는 공부를 싫어하는 게 맞구나. 그게 다가 아니다. 子曰(자왈), 繪事後素(회사후소). 曰禮後乎(왈예후호). 子曰(자왈), 起予者商也(기여자상야). 始可與言詩已矣(시여언시이의).”


“그것이 무슨 뜻이옵니까? 저는 정녕 모르겠사옵니다.”


“그 아름다움은 본질보다 뒤에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도 바탕이 완성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이 된다는 뜻이지.”


“깊게 새기겠나이다.”


“......”


“그런데 저하, 아무리 공부가 좋으셔도 수라는 드셔야 하옵니다, 이제 그만 서안을 물리고 수라상을 들이겠습니다.”


오 내관이 눈짓을 하자 문 앞에서 서 있던 상경(尙更)내관이 은의 앞에 놓여있던 서안을 들고 사뿐사뿐 뒤 걸어 나갔다.


잠시 후, 세자의 아침 수라상이 들어왔다.


은은 초조반으로 먹은 타락죽 덕분에 시장하지 않았지만, 상을 물리라 하면 오 내관과의 입씨름이 길어질 듯해 간단히 한 술 뜨기로 했다.


조금만 먹고 다시 서안을 들이라 명하려 했는데, 상 위에 올라온 찬들이 눈에 설다.


“이것이 무엇이더냐?”


“그저 흔하디흔한 육전이옵니다.”


“그저 흔하디흔한 육전이 아닌 것 같아 하문하는 것이다.”


“......”


“정녕 육전이 맞느냐?”


“......”


“오 내관 네가 대답하지 않겠다면, 설리(薛里) 네가 대답해 보거라. 이게 육전이 맞느냐?”


수라상 곁에서 세자의 음식 시중을 들고 있던 설리에게로 은의 무거운 하문이 떨어졌다.


“......”


“설리 네놈도 입을 열지 않겠다? 국본인 나에게 무엇인지 말할 수도 없는 것을 하저토록 한 것은 역모죄로 다스려도 마땅할 터.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묻겠다. 이것이 무엇이더냐? ”


은의 궁문에 설리는 대경실색하며 겨우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육전은 육전이온데...마...마, 경으로 만든 육전이옵니다.”


“마경?”


되묻는 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보나 마나 이걸 올리라 명한 건 어마마마일 것이다. 이 역시 양揚의 기운을 강하게 음식이겠지. 어찌 보면 이 모든 것은 나의 불효다. 내가 온전치 못해 합궁을 하지 못해서고, 국본으로서 후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어마마마가 이런 흉측한 것까지 생각해낸 것이다.


“...저하...”


오 내관이 나지막이 은을 불렀다.


아마 오 내관도 나의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늘 장난스럽던 오 내관이 저리 날 부르는 것을 보면...


“상을 물리라.”


은은 마음을 심연으로 가라앉혔다.




***




서 씨 부인은 방금 글월 비자가 주고 간 봉서를 내려다보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벌써 5년째다. 겨우 12살이던 단혜를 궁으로 떠나보내 서 씨 부인은 하루도 편히 지내본 적이 없었다. 어린 단혜가 깊고 깊은 구중궁궐 안에서 어찌 보낼까 눈물로 밤을 새웠고, 혹여 궁중예법에 어긋난 행동으로 중전마마의 미움이라도 받을까 걱정으로 밤을 새웠다.


하지만 어린 단혜는 어려운 궁 생활에 잘 적응을 했다. 2년 전 드디어 단혜가 첫 월경을 하고, 초야를 보내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단혜가 국본을 낳게 된다면, 그럼 이 마음의 짐이 조금은 내려질 것 같은데, 그마저 쉽지 않았다.


겉은 멀쩡한 세자가 왜 단혜와는 음양의 조화를 못 이루는 것인가. 이러다 혹여 후궁이 들어와 후사를 낳게 되는 것이 아닐까 서 씨 부인의 불안과 조급증은 날로 더 커졌다. 살얼음판 같은 나날이었다.


이런 와중에 대감은 얼마 전 대역죄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된 전 대제학 대감의 딸내미까지 집안으로 들였다. 이러다 상감마마의 눈 밖에 나는 것이 아닌지, 그것이 우리 단혜에게 나쁜 영향이 미치진 않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대감은 너무도 무감했다. 빈궁마마 생각을 했다면 절대 그리해선 안됐다.


혹시 이 일이 궁에 전해진 것일까? 그리하여 빈궁마마께서 노여움을 타신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서 씨 부인은 서한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곤 다급하게 밖을 향해 외쳤다.


“쌍순댁! 쌍순댁 걔 없느냐?”


“예, 마님.”


안마당에서 비질을 하던 쌍순댁이 서 씨 부인의 방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내일이 드디어 합궁 일이라는 구나. 그것도 어마어마한 기운이 들어차 이번에는 반드시 합일을 이룰 것이라고 하시는구나. 내 가슴이 뛰어 진정이 되질 않는다.”


“얼른 시원한 물이라도 대령할 깝쇼?”


“아니다. 것보다 네가 전에 말한 삼각산 도선사 어귀에 있다는 그 알터바위. 정말 용한 것이 맞느냐?”


“부침바위 말씀이십니까요? 아휴 용하다마다요. 윤종가 청포전 마누라도 거기 다녀와서 아들을 봤고, 이조참판 며느리도, 심지어 박 의원네 조카며느리도 그 바위를 만지고 치성을 드린 후에 죄다 아들을 낳았다고 했습니다요.”


“그렇단 말이지. 아무래도 내가 직접 그 알터바위를 다녀와야겠다. 방에 앉아만 있으려니 속이 달아 못 견디겠구나. 어서 칠복이에게 일러 가마를 준비시켜라.”


“마님, 지금 칠복이가 없는 댑쇼. 성헌 나리께서 새벽부터 데리고 출타하셨습니다요.”


“성헌이는 이 중요한 때에 어딜 간 게야!”


서 씨 부인의 역성에, 불난 집에 기름 붓듯 쌍순댁이 말을 덧붙였다.


“며칠 전에 행랑채에 들어온 세계 아씨도 같이 가시던걸요.”


“아씨는 누가 아씨라는 게야? 직첩이 회수되었으면 그에 맞게 살아야지. 아씨는 무슨...”


“안 그래도 마님. 저희들도 그게 좀 아리송했습니다요. 그 세계라는 아이를 어찌해야 할지...”


쌍순댁이 눈알을 굴리며 은근히 게정을 드러냈다


“그 아이는 노비다. 우리 집 노비로 온 아이이니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 앞으로 쌍순댁이 잘 가르쳐 일을 시켜라.”


“네 알겠습니다. 마님. 그럼 가마는 행랑아범더러 얼른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요.”


“......”


쌍순댁에 말에 대꾸도 없이 서 씨 부인은 못마땅함과 불안함이 뒤섞인 채로 보료 위를 검지로 톡톡 쳐댔다. 쌍순댁은 서 씨 부인의 눈치를 살핀 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다. 지금은 보는 눈이 많을 듯싶구나. 내일 파루가 치면 바로 출발할 터이니, 차질 없이 가마를 준비하도록 하여라.”


“네 알겠습니다요.”




***




“우욱...우욱...”


“아씨 괜찮으셔요?”


가마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말녀가 걱정스러운 듯 세계를 향해 물었다. 그러나 세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울렁대는 가마 탓에 머리는 어지러웠고, 속에서는 구역질이 올라왔다.


“잠, 잠깐만요.”


멀미로 괴로워하던 세계가 어렵사리 겨우 입을 열었다.


산길을 가던 가마꾼들이 멈춰 섰다. 가마꾼이 가마를 내리자 세계가 황급히 밖으로 나와 나무 뒤에 쪼그리고 앉았다.


“우에엑.”


“아씨 괜찮으셔요?”


말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세계의 등을 도닥였다.


“안 괜찮아. 죽겠어. 차라리 걷고 말지. 가마가 더...우에엑...”


“괜찮습니까?”


말에서 내린 성헌이 옹송그린 채 구역질을 하고 있는 세계를 안쓰럽게 보며 물었다.


“......”


“이대로 계속 갈 수 있겠습니까? 아직 60리나 더 가야 하는데...”


“갈 거예요. 꼭 갈 거예요!”


세계는 입을 사리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라리 걷어야 겠다 생각하고 앞을 보니, 성헌이 타고 온 말이 보였다.


“도저히 가마는 못 타겠어요. 차라리 저, 말을 탈래요.”


“말을 탈 줄 아십니까?”


그걸 왜 못 타. 내가 사극에서 왕 역할도 했던 사람이야. 내 승마 폼에 여러 팬들이 넘어갔었지.


“안 되셔요. 아씨, 지금 말 못 타셔요.”


세계가 말에 오르려 하자, 이번엔 말녀가 막아섰다.


“왜? 나 말 탈 수 있어!”


말녀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게 아니라...지금 말군(襪裙)이 없는데 어찌 말을 타시려고요?”


“말군?”


“아이고, 아가씨 조용히 말씀하셔요...말군이요...말 탈 때 입는 속바지 말입니다. 말군 없이 말을 타시면 보기 흉하셔요.”


“에이 난 또 뭐라고.”


세계는 말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헌의 말 위로 능숙하게 올라탔다. 그리곤 뿌듯한 얼굴로 성헌에게 말했다.


“어때요? 잘 타죠?”


“정말 타신 적이 있나 봅니다. 수려하십니다.”


“거봐요. 타봤다니까요. 이랴-”


세계는 고삐를 쥐고 익숙하게 왼발로 박차를 가했다.


“아씨! 말군도 없이, 너울도 없이 그리 타시면 안 되셔요! 얼른 내려오셔요!”


세계가 탄 말이 달려가자, 말녀가 당황하며 뒤를 쫓았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면 성헌은 칠복에게 명을 내렸다.


“칠복아, 말 한 필이 더 필요하겠구나.”


“네, 나리.”



***



성헌과 세계가 말을 세우고 언덕 아래를 내려다봤다. 오래된 기와집과 초가집이 뒤섞인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저깁니다. 저기가 바로 사 씨 집성촌이지요.”


“얼른 내려가죠.”


사 팀장을 찾을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 세계는 성헌을 재촉했다. 그러나 성헌은 멈춰선 채로 말을 이었다.


“세계 낭자가 나서면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찾는 것은 내가 할 터이니 말녀와 예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가마멀미 참고, 말녀 잔소리 들어가며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 있으라고?


“그럴 순 없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릴 거면 애초에 따라오지도 않았습니다.”


세계의 단호한 대답에 성헌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그럼 제 누이인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계시는 겁니다. 찾아 묻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성헌는 세계에게 굳은 다짐을 받은 후에야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



“여기 계시오?”


칠복이 낡은 대문을 두드리며 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대문이 열리고, 젊은 청년 하나가 나왔다.


세계는 혹시 사 팀장인가 싶어 청년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역시 그는 아니었다.


젊은 청년은 그런 세계의 시선을 경계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세계를 대신해 성헌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좀 찾고 있소. 내 누이를 구해준 인데, 꼭 좀 사례를 하고 싶어서. 사팅장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들었는데 혹시 알고 있소?”


“저는 잘 모르겠고, 일단 들어오시죠. 할아버님께 여쭤보면 아실 수도 있으니.”


“칠복이와 말녀는 예서 기다리거라. ”


“네, 나리”



*



“누구?”


“사팅장이라는 자를 알고 계십니까?”


“누구?”


“사팅장을 아시냐 여쭈어 보았습니다.”


“누구?”


몇 번이고 되묻는 사씨 영감을 대신에 청년에 답했다.


“할아버지님께서 귀가 많이 어두우십니다.”


“사.팀.장.이요!”


보다 못한 세계가 또박또박 큰 소리로 외쳤다.


“아아- 사팅장”


뭔갈 아는 듯한 사씨 영감의 말투에 표정이 환해진 세계는 성헌과의 굳은 약속을 깨고 자발없이 다급히 물었다.


“아세요? 그 사람 지금 어디 있나요?”


“몰라. 난 모르는 사람이야.”


이 영감탱이가 누굴 놀리나...


세계는 불끈 찜부럭이 올라왔지만, 성헌을 보며 꾹 눌러 삼켰다.


“혹시, 사팅장이라는 자를 알만한 분은 없을까요?”


“글쎄...족보를 보면 알려나? 우리 집안이 지금은 좀 이래 보여도 유서가 깊은 집안이오. 위로 정승을 지낸 조상님도 계시고, 또 저희 증조 할아버님은 여기 현감도 지내셨고...”


사씨 영감의 말이 길어지자 세계는 겨우 눌러둔 짜증이 솟구쳤다. 결국 사씨 영감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래서 그 족보는 어디 있나요? 제가 꼭 그 사팅장이라는 사람을 찾아야 하거든요.”


“성식아! 가서 족보 좀 챙겨 오너라.”


사씨 영감의 말에 젊은 청년이 방을 나가 곱게 비단 보자기에 싸인 족보를 들고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보자기를 열자, 사씨 집안의 오래된 족보가 드러났다.


사씨 영감은 족보를 한 장 한 장 넘겨보기 시작했다.


마음이 달은 세계가 그 옆에 붙어 함께 족보를 보기 시작했다.


“....사진상. 사진수. 사진택....”


사씨 영감은 손가락으로 이름을 하나씩 짚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어르신 저희가 찾는 사람은 사팅장이란 자입니다. ”


성헌이 한 번 더 ‘사팅장’이란 이름을 말했다.


“그래 지금 찾고 있잖소. 사팅장...사팅장...”


한참을 족보를 드려다 보던 사씨 영감이 족보를 덮으며 말했다.


“없어. 그런 자.”


생각해보면 사팅장이란 것은 그의 이름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고, 그 기대는 세계가 가진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럼 혹시 이런 사람을 알게 되거든 연락 좀 주시겠습니까?”


실망한 세계를 대신해 성헌은 품에서 사팅장의 용모파기를 꺼내 건넸다.


“알겠소. 그리하리다.”


이제 희망이 사라졌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막막했다.


내가 진짜 미친 것일까? 나는 누구고,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세계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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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경고 19.03.30 74 0 15쪽
24 23화 연결고리 19.03.26 70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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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화 위험한 적일수록 가까이에 두는 법 19.02.20 9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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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이 세계에 있어야 할 이유 19.02.15 9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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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화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오? 19.02.02 92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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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화 개짐도둑 19.01.30 127 1 20쪽
6 5화 내가 있던 자리 19.01.29 104 0 16쪽
5 4화 합궁의 절차 19.01.28 164 1 17쪽
4 3화 이 세계의 살아가는 방식 19.01.27 117 1 18쪽
» 2화 나는 누구고, 어디에 있는 거지? 19.01.26 132 0 16쪽
2 1화 사팅장(史㯑障) 19.01.25 231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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