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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베클리님의 서재입니다.

슬기로운 색마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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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베클리
작품등록일 :
2022.05.16 23:47
최근연재일 :
2022.05.22 19:42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465
추천수 :
37
글자수 :
51,459

작성
22.05.20 12:12
조회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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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9쪽

함정

DUMMY

9.


먼저 이 넓은 흥왕사 어디에서 예징을 만날 것인가부터 문제였다. 예징은 답장에서 흥왕사를 거론했을 뿐 장소를 특정하지 않았다. 헌데 여기 와보니 절의 규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전각만 해도 수십 채가 넘었고 중들의 숙소인 승원이나, 참배객의 숙소인 객원은 길고 긴 행랑이 몇 개나 줄지어 서있었다.


일단 아무리 넓더라도 번잡한 흥왕사다. 밀회 가능 장소는 그런 번잡한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니 먼저 그런 장소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외진 해우소나 광, 허름한 암자 같은 곳은 아닐 것이다. 상대는 남양군왕비다. 그런 곳에 출입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사람인 것이다.


고민하며 흥왕사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던 사마수가 갑자기 자리에 멈춰섰다. 바닥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마수는 세 걸음 더 나아가 발로 밟고 섰다. 그리고 발에 힘을 준 다음 허리를 숙여 신발끈을 고쳤다. 신발끈을 다시 맨 사마수는 천천히 걸어 전각을 돌아갔다. 거기 댓돌에 앉은 사마수는 손을 들어 코를 닦고 손바닥을 보았다.


빗방울 모양의 초록색 천 조각. 아주 작은 조각이지만 이 천 조각이 어제 느티나무에 달려있던 천과 같은 천임이 분명했다. 사마수는 자신이 밟기 전 천이 놓여있던 모습을 되새겼다. 분명 빗방울의 뾰족한 면은 여래전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마수는 설렁설렁 걸어 여래전 쪽으로 향했다. 또 다시 눈에 밟히는 초록색 빗방울. 사마수가 초록색 빗방울을 따라 간 곳은 여래전이 아닌 미륵전이었다. 미륵전과 여래전은 흥왕사 안에서도 또 다시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더러 금의위 무사들이 눈에 띄였으나 사마수는 어렵지 않게 담을 타 넘을 수 있었다. 담 안에는 두 개의 전각이 있는데 두 전각 모두 창호지문이 아닌 나무문으로 사방이 밀폐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사마수는 담장에 들러붙어 은신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건 함정이야.


밀회 장소를 가리키는 빗방울. 하이런 선생이 수백 번 이야기했다. 색마를 안내하는 표식이 있으면 그건 무조건 함정이라고. 여자가 그렇게까지 친절을 베풀 리도 없고, 설령 그러고 싶어도 그럴 여유와 능력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했다.


그런데 함정인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사마수는 지금 왜 여기 와 있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그만큼 그제 예징의 방에서 느꼈던 느낌은 강렬했던 것이다. 이런 게 경국지색일까. 요즘 말로 하면 뭐 팜므파탈 정도될 텐데 사마수가 그런 말을 알 수는 없었다.


그리로 가면 파멸이 분명한 것을 알면서도 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매혹. 사마수는 색마가 반드시 피해야 할 유혹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전각 중에 어디일까? 확인하고 싶은 열망을 꾹 눌러 참으며 밀몽은 끈질기게 기다렸다. 빗방울이 어설픈 함정이 아니라면 반드시 저 중에 어떤 전각이라는 표식이 나타날 것이다. 아무런 신호가 보여지지 않는다면 아쉽지만 오늘은 그냥 돌아가야 할 것이다.


뭔가 신호가 나타나길 기다리던 밀몽이 기다리다 지쳐 마침내 포기하려 할 무렵 그 신호가 나타났다. 그 신호는 너무나 명백해서 도무지 혼동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담의 문이 열리고 예징이 걸어 들어왔던 것이다.


예징의 뒤에는 법사와 시녀, 금의위 무사 셋이 따라왔다. 예징은 아쉽게도 여전히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밀몽은 담에 붙어 숨을 죽였다.


법사가 왼쪽 전각의 문을 열자 예징이 돌아서 인사를 했다. 그러자 법사와 모두가 그에 답례로 인사를 했다. 예징이 그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시녀와 금의위 무사들은 문밖으로 나가고 담장 안에는 법사 홀로 남았다.


전각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예징이 안에서 문을 잠그는 것이다. 법사는 전각 앞 댓돌에 앉더니 들고 있던 책을 폈다. 그리고 목탁을 치며 염불을 시작했다.


수리수리마수리사바하....


어떻게 저 중 몰래 전각으로 들어가지? 밀몽은 머리를 굴렸으나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공을 펼쳐 함부로 해치우려다가 잘못하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가능하면 무공을 쓰는 것은 피해야했다. 밀몽은 절대 자신의 무공수준을 과대평가하지 않았다.


피 같은 시간이 밀몽의 가슴을 쥐어짜며 지나갔다. 예징은 저 안에서 옷을 벗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가올 환락을 기대하며 먼저 사람인(人)자 가운데 부분에 예열을 지피고 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 저리로 들어갈 방법을 생각해야 했는데 생각은 자꾸 그쪽으로만 흘렀다.


그때 갑자기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밀몽처럼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가 아니면 듣지 못했을 수도 있는 미약한 소리였다. 하나 분명 문이 열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밀몽의 눈에 들어오는 전각의 문들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법사는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밀몽은 은신술을 발휘하여 담장에 붙어 담장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담장을 반 정도 돌자 특이 사항이 눈에 띄였다. 왼쪽 전각이 아닌 오른쪽 전각. 그 전각의 뒷면 위쪽 문이 위로 들리고 그 밑으로 열린 공간이 보였다.


자세히 보자 두 전각 모두 아래는 보통 크기의 나무문, 그리고 그 위에는 그 삼분지 일 크기의 나무문으로 덮여 있는데 그중 오른쪽 전각 윗문이 하나 열려 있는 것이다. 아까 들은 그 소리는 저 문이 열리는 소리로 여겨졌다.


밀몽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왼쪽 전각이 아니고 오른쪽 전각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부딪혀 보는 거다. 밀몽은 주변을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경신술로 전각의 문에 바짝 붙었다. 머리 위로 공간이 열려 있었다. 밀몽은 살짝 뛰어 열린 공간의 옆으로 붙었다. 그리고 후각에 집중해서 안에서 흘러나오는 공기를 음미했다.


훅하고 예징의 향기가 느껴졌다.


왜 오른쪽 전각에서 예징의 향기가? 이게 마술사의 마술이 아니라면 두 전각은 지하 비밀통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야했다. 예징은 교묘하게도 그 비밀통로를 이용하여 밀회장소의 보안성을 높인 것이다. 아무도 비어 있는 오른쪽 전각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 의심할 수 없다. 이건 매우 주도면밀한 안전보장 수법이다.


그런 면에서 이게 진짜 예징의 초대라면 예징은 이런 일을 많이 해본 사람이었다. 예징이 남자들을 꼬셔 재미를 보는데 능한 색녀일까? 밀몽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러면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밀몽은 결론을 내렸다. 이건 백프로 함정이었다. 색마를 잡기 위한 예징의 한 수.


멍청하긴. 밀몽은 예징을 비웃었다. 이런 수법에는 하급 색마들이나 걸려들 것이다. 밀몽을 비롯한 마교학원 우등졸업 수준의 색마가 절대 걸려들 리 없는 뻔한 수법인 것이다. 이 열린 문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들어가면 바로 칼이 목에 닿을 것이다. 예징의 수법은 밀몽에게는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에서 물러나는 것이 맞았다. 밀몽은 결론을 내리고 색마의 안분지족 신조에 따라 철수를 결심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열린 문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밀몽이 옳았다. 몸을 집어넣는 순간 칼이 목에 닿았다.


그러나 그 다음 수는 밀몽의 예상과 달리 두건을 씌우고 점혈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밀몽은 당연한 수순에 따라 정신을 잃었다.



얼굴을 덮치는 차가운 느낌에 밀몽은 놀라 깨어났다. 전부 축축한 게 물을 한 바가지 부운 것이 확실했다. 머리에는 두건이 씌워져 있었고 두 팔과 두 발은 모두 묶여 있었다.


밀몽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입과 코 속으로 들어왔던 물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을 보자 어두운 것이 어떤 밀실이나 동굴 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청한 놈들. 나 동창 특수임무대 제4조 사마수를 이렇게 감금하면 동창이 바로 수사에 나서 검거할 텐데. 그런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이렇게 감금해 놓는 웃기는 놈들이었다.


윽.


목 옆 결분혈에 날카로운 것이 파고들었다. 조금만 더 들어오면 신경이 마비되고 반신불수가 될 우려가 있는 혈도였다.


"너는 누구냐?"


늙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예징은 어디 가고 늙은 남자가? 은근 이렇게 묶어 놓고 예징이 농락해주기를 기대했던 밀몽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바보 같은 밀몽. 모든 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예견하고서도 화톳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이 꼴이 되었다.


원래 밀몽은 비겁한 색마였다. 조금이라도 육신에 위협을 받으면 바로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믿는 색마였기에 밀몽은 제대로 불었다.


"나는 동창 특수임무대 제4조 사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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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동지를 죽여라 22.05.22 72 2 10쪽
11 화양궁 마마 22.05.22 99 2 9쪽
10 거짓말 탐지기 22.05.20 74 3 9쪽
» 함정 +1 22.05.20 72 2 9쪽
8 흥왕사 22.05.19 75 1 9쪽
7 예징 22.05.19 109 2 10쪽
6 핵심좌표의 향기 22.05.18 103 2 10쪽
5 자현 공주 22.05.18 132 5 10쪽
4 동창 안가 22.05.17 114 4 11쪽
3 연애편지 색마 22.05.17 144 5 9쪽
2 1 득점 +1 22.05.16 181 4 10쪽
1 밀몽 22.05.16 291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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