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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량 님의 서재입니다.

오! 작가님 잘 하시는데요?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윤한량
작품등록일 :
2021.12.15 12:11
최근연재일 :
2021.12.27 12:2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825
추천수 :
182
글자수 :
82,492

작성
21.12.2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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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8화 - 누구요?

DUMMY

스튜디오 촬영을 끝낸 느지막한 오후.

STV 본사 근처 고깃집에서 회식을 빙자한 술자리가 열렸다.


“오···. 막내 작가님 생각보다 잘 마시는데요?”


이게 지금 몇 잔째더라?

재차 소주를 털어 넣는 날 보고 씩 웃는 김찬수.

내가 잔을 비우길 기다렸다는 듯.

그가 빠르게 술병을 쥐고 내 앞으로 내밀자.

내 맞은편에 앉아 빈 잔을 내려놓던 조혁수가 쓰게 웃는다.


“작가님 못 마실 거 같으면 억지로 마시지 마요.”


걱정스레 말하는 조혁수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아직 괜찮습니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살면서 술이 약하다는 소린 들어본 적 없는 나다.

이제 겨우 반병 정도 마신 거 같은데···.

이 정도 가지곤 끄떡없다.


“못 마실 거 같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내 대답이 맘에 들었던 건지.

김찬수가 잔을 채워주며 흡족하게 웃는다.


“이야···. 우리 막내 작가님 이렇게 술 잘 마시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마시자고 할걸.”


그러고는 김찬수가 재차 잔을 권한다.


“그럼 짠 한번 하죠?”


나 김찬수 거기에 조혁수까지.

누구 하나 빼지 않고 잔을 부딪친다.

그 모습을 질림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는 작가 팀에게 슬쩍 손짓하곤.

또 한 번 소주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크···.”


확실히 몸이 젊어져서 그런가?

예전에는 인생처럼 쓰던 술이 지금은 달게 넘어간다.

그렇게 비워버린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 두고.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


···아 참.

이럴 때가 아니지.

재빨리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빈손을 조혁수 쪽으로 뻗었다.


“이제 제가 굽겠습니다. 선배님도 좀 드시죠.”

“괜찮아요. 이게 뭐 어려운 거라고.”


조혁수가 집개로 내 손을 밀어낸다.


“원래 이런 건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하는 거예요. 밥 먹을 때까지 막내가 잡일 하면 쓰나?”

“저 진짜 괜찮습니다 선배님. 선배님도 좀 편하게 드셔야죠.”

“아 글쎄, 나도 괜찮다니까요.”


그가 고기를 알맞게 뒤집으며 예의 그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는다.


“맨날 스태프들이 고생한 거 받아먹기만 하는데, 이런 거라도 해야죠. 연예인은 고기 구우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그래도···.”


이게 지금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앉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자.

김찬수가 내 소매를 잡아끈다.


“괜찮으니까 그냥 먹어요. 나도 진작에 포기했으니까.”


그렇게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조혁수가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집게로 집어, 내 앞접시에 올려놓는다.


“잘 익었네. 이것도 먹어봐요.”

“아···.”


이게 지금 맞나?

고민하던 것도 잠시.

결국, 마지못해 엉덩이를 붙였다.


“한창 많이 먹을 나이인데 부지런히 먹어요.”

“···예.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일은 어때요? 할 만해요?”


화제를 돌리는 조혁수를 향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작가 선배님들도 그렇고, PD님들도 그렇고. 많이들 가르쳐 주셔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요?”


어느새 집게를 내려놓은 그가.

빈 잔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주억인다.


“지금 이 팀에서 많이 배워둬요. 솔직히 이만한 팀 흔치 않거든요.”

“네. 저도 그런 거 같습니다.”

“혹시라도 일하면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소주 한 잔 정도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으니까.”


조금의 가식도 느껴지지 않는 그 얼굴을 바라보던 그때.

김찬수가 장난스레 추임새를 넣는다.


“예의상 하는 소리 아니니까, 다음에는 비싼 거로 사달라고 해요. 기왕이면 양주 같은 거로.”

“어? 내가 소주라고 했잖아요 소주.”

“에이···. 조 배우님 클라스가 있지, 어떻게 매번 소주만 마십니까?”

“소주가 뭐 어때서요?”


김찬수와 티격태격하는 조혁수를 지그시 바라봤다.

참···.

예나 지금이나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다.

이 정도 경력과 연차를 지녔으면, 적당히 거만해질 법도 하건만.

성격 둥글둥글하니 모난 데가 없고.

나 같은 막내까지 챙길 만큼 살갑게 군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정말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은 십 년 뒤에도 떵떵거리며 잘 나가건만.

이런 진국인 양반한테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사고.

한 걸음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곳이 연예계라지만.

지금도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 알겠어요! 오늘은 내가 얻어먹었으니까, 다음번 회식 때는 내가 쏠게요. 됐죠?”

“어? 진짜? 다들 들었죠? 다음에는 조 배우님이 쏘신답니다!”

“와!”


김찬수의 외침에 조용하던 주변이 시끌시끌해진다.

그런 주변의 반응을 난처하게 바라보는 조혁수.

그런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용히 소주를 털어 넣었다.


#


회식을 마친 그다음 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런데 이런 나를 보고.

이영아가 걱정스레 묻는다.


“성현 씨 속은 괜찮아요?”


한 주간 어지럽혀놓은 책상을 정리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예. 멀쩡합니다.”

“진짜? 어제 얼마나 마셨는지는 기억은 나요?”

“어제 아마···.”


얼마나 마셨더라?

빈 병이 대충 아홉 개 정도였으니까···.


“한 세 병정도 마셨을걸요?”

“와···.”


그녀가 감탄사인지 탄식인지 알 수 없는 소릴 내뱉곤.

질렸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다.


“아직 젊어서 그런가···. 내가 살다 살다 그 두 사람이랑 대작하는 사람을 다 보네.”

“집안 내력이 원래 좀 그래서요.”


원체 우리 집안 식구들이 한 술 하거든.

그건 그렇고.


“오늘은 웬일로 커피 안 드십니까?”


평소에는 아이스 커피를 달고 있던 이영아의 손이 오늘은 웬일로 비어있다.


“아, 조금 있다 퇴근하면 들어가서 바로 잘 건데, 커피 마시긴 좀 그래서요.”

“하긴 그렇네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출근하긴 했다만, 오늘이 방송일인 만큼 크게 할 일은 없다.

PD들이 작업 중인 최종 편집본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다음 주 진행할 아이템을 점검 한다던가.

예정된 인터뷰의 스케줄을 확인하는 정도?

그것만 하고 나면 우리 제작 2팀의 일정은 끝.

남은 주말 이틀간은 휴식을 취하면 된다.


“그러는 성현 씨는 퇴근하고 뭐 할 거예요? 혹시 데이트?”


애인도 없는데 데이트는 무슨.

눈을 가늘게 뜬 이영아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히 약속은 없고, 주말 동안 부모님 댁 가 있을 겁니다.”

“어? 부모님 댁이 어딘데요?”

“광진구요. 시간 있을 때 틈틈이 찾아 봬야죠.”

“아···.”


이런 내 답이 의외였는지.

머리를 고쳐 묶던 이영아가 재차 물었다.


“성현 씨 엄청 효자인가 봐요?”

“아뇨. 지금부터라도 효도 하고 싶어서요. 이전에는 하고 싶어도 못 했었거든요.”

“응? 왜요?”

“그냥···. 그럴 일이 좀 있었습니다.”


조금 불편해하는 내 기색을 읽은 듯.

이영아가 캐묻지 않고 순순히 물러난다.


“그래요? 하긴 뭐 지금부터라도 잘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러고 보니 이영아 고향이 어디랬더라?

지방이었던 것까진 기억나는데···.

그렇게 기억을 되짚으며 화제를 돌리려 하던 그때.

불투명한 유리문이 열리고.

차가운 바깥바람과 함께 배지현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다.


“오셨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네는데···.

오는 길에 무슨 일 있었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는 배지현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둡다.


“언니.”

“응?”


신경질 적으로 걸음을 옮기는 배지현.

이영아 앞에 다가선 그녀가 입고 있는 패딩을 벗지도 않곤, 입술을 삐죽인다.


“지금 오는 길에 브랜든 다니엘 대행사 쪽에서 연락 왔는데요···.”

“그런데?”

“인터뷰 시간 오 분 밖에 못 빼준대요.”

“뭐?! 오 분?”


이영아가 진짜 나며 되묻자, 배지현이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모습에 이영아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지고.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 옆으로 다가섰다.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이유가 뭐래?”

“앞뒤로 일정이 너무 빡빡하대요. 자기들도 최대한 빼 봤는데, 그게 한계라고···.”

“아니···. 그럴 거면 차라리 하질 말든가.”


내 말이.

아무리 세계적인 톱스타라도 그렇지, 오 분은 말도 안 되는 시간이다.

질문 두어 개만 주고받아도 순식간일 텐데.

그걸 어떻게 방송에 내보내라고?


“하···.”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던 것도 잠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이영아가 나와 배지현에게 말했다.


“일단 대책 좀 세워야 하니까, 지현이 너는 찬수 PD님한테 전화 드려봐.”

“네.”

“그리고 성현 씨는 나리한테 연락 좀 해주고요. 회사 근처면 최대한 빨리 들어오라고.”

“예. 알겠습니다.”

“미치겠네 진짜···.”


때아닌 날벼락에 사무실이 부산스러워졌다.


#


예정에도 없던 긴급회의가 열렸다.


“아니, 며칠이나 남았다고 지금 와서 이러면 어쩌라는 거야?”


상석에 앉아 툴툴거리는 팀장을 무시한 채.

메인 작가 고정은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연다.


“영아 너도 직접 통화 해 봤어?”

“네. 저도 해 보긴 했는데···. 그쪽에서도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다음 날이 출국이라 날을 미룰 수도 없다 하고요.”

“하···. 미치겠네 진짜.”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인 팀장이 김찬수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때? 자료 화면으로 좀 때우고 하면, 살릴 수 있을 거 같아?”

“음···.”


볼펜을 똑딱거리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던 그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렵죠. 인사하고, 내한 소감 묻고, 질문 하나 하면 끝인데.”

“아예 VCR로만 덮어 버리면?”

“그럼 그림이 죽겠죠?”

“환장하겠네 진짜···.”


안 그래도 일그러져있던 팀장의 얼굴이 더욱 험악해진다.


“아니, 그렇다고 이걸 통으로 날려버릴 수도 없는 거잖아.”


고정은이 입술을 물어뜯으며 대꾸한다.


“무조건 가야죠. [MOON]이 올해 상반기 최고 기대작이라는데.”

“그럼 이걸 뭐 어떻게 하라고?”


누구 하나 뚜렷한 답을 내지 못한다.

솔직한 말로 답이 없는 상황이긴 하다.

통째로 날려버리기엔 너무 큼지막한 아이템이긴 한데.

그렇다고 꾸역꾸역 살려 보자니 그림이 별로일 게 뻔하니까.

이전에는 어떻게 했더라?


촬영은 억지로 밀어붙여서 어떻게든 편집을 끝낸 것까진 확실한데···.

그걸 방송에 내보낸 기억은 없다.

그럼 뻔하지 뭐.

공들여 일만 해놓고 폐기했을 게 분명하다.


“그럼 일단 대책 좀 세워 보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만약이라는 게 있는데 그냥 버릴 순 없잖아.”

“일단 촬영은 그대로 진행하고, 혹시 모르니까 보험으로 아이템 하나 더 가져가야죠 뭐.”


김찬수를 바라보던 팀장의 시선이 작가 팀을 훑는다.


“혹시 아이템 킵 해놓은 거 있어?”

“잠시만요.”


이영아가 재빨리 마우스를 클릭하더니,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인터뷰 넣을 만한 아이템이 하나 있긴 한데요.”

“뭔데?”

“다음 주에 [샤인] 애들 컴백 쇼케이스 잡혀있다고 해서, 일단 컨텍은 해 놨거든요.”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샤인]? 걔들은 좀 약하지 않아?”

“그렇긴 한데, 지난 앨범 성적 괜찮게 나와서 이번에는 힘 많이 줬다고 하더라고요.”

“고 작가가 보기엔 어때?”

“아쉽긴 해도 가야 하지 않겠어요? 한 회 통으로 인터뷰 없이 가면 너무 밋밋할 거 같은데.”

“음···.”


팀장이 혀를 한 번 차곤 이영아 쪽을 향해 턱짓한다.


“그럼 걔들은 그럼 우리가 연락하면 바로 시간 빼줄 수 있는 거야?”

“네. 그렇게 얘기해 두긴 했는데요.”


이영아가 죄인처럼 어깨를 움츠린다.


“근데 걔들 쇼케이스 날짜랑 시간이 다니엘 브랜든 쪽이랑 겹쳐서···.”

“가지가지 한다 진짜···. 아, 영아 너한테 한 말은 아니고.”

“네.”

“그럼 이걸 어쩐다?”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상황을 풀기 위해 고민하는 팀장.

그러길 얼마나 흘렀을까?

생각을 정리한 그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별수 없네. 팀 두 개로 나누자.”


팀장이 턱 끝을 쓰다듬으며 말을 잇는다.


“일단 [샤인] 쪽은 무조건 분량 뽑아야 하니까 영아 네가 붙어. 나도 거기 붙을 테니까.”

“네.”

“다니엘 브랜든 쪽은···. 찬수 네가 지현이 데리고 붙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던 김찬수가 곁눈질로 배지현을 살핀다.


“근데 그날 배 작가님 대본 써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밤새워야죠 뭐.”


마치 테이프를 재생한 것처럼.

이전과 똑같은 방향으로 상황이 정리된다.

당연하다 싶은 게, 그때나 지금이나 이게 최선이긴 하니까.

이런 나와 생각이 같은지.

팀장이 배지현에게 말했다.


“지현이 네가 고생 좀 해 줘.”

“네 팀장님.”


얼추 정리된 상황을 노트북에 받아 적으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였다.


“아뇨. 오 분짜리 인터뷰 따자고 밤샐 것까지 있어요?”

“응?”


회의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김찬수에게로 몰린다.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대본만 잘 뽑아 주세요.”

“뭐? 되겠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김찬수가 피식 웃음을 흘린다.


“예. 현장 혼자 나가는 거 한두 번도 아니잖아요. 대신.”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특유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김찬수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막내 작가님 저한테 붙여주세요.”


이전 삶에서는 없었던 상황이.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또 한 번 터져 나왔다.


#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아이템 때문에, 대본까지 미루는 건 좀 아니잖아요.

-혼자 가도 되긴 한데, 그래도 옆에서 거들어 줄 사람 한 명 정도는 있는 게 좋죠.

-겸사겸사 막내 작가님 현장 경험한다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하니까.


처음에는 무슨 대본이라도 써온 줄 알았다.

즉석에서 내놓은 대답 치곤.

김찬수가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가 정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의견을 주고받고 할 새도 없이 거기서 그대로 회의가 끝났다.

의견이 타당한 것도 타당한 거지만, 그 말을 내뱉은 이가 김찬수다.

STV 내에서도 에이스 소리를 듣는 바로 그 김찬수.

팀장은 물론이거니와 메인 작가 조정은, 거기에 그 밑의 작가 팀까지.

누구 한 명 반대하거나 의심하질 않고 상황이 종료됐다.

오직 한 사람.

나만 빼고.


“···.”


아니 뭐, 솔직한 말로 이게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니고.

나 역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황이긴 한데···.

어째서인지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걸린다.

예상치도 못하게 상황이 바뀐 것도 바뀐 거지만.

나를 보며 짓던 김찬수의 그 마지막 미소가.

개구쟁이가 사고를 치기 전 짓는 그것처럼 보였으니까.


“···.”


그런 영문모를 찜찜함을 느끼며 회의록을 정리하길 얼마.

의자 끄는 소리와 함께.

회의실에 남아있던 김찬수와 이영아가 내게 다가왔다.


“회의록 정리 다 됐어요?”

“네. 지금 팀 메일에 올리겠습니다.”


내가 마우스를 움직여 파일을 옮기는 사이.

김찬수가 이영아에게 물었다.


“그럼 얘기한 데로 대본만 작가님이 정리해 주세요.”

“자료는 다 모아 놨으니까, 늦어도 내일까진 보내 드릴게요.”

“죄송해요. 쉬는 날인데 일만 드려서.”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인데요 뭐.”


그들이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파일이 다 올라간 것을 확인하곤, 고개를 돌렸다.


“지금 회의록 올렸습니다.”

“고생했어요.”

“자! 그럼 이제 우리끼리 정리할 것 좀 얘기해 봅시다.”


짝- 소리가 나게 손뼉을 치곤, 책상 앞에 자리를 잡는 김찬수.

나와 이영아가 자세를 고쳐 잡는 것을 확인한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일단, 대본 얘기는 끝났고. 장비나 감독님들 스케줄은 내가 정리하면 되고···. 또 뭐 있죠?”

“장소요. 근데 섭외 다 해 놔서 픽스만 지으면 돼요.”

“그래요? 그럼 인터뷰어 인데···.”


김찬수가 얼굴을 손으로 한 번 쓸어내리곤 이영아에게 물었다.


“원래는 박군으로 가기로 했던 거였죠?”

“네. 중간에 통역사 끼고요.”

“통역사···.”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그가 피식 웃는다.


“오 분 밖에 안 되는데 통역사까지 끼면, 진짜 인사만 하고 끝나겠는데요?”


이영아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게요···.”

“그러니까 영어 되는 인터뷰어 좀 미리미리 뽑아 두자니까. 거, 출연료 몇 푼이나 한다고.”


툴툴거리는 김찬수를 향해 이영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나운서실에 요청하면 어떻게 안 될까요?”

“아마 안 해줄 거에요. 요즘에 땜빵 너무 돌린다고 그쪽도 불만 많아서.”

“그럼 어쩌죠?”

“전에 나왔던 출연자 중에 영어 되는 사람들은 다 안 된다고 한 거죠?”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이영아를 향해, 김찬수가 재차 말을 잇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만 더 연락 좀 해 봐주실래요?”

“음··· 네.”

“그리고 막내 작가님. 막내 작가님은 괜찮은 후보 있나 한 번 찾아봐 주시고.”

“네.”

“시간이 촉박해서 섭외가 될까 싶긴 한데···.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알겠습니다.”


일단 김찬수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은 했다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영어가 가능한 인터뷰어야 찾으면 나올지 몰라도.

김찬수의 말마따나 가뜩이나 시간 도 촉박한 마당에.

꼴랑 오 분짜리 인터뷰를 진행해 줄 사람을 섭외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니까.

그렇기에 이전 삶에서는 박 군이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결정 났었던 거고.


그런데···.


“···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번 아이템은 실패할 아이템이다.

근데 여기에 과연 무조건이라는 단서를 붙일 수 있을까?

···아니.

당연히 아니지.

이미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건 내 눈으로 몇 번이나 확인했고.

지금 이 순간조차 내 기억에는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아이템을 잘 살려서 기회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확실하진 않아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PD님이 찾아보라고 하셔서 갑자기 생각 난 건데요···.”


고민은 짧았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어차피 내가 손해 볼 건 없으니까.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합니다.”

“어? 누구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와일드 키즈] 메인 보컬이요.”


작가의말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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