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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량 님의 서재입니다.

오! 작가님 잘 하시는데요?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윤한량
작품등록일 :
2021.12.15 12:11
최근연재일 :
2021.12.27 12:2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828
추천수 :
182
글자수 :
82,492

작성
21.12.20 12:20
조회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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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1쪽

2화 - 연락

DUMMY

딱히 알람이 울린 것도 아니건만.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


···다행이다.

커튼을 쳐놓기라도 한 건지 시야가 어둡긴 하다만.

십 년도 더 넘게 살아온 내 반지하 방의 낯익은 천장이다.


그나저나···.

밤새 얼마나 퍼마셨던 건지.

온몸이 물에 젖은 것처럼 무거운 거야 그렇다 쳐도.

분명 용규 선배를 택시에 태워 보낸 것까진 기억나는데.

꼭 그 부분만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내가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에라 모르겠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별일 없이 들어왔으면 된 거지 뭐.

근데 지금 몇 시지?

어스름하게 빛이 들어오는 창가 쪽을 한 번 살피고.

늘 핸드폰을 놓던 머리맡으로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었다.


“아오···.”


겨우 그거 움직였다고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자는 사이 보일러가 꺼진 건지.

방 안 공기가 차갑다 못해 시리고, 온몸은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린다.

굼벵이처럼 조심조심 움직여, 가까스로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야.”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내 전화기는 어디로 가고.

나온 지 십 년은 더 된 초기형 스마트 폰이 손에 들려있다.

설마 다른 사람 거랑 바꿔서 들고 왔나?

아니, 대체 얼마나 정신이 나가 있었던 거야?

한심함에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고.

혹시 몰라 베개와 이불을 뒤적거리던 그때였다.


-우웅!


손에 쥐고 있던 전화기가 요란하게 진동한다.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바라봤다.

그러자 어두운 공간에 적응되어 있던 눈이 절로 찌푸려진다.


-우웅!


누구지?

전화기 주인인가?

재빨리 침대를 빠져나와 형광등 풀을 키곤.

저장되어있지 않은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자 치곤 허스키한 목소리다.

그런데 거기서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진다.


-혹시 오성현 씨 전화 맞나요?

“예?”

-오성현 씨 전화 아닌가요?

“아, 예. 제가 오성현이긴 한데···.”


재빨리 얼굴에서 전화기를 떼곤 다시 한번 확인하는데.

분명 내 전화기가 아니다.


-···여보세요? 오성현 씨?


기분이 떨떠름하다.

난 줄 어떻게 알고 전화한 거야?

이거 지금 보이스 피싱인가?

찝찝한 기분으로 다시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지난주에 면접 봤던 STV ‘연예계 위클리 뉴스’ 이영아 작가인데요.


···응?


“‘연예계 위클리 뉴스’ 이영아 작가님이요?”

-네.

“아···.”


다행히 보이스 피싱은 아니네.

아니, 오히려 잘 알고 있는 목소리다.

이영아 작가.

내 작가 인생 첫 번째 사수.

그녀 특유의 목소리가 분명했으니까.

근데 생전 한 번 연락도 없던 양반이 갑자기 웬일이지?

뜬금없게도 십여 년 만에 걸려온 전화에, 반가움보단 의아함이 먼저 든다.


-저기요 오성현 씨. 안 들려요?


나 때문에 자꾸 대화가 끊겨 답답해진 건지, 그녀의 목소리가 뾰족하다.

퍼뜩 정신을 차리곤 재빨리 대답했다.


“아, 잘 들립니다.”

-혹시 지금 바빠요?

“아뇨.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어색함에 입이 바싹 마른다.

지금도 살가운 용규 선배와는 달리.

그녀와는 함께 일하던 그 당시에도 대면 대면 한 사이였고.

지금 이 연락도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으니까.


갑자기 느껴지는 타는 듯한 갈증에 목이 간질간질하다.

전화기를 귀에 고정한 상태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냉장고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던 그때였다.


-지난주에 면접 본 것 때문에 연락했어요. 혹시 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 가능해요?


면접? 출근? 누가? 내가?

뜬금없이 연락해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를 내뱉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고요?”

-네. 혹시 힘들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할 수 없어 잠깐 뜸을 들이자.

그녀가 내게 되물었다.


-왜요? 혹시 다른데 면접 보고 기다리는 중이에요?

“···아뇨.”


그러니까 애초에 면접이라는 걸 최근에 본 적이 없다고요.

대체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자꾸만 얘기가 헛도는 느낌에 인상을 팍 쓰고.

별다른 생각 없이 냉장고 바로 옆에 세워둔 전신 거울을 살핀 그 순간.


“···어?”


복잡하던 머릿속이.

순백의 도화지처럼 순식간에 하얘졌다.


#


일찌감치 해가 저문 2월의 초저녁.

방학철을 맞아 한가하던 대학가 호프집이.

졸업식을 끝낸 학생들의 뒤풀이로 몸살을 앓았다.


“야 인마! 벌주를 꺾어 마시는 놈이 어디 있어?! 원샷 몰라?!”

“아 씨! 나 내일 아침 차 타고 본가 내려간다고!”

“까짓거 모레 내려가면 되지! 집이 어디 도망가냐?!”


지긋지긋하던 학업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때문인지.

평소라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줬을 친구 놈들이 오늘따라 유난을 떤다.


“빨리 마셔! 다음 게임 하게!”

“오빠 원샷!”

“아이 씨···.”


주변의 채근이 이어지고.

안경 쓴 남학생이 머뭇거리며 인상을 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 잘 먹네!”

“크···.”


맥주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뱃속으로 밀어 넣은 그가, 거칠게 잔을 내려놓았다.


“어우···. 야 나 한 번만 쉴게. 이번 게임 너네끼리 해.”

“야이 씨. 쉬는 게 어디 있어?”

“아, 쫌. 성현이한테 전화 좀 해보게 이번만 쉬자.”


재빨리 전화기를 빼 드는 그의 모습에, 맞은 편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물었다.


“아, 맞다. 오늘 성현 오빠 졸업식 안 오지 않았어요?”

“어. 아까 낮에 강당에서 안 보이길래 전화 해 봤는데, 그때도 안 보이더라고.”

“그래요? 성현 오빠 무슨 일 있나?”


그녀가 슥- 하고 주변을 훑자.

눈을 마주친 이들이 모두 하나같이 고개를 흔든다.

여학생이 그 모습을 확인하곤 안경 쓴 남학생을 채근한다.


“그럼 빨리해 봐요.”

“알겠으니까 다 조용히 해봐.”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더니 귀에 가져다 대는 남학생.

그런 그를 향해 시선이 몰려들고.

떠들썩하던 주변이 순간 조용해진다.


“···.”


그러길 얼마나 흘렀을까?

이내 남학생이 전화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안 받는데?”

“진짜요?”

“어. 그냥 소리 샘으로 넘어가.”

“헐···. 아니, 어제 연락했을 때만 해도 오늘 올 거라고 했었거든요.”

“응 나한테도 그랬어. 뭐지?”


여전히 전화기를 손에 쥔 채 어깨를 으쓱거리는 남학생.

그가 다시금 통화 버튼을 누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 자식 이거···. 진짜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


냉기가 떠도는 반지하 방안.

벌써 몇 시간째 바라본 전신 거울을 지그시 노려봤다.

웃다가, 얼굴을 찌푸리고.

귀를 잡아당겨 보다, 대뜸 혀를 날름거려 보기도 하는 등.

쉴새 없이 표정을 바꿀 때마다.

속옷 차림의 거울 속 내 얼굴이 시시각각 변한다.


“와···. 미치겠네. 진짜.”




그런데···.

아무리 술을 퍼마셨어도 그 취기가 삼 일씩이나 갈 리가 없다.

그리고 꿈이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생생했고.

미친 것 치곤 정신이 너무 말똥했다.


“···.”


거울 비친 나를 다시 손으로 더듬거렸다.

당황으로 얼룩져 있지만, 눈가에는 주름 하나 안 보이고.

이삼 년 전 야외 촬영을 나갔다가 긁혀 생긴 흉터 역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드문드문 솜털 같은 것도 보이는 게···.

불과 며칠 전, 용규 선배를 만났을 때와 비교해 십 년은 더 젊어진 얼굴이다.

게다가···.

얼굴만 바뀐 게 아니다.

다급하게 찾아본 인터넷 뉴스와 TV 프로그램은,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예전 화면을 쏟아내기 바빴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참 전 연이 끊긴 옛 지인들의 연락이 밀려들고 있다.


“그러니까 이게 말이 되냐고···.”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진짜 과거로 되돌아온 거라고?

너무나 비현실적인 지금 이 상황에.

오죽하면 세상이 날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날 지경이다.


“하···.”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삼 일간 씻지 못해 잔뜩 낀 개기름이 손에서 미끈거린다.

환장하겠네···.

착잡한 얼굴로 거울을 다시 한번 살피고.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는 몸을 침대 위에 던진 그때였다.




#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이 시기의 내가 원래 그랬던 건지.

아니면 하도 큰일을 겪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봐주기 힘들 정도로 수척하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수도를 틀어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을 연거푸 얼굴에 끼얹었다.


“···.”


안 그래도 추운 날에 찬물까지 끼얹었더니, 금세 볼이 달아오른다.

그래도 그 덕분에 안개 낀 듯 흐릿하던 정신이 선명해졌다.

밤새 퉁퉁 부었던 눈두덩이도 조금은 가라앉은 듯하고.


“하···.”


뽀얀 입김이 화장실에 차오른다.

그 안을 서성이며 생각했다.

···그래.

나는 과거로 되돌아왔다.

다른 건 다 필요 없지만.

다신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목소리였으니까.

이제는 내 쪽에서 먼저 믿고 싶다.

이건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그렇게 확신하곤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까?”


우선 오늘은 본가로 가 무조건 부모님의 얼굴부터 봐야지.


그럼 그다음은?

뭘 해야 할까?

딱히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건 분명 기회다.

지난번과 달리 빛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

열심히 쌓아온 경력은 백지가 되었을지언정.

그 경험은 고스란히 머릿속에 남아 있었으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심장이 딸리 뛰기 시작한다.


“그럼 뭘 하지?”


주식?

먹고 살기 급급해, 해 본 적 없다.

로또 번호?

그런 걸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한참이나 고민하길 얼마.

어느 순간 차게 얼어붙은 입에서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잘 할 자신이 있는 일은 일.

그리고 성공으로 가는 길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일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으니까.

총알처럼 화장실을 뛰쳐나가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그러곤 빠르게 문자 메시지를 써 내려갔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출근 전에 다시 확인차 연락 드렸습니다. 11시까지 STV 본사 로비로 가면 되겠습니까?


행여 오타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발신 버튼을 눌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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