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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량 님의 서재입니다.

오! 작가님 잘 하시는데요?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윤한량
작품등록일 :
2021.12.15 12:11
최근연재일 :
2021.12.27 12:2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826
추천수 :
182
글자수 :
82,492

작성
21.12.20 12:20
조회
508
추천
18
글자
22쪽

3화 - 궁금해서 그러는데

DUMMY

찬바람이 쌩쌩 부는 오전.

지하철 스피커를 통해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이번 정거장은 목동. 목동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시간대가 조금 애매할 때라 그런가?

나를 포함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들이 몇 없다.

사람들의 뒤를 따라 줄을 서서 중심을 잡았다.

그러길 얼마.

지하철 문이 열리고.

종종걸음을 옮긴 이들이 계단을 빠져나간다.

바삐 움직이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벽에 큼지막하게 붙은 거울 앞에 섰다.


“어디 보자···.”


확실히 어젯밤 고생한 보람이 있다.

베이지색 바지는 주름 하나 없이 단정하고.

위에 걸친 코트 역시 하나 없이 깔끔하다.

뭐, 요즘 같은 날씨에 조금 추워 보이긴 하다만···.

그래도 나름 첫인상인데 깔끔한 게 낫겠지.

추위야 조금 참으면 되니까.

근데 이걸 첫인상이라고 하는 게 맞나?

기분이 조금 묘하다.

이미 한 번 거쳐 갔던 인연들인데.

그들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한다는 게.


···안 되지.

표정관리 하자.

자칫 잘못했다간 미친놈으로 보이거나, 수상쩍은 놈으로 찍히기 딱 좋다.

가볍게 볼을 두들겨 긴장의 끈을 잡았다.


“잘 하자.”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시키고.

역을 빠져나왔다.


#

목동역에서 STV 본사 건물까진 걸어서 오 분 남짓.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도로 위에 얼어붙은 눈들 하며.

잎이 모두 져버린 가로수.

거기에 갓 볶은 원두 향이 솔솔 풍겨 나오는 커피숍까지.

십여 년 전.

내가 걸었던 그 길, 그 모습 그대로다.

그러고 보면 커피 심부름하러 이 집도 참 많이 왔었는데···.

아, 저 가게는 이때부터 있었네.


기억과 현실을 대조하는 기분이 새롭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단정하게 딸린 보도블록 따라 오른쪽으로 몸을 꺾자.

마침내 목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STV].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아는, 우리나라 삼 대 공중파 채널 중 하나.

그것을 상징하는 세 글자가, 20여 층 건물 꼭대기에 당당히 붙어있다.


“후···.”


이 바닥 경험이 일이 년도 아니고.

더군다나 한 번 경험했던 일을 똑같이 반복하는 건데도.

이게 첫걸음이라는 생각에 묘하게 긴장된다.

연달아 입김을 내뱉으며 크게 심호흡하고.

개미 떼처럼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인파의 행렬을 따라.

나 또한 방송국 안으로 들어섰다.


“···.”


전에도 이랬나?

공개방송이라도 있는 건지 소운동장만 한 로비가 시끌시끌하고.

한쪽에 늘어선 테이블에는 관계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한 자리씩을 찾아보고 있다.

혹시 아는 얼굴은 없는지 한 번 살펴보고.

자사 프로그램 광고가 흘러나오는 LED 전광판까지 한 번 훑어낸 다음.

차게 얼어붙은 손으로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현재시간 10시 28분.


출근하기로 한 시간은 열한 시.

약속했던 시간까진 아직도 삼십 분이나 남아있다.

한 십 분만 있다가 전화할까?


“···아니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기억대로라면 이영아는 진즉 출근해 있을 거다.

핸드폰을 눌러 저장된 이영아의 번호를 찾은 다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신호가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이영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헛기침을 해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재빨리 대답했다.


“아, 예 작가님.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한 오성현인데요, 지금 로비 도착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지금 로비라고요?

“예.”

-나도 지금 로비인데··· 아, 혹시 코트 입고 있어요?

“네. 곤색 코트에 베이지색 바지요.”


전화를 끊지 않은 상태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이내 한 손에 차가운 커피를 손에든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대충 묶은 사과 머리하며.

위에 걸친 회색 후드티, 거기에 후줄근한 추리닝 바지까지.

이영아 내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 다가온다.


“오성현 씨?”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위아래로 훑는 이영아.

그런 그녀를 향해 재빨리 전화를 끊곤 고개를 숙였다.


“예 작가님. 처음 뵙겠습니다. 오성현입니다.”

“따라와요.”


순식간에 몸을 돌리는 이영아에게서 찬바람이 쌩쌩 분다.

그 모습에 순간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가물 하긴 한데···.

춥진 않았는지, 왜 이렇게 빨리 온 건지.

뭐, 이런 질문 몇 개 정도는 하지 않았었나?

원체 사람 자체가 조용하고 살가움과는 거리가 멀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뭐해요? 안 와요?”


조금 짜증 섞인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따라붙었다.


“죄송합니다.”

“···.”


대꾸도 안 한 이영아가 뚜벅뚜벅 걸음을 옮긴다.

그러고는 관계자용 게이트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탈 때까지 말 한마딜 안 한다.


“···.”


잠깐이나마 반가웠던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색한 공기에 숨이 턱턱 막힌다.

아니 그보다 당혹감이 앞선다.

처음으로 기억과 상황이 엇갈렸다.

···내가 뭐 실수한 게 있나?

그녀와 했던 대화를 찬찬히 차올리던 그때였다.


“···아.”


생각해 보니···.

첫인상이 최악이었겠네.

하필이면 이영아의 전화를 받던 그 순간 처음으로 거울을 확인했고.

그때 당시에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던지라.

충격에 빠진 상태로 헛소리만 찍찍 늘어놓았었으니까.


···환장하겠네.

어디 나사 하나 풀린 놈이라고 생각했겠지?

지금 이영아가 이렇게 쌀쌀맞은 것도 이해가 된다.

상황이 급해서 어쩔 수 없이 뽑은 막내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면, 나 같아도 싫을 테니까.


-17층입니다.


일 분이 한 시간 같이 느껴지던 그때.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사무실이 있는 17층에 멈춰선다.

이번에도 역시 말없이 먼저 나아가는 이영아.

그녀의 뒤를 따라 불투명한 유리가 쭉 이어진 복도를 걸었다.


[달려라 토요일].

[기쁜 우리 젊은 날].

[토끼와 거북이]···.


불투명한 유리문마다 제각각 프로그램명이 적혀있다.

일찌감치 폐지된 타이틀도 보이고.

개중에는 먼 미래까지 살아남은 장수 프로그램도 보인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따라가는데.

어느새 복도 끝에 다다른 이영아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내 첫 직장.

[연예계 위클리 뉴스] 제작팀 사무실이다.


“여기가 우리 사무실이니까 잘 기억해 둬요. 괜히 다른 팀 사무실 들어가지 말고.”


문 앞에 떡하니 타이틀까지 붙어있는데 그런 일이 있겠느냐마는···.

가시 돋친 이영아의 말에 빠르게 대답했다.


“예.”

“책상은 여기 써요. 이쪽 라인이 작가들 자리고 반대쪽은 PD들 자리니까.”


이영아가 이 열로 쭉 늘어선 독서실 책상 중 문과 가장 가까운 끝자리를 가리킨다.

그런데 자리가 빈 지 한참 됐는지.

이면지와 A4 용지가 가득 쌓인 책상 위에, 메고 있던 가방을 조심스레 내려놨다.


“네. 알겠습니다.”

“조금 있으면 성현 씨 바로 위에 선배 올 거니까, 물어보고 버려도 되는 건 버려요. 기본적인 것도 그 친구한테 듣고.”

“예.”


할 말을 마치곤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이영아.

칼 같은 그녀의 뒷모습에 한숨을 삼켰다.


#


[연예계 위클리 뉴스]는 그 제목처럼.

한 주간의 연예계 뉴스를 정리한 위클리 프로그램이다.

뭐··· 솔직한 말로.

여느 공중파 삼 사의 연예정보 프로그램이 그러하듯.

시청률이 잘 나오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하기야 이제 스마트폰 하나면 있으면, 연예계 뉴스 정도야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인데.

한주나 지난 뉴스를.

그것도 황금 같은 금요일 저녁에 찾아볼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그런 이유로 천천히 [위클리 연예 뉴스]는 천천히 내림세를 겪다.

일 년 후쯤에는 완전한 폐지로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제아무리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일지라도.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이렇게 사실상 침몰이 확정된 프로그램이 확실함에도.

내가 이 [위클리 연예 뉴스]를, 내 첫 프로그램으로 또 한 번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썩어도 준치라 했던가?

지금이야 애국가보다 더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만.

명색이 공중파.

그것도 본사 제작 프로그램이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참 재밌는 게, 학력은 크게 신경 안 써도.

어지간한 외주제작사에서 제작한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 두, 세 개를 합친 것 보다.

이런 공중파 본사 제작 프로그램 하나를, 경력으로 더 쳐주는 분위기거든.

참···.

이런 걸 보면 차별받는 방송작가 안에서도 차별이 존재한다는 게 씁쓸하지만.

뭐, 어쩌겠나?

시류가 그러할 진데.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직접 내린 결정이긴 한데···.

어째서인지 조금씩 후회가 된다.

이게 지금 잘 한 선택인가 하고.


“나리야 브랜든 다니엘 쪽 섭외됐니?”


서브 작가 배지현의 질문에, 내 바로 위 막내 작가인 신나리가 인상을 쓴다.


“아···. 대행사 쪽 계속 독촉하고는 있는데, 그날 일정이 아직 픽스가 안 됐대요.”

“뭐? 아직도?”

“네. 무대 인사랑 사인회 일정이 빡빡해서 아마, 인터뷰하게 되더라도 길게는 못 해줄 것 같다고···.”

“아니···. 지금 와서 뭐 어쩌자는 거래?”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배지현이.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이영아에게 물었다.


“언니, 이거, 다른 인터뷰라도 먼저 섭외 걸어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일단 대기해봐. 메인 언니 오시면 물어볼 테니까.”


이영아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숨을 내쉰다.


“그건 그렇고 프리뷰 할 파일은 메일에 언제 올려 준대?”

“오늘 저녁에요. 퇴근 전까진 올려 준대요.”

“그래? 그거 올라오면 나리 너는 그쪽 바로 붙고.”

“네 언니.”


사무실이 분주하다.

오직 단 한 사람.

나만 제외하고.


두 시간.

벌써 두 시간째 이렇게 방치된 상태다.

기본적인 정보 전달은커녕.

여태 책상 정리조차 손대지 못한 상태다.


아니, 내가 뭐 따뜻한 환대를 바란 것도 아니고.

서로 기본적인 건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서브인 배지현은 ‘잘 지내봐요’ 이 한마디만 하고는 자기 할 일 하느라 바쁘고.

내게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해 줘야 할 신나리는, 내가 무슨 말을 걸 때마다.

‘잠깐만 기다려 봐요’, 이 말만 고장 난 시계처럼 반복하는 중이다.

상황이 이러면 세컨 작가인 이영아가 나서서 정리를 해줘야 할 텐데···.

다른 작가 두 사람한테 인사만 한 번 시켜주곤, 시선 한 번 주질 않고 있고.


참나···.

하도 세월이 많이 흘러서 내 기억이 미화됐었나?

슬슬 폐지 얘기가 나올 시점이라, 팀 분위기가 뒤숭숭할 거라는 건 예상 했었고.

제각각 성격들이 개인주의라는 건 알고 있었다만···.

분위기가 이 정도로 개판일 줄은 몰랐다.


“···.”


이럴 거면 차라리 다른 프로그램을 찾을까?

아무것도 모르던 생 막내 시절이야 ‘아, 다들 바쁘신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

지금은 내가 가진 능력이나 경험을 보여줄 기회만 있으면, 어디 가서든 환영받을 자신이 있는데.

이렇게 푸대접받아가며 버텨야 하는 건가 싶었으니까.


“···.”


연신 터져 나오려 하는 한숨을.

속으로 애써 꾹꾹 삼키던 그때였다.


“아으··· 죽겠다.”


앓는 소리를 내며 기지게를 켠 배지현이 신나리에 묻는다.


“나리야 담배 하나 피울래?”

“넵.”

“우리 새로 온 막내는 담배 피워요?”

“아뇨. 비흡연잡니다.”

“그래요?”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시큰둥하게 대답한 배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곤.

의자에 걸쳐둔 파카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저 나리랑 담배 하나 피고 올게요.”

“점심 먹으러 가야 하니까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바로 들어올게요. 나리야 가자.”

“넵.”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한 두 사람이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한산해진 사무실에 또다시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대로 있는 건 아니다 싶어.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 시킨 이영아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섰다.


“작가님.”


그녀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마지못해 대답한다.


“왜요?”

“지금 뭘 하면 될까요? 두 시간째 가만히 있는 상태라서요.”

“응?”


그제야 고개를 돌리는 이영아.

나를 보는 그녀가 미간을 구긴다.


“나리가 말 안 해줬어요?”

“몇 번 여쭤봤는데 계속 바쁘시더라고요. 근데 그렇다고 또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

“혹시 작가님도 바쁘시면 더 기다리겠습니다.”

“하···. 나리 이 지지배가 진짜···.”


작게 중얼거리는 이영아.

그녀가 이내 미간 사이를 꾹꾹 주무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팀 메일 주소는 받았어요?”

“아뇨. 아직 못 받았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봐요.”


볼펜을 꺼낸 이영아가 포스트잇에 거칠게 메일 주소를 적어 내게 건넨다.


“이게 팀 메일 주소니까 잘 기억해 놔요. 어디 가서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명심하고.”

“네.”

“그리고···.”


빠르게 새로 문서창을 띄운 이영아가 부지런히 타자를 친다.

때론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때론 뭔가를 고민하는 듯 인상까지 써 가면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길 얼마.

그녀가 저장한 문서를 팀 메일에 업로드 하곤,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금 팀 메일에 우리 팀 스케줄 올려놨으니까, 그거 한 번 봐봐요. 원래 올라가 있던 메일들이랑 비교해서 보면, 기본 시스템은 파악될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이번 주는 섭외까지 다 끝나서 당장 성현 씨가 당장 할 건 없고···.”


볼펜을 똑딱거리던 이영아가 내게 물었다.


“문창과 나왔다고 했죠?”

“네.”

“혹시 프리뷰 같은 거 해 본 적 있어요? 편집할 때 찾기 쉽게 녹화한 화면 보고 글로 옮기는 거요.”


기대감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시선에, 고민하던 것도 잠시.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줄 압니다.”

“할 줄 아는 거예요, 아니면 해 본 적이 있는 거예요?”

“해본 적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몇 번 해 본 적 있거든요.”


거짓말이다.

이 방송 판에 뛰어들기 전엔 그런 알바가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까.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내가 할 줄 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자주 해 봐서 그럭저럭 속도는 나올 겁니다.”

“그래요? 음···.”


조금은 떨떨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이영아.

이내 그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저녁에 올라오는 것부터 한 번 해볼래요? 모레 아침까지만 마무리하면 되는 건데.”


온종일 투명인간처럼 앉아있다가, 처음으로 주어진 업무에.

냉큼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였다.


-우웅!


담배 태우러 가면서 놓고 갔나?

책상 위에 놓인 배지현의 전화기가 요동친다.

그리고 때마침 전화가 걸려 온 듯.

이영아 역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이만 가보라는 듯 손짓하는 이영아.

그녀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내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우웅!


급한 전화인가?

배지현의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려댄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책상 앞으로 다가서서 이영아를 바라보자.

인상을 쓴 그녀가 내게 받아보라며 턱짓한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알겠다는 뜻으로 고갯짓을 하고.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예 배지현 작가님 전화입니다.”

-어? 여보세요? 배지현 작가님 지금 자리에 안 계신가요?

“지금 잠깐 자리 비우셨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아, 저 크레이지 뮤직 박한영 실장인데요, 혹시 배 작가님 언제쯤 오실까요?

“글쎄요···.”


흡연장이 일 층에 있으니까 왔다 갔다 하는데도 시간 좀 걸릴 거고.

담배만 피고 바로 올 것 같진 않은데···.

빠르게 계산을 끝마치곤 대답했다.


“잠깐 비우신 거라서 아마, 십분 내외로 오실 것 같습니다. 오시는 대로 전화 드리라고 전달 드릴까요?”

-아뇨 이게 좀 급한 거라··· 혹시 작가님이신가요?

“예.”


이제 겨우 출근한 지 두 시간 밖에 안 된 막내긴 하지만.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박한영 실장이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다른 게 아니고 저희 ‘샤인’ 애들 컴백 쇼케이스 인터뷰 섭외하신 것 때문에 연락 드렸거든요.

“아··· 섭외요.”


일단 받아적자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녹음 버튼을 누르고.

내 자리로 돌아와 메모장을 켰다.


“예 실장님. 섭외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이게, 제가 지금 회의 들어가서 팀장님께 보고 드리려고 하거든요.

“예.”

-그때 같이 보여드리려고 하는데, 혹시 인터뷰 예상 질문지 나왔으면 받아 볼 수 있을까 싶어서요.


전화기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진다.


-작가님도 아시겠지만 지금 저희가 예민한 질문은 좀 피하고 싶어서요.


아···.

그러고 보니 ‘샤인’ 메인 보컬 스캔들 터졌던 게 이맘때쯤이었나?

빠르게 기억을 되짚곤 대답했다.


“그럼요. 그런 건 조심해야죠. 근데 실장님 잠시만요.”

-예.


질문지를 뽑아 놨으려나?

재빨리 튀어나가 배지현의 노트북을 살피는데···.

자동 잠금이 걸려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일단 통화 중인 이영아를 향해 다가가 입을 뻥긋거렸다.


“작가님.”

“그럼요. 일정은 저희가 당연히 맞춰야죠.”

“잠깐 봐주셔야겠는데요.”

“어휴··· 별말씀을요. 아, 팀장님 잠시만요.”


왈칵 인상을 쓰는 이영아.

그녀가 한 소리를 쏟아내기 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샤인 실장한테 전화 왔는데요. 인터뷰 예상 질문지 보내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지금요?”


화들짝 놀란 이영아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손으로 감싸곤 되물었다.


“급한 거래요?”

“예. 지금 회의 들어가서 보고 한 다음, 섭외 픽스 지으려는 것 같습니다.”

“하···. 나리, 나리한테 전화해서 빨리 들어오라고 해요.”


다급하게 대답하곤 다시 전화를 받으려 하는 그녀를 막고.

전화기가 올려진 신나리의 책상을 가리켰다.


“두고 가셨습니다.”

“하··· 이것들이 진짜!”


그녀가 입술을 물어뜯는다.

급박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영아.

이럴 시간이 없다 싶어 재빨리 말했다.


“일단 오 분 안에 보내 준다고 하고, 제가 간단하게라도 뽑아 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일그러져있던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진다.


“성현 씨가요?”

“간단한 예상 질문지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서요. 보내기 전에 작가님께서 확인만 해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하···.”


한숨을 내쉬는 이영아.

평소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당장 이 섭외가 엎어지면 아이템부터 다시 찾아야 할 판국이다.

결국, 그녀의 고민은 짧았다.


“할 수 있겠어요?”

“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일단 해봐요. 최대한 전화 빨리 끊고 봐줄 테니까.”

“예.”


시간이 없다.

미심쩍어하는 이영아를 뒤로하고.

반쯤 뛰듯 내 자리로 되돌아와 전화기를 잡았다.


“아, 실장님 죄송합니다.”

-어휴··· 아닙니다 작가님. 그럼 어떻게···.

“오 분 안으로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아, 네.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그럼 메일 주소 불러주시면 제가 질문지 보내드리고 문자 드리겠습니다.”

-예.


박한영 실장의 메일 주소를 두 번, 세 번 확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다음 먼저 새 문서창을 화면에 띄웠다.


“어디 보자···.”


어차피 예상 질문지이니 러프하게 뽑으면 될 거고.

컴백 쇼케이스 뒤에 할 인터뷰이니만큼, 질문할 내용도 뻔하다.

그럼 쉽지 뭐.


이번 앨범 콘셉트는 뭔지.

녹음 과정에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휴식기 동안 뭘 하고 지냈는지 등등 몇 가지 질문을 집어넣고.

사이사이 안무 시연과 같은 것들을 끼워 넣었다.

그러길 얼마.

핵심이다 싶은 질문에는 글자 크기를 확대해 포인트를 주곤.

예상 답변까지 달아줬을 때쯤.

타이밍 좋게 전화를 끊은 이영아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다 뽑았어요?”

“네.”


대답하곤 자리를 비켜줬다.

그러자 이영아가 내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보내면 되겠네요. 아직 안 늦었죠?”

“네.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메일 주소창에 박한영 실장의 주소를 입력하고.

첨부파일이 제대로 올라갔나 확인한 다음 발신 버튼을 눌렀다.


“보냈다고 문자 넣겠습니다.”

“그래요.”


이것도 오랜만에 해 보니까 재밌네.

그런 생각을 하며.

전화기를 꺼내 문자 메시지를 작성하던 그때였다.


“성현 씨.”


전송 버튼을 누르고.

이영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

“내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말끝을 흐리며 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내게 물었다.


“혹시···. 우리 프로그램 오기 전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일한 적 있어요?”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에.

의심이 가득했다.


작가의말

매일 낮 12:20분에 찾아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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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 - 뜬금없는 말 +2 21.12.27 380 24 20쪽
9 9화 - 주사위 +2 21.12.26 425 17 19쪽
8 8화 - 누구요? +1 21.12.25 419 16 20쪽
7 7화 - 누군지 알죠? +1 21.12.24 430 15 17쪽
6 6화 - 명함 +1 21.12.23 442 17 20쪽
5 5화 - 재밌을 거 같은데요? 21.12.22 463 14 18쪽
4 4화 - 뭐 없어? 21.12.21 470 16 18쪽
» 3화 - 궁금해서 그러는데 +3 21.12.20 509 18 22쪽
2 2화 - 연락 21.12.20 546 20 11쪽
1 1화 - 뭐야 이건 +1 21.12.20 725 2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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