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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량 님의 서재입니다.

오! 작가님 잘 하시는데요?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윤한량
작품등록일 :
2021.12.15 12:11
최근연재일 :
2021.12.27 12:2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844
추천수 :
182
글자수 :
82,492

작성
21.12.2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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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10화 - 뜬금없는 말

DUMMY

“컷!”


팀장의 외침에 [샤인]의 쇼케이스 인터뷰가 모두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들 하셨어요!”


조용하던 현장이 순식간에 어수선해지고.

다음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는 [샤인]을 배웅한 이영아가, 전화기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시간 오후 8:21분.


예정보다 인터뷰를 일찍 시작한 덕분일까?

제법 분량을 뽑았음에도, 생각보다 촬영이 빨리 끝났다.

인터뷰 내용도 이 정도면 나름 괜찮고.

현장 그림도 좋게 빠진 것 같다.

이 정도면 한 회차 분량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그림을 그려나가던 그때였다.


“영아야 수고했다.”

“···아.”


불쑥 고개를 내민 2팀장을 향해 이영아가 고개를 숙였다.


“팀장님도 고생하셨어요.”

“분량 나올 거 같지?”


그녀가 보조 가방을 고쳐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봤을 땐 괜찮은데, 팀장님이 보시기에 어떠셨어요? 무대 스케치한 거는 마음에 드세요?”

“생각보다 괜찮던데? 힘 좀 줬다더니, 괜찮더라고.”

“후···.”


그제야 긴장의 끈이 풀린 듯.

이영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맞다. 찬수 쪽에서 연락 왔지? 어떻데?”

“잠시만요. 저도 아직 확인을 못 해봐서.”


그녀가 재빠르게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려 메신저 창을 띄운다.

그러고는 촬영하는 동안 도착한 메시지 들을 하나 한 확인하는데···.

고개가 갸우뚱한다.


“연락 온 거 없는데요? 성현 씨도 그렇고.”

“그래?”

“혹시 팀장님한테 연락한 거 아니에요?”

“아닌데? 잠깐만.”


빠르게 전화기를 꺼내든 팀장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한테도 안 왔어.”

“아직 뒷정리 중인가···. 잠시만요, 전화 한 번 해볼게요.”


연락처에서 김찬수의 번호를 찾은 그녀가 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어? 전화기 꺼져 있는데요?”

“그래? 막내는?”

“어··· 뭐지? 성현 씨 전화기도요.”


팀장이 볼을 긁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인터뷰 늦게 시작했나 보지 뭐.”

“아닌데···. 보니까 여덟 시 되기 전에 인터뷰 시작한다고 성현 씨가 문자 보냈거든요.”

“지금 몇 신데?”

“여덟 시 이십 분 조금 넘었어요.”

“뭐?!”


그제야 팀장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걔들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찬수 PD님이 직접 가셨는데 문제 생길 게 있을까요?”

“그럼 전화기는 왜 꺼놨는데?”

“그거야 저도 모르죠.”


어리둥절한 상황에 마치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

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끔뻑거렸다.


#


카메라와 카메라.

딱 그 중간지점에 앉은 내가 스케치북을 펼쳐 드는 사이.

김찬수가 큐 싸인을 내렸다.


“하이··· 큐!”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미스터 브랜든.

-나도 반가워요 미스터 제이.

-한국은 처음이신 거로 알고 있는데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상투적인 인사와 함께 인터뷰가 시작됐다.

정면의 카메라 쪽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는 다니엘.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제이 필 역시 가볍게 눈웃음을 짓는다.


-이번에 개봉한 [MOON]을 기대하셨던 분들이 한국에 정말 많았거든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오, 그래요?

-네. 그래서 드리는 부탁인데, 저나 [연예계 위클리 뉴스] 시청자분들을 위해서 직접 작품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이번 [MOON]은 달에 떨어진 남자의 이야긴데요···.


정해진 수순대로 인터뷰가 흘러간다.

어쨌든 저쪽도 작품 홍보를 위해 짬을 내어준 걸 테니.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이 주제부터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니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제이 필의 진행이나 리액션에서.

아직 긴장한 느낌은 느껴지질 않는다.


-와··· 그럼 촬영이 쉽지 않았겠는데요?

-말도 마요. 진짜 죽는 줄 알았으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시계 쪽으로 간다.

이전 삶과 지금을 합쳐서 오 분이라는 시간이 이토록 짧게 느껴진 적은 또 처음이다.

인사를 하고.

고작 질문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벌써 약속했던 시간 중 무려 절반이 날아갔다.

시간에 쫓기는 기분에 입맛이 쓰다.


-작중에서 혼자 이끌어 나가는 장면이 많은 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렇죠. 대개는 상대역이 있으니까.

-극한 상황에서 점점 고독해져 가는 사람을 연기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공감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제이 필.

그가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그럼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뭐가 될까요?

-음···. 아무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변해가는 인물이겠죠. 그 부분을 집중해서 보시면, 정말 놀라게 되실 거에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요?

-그건 영화관에서 직접 확인하셔야죠. 내가 여기서 스포를 할 순 없잖아요?


다니엘의 유머러스한 제스쳐와 함께.

얼추 질문에 대한 답이 끝나가던 그때.

멀찍이서 현장을 바라보던 대행사 직원이, 슬금슬금 몸을 움직인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따라간다.


-아무튼, 이번 작품은 정말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저도 꼭 영화관에서 보겠습니다.


···아니 벌써?

질문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정장 차림의 직원이 손을 목 부분에 대고 빠르게 흔든다.

누가 봐도 다음 스케줄을 위해 슬슬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 분이 원래 이렇게 짧았나?

말라붙은 입술을 혀로 적셨다.


-이런···.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마지막으로 혹시 질문 할 게 있을까요?


제작진 입장에선 피가 마르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촬영한 분량 가지곤 방송은커녕.

인터뷰라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니까.


하지만 예상했던 일이고 벌어질 일이었다.

빠르게 냉정을 되찾곤 제이 필을 바라봤다.

때마침 그도 나를 보고 있었는지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친다.


-없으시면 인터뷰는 여기까지···.

-아뇨. 제가 꼭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었거든요.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 다니엘을 제이 필이 붙잡는다.


-좀 사적인 질문이기는 한데, 제가 팬으로서 꼭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뭐죠?


내가 고개를 끄덕인 것을 신호 삼아.

제이 필이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정말 좋은 작품들에 많이 출연하셨잖아요?

-그렇죠.

-그 과정에서 정말 실력 있는 감독들과 호흡을 맞춰 보기도 했었고요.

-정말 좋은 경험이었죠.


숨을 한 번 고른 제이 필이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그래서 여쭤보는 건데, 본인이 직접 메가 폰을 잡아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네?

-지금까지 하셨던 인터뷰들 보면서, 제작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고 느꼈거든요.

-···.


술술 대답을 이어 나가던 다니엘의 말문이 첨으로 막히고.

스튜디오에 묘한 침묵이 흐른다.


-혹시 제가 오해한 건가요?


미소를 유지한 채 재차 묻는 제이 필.

그제야 다니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보였어요?

-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요.

-참···. 이 얘기 다른 사람한테 한 적 없는데.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일으키려 하던 그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다.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정말 팬이라고.

-그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혹시 장르는 생각해 두신 게 있나요?


본능적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막 분침이 5분을 가리키고 있다.

약속했던 시간에 정확히 다다른 상황.

과연 다니엘은 어떻게 할까?

마른 침을 꿀꺽 삼키던 그때였다.


-미스터 제이 생각에는 뭐일 거 같아요?


최소한 한 컷은 더 건졌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음···. 제 생각에는 조금 유쾌하면서도 가벼운 장르가 아닐까 싶은데요? 예를 들면 판타지라던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요?

-지금까지 미스터 브랜든이 출연한 작품은 전부 배경이 어두웠잖아요, 작중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다들 기구한 인물들이었고.

-···.

-팬으로서 지켜봤을 땐···. 미스터 브랜든이 메가폰을 잡아서까지 관객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와우.


짧게 감탄사를 내뱉은 다니엘이, 의자 밑으로 손을 뻗어 생수병을 잡는다.


-미안해요. 너무 놀라서 그런지 목이 타네요.


순식간에 생수 반병을 비운 다니엘의 얼굴이 조금 상기된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이 없는데 정말 신기하네요. 아니, 어떻게 알았어요?!

-설마, 제 예상이 맞은 건가요?

-백 퍼센트요!


펄쩍 뛰며 소리를 지른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당장이라도 제이 필을 향해 튀어 나갈 것 같은 기세다.


-사실 어드벤쳐 영화를 한 편 찍어보고 싶었거든요!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그런 소재로요!

-생각해 둔 건 있나요?

-네! 온 가족이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공룡이 넘쳐나는 세상이 된 거예요. 왜 다들 그런 상상 한 번씩 해보잖아요?

-그럼요. 저도 한 번씩 상상해요. 집 밖에 공룡이 뛰어다니는데, 사람은 나 밖에 안 남은 상황 같은 거요.

-바로 그거죠!


리액션부터 제스쳐 그리고 목소리까지.

다니엘의 동작 하나하나가 조금 전과는 비교했을 때 확연히 크다.

이전까지는 일로 인터뷰에 임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친구에게 사적인 얘기를 털어놓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 덕분인지.

내 바로 옆에 서서 무표정하게 현장을 바라보던 김찬수의 얼굴이.

심상치 않은 현장 분위기에 맞춰 진지하게 변한다.


-만약에 그 작품 개봉하게 되면 시사회 꼭 초대해 줘요. 무조건 보러 갈 테니까.

-당연하죠! 그런 날이 꼭 오면 좋겠··· 아니! 꼭 와야죠!


순식간에 다른 사람처럼 변한 다니엘을 향해, 제이 필이 말을 잇는다.


-아 참. 그래서 또 생각난 질문인데요. 지금까지 여러 배우와 작업해 보셨잖아요?

-그럼요!

-그럼 그중에 혹시 배우 브랜든이 아니라, 감독 브랜든으로서 같이 일 해보고 싶은 배우가 있을까요?

-당연히 있죠!


멘트가 이어지는 사이.

빠르게 스케치북을 펼쳐 들곤.

보조 가방을 더듬거려 유성 매직을 찾던 그때였다.


“작가님.”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 김찬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는 그의 시선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기대감이 느껴진다.


“할 수 있겠어요?”


가지를 치고 뻗어 나가기 시작한 인터뷰가, 이제는 완전히 대본의 영역을 벗어났다.

지금부터는 온전히 현장 판단으로만 인터뷰를 이어 나가야 한다.

그걸 지금 나한테 할 수 있겠냐는 뜻이다.

고민할 필요 있나?

단숨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죠.”


할 수 있고 없고의 따질 게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한다.

지금 당장 다른 작가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한 번 해봐요.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부담 갖지 말고.”

“감사합니다.”


질문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어떻게든 질문 하나라도 더 물어봐야 할 때다.

지금이야 흥에 취해 인터뷰하고 있지만.

다니엘이 가봐야겠다고 하는 순간 인터뷰는 거기서 끝이다.

스케치북 위에 큼지막한 글씨를 적고, 양손으로 높이 쳐들었다.

힐끔거린 제이 필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와우···.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요?

-당연하죠! 어디 가서 아무한테도 얘기 한 적 없으니까!

-그래서 저는 더 신기한 게 미스터 브랜든 정도 되는···.

-다니엘. 다니엘이라고 불러요!


기분이 한껏 달아오른 듯한 다니엘의 말에, 제이 필이 씩 웃으며 멘트를 정정한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다니엘 정도 되는 톱스타면 사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렇죠.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서 아이를 셋이나 가진 아빠가 혼자 있기란 쉽지 않죠.


불쑥 튀어나온 가족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제이 필이 당황하는 기색 없이 멘트를 받아넘긴다.


-아 참. 그러고 보니까 아이들이 아직 어린 걸로 알고 있는데, 아빠가 유명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음···. 아마 어렴풋이 알고는 있을 거예요. 막내 같은 경우에도 이제 제가 TV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아 맞다!


다니엘이 전화기에서 꺼낸 전화기를 제이 필의 코앞에 가져다 댄다.

이제 카메라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우리 막내예요! 귀엽죠?


분위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기피 하던 얘기까지 술술 털어놓을 만큼.

다니엘이 지금 이 인터뷰에 완전히 몰입한 게 느껴진다.

그럼 여기서 무슨 얘기로 이어 나가야 하지?

머리와 손이 동시에 움직인다.


“저기요. 작가님.”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건지.

발만 동동 구르던 대행사 직원이.

결국, 제작진 쪽으로 다가와 돌 씹은 얼굴을 한다.


“이거 지금 끝내주셔야겠는데요? 처음에 말씀드렸잖아요. 오 분이라고.”


진행에 집중하는 나를 대신해 김찬수가 나선다.


“예. 그렇긴 한데 지금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요.”

“그래도 약속은 지켜 주셔야죠.”

“이게 지금 저희가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보세요. 다니엘이 더 신나서 얘기하고 있는 거.”


무대 쪽을 손짓으로 가리킨 그가 말을 이었다.


“일단 마이크에 잡음 들어갈 수 있으니까 저쪽으로 가서 얘기하시죠.”

“그러니까 지금 끝내야 한다니까요?”


두 사람이 아무리 목소리를 낮췄다곤 해도.

현장이 조금씩 어수선해지던 그때였다.


-미스터 킴. 벌써 시간 지났나요?


···아.

툭- 하고 끊겨버린 흐름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네. 벌써 십 분이나 지났어요. 이제 정말 가셔야 합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멋쩍게 웃는 다니엘의 모습에, 김찬수의 표정이 썩어들어간다.

나 또한 자꾸 새어 나오는 한숨을 참기가 힘들다.

어떻게, 오 분만 더 안 되나?

아쉬움에 메마른 입술을 물어뜯던 그 순간.


-그럼 이렇게 하죠!


다니엘이 손뼉을 친다.


-기왕 늦은 거 다음 일정 조금 늦추는 거로 해요.

-네?

-이렇게 즐거운 인터뷰는 오랜만이거든요. 내가 가서 정중하게 사과할게요.


반사적으로 김찬수를 바라보는데.

그의 얼굴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벙쪄있다.


-그럼 그렇게 정리하기로 하고···. 우리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팡파레 소리와 함께.

예상치도 못한 잭팟이 터졌다.


#


“위하여!”


500CC짜리 맥주잔 세 개가 맞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단숨에 맥주를 들이켜는 김찬수.

그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처럼 치솟는다.


“제이 필 오늘 너무 잘해줬어요.”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작가님들이 챙겨 주신 거 보고 읽기만 한 건데요.”

“에이···.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요.”


평소에는 늘 여유롭기만 하던 김찬수가 웬일로 들떠있다.

하기사 당연한 일이겠지.

고작 오 분짜리였던 인터뷰를 무려 삼십 분이나 끌어냈다.

PD로서 이것보다 더 짜릿한 일이 어디 있겠어?


“정말이에요. 성현 작가님이 앞에서 리드를 너무 잘 해주시더라고요. 사전에 소스 던져 주신 것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요.”

“소스요?”

“미리 이것저것 던져 주셨거든요.”

“크···. 하긴, 오늘 인터뷰는 우리 막내 작가님이 완전 캐리했지. ”


김찬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소리를 내곤.

아직 인터뷰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내 어깨를 툭- 하고 다독인다.


“오 작가 처음부터 일 잘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나 진짜 놀랐어요. 빈말이 아니라 어지간한 세컨 작가들보다 리드 더 잘 하던데요?”


등받이에 붙여놨던 허리를 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게 봐주셔서 그런 거죠. 제가 봤을 땐 제이 필이 다 했어요.”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당연히 잘할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나도 예상 못 했으니까.

빠르게 키워드를 캐치해 멘트를 정리하는 능력부터.

게스트의 속내를 자연스레 끌어내는 리드.

거기에 자연스레 화제를 돌리는 실력까지.

오늘 제이 필이 보여준 모습은 정상급 MC 그 자체였거든.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해 보니까 확실히 알겠다.

무명 아이돌에 불과했던 [와일드 키즈]가.

불과 일 년 만에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던 그 이유를.


“너무 잘 해줘서 고마워요.”

“어휴···. 감사합니다 작가님.”


서로 얼굴에 금칠하기 바쁘던 그때.

조용히 물만 홀짝이던 공 팀장이 호탕하게 외쳤다.


“자 그럼, 오늘은 제가 법카로 살 테니까 드시고 싶으신 거 맘껏 드시죠. 저희 애 이쁘게 봐 주셨는데, 제가 이 정도는 쏴야죠.”


미소를 참기 힘든 건지.

술이라곤 입에도 안 댄 공 팀장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일 거다.

나야 그렇다 쳐도.

오늘 본사 소속 PD인 김찬수에게 눈도장 하난 제대로 찍었으니까.


“여기서는 가볍게 드시고 이 차 가시죠. 제가 좋은 집 하나 알고 있습니다.”

“아 참. 공 팀장님. 안 그래도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시죠.”


김찬수가 입에 뭍은 맥주를 소매로 문지르곤 묻는다.


“혹시 제이 필 우리 프로그램 고정으로 해 볼 생각 있어요?”

“고정이요?”

“네. 생각 있으시면 회사 들어가서 얘기 한 번 해보려고요. 오 작가님 생각은 어때요?”

“저야 당연히 좋습니다.”

“어휴···. 저희야 기회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제이 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인다.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게 본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본건 데요 뭘.”


환하게 웃는 제이 필을 바라보며.

나 역시 속으로 흐뭇하게 미소짓던 그때였다.


-우웅!


“아, 죄송합니다. 잠시 통화 좀···.”

“괜찮습니다. 통화 먼저 하시고 얘기하시죠.”

“예.”


김찬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 공 팀장이, 공손한 자세로 몸을 비틀어 전화를 받는다.


“예 대표님. 촬영은 다 끝났고요, 지금 제작진분들 모시고 식사 중입니다. ···예? SNS요?”


무슨 일이지?

전화를 받던 공 팀장이 엉덩이를 들썩인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러는데··· 아, 예. 포털이요? 어··· 대표님 잠시만요.”


고개를 돌린 공 팀장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묻어난다.


“어···. 저기 PD님. 지금 저희 회사 대표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그런데요?”

“그게···.”


말꼬리를 흐린 공 팀장.

그가 눈을 끔뻑거린다.


“다니엘이 무슨 SNS를 올렸는데, 지금 저희 프로그램이 포털 실검에 올라갔다고···.”


뜬금없는 공 팀장의 말에.

서로를 바라본 나와 김찬수 역시 눈을 끔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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