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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일산

천재 화가가 세계를 그림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산일(山日)
작품등록일 :
2023.08.28 11:36
최근연재일 :
2023.09.24 12:2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36,015
추천수 :
779
글자수 :
168,306

작성
23.09.2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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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국전

DUMMY

미술대전은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술전이다.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서 1년 가까운 시간을 들인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한 몫 쥐고 있다. 좋게 말하면 영향력 있는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비리의 온상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랬다.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합시다.”


국전의 총책을 맡게 된 김인수 협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국전을 주관하는 한국미술협회의 새로운 협회장이다. 미대가 유명한 대학 출신이고, 돈이 많다.


“좋습니다.”


사람들이 웃으며 대답한다. 다들 몸을 치장하고 있는 물건들이 대단하다. 샤넬, 에르메스 같은 명품 브랜드들. 돈이 없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앉기 힘들다.


물론 모두가 돈이 많은 건 아니었다.


“...”


그중 한 사람은 수수한 차림으로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다. 올해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팀장을 맡게 된 유효진 팀장이다.


그는 그저 그런 대학에,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 기적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김인수 협회장이 입을 연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그가 히죽 웃는다.


“올해는 유독 우리 미술계에 재밌는 일이 많더라고. 다들 알지? 천재 소년Y. 윤시현인가 하는 그 친구 말이야.”

“어휴, 모르는 사람이 없죠. 그 친구 때문에 얼마나 난리였는데.”


장난스럽게 까르르 웃는 사람들. 김인수 협회장이 계속해서 말한다.


“그 친구가 올해 우리 국전에 참가한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

“...정말요?”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유효진 팀장이 조심히 고개를 든다.


“100%까진 아니지만, 거의 확실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거든. 그리고 그 친구 행보 좀 봐. 이현백 관장을 도와 박중현 화백 대작 검증했지. 동대문 괴물 기획자 정윤아랑 같이 일한다는 찌라시 돌았지, 얼마 전에는 최수월 화백하고 같이 있었잖아. 그 정도면 국전에 안 나오는게 이상하지 않아?”

“그건 그렇네...”


사람들이 술렁인다. 김인수 협회장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래서 생각을 해본 거야. 요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인기 많잖아? 우리 국전에도 그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적용하면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확실히 그렇네요.”


몇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인수 협회장의 말에 동의한다.


“벌써 여러 관심을 받고 있는데, 거기에 더 자극적인 요소를 넣는다면 확실히 흥행에 도움이 되겠네요.”

“방송사랑 협업을 통해서 그걸 방송으로 내보내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마 역대급 국전이 되겠지.”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 하나가 의견을 낸다.


“너무 많은 관심이 쏠리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

“...”


그 한마디에 모두가 숙연해진다. 미술계에 팽배해 있는 관습이 하나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전부 입을 다문다.


위험하다. 실제로 국전은 이전에도 이러한 ‘비리’가 들킨 적이 있었다.


“크흠.”


김인수 협회장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방송이지 않나. 방송은 애초에 대본대로 가는 거라고. 그럼 아무런 문제 없지 않나?”

“아하!”


바보 같은 탄성을 내지르는 사람들. 실제로 이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보들이다.


“그래서 방송사에 협조를 얻어볼까 하는데, 반대하는 사람? 혹은 다른 의견 있는 사람?”

“...”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날카로운 눈으로 모든 걸 바라보는 사람 하나가 있을 뿐이다.


유효진 운영팀장이었다.


‘다들 돈에 미쳤군, 미쳤어.’


그는 기적적으로 이 자리에 올라오긴 했지만, 그가 원해서 올라온 자리는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여러 우연이 맞닿아 앉은 자리였다.


어쩌다 보니 앉게 된 자리지만, 앉게 된 이상 책임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유효진 운영팀장은 여러 방면으로 성공적인 국전 개최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보이는 건 온갖 비리뿐이었다.


‘아무리 학연, 혈연, 지연이라곤 하지만... 모두가 노력하는 장소에서 이건 너무 심하잖아.’


심지어 대한민국 최고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국전에서 말이다.


‘...’


유효진 운영팀장은 침묵했다. 부당하다고 여기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에겐 약간의 지연 말고는 그 어느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상황에 침묵하고 비극하는 것뿐이었다.


“자, 그럼 성공적인 국전 개최를 위해 오늘도 한 잔 하자고!”

“좋습니다!”


사람들이 히히덕 웃는다. 유효진 운영팀장을 제외한 모두가 즐거운 얼굴이었다. 제 주머니에 돈이 쌓이는 일인데 즐겁지 않을 수가 없겠지.


‘하아...’


유효진 팀장은 그런 생각을 하면 아무도 듣지 못할 한숨을 내뱉었다.


#


꽤 평화로운 겨울 방학이었다. 준비할 건 많았지만, 시현은 그러려니 시간을 보냈다.


“읏차.”


한 달 동안 많은 그림을 그렸다. 새로 익힌 동양화가 손에 익기를 바랐다.


‘아직 모자라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수준까지 왔어.’


한국 최고의 동양화가라고 불리는 최수월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피지컬도 돌아오지 않아 섬세함이 부족하고.


‘이 기술을 여기저기에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시현은 한 달 동안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점검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동양화에서 사용되는 기법들을 여기저기에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유화에도 적용할 수 있으려나?’


생각해보면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시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점심이었다.


딱히 할 건 없었다. 밥을 먹고 그림을 그리는 게 전부인 일상이었다.


종종 정윤아가 놀러 와 그림을 보거나 놀고 가곤 했다. 그녀는 슬슬 새로운 전시회를 준비한다고 했다.


수진은 바빠서 만나기 힘들었다. 국전을 준비하겠다고 한 만큼, 그녀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 탓이었다.


“할 게 없네.”


너무나도 여유로워진 일상. 그래도 시현은 이런 일상이 싫진 않았다.


“전생보단 나으니까.”


무슨 일이 있든 전생과 비교하면 대부분 좋아진다. 그만큼 시현의 전생은 처절함의 연속이었다.


“지금 시간이 11시 반이니까...”


대충 한 시간 후에 점심을 먹으면 될 거 같다.


시현이 도화지를 꺼내 이젤에 걸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연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까 생각해본 거나 적용해볼까?”


시현이 붓을 들었다. 수채용 붓이었다. 동양화에 사용되는 붓과는 조금 다른 감각이다. 동양화의 붓은 넓고 부드러운 느낌이라면, 수채용 붓은 좀 더 날카로운 느낌이다.


“대충 이런 식으로...”


시현이 붓질을 시작한다. 그리는 대상은 눈앞에 있는 도자기다. 그림 연습을 위해 두었다.


“흠.”


동양화의 섬세함을 담아 그림을 그려본다.


“물은 이 정도 퍼지려나?”


붓이 달라 물 조절 감각이 다르지만, 확실히 동양화 경험이 도움이 된다.


“...”


시현이 물끄러미 그림을 바라보며 조금씩 조정을 해나간다. 서서히 수채화와 동양화의 감각이 합쳐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움직임을 이렇게 바꾸면...’


시현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려는 찰나.


“아들, 밥 먹어!”


박혜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시현이 정신을 차렸다.


“뭐야?”


벌써 시간이 한 시간 가까이 지나있었다. 그림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흐르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쉽진 않았다. 깨달음은 언제든지 찾아오는 거니까.


“지금 가.”


시현은 붓에 묻은 물감을 씻겨내고 도구들을 정리했다. 이젤 위에는 독특한 느낌으로 그려진 수채화가 남겨져 있다.


#


“뭐야?”


시현은 박혜은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뉴스를 봤다. 박혜은은 디자이너로 재택 근무를 할 때가 많다.


뉴스를 보던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국전에 대한 기사였다.


[대한민국 미술계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올해 미술대전은 좀 더 큰 규모로 개최할 계획에 있습니다.]


김인수라는 총책임자가 나와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박혜은이 어머머, 하고 입을 연다.


“올해는 뭔가 다르게 하려나? 미술전이 별거 없을 거 같긴 한데...”

“...”


시현은 물끄러미 뉴스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더 먹지. 왜 조금 먹어.”

“배불러.”


시현은 그릇을 정리하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어디 보자.”


컴퓨터를 켜 국전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인터넷에는 국전에 대한 여러 추측들이 올라와 있었다.


-이번 국전, 서바이벌로 진행한다는데? 방송국까지 낀대.

-그게 말이 됨? 왜 그런데?

-최근에 미술계가 주목 많이 받았잖아. 그래서 그렇다는데?

-그걸 네가 어케 암?

-어쩌다 보니 주워들었음

-구라 좀 치지 마셈;;;

-진짠데;;;


“흠.”


추측들을 확인한 시현은 핸드폰을 꺼냈다. 이럴 땐 확실하게 답을 알아내는 법이 있다.


“정윤에몽.”


정윤아에게 연락하면 되는 일이다. 그때, 우웅- 소리와 함께 정윤아에게 전화가 온다. 마음이 통한 모양이었다.


시현이 전화를 받았다.


-어, 동생. 뉴스 봤어?

“지금 딱 전화하려고 했는데, 전화가 오네요.”

-동생 마음을 누나가 알지 누가 알리.


정윤아가 킥킥 웃는다.


-아무튼, 뉴스 봤지? 이번 국전, 다르게 진행된다는 거.

“네, 인터넷으로도 찾아봤어요. 무슨 서바이벌 체재로 간다던데.”

-에휴, 돈에 미친 놈들. 방송국하고 연계해서 아예 쇼를 한다더라. 예술의 예자도 모르는 놈들이 도대체 뭘 한다는 건지...


정윤아는 한탄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나갈 거지? 국전.

“여기까지 왔는데 물러설 순 없죠. 아깝잖아요. 여태까지 해온 거.”


사실 시현에겐 국전이란 목표 중 하나인, 자신의 전생 그림 찾기를 위한 과정이다. 안 나가도 그만이긴 하지만, 나가지 않으면 포기해야 하는 것도 생긴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런 대충대충 하는 마인드가 예술가한테는 필요하지.

“칭찬이죠?”

-과찬이지.


스스로 과찬이라 말하는 정윤아. 어이가 없다.


-그래서 올해 국전은 예전하고 진행방식이 좀 달라질 거라고 하더라. 신청도 2월부터 받는다고 하고.

“...2월이요?”


지금이 1월이다. 남은 기간이 한 달이라는 뜻이다.


-서바이벌 오디션으로 간다니까 이런저런 신청부터, 준비할 게 많은 거겠지. 뭐... 크게 신경 쓰진 않아도 될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대로만 해. 그건 할 수 있지?

“그거야 뭐 그렇죠.”

-아무튼 그래. 이거 전해주려고 연락했다. 조만간 찾아갈게. 그림 열심히 그려놔라. 좋은 거 뽑아줄게.

“고마워요, 누나.”

-그래.


정윤아가 전화를 끊었다.


‘서바이벌 오디션이라...’


한국 미술계에 비리가 넘쳐난다는 건 예전부터 종종 들어온 이야기였다. 사실 한국인들은 협회를 믿지 않는다. 학연, 혈연, 지연에 돈만 좇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게 협회다.


‘지랄났군.’


그래도 별수 있나.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을 만든 원인 중 하나가 나니까.’


김인수 협회장은 최근 미술계가 주목을 받아 이런 변화를 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년부터 올해까지, 미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누가 뭐라 해도 시현의 존재였다.


그러니 뭐, 딴 소리 할 수 있나.


무엇보다 시현은 이런 변화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랄 맞은 건 지랄 맞은 거지만, 딱히 어려울 건 없잖아.’


시현이 고개를 돌렸다. 전생 후 처음으로 그렸던 풍경화가 보인다. 전생의 기억을 그려낸 그림이었다.


‘그냥 내 실력대로 하면 되는 거지.’


시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전 준비까지 남은 시간 길어야 한, 두 달.


그 시간 동안 시현은 재밌는 것들을 그려볼 계획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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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빨리 찍어요 23.09.21 485 22 12쪽
26 카운터 23.09.20 517 16 12쪽
25 과거와 다른 현재 +1 23.09.19 584 19 12쪽
24 수묵 +1 23.09.18 615 20 13쪽
23 손녀 23.09.17 695 15 12쪽
22 연결고리 +1 23.09.16 739 15 15쪽
21 오만한 천재 +1 23.09.15 847 21 14쪽
20 방문 +1 23.09.14 870 19 12쪽
19 전면전 23.09.13 934 22 13쪽
18 왠지 모를 분노 23.09.12 992 22 12쪽
17 플랜B 23.09.11 1,008 23 12쪽
16 다산 미술관 23.09.10 1,064 21 12쪽
15 준비(2) 23.09.09 1,141 19 12쪽
14 준비 23.09.08 1,302 25 12쪽
13 미술대전 23.09.07 1,448 24 12쪽
12 내가 사는 세상 23.09.06 1,473 28 14쪽
11 첫 그림 +2 23.09.05 1,558 34 11쪽
10 회식 +1 23.09.04 1,630 31 13쪽
9 타고난 운명 +2 23.09.03 1,696 40 13쪽
8 검증 23.09.03 1,696 40 12쪽
7 당해봐라 +4 23.09.02 1,701 44 12쪽
6 대담 +1 23.09.02 1,682 34 12쪽
5 썩 나쁘지는 않다 23.09.01 1,692 38 12쪽
4 전시회 +1 23.08.31 1,749 32 13쪽
3 버러지 +1 23.08.30 1,876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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