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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일산

천재 화가가 세계를 그림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산일(山日)
작품등록일 :
2023.08.28 11:36
최근연재일 :
2023.09.24 12:2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36,014
추천수 :
779
글자수 :
168,306

작성
23.09.19 12:20
조회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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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과거와 다른 현재

DUMMY

지은은 시현의 그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저런 그림을 그렸지?’


최수월의 손녀로 자라오며 정말로 다양한 그림을 봐온 그녀다. 그녀는 어지간한 그림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보는 눈이 탁월했고, 그만큼 그림 실력이 뛰어났다.


밖으로 나돌 필요가 없기에 지은은 집에서만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은 최수월이었다. 지은은 최수월의 피를 물려받은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최수월은 뛰어난 선생이었다.


즉, 지은은 재능을 타고난 천재였다.


로열 블러드라 해도 좋은 정도로 모든 것을 타고난 지은조차 시현의 실력 앞에선 그 어떤 말도 이을 수 없었다.


‘동양화를 배운 적이 있나? 어떻게 저런 깊이를 그려내는 거지?’


조금은 엉성하지만, 그 디테일이 남다른 그림. 마치 세월을 담아낸 듯한, 자신의 할머니가 그려낸 것과 비슷한 느낌을 내는 그림이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려낸 걸까. 그림에 깨나 자신이 있는 지은임에도 시현의 그림 실력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떠니, 지은아.”


최수월이 지은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엔 저 그림이 좋은 거 같니?”


여러 가지가 느껴지는 물음이었다. 최수월은 종종 지은에게 물었다.


‘밖으로 나가보지 않을래?’


영월이 아닌, 더 큰 무대로 나가보라는 의미였다. 지은은 거절했다.


‘아뇨, 괜찮아요.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에 불과 한대요, 뭐.’


굳이 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최수월이라는 거장이 가족이자 스승이다. 지은의 실력도 출중하다. 다른 곳으로 나갈 필요 없이 자연을 친구삼아 그림만 그려도, 지은은 충분히 만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저런 그림은 정말 보기 힘든 그림이란다. 세상은 넓고 정말로 다양한 화가가 있지만, 시현 학생 같은 화가는 드물지. 저런 그림을 더 보고 싶지 않니?”


최수월의 물음에 지은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고 싶어요. 하지만... 무서워요.”


지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집에 놀러 온 애가 저런 그림을 그리는데, 밖으로 나가면 얼마나 괴물 같은 사람들이 있을까요? 아무리 저런 애가 드물다고는 해도, 세상엔 더한 놈들도 많을 텐데.”

“그것도 사실이지. 세상엔 나도 모르는 천재가 넘쳐날 테니까. 하지만 그게 두렵다고 해서 이 작은 땅덩이에 갇히면 더 이상 발전할 순 없을 거야.”


지은이 시현을 바라봤다. 시현은 여전히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한 번 붓질을 할 때마다 시현은 성장한다. 괴물 같은 성장 속도다.


무섭다. 너무나도 무섭다.


지은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오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나가면 저런 괴물을 몇 번이나 마주쳐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동시에 저런 괴물들과 싸우고 더욱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최수월ㅁ이 조용히 지은을 지켜봤다. 손녀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 것만 같다.


‘애는 표정에 모든 게 드러나니까.’


무섭기도 하면서, 동시에 호승심도 느끼고 있겠지.


‘당장 답을 낼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지은아, 너라면... 분명히 해낼 수 있을 거다.’


최수월은 다시 고개를 돌려 시현을 바라봤다. 시현이 그리는 산맥 너머로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한다. 작업실 문을 닫을 시간이다.


#


“후우...”


한참 동안 그림을 그리고 나서야 시현은 붓을 놓았다.


더 그리고 싶었지만, 더 이상 바깥이 보이지 않아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내일 아침이 되어야 다시 그릴 수 있을 듯싶다.


풍경화가 가지는 아쉬운 점이다.


‘그래도 뭐... 나쁘진 않네.’


시현은 자신의 그림을 보며 생각했다. 전생에 비해 피지컬도 떨어지고, 동양화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해서 완벽한 그림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썩 만족할 만큼의 그림이 나왔다.


‘더 잘 그리고 싶었는데...’


물론 아쉬움이 더 컸다. 이해가 부족해도 피지컬이 좋았다면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텐데.


어느 쪽이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그림이네요, 시현 학생.”

“아.”


최수월의 목소리에 시현이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렸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그림 그리는 거 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사실 안 죄송합니다.”

“...?”


시현의 개소리에 지은이 눈을 부릅떴다. 시현 나름의 장난이었다. 최수월은 후후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장난도 짓궂어라. 그런 장난 좋아요.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인데, 먹고 싶은 거 있어요? 가리는 게 없다곤 하지만 이 나이 때는 아무래도 고기가 좋겠죠?”

“좋죠. 고기.”


고기가 최고다.


“그럼 준비를 좀 해야겠네요. 잠시만요.”


최수월이 자신의 수행원에게 전화한다.


“응, 미안한데 바베큐 좀 준비해줄래? 네 몫도 당연히 사와야지. 응, 그래. 고마워.”


최수월은 친절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수행원에게 바베큐 준비를 요청했다.


“슬슬 나가면 되겠네요.”


최수월이 빙긋 웃으며 말한다.


.

.

.


최수월의 저택은 미술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최수월의 저택 역시 하나의 미술품이라 해도 좋을 만큼 깔끔한 외관을 자랑했다.


하얀 벽면을 베이스로 남향으로 뚫린 통유리. 직각으로 나 있는 테라스와, 중앙에 위치한 현관과 계단 등. 모던함이 듬뿍 묻어나는 저택이었다.


시현과 지은, 그리고 최수월은 저택의 마당에서 바베큐를 시작했다.


“다들 조심하십쇼.”


최수월의 수행원이 토치를 이용해 숯에 불을 붙인다. 어두운 밤인데도 수행원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안 불편한가...?’


시현은 딴지를 걸어볼까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나름대로 멋을 부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숯이 불똥을 일으키며 타오르기 시작한다. 불길이 가시고, 수행원이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이렇게 불러서 미안해, 유진아.”

“아닙니다, 선생님. 이 서유진. 선생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말은 참 잘해.”

“일도 잘 합니다.”

“맞지.”


수행원의 이름은 서유진인 모양이었다.


고기가 익어간다. 마치 캠핑을 온 것 같다. 마당 한구석에는 모닥불을 피워놨고, 바베큐를 굽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캠핑이라...’


옛날에는 그런 건 꿈도 꾸지 못했는데, 캠핑이 아니라 진짜 야영을 했는데. 가난한 시절의 노숙, 전쟁통 속의 노숙.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고, 그 기억들은 시현의 머릿속을 좀먹어간다.


“시현아.”


낯선 목소리에 시현이 정신을 차렸다. 지은이었다. 아직 목소리가 조금 낯설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래?”


지은이 힐끔힐끔 시현의 눈치를 본다. 이윽고 지은이 묻는다.


“그림, 어떻게 해야 그렇게 잘 그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시현은 그러려니 생각했다. 최수월의 손녀이니 그림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거라 추측했다.


“그냥 그린 건데. 눈에 보이는대로.”

“누구한테 배웠어?”

“딱히 배운 적은 없는데...”


시현은 전생을 떠올렸다. 돈이 없다고 그림을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어깨너머로 그림 실력을 훔쳐내곤 했지만, 스승이 누구다... 라고 말할 정도는 되지 않았다.


“거짓말. 그런 실력인데 안 배웠다는 게 말이 돼?”

“진짜라니까. 뭐, 따지면...”


훔친 것도 스승이라 볼 수 있나?


“피카소, 고흐 같은 사람이 스승이지. 많이 따라 했거든.”


위작을 엄청나게 찍어댔다. 위작도 결국 모작(模作/남의 작품을 따라 그리다)이기에 실력이 늘려면 늘 수밖에 없다.


“그게 전부야?”


지은이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시현을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시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아니라고 하면 내가 뭐라고 해야 하냐?”

“말하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걸 수도 있지.”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더 이상 말씨름이 귀찮아진 시현은 관심을 돌렸다. 고기가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다. 고기 냄새에 절로 침이 고인다.


지은은 그런 시현을 지긋하게 바라봤다. 미술학도 특유의 관찰이다.


‘거짓말인가? 거짓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 사실이 지은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안 배우고 저런 실력을 낼 수 있단 말이야? 그게 더 말이 안 되는데?’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지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딱 한 가지 조건만 붙는다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


‘천재라면 되겠지...’


천재. 예체능에서 마법 같은 단어다. 예체능은 재능 빨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만큼 예체능은 재능이 차지하는 영역이 대부분이다. 물론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천재도 죽는 곳이 예체능이긴 하다.


고민을 마친 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을 향해 말한다.


“너, 미술전 나가는 거 있어?”

“있는데, 왜?”

“나도 나가게.”

“...?”


얘가 왜 이러지? 시현은 그런 생각을 했다.


“뭐 나가는데?”

“국전.”

“...대한민국 미술대전?”

“응.”

“...하긴 그 실력이면 나갈 만하지.”


지은이 입술을 작게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고민이 드는지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종종 옮긴다. 시현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상한 애네.’


최수월의 어린 시절과 묘하게 닮은 거 같기도 하고, 묘하게 다르기도 하다.


‘뭐, 아무렴 어때.’


시현은 생각을 마치고 고기를 바라봤다. 고기가 전부 익어간다. 서유진이 최수월과 시현의 접시에 고기를 올려준다. 시현은 웃으며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


이후 2박 3일간, 시현은 현대 미술관의 작품을 구경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대체로 수묵화였다.


“이건 어때요?”

“나쁘지 않네요. 하지만 여기를 좀 더 섬세하게 그렸으면 어땠을까요?”

“다음에 해보죠.”


선생을 자처한 건 아니지만, 최수월은 시현의 선생이 되어주었다.


“여기는 좀 더 농도를 옅게 하는 게 좋았을지도 몰라요.”

“산의 깊이를 표현하려고 했는데... 너무 과했나 보군요.”

“나쁜 시도는 아니었어요. 이 정도 그림이면 아예 실시간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것도 재밌겠네요.”


애매한 관계였다. 스승과 제자라고 하기엔 정식으로 연을 맺은 건 아니다.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스승과 제자 같은 사이.


시현은 과거의 인연을 통해 자신의 지평을 서서히 넓혀가고 있었다.


‘라이브 드로잉이라...’


들어본 적만 있지, 해본 적은 없다. 스케치도 없이 곧바로 그리는 그림. 수묵으로 그런 라이브 드로잉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시도는 재밌겠네.’


시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 비슷한 시간.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인터넷 언론사 온보드뉴스의 기자 최철환이 의문을 품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지?”


조회수가 곧 돈이 되는 인터넷 뉴스판. 그는 조회수를 뽑아낼 수 있는 소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대한민국 미술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학생이 이런 실력을 가질 순 없는데...”


윤시현. 대한민국 미술계에 갑작스레 나타난 천재 소년. 최철환은 시현과 관련된 기사를 보고 있었다.


“설마...”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키워드가 합쳐진다. 대작, 커넥션, 비리 등등.


“오... 오오...”


그의 머릿속에서 제목이 떠오른다. 최철환이 초고를 작성한다. 제목은 이러했다.


[천재 소년Y. 그의 실력은 진짜인가?]


최철환이 히죽 웃었다.


“나, 천잰가?”


여러모로 바보 같은 발상이었다.


작가의말

음해 멈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양웬리님
    작성일
    23.09.19 16:53
    No. 1

    저는 아무리 놀라워도 쥔공을 거짓말쟁이 취급하는 여자는 좀그런데 저 ㅈㅇ이라는 여자가 여주아니겠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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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플랜B 23.09.11 1,008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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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준비(2) 23.09.09 1,141 19 12쪽
14 준비 23.09.08 1,302 25 12쪽
13 미술대전 23.09.07 1,448 24 12쪽
12 내가 사는 세상 23.09.06 1,473 28 14쪽
11 첫 그림 +2 23.09.05 1,558 34 11쪽
10 회식 +1 23.09.04 1,630 31 13쪽
9 타고난 운명 +2 23.09.03 1,696 40 13쪽
8 검증 23.09.03 1,696 40 12쪽
7 당해봐라 +4 23.09.02 1,701 44 12쪽
6 대담 +1 23.09.02 1,682 34 12쪽
5 썩 나쁘지는 않다 23.09.01 1,692 38 12쪽
4 전시회 +1 23.08.31 1,749 32 13쪽
3 버러지 +1 23.08.30 1,876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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